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광 기자, 온몸으로 묻는다] 조능희 전 MBC 플러스 사장
방송 3법이 7월 국회 해당 상임위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를 통과했다. KBS, MBC, EBS 등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걸 골자로 하는 방송 3법은 방송계의 오랜 염원이었다. 왜냐면 정권에 따라 공영방송 논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송 3법이 과방위를 통과하자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MBC PD출신으로 언론노조 MBC 본부장을 지낸 조능희 전 MBC 플러스 사장은 방송 3법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들어보고자 지난 7월 28일 서울 용산역에서 만났다. 다음은 조 전 사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무려 38년 동안 정부 여당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기본 틀 유지하다 이번에 처음으로 바꾸는 것”

- 방송 3법이 국회 과방위를 통과했고 본회의 표결 앞두고 있는데 어떻게 보세요?
“법사위와 본회의 통과해야 되잖아요. 저는 일단 빨리 통과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방송 3법 개정 논란 벌이면서 ‘속도와 방향 중 무엇이 중요하나’라는 얘기를 하잖아요. 저는 속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공영방송사의 사장 뽑고 경영에 대해 관리 감독하는 이사들 선임하는 지배구조를 ‘공영방송 거버넌스(governance)’라고 하는데요. 지금의 지배구조는 1987년 민주항쟁으로 처음 만들어진 것입니다.
독재정권 전두환 때까지는 KBS와 MBC 사장이 어떻게 선임되는지 아무도 모른 채로 자기네들이 정해서 그냥 낙하산으로 떨어뜨렸어요. 그러던 것이 1987년 민주화 항쟁 결과로 방송법이 제정되고 한국방송공사법 개정되었고, 1988년도에는 방송문화진흥회법이 제정되어서 방송사 사장 선임에 국회가 관여 할 수 있게 해서 지금까지 온 거예요. 무려 38년 동안 정부 여당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기본 틀을 유지하다 이번에 처음으로 바꾸는 겁니다.”
- 그동안 왜 안 바뀐 거예요?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자기들이 방송을 장악해 이용해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요. 민주주의를 위해 군부독재와 싸웠던 김영삼·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권에서도 안 하고 못 한 겁니다. 이번 방송 3법 개정은 1987년 민주화 이후 38년 동안 유지되던 기본 틀을 처음으로 바꾸는 겁니다. 매우 큰 의미가 있어요. 방송 민주화의 큰 획을 긋는 것입니다.”
- 문재인 정부가 안 한 걸까요. 아님, 못한 걸까요?
“저는 내부의 사정이 어떤지 모르지만, 둘 다겠지요. 할 수 있었는데 안 한 것은 뭐냐면 그전에 민주당이 야당 시절에 공영방송사 사장을 뽑을 때 다수결로 하지 말고 야당 이사도 찬성해야 하는 특별다수제를 무려 162명의 국회의원의 이름으로 제안했었어요. 그럼, 민주당이 여당 되었을 때 그걸 그대로 통과시키면 되었잖아요? 그런데 안 했거든요, 방송 개혁은 박근혜를 탄핵하기 위해 광장에 나왔던 촛불 시민들이 요구였잖아요. 문재인 정부는 촛불 시민이 만들어 준 정권이라며 스스로 촛불 정부임을 천명했으면서도 촛불 시민들의 요구에 대해 결론적으로 무시한 것이죠.”
"정치권력이 방송사 사장 선임 좌지우지한다는 정치적 후견주의 없애는 것...이번 개정안 핵심"
- 김장겸 국민의힘 의원은 방송 3법에 대해 "진보 좌파 정치권 및 학계와 언론계의 민낯이 드러난 법"이라며 "정치적 후견 주의를 꾸짖더니 정치권이 방송을 직접 통제하게 했고, 방송, 언론, 학계는 이사 추천 몫을 받자 어떠한 비판도 하지 않는 위선의 극치"라고 주장했습니다.
