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5월 인지 6월 어느날 우리 아파트 놀이터 담장 아래 여기 저기 호박이 심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평소에 관리사무소장은 입주민 마음대로 아무거나 심으면 안된다고 했는데 누가 심었는지 궁금했습니다.
며칠 후 놀이터에서 걷기를 하던 이웃을 만나서, 호박은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심었고 물도 열심히 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놀이터에 백합꽃을 보러 갔던 어느 날 아침, 호박꽃이 많이 피었고 호박잎은 엄청 크게 자라서 거름을 많이 줬나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며칠 후 아침에 놀이터에서 50대로 보이는 회장을 만났습니다. 호박이 열리면 여럿이 나눠 먹으려고 심었다고 했습니다. 들으면서 '호박이 수십 개 열리지는 않을텐데 누구에게 어떻게 나눠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7월 어느날, 손가락 같이 가는 호박이 시든 꽃을 물고 자란 것을 보았는데 그 호박이 시장에서 파는 호박 같이 크게 자라서 따먹었는 지는 모르겠습니다.

며칠 후 아침에 나가 걷기를 하고 온 남편이 회장을 만났더니 호박이 열리지 않는다고 했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호박 농사를 짓는 홍 농부의 아내, 이주해 선생님이 호박꽃이 필 때는 부지런히 수정을 시켜줘야 해서 바쁘다고 페북에 올렸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붓으로 수술에 뭍은 꽃가루를 암술에 발라주는 것인지 방법은 물어 보지 못했지만 꽃이 핀대로 다 호박이 열릴 거라고 그냥 기다리면 되는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습니다.
꿀벌이 예전에 비해서 10분의 1로 줄었다는데 꿀벌이 오지 않으면 꽃이 아무리 많이 펴도 호박은 볼 수도 없다는 생각을 하니, 호박 모종을 사다 심고 올 여름 무더운 날씨에 열심히 물을 준 회장이 딱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 아침에 놀이터에 갔다가 오랜만에 회장을 만났더니 호박이 열리기는 했는데 얼마 못가서 떨어져 버린다고 했습니다. 꿀벌이 없어서 사람이 꽃가루를 붓으로 묻혀줘야 된다는 말은 들었으나 그것 또한 잘 몰라서 안했다고요.
호박 넝쿨은 꽃밭으로 뻗어 나가 다른 것들 위로 무성한데 호박은 안 열리고 호박꽃 속에는 개미들만 열심히 움직이고 있네요.
/문아경(전주시민·전북환경운동연합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