
뿔테 안경에 단화·초록색 후드의 15세 소녀 심청, 어린 딸을 핍박하고 착취하는 심학권, 탐욕과 질투의 화신 뺑덕, 심청을 도운 냉혹한 권력자 장승상댁 부인과 심청을 노리개처럼 대하는 세 아들...
2025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국립극장이 공동제작한 ‘국립창극단 신작 <심청(PANSORI THEATER SHIM CHEONG)>’이 소리축제 개막공연 무대에 올라 화제를 불러 모았다.
국립창극단 신작 <심청>...오늘의 시선으로 '재해석' 관객들 시선 사로잡아

13일 개막된 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공연으로 선보인 국립창극단 신작 <심청>은 자기희생적인 심청의 효심에 초점을 맞춘 기존 ‘심청가’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심청’을 자신의 고유한 목소리와 힘을 가지지 못한 채 억압당했던 이 땅의 모든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인물로 그려냈다. 특히 전통 판소리의 깊이를 고스란히 유지하되, 원전의 내용에 구애받지 않고 시간과 공간, 캐릭터 등을 자유롭게 변형해 오늘의 시선으로 재해석해 관객들 시선을 사로잡았다.
극본과 연출은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연출가 요나 김이 맡았다. 2017년 오페라 전문지 오펀벨트 선정 ‘올해의 연출가’, 2020년 독일에 권위 있는 예술상인 파우스트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고, 2024년 국립오페라단 <탄호이저> 연출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요나 김은 "시공을 초월해 경계를 넘나드는 해석으로 언어에 대한 이해 없이 전달되는 보편적인 감성을 <심청>에 담아냈다"고 밝혔다. 창극의 중심이 되는 작창과 음악감독은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 <귀토> <리어> <보허자(步虛子): 허공을 걷는 자> 등 국립창극단의 대표작에 참여해 온 한승석이 맡아 판소리가 지닌 본연의 매력에 음악적 깊이를 더했다.
이 외에도 세계 유수의 오페라 축제에서 활약해온 독일 창작진이 무대 미술에 합류해 파격적이고 혁신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또한 배우의 감정과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포착해 스크린으로 송출하는 라이브 카메라 기법으로 인물의 내면과 정서를 더욱 섬세히 전달하며 관객의 몰입도를 한층 높였다는 평을 받았다.
출연진 150여 명이 펼친 대형 '창극'...입체·몰입감 높여

주인공 ‘심청’ 역에는 <변강쇠 점 찍고 옹녀> ‘옹녀’ 역, <춘향> ‘춘향’ 역으로 맑고 섬세한 소리로 관객들에게 존재감을 각인시킨 국립창극단 김우정과 지난 4월 공개 오디션을 통해 발탁된 소리꾼 김율희가 연기했다.
현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메시지를 지닌 심청의 캐릭터를 호소력 있는 연기를 통해 표현했다. ‘심봉사’ 역은 국립창극단 간판스타 김준수와 유태평양이 맡았다. 국립창극단을 대표하는 다양한 레퍼토리에서 세대를 넘나드는 배역을 맡으며 관객을 사로잡아왔던 두 배우가 눈이 먼 심봉사를 연기하며, 현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사회의 고정관념과 기득권 세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이밖에 ‘뺑덕어멈’ 역에는 이소연이, 김미진과 김금미가 각각 ‘노파심청’, ‘장승상댁 부인’ 역을 맡아 무대를 이끌었으며, 이 외에도 국립창극단 단원을 포함하여 시즌단원, 무용수 아역 배우, 합창단 등 157여명의 출연진이 대거 출연해 무대를 가득 채워 입체감과 몰입감을 높였다.
/박경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