“개혁 입법도 결국은 국회의 입법 활동이라서 야당과 협의를 하는 절차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걱정이 되긴 해요. 국민의힘이 야당이라고 하지만 그게 보통 야당이 아니잖아요. 일종의 내란당인데,내란 세력과 개혁을 협의해야 한다? 납득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뭐가 짖더라도 기차는 출발한다는 말이 있듯이 때로는 무시하는 방법이 있기도 하지만, 정치는 정치니까 협의는 해야 하겠지요.
그러나 김장겸 의원은 내란 수괴 윤석열 체포를 방해한 45명의 국힘의원 중 한 명이고, 그가 MBC에 재직하면서 공영방송 종사자들 대상으로 저지른 범죄로 징역 8개월의 실형 확정받고 2년간 집행이 유예된 사람인데, 이것을 윤석열이 사면하고 복권시켜서 비례대표 국회의원 시켜준 사람이잖아요. 그런 사람이 무슨 공영방송 운운하면서 법 개정을 얘기할 자격이 있겠어요.
게다가 김 의원이 주장한다는 ‘정치권이 방송을 직접 통제하게 했다’는 것은 이번 개정안을 완전히 반대로 해석하는 것이라서 전혀 이해되지 않습니다. 정치권력이 방송사 사장 선임을 좌지우지한다는 정치적 후견주의 없애는 것이 이번 개정안의 핵심입니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집권 정치세력이 임명한 이사의 수가 전체 이사에서 삼분의 일도 안 되게 정해놨어요.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커다란 진전을 이룬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개혁법안은 빨리 통과되어야 합니다.”
- 이번 개정하는 방송 3법에서 국회 추천 몫을 40%로 명문화했잖아요. 이 부분은 어떻게 보세요?
“KBS 경우 15명의 이사 중에서 국회 추천이 6명이니까 40%라고 할 수 있지요. 방문진은 총 13명의 이사 중에서 국회 추천이 5명이라 40%가 안 되고요. 그런데 이사의 40% 추천권을 정치권이 가지고 있는 건 별로 중요한 개 아니고, 집권 여당의 몫이 얼마인가가 중요해요. 개정 방송 3법에 의하면 KBS 이사 중에서 민주당의 몫은 4명이 되는데 전체 이사 중에서 27%밖에 안 됩니다. 방문진은 3명으로 23%에요. 이 숫자로는 사장 선임이나 중요한 의사결정을 집권당이 독자적으로 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정치권이 40%라는 숫자는 의미가 없어요. 다수결로 모두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을 민주당이 스스로 20%대로 줄여 놓고 야당 추천 이사와 종사자 추천 이사와 시청자 시민 대표 이사들과 협치를 하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 국민의힘 주장은 추천 단체가 친민주당 성향 아니냐는 건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국힘도 이젠 그런 낡은 갈라치기 이분법적 사고를 좀 달리했으면 좋겠어요. 이 세상에는 붉은색과 파란색만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방송의 기본은 정치적 독립입니다. 자기네 편이 아니라면 다 민주당 편 아닌가라는 식의 주장은 각 단체에 대한 모독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일단 정치권력으로부터 직접 간섭을 받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요. 우리가 공영방송의 지배구조인 거버넌스를 말할 때는 상업방송과 전혀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오너인 대주주가 지배하는 SBS나 종편과 전혀 달리, 공영방송 KBS·MBC·EBS의 거버너스 구성하는 핵심 주체는 첫째 정부, 둘째 국회, 셋째 방송 사업자와 종사자, 넷째 시청자 시민입니다. 이 4개의 주체가 조화롭게 협력하며 지혜를 모아 공영방송의 역할 제대로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박정희·전두환 시절에 KBS와 MBC 사장과 이사들은 오직 정부에서 임명해서 내려보냈어요. 그러니 5·18 광주 민주화운동 때 광주 MBC가 민주시민들에 의해 불탔지요. 공영방송의 지배구조에 국회가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1987년의 민주항쟁 덕분입니다. 6·29 선언 뒤에 전두환 정권은 방송법 만들고 한국방송공사법 개정해서 KBS 사장을 이사회에서 추천하도록 하고 이사는 방송위원회에서, 방송위원 삼분의 일을 국회에서 선임하도록 했어요. 전두환이 자기 맘대로 밀실에서 하던 것을 국회가 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셋째 주체인 ‘공영방송의 사업자와 종사자’는 노태우 정권의 여소야대 4당 체제에서 만들어진 방송문화진흥회법에 들어갔어요.
