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광 기자, 온몸으로 묻는다] 왕선택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대학 대우교수
지난 7월 28일과 29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한국과 미국에 대한 담화를 발표했다. 한국에 대해서는 적대감을 표시한 반면, 미국에는 긍정적인 면이 있었다.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를 해석해 보고자 지난 7월 30일 왕선택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대학 대우교수와 전화로 연결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왕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김여정 담화, 긍정적 요소도 있기 때문에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해석하는 건 오류 가능성"

-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7월 28일과 29일 한국과 미국에 대한 담화를 발표했어요. 근데 남한에 말하는 톤과 미국에 말하는 톤이 다르던데 어떻게 보셨어요?
“저도 김여정 부부장 담화에서 한국과 미국에 대한 어조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적대감을 표출하는 쪽으로 방점이 가 있고, 미국에 대한 담화에서는 긍정적인 입장과 경계감이 혼재돼 있습니다.”
- 이재명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없을까요?
“있기는 하지만 유보적입니다. 28일 담화를 보면 한 90% 정도는 부정적인 입장이고, 10% 정도만이 긍정적입니다. 이중적인 신호가 포함돼 있지만, 균형감은 깨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가 남한이 북한을 흡수 통일하고자 하는 의사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포함돼 있어요. 논리적으로 보면 흡수 통일과 관련해서 남쪽이 입장 변화를 하거나 납득가게 설명한다면 대화가 가능하다는 해석도 할 수 있습니다.
또 지난 몇 년간의 대북 정책에 대해 이재명 정부가 대단히 잘못됐다고 평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공감하는 취지로 언급했습니다. 이런 것으로 봐서 남쪽에 대한 담화에도 이중적인 신호가 있고 긍정적인 요소도 있기 때문에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해석하는 건 오류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 근데 김여정 부부장은 "서울에서 어떤 정책이 수립되고 어떤 제안이 나오든 흥미가 없으며 한국과 마주 앉을 일도 없다"고 했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남쪽에서 흡수 통일이라고 하는 부분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대화 필요성이 없다고 얘기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흡수 통일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오해가 있다는 설명이 이뤄진다면 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오는 10월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이하 APEC)에 김정은 위원장 초청할 가능성에 대한 얘기가 나오잖아요. 이에 대해 김여정 부부장은 헛된 망상이라고 했어요. 가능성 없을까요?
“가능성은 있지만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지요. 진보 진영의 대북 정책 전문가 중에 일부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관계의 대전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외교적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 10월 말 경주 APEC에 주목하는 건 일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7년이나 8년 전 상황하고 지금과 너무 많이 달라요.
김정은 위원장 처지에서 보면 2017년 말 당시에 남한의 진보 진영하고 대화와 협력은 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1년 이상 접촉을 해 보니 남한 사람들은 진보 진영조차도 흡수 통일이 정책의 출발점이고 최종 목표로 삼고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남북 관계는 파탄이 난 것이고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체제라고 주장하는 거죠.
그러나 앞으로 대화와 소통, 협상을 통해서 흡수 통일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저는 김정은 위원장이 이재명 정부와의 대화를 검토할 수 있고, 남북 관계 개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경주 APEC은 앞으로 3개월이 남아있는데 그런 오해를 해소할 수 있는 시간으로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 후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8월에 열리는 한미연합훈련 조정을 건의하겠다고 했는데 이 부분은 어떻게 보세요?
“2017년 말에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외신을 통해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해 적극 추진하는 차원에서 한미연합군사훈련 일정을 조정한다고 밝힌 적이 있어요. 그 결과 북한이 반응해서 평창동계올림픽을 활용한 남북 관계 개선에서 엄청난 성과가 있었던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정동영 장관 입장에서 본다면 새로운 이재명 정부 차원에서 남북 관계 개선 의지가 있고, 군사적 긴장 완화에 대해 실질적으로 의지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신호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만 북한 처지에서 본다면 남북 간의 신뢰 상실이라고 하는 것은 심각한 수준이고 한미연합훈련 규모라든가 일정 조절하는 정도로는 신뢰 관계를 회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제가 볼 때는 흡수 통일 문제를 포함해 북한이 주장하는 대북 적대 정책 폐기와 관련해서 근본적인 입장 교환이 필요합니다.”