방문진법을 제정하면서 MBC 노사가 추천하는 사람을 이사로 선임한다는 입법취지를 국회 속기록에 남겼습니다. 그래서 KBS와 MBC의 지배구조는 출발부터 약간 다릅니다. 그러다가 이번 방송 3법 개정으로 ‘공영방송 거버넌스의 넷째 주체인 시청자 시민’을 대표해서 각 방송사 시청자 위원회와 변호사 단체, 그리고 방송 언론 관련 학회가 공영방송 지배구조에 처음으로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비록 늦었지만 매우 대단히 바람직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일률적으로 임명 동의제 적용하는 것보다 조직 상황에 맞는 제도 스스로 찾게 하는 것도 좋을 것”

- 방문진 이사는 국회 추천만 있는 거 아닌가요?
“아니요. 법에는 국회 추천이 아니라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선임하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방통위는 관행적으로 여:야 6:3으로 추천받습니다. 여기서 ‘여’는 정부(대통령실)와 여당입니다. 야당 추천은 주로 야당 원내대표가 합니다. 교섭단체가 셋일 때는 작은 야당에서 한 명을 추천해 6:2:1로 되기도 하지요. 이런 배분이 만들어진 데에는 역사적인 선례가 있어요.
방문진법은 1988년 노태우 정권에서 만들어졌는데 그때는 국회가 여소야대 4당 체제였어요. 그래서 각 당이 한 명씩 지분을 갖는 구조를 만들어 방문진 이사 10명 중에서 4명은 국회가 추천하고 6명은 방송위원회에서 추천해 선임하도록 했지요. 그래서 방문진은 야당이 최소 3명이 보장된 채로 시작되었지요. 그런 사정은 당시 노조에서 발간한 노보에 자세히 나와 있어요.
이 외에 방송위원회가 추천하는 6명 중에는 MBC 노사가 추천하는 2인도 포함되었어요. MBC 사측 추천은 2003년에 없어졌지만, 노조 추천은 2021년까지 유지되었습니다. 이번 방송 3법 개정안에서 KBS는 3명, MBC와 EBS는 2명의 이사를 방송 종사자가 추천하도록 한 것은 이렇게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 KBS, 서울 MBC 그리고 보도전문 채널만 보도국장 임명 동의제 실시하기로 한 게 논란인데, 이 부분은 어떻게 보세요? 지역 MBC와 SBS를 비롯한 민영방송이 반발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지역 MBC와 SBS, 그리고 지역민방 모두 다 넣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현실적인 문제가 있을 겁니다. 예를 들자면, 방송문화진흥회법은 방송문화진흥회가 최다 출자자인 방송 사업자 즉, 서울 MBC의 경영을 관리 감독하는 법률입니다. 방문진이 최대 주주로서 서울 MBC가 공적 책임을 잘 수행하도록 관리하는 법이라서, 아무런 지분도 가지고 있지 않은 지역 MBC에 대해 직접적인 권한은 없습니다. 그래서 지역 MBC의 임명 동의제를 방문진법에 넣기가 애매할 겁니다. 또 역으로 방송법에 넣기도 애매할 겁니다, MBC를 위한 방문진법이 따로 있는데 방송법에 규정해야 되니까요. 이런 법적 문제는 앞으로 차근차근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더구나 당장 급하지도 않습니다, 왜냐면 현재 지역 MBC는 모두 임명 동의제를 실행하고 있으니까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더 현실적인 방안으로 임명 동의제를 포함해 앞에서 말한 여러 제도 중에서 하나를 의무적으로 선택하게 하면 어떨까 합니다. 일률적으로 임명 동의제를 의무적으로 적용하는 것보다 조직 상황에 맞는 제도를 스스로 찾게 하는 것도 좋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백가쟁명’이란 말이 제일 어울리는 분야가 방송법 개정안"
- EBS에서는 사장을 대통령이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저는 방송 실무자 출신으로서 명분보다 실리를 더 중요시하거든요. EBS에서 그런 요구를 하는 것은 일견 명분도 있고 EBS의 위상도 올라간다고 보일 겁니다. 그런데 저는 그 반대입니다. KBS 이사와 사장은 대통령이 임명합니다. MBC의 방문진 이사는 방통위원회가 임명하고 사장은 이사회에서 선임해 주주총회에서 임명됩니다. EBS의 이사는 방통위원회가 사장은 방통위원장이 임명합니다. 세 공영방송이 이렇게 서로 다르지요. 저는 오히려 KBS 이사와 사장도 EBS처럼 방송통신위원회와 위원장이 임명하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하면, 이사와 사장이 부당 해임당했을 때 긴급히 해임 효력을 정지시켜달라고 행정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이 신청이 받아들여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KBS에서 대통령의 인사권이 가처분으로 정지될 확률은 ‘0’입니다. 나중에 본안 소송으로 대법원까지 가서 해임이 무효가 되는 경우는 많지만, 행정법원이 가처분으로 대통령의 인사권을 긴급히 정지시킨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2008년 정연주 사장의 해임 이래로 그렇습니다. 반면에 방통위원장이 해임한 경우에는 가처분이 인용된 경우가 있습니다.
가장 최근의 예가 이진숙 방통위원장이 신동호를 EBS 사장으로 임명한 것을 행정법원이 가처분을 인용하여 효력을 긴급 정지시켰습니다. 윤석열 정부에서 KBS 남영진 이사장과 MBC 방문진의 권태선 이사장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해임되고 같은 날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결정이 나왔는데, KBS는 안 받아주고 MBC는 받아줬습니다. 물론 여러 다른 이유도 있지만, 일단 대통령의 임명권을 가처분으로 긴급 정지시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장관급인 방통위원장의 인사권은 긴급 효력 정지가 됩디다. 그동안 겪어보니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KBS도 굳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지 말고 EBS처럼 방통위원회에서 임명하는 것이 더 실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이번 방송 3법 개정안에서 아쉬운 점이 있을까요?
“빨리 통과시키지 않고 황금 같은 시간을 흘려보내는 거요. 물론 완벽한 법이 아닐 수도 있어요. 더 넣고 빼고 수정해야 할 것을 지적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지적 다 맞고요 지금까지 국회에서 제안된 법률 개정안이 약 70개이고, 여기에 대통령과 국회, 방통위에서 각종 위원회를 만들어 연구한 것과 방송 언론학자들이 제안한 것을 합치면 모두 100개도 더 될 겁니다. ‘백가쟁명’이란 말이 제일 어울리는 분야가 방송법 개정안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다시 이런저런 주장들을 일일이 또다시 받아들여 논의하고 합의해야 한다면서 시간을 질질 끌면, 이번에도 방송 3법 개정이 또 다시 물 건너갈 겁니다. 제가 보기엔 그동안 제안된 그 어떤 개정안보다 이번 법안이 제일 뛰어납니다. 제일 의미가 있는 법안입니다. 더 수정할 것을 찾는 것보다 이 법을 빨리 통과시키는 것이 훨씬 득이 될 것입니다. 왜냐면 일단 이 법이 개정되면 과거로 쉽게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지요. 빨리 통과시켜야 합니다.”
/이영광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