"남북 관계 신뢰 회복 위해선 다양한 신호 반복적으로, 일관성 있게 보내야"
- 그럼, 신뢰 회복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단기적으로 한두 번의 정책 가지고는 안 되고요. 한미연합군사훈련 조정 포함해서 북한이 신뢰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신호를 반복적으로, 일관성 있게 보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북한도 어느 시점에서 대화를 거절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 정동영 장관은 통일부 명칭 교체에 대해 고민하는 것 같아요.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 얘기하며 ‘통일’이라는 단어를 뺀 것과 연결된 것 같은데 이 부분은 어떻게 보세요?
“고민 끝에 이런 제안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동족과 통일 개념을 부정하고 있고, 이번에 김여정 부부장도 재확인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만 통일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면 남북 대화를 열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러나 통일부 명칭 변경은 다양한 부작용과 문제점을 유발하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게 상책입니다.
부작용이 많은데, 6가지 정도를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헌법 정신에 위배됩니다. 헌법에 보면 대한민국은 분단을 해소하고 평화 통일을 추구해야 한다는 지침이 7군데가 나와요. 통일부 명칭 변경은 결과적으로 헌법을 준수하기 위한 의지와 노력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반론이 어렵습니다.
두 번째는 역사적 엄중성입니다. 대한민국이 통일 국가가 된 것이 짧게 봐도 1,100년이고 길게 보면 1,300년이에요. 분단 기간 80년이 짧지 않은 기간이지만, 1,000년 동안 단일 국가였다는 걸 생각하면 그다지 길지도 않습니다. 통일은 국가의 정체성이기도 하지만, 민족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그런 용어를 배제한다면 사회적으로 중대한 혼란을 유발할 것입니다.
세 번째, 통일 문제를 논의하기에 앞서 분단 문제를 돌이켜봐야 합니다. 우리는 1945년 분단됐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통일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분단은 우리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 외세가 결정한 것입니다. 국가 주권이 중대하게 훼손된 것입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여러모로 불편하고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분단을 받아들이면 국가 주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 됩니다.. 나라가 80년 전에 참담하게 반으로 쪼개진 상황을 가능한 빨리 시정해야 한다는 것을 국가 구성원들이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네 번째로 통일부 명칭 변경은 국제사회에 왜곡된 신호를 줄 수 있습니다. 남과 북은 원래 단일 국가였다가 외세에 의해 강제적으로 분단됐고, 지금은 남과 북이 서로 관할권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다툼이 존재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현실은 비극적이고 안타깝지만, 국토가 분단됐고, 통일을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국제적으로 확산이 돼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통일부 명칭이 사라지면 통일 지향한다는 정책 의지를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북한에 대한 관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북한에 중대한 혼란이 생긴다면, 우리가 북한 지역을 관리할 수 있는 정치적, 법적 권한을 주장하기 어렵습니다. 대한민국은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나라고, 통일부 명칭 변경은 그런 노력과는 반대 방향입니다.
다섯 번째 통일부 명칭을 변경한다고 해도 김정일 위원장이 대한민국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할 가능성도 극히 희박합니다. 통일부 명칭은 상관이 없다고 봅니다. 흡수 통일이나 적대 정책 문제에 대한 오해가 핵심 변수입니다.
여섯 번째로 통일부 명칭 변경은 남남 갈등을 불필요하게 증폭시키는 계기만 될 겁니다. 논란이 커지면서 통일부 명칭 변경 노력은 중단될 것입니다. 대북 정책과 관련해서 당파적 투쟁 현상이 가중되고 국가 분열상만 증폭할 거예요. 대내외적인 대전환 시기를 맞아 국가 혁신을 주도해야 할 이재명 정부가 불필요한 논란에 시달리다가 국정 운영을 위한 추동력을 허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추진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 김여정 부부장은 29일 미국에 대한 담화에서 “우리 국가수반과 현 미국 대통령 사이의 개인적 관계가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고 하면서도 "개인적 관계가 비핵화 실현 목적과 한 선상에 놓이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에 대한 우롱이 될 것”이라고 했잖아요. 비핵화 협상은 안 한다는 것 같은데 이 부분 어떻게 보세요?
“북한이 기본적 입장을 재확인한 것입니다. 비핵화 목적과 연계를 해서 북미 회담을 얘기한다면 우롱이기 때문에 비핵화라는 프레임 자체를 거부하고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한 상태에서만 대화하겠다는 메시지를 보여준 것입니다. 여기까지만 생각하면 북한과 미국의 대화는 불가능하죠.
그런데 북한 비핵화라는 건 한순간에 합의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북한 비핵화는 10년 이상, 20년까지도 봐야 하는 장기적 과제입니다. 결국 단계적인 접근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사안입니다. 일차적으로 핵 동결 아니면 불능화 차원에서 협상을 진행하고, 완전한 비핵화는 2단계에서 협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줄 수만 있다면 북한은 비핵화가 아니라 핵 동결 회담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참여가 가능합니다.
남한이나 미국에서의 입장은 핵 동결에 대해 협상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 다음 단계에서 비핵화를 논의할 수 있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비핵화로 가는 불가피한 단계라고 보면 수용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가 있습니다. 비핵화가 단계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 사안이므로 대화와 소통의 결과에 따라서 상황이 바뀔 수 있는 사안입니다. 그래서 저는 북미 대화는 가능하고 여전히 정책 의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트럼프 대통령과 참모 간에 의견 차이가 있는 것 같거든요. 트럼프 대통령은 핵 보유가 상관없다는 거 같고, 참모들은 CVID로 완벽하고 불가혁적인 비핵화를 말하는 것 같은데.
“그렇죠. 비핵화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사람마다 의견이 달라요. 그런데 NPT 체제라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거기에 부합하면 다 되는 것이고 NPT 체제를 유지하는 데 불편하거나 불리하면 안 됩니다. 그런 접근법에서 보면 다 똑같아요.
강경 의견으로 존 볼턴이 대표적이죠. 북한 비핵화는 불가역적으로 완벽하게 해야 하고, 스몰 딜은 절대로 안 되고 빅딜만 가능하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죠. 그렇지만, 한방에 비핵화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볼턴의 주장은 정치적 구호에 불과하고, 북한과 협상하지 말자는 주장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이 핵 가지고 있는 상황을 용인하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NPT 체제라고 하는 것은 미국이 국제 안보 질서 차원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 장치입니다. 미국과 강대국이 인정한 5개 나라를 제외하고는 어느 나라도 핵무기를 합법적으로 보유할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오해가 없어야 하겠습니다.”
"북한과 미국, 직거래 시도할 가능성 있지만 희박한 수준"

- 우려스러운 게 남한 패싱하고 북미가 직거래할 가능성인데 그 부분은 어떻게 보세요?
“최근 남북 관계 경색이 심하기 때문에 남한 패싱 우려가 제기되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지난 30여 년을 돌아보면 북미 양자 직거래 상황은 극히 예외적입니다. 첫 번째는 1994년인데, 한국 정부가 북한과의 협상 거부하면서 북미 협상을 유발했기 때문에 이뤄진 것입니다. 우리가 패싱당한 것이 아니고 자초한 것입니다.
2018년과 2019년에 북미 정상회담이 있었는데, 이것은 한국 정부가 주선하고 촉진한 것입니다. 패싱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30년 중의 두어 번 북미 직거래가 있었지만, 극히 예외적이고, 그나마 성공한 것은 한국이 협조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협조하지 않으면 실패했습니다.
앞으로도 북한과 미국이 직거래 시도할 가능성은 있지만, 가능성은 희박한 수준입니다. 북한과 미국이 직거래한 사실이 거의 없어서 경험이 부족하고, 신뢰 수준도 박약합니다. 한국이 배후에서 지원하지 않는다면 북미 간에 직거래가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2018년 2019년 사례처럼 우리가 대한민국이 북한과 미국의 대화를 촉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 그러면 이재명 정부가 지금 할 게 있나요?
“지금은 남북 관계가 워낙에 파탄이 났고 한미 간에는 엄청난 긴장 관계가 조성돼 있습니다. 북미 간에도 연결고리가 거의 끊어진 상태예요. 한중 관계도 안 좋고 한러 관계도 안 좋아요.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가 대한민국이 주도권을 가지고 우리한테 유리한 외교 환경을 만들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거죠.
결국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차근차근 신뢰 회복하는 노력을 해야 돼요. 남북 관계, 한중 관계, 한미 관계 한러 관계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씩 긍정적으로 돌려놓고 그다음에 북미 관계 개선을 촉진하고 또 북중 간 관계에 대해서도 우리가 협조할 수 있으면 협조하고 또 한중일 세 나라 간의 협력 문제도 우리가 또 주도적인 역할할 수 있어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반도와 밀접한 관계 맺는 나라들과 우리가 친선 우호 관계를 최고 수준으로 높여놓으면 자연스럽게 한반도는 평화 공존의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이영광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