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광 기자, 온몸으로 묻는다] 정재훈 고려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윤석열 정부 당시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휴학했던 의대생들이 지난 12일 복귀를 선언했다. 또한 전공의도 19일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 열어 3가지 요구안을 의결했다. 때문에 2024년 시작된 의정 갈등이 풀릴 것으로 보인다.

의대생의 복귀 선언과 전공의들의 3가지 요구안, 그리고 의대 증원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의견 듣기 위해 지난 23일 정재훈 고려대 예방의학교실 교수와 전화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정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이미 세 학기 흘러가면서 여러 문제 불거져...하루라도 빨리 실질적이고 건설적인 논의 이뤄져야"

정재훈 고려대 예방의학교실 교수(사진=정재훈 제공)
정재훈 고려대 예방의학교실 교수(사진=정재훈 제공)

- 의대 증원에 발발해 휴학했던 의대생들이 지난 12일 복귀를 선언했잖아요. 전공의도 복귀 수순일 것 같은데 의정 갈등이 풀리는 걸까요?

“물꼬가 조금씩 트이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의대생들은 복귀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고, 전공의들 역시 대화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상태입니다. 다만 갈등의 발단을 돌아보면, 전임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지나치게 급격하게 발표하면서 의정 관계가 크게 흔들렸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정권이 교체된 만큼 갈등 완화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보지만, 시간이 지나치게 지연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안타깝습니다.

일반적으로 대학 교육의 학사 일정은 학기 단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의대 교육은 1년 단위로 돌아가기 때문에 한 학년 정도의 문제만 발생했더라면 훨씬 원활하게 조정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세 학기가 흘러가면서 여러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첫째, 일부 국민 사이에서 1년 이상 중단된 교육의 재시작이 ‘특혜’라는 부정적 인식이 커졌고, 둘째, 대학 측도 학기 조정이나 학사 일정 유연화를 쉽게 추진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의대생들이 정원 확대에 반대했던 핵심 논거 중 하나가 ‘교육의 질 저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학사 일정을 무리하게 압축하거나 단축하게 되면, 오히려 의대 교육이나 수련 과정이 부실해질 수 있다는 지적을 자초하게 됩니다. 결국 학생들이 정상적으로 수업을 이수할 수 있도록 하려면 충분한 물리적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시간이 계속 줄어드는 만큼, 하루라도 빨리 실질적이고 건설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의대교육은 1년 단위라고 했죠. 하지만 의대생 중에는 한 학기만 휴학하기도 할 것 같은데.

“형식상 가능 하지만, 현실에서는 거의 드문 일입니다. 의과대학은 1년 단위로 교과과정이 돌아가므로, 휴학하더라도 복귀 시점은 늘 새 학년이 시작되는 3월입니다. 중간 학기에 돌아오면 교육 과정이 맞지 않아 수업을 정상적으로 이수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 학기만 휴학하고 복귀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 그러면 가장 큰 문제가 어떤 건가요?

“가장 시급한 문제는 국가 차원에서 매년 배출되어야 할 신규 의사가 거의 2년 가까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의료 현장은 ‘면허 취득 → 수련의 → 전문의’로 이어지는 인력 흐름을 전제로 운영되는데, 이 흐름이 끊기면 필연적으로 공백이 발생합니다. 특히 필수·응급 진료 분야나 지방 중소병원일수록 타격이 큽니다.

두 번째로, 의과대학 교육 과정은 과목 수가 많고, 일정도 매우 촘촘합니다. 본과 3·4학년은 사실상 방학이 없을 정도로 임상 실습이 이어지는데, 물리적 시간이 줄어들면 이를 대체·보완할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교육 과정을 임의로 단축하거나 질을 희생하는 방식은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세 번째는 학교마다 여건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수도권의 상급 의대들은 교수진과 교육 시설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일정 조정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방 의과대학의 경우, 기초 의학 교원이나 실습 인프라가 제한적이어서 학사 조정 자체가 큰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일정이 뒤로 밀리면 국가고시 준비에 공백이 생깁니다. 예컨대 8월에 학기가 시작되면 다음 학기는 8월에 끝나는데, 국가고시는 해마다 한 번만 치러집니다. 졸업 직후부터 시험까지 수개월의 공백이 생겨 학생들은 ‘허송세월’을 보내야 하고, 의료 인력 수급도 불안정해집니다. 결국 핵심은 정규 교육 과정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한정된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배치해 학생들이 불필요한 손해를 최소화하도록 학사 일정을 재편하는 일입니다. 이는 현실적으로 난도가 매우 높은 과제이지만, 지금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그러면 내년 3월에 복귀하는 게 나은 건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내년 3월로 미루면 결과적으로 2년의 공백이 생기는데, 이는 교육 체계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전공의 과정은 과에 따라 4년제도 있지만 3년제도 있습니다. 특히 3년제 과를 예로 들면, 수련은 교수에게 배우는 부분 외에도 선·후배 간 계층적 학습이 핵심입니다. 1년 차가 2년 차에, 2년 차가 3년 차에 임상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받는 구조죠.

그런데 두 학년이 통째로 비게 되면 1년 차와 3년 차 사이에 2개년 차가 사라지는 셈이어서, 중간 단계에서 전수돼야 할 지식과 경험이 완전히 끊깁니다. 따라서 2년의 손실은 단순한 일정 지연이 아니라 교육·수련 체계의 공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결국 현실적으로는 1년 정도의 손실 안에서 학사·수련 일정을 재편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합니다.”

"지금의 학사 일정 차질이 6년 뒤 보건의료 현장에 큰 충격으로 돌아올 수 있어" 

텅 빈 강의실(자료사진)
텅 빈 강의실(자료사진)

- 그런데 지금 만약에 2학기에 복귀한다고 해도 국가고시 보는 건 똑같잖아요?

“그렇습니다. 학년마다 직면한 문제의 양상이 조금씩 다른데, 공통적으로는 물리적 시간 부족이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특히 본과 4학년은 복귀 후 국가고시까지 남은 기간이 지나치게 짧습니다. 국가고시는 연초 한 차례만 치러지므로, 임상실습·필수 강의·모의고사 등 졸업 전에 반드시 소화해야 할 과정들을 정상적으로 진행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추가적인 국가고시 기회를 제공하고 후속 수련 일정도 조정하는 등의 배려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본과 3·2·1학년은 상대적으로 시간이 더 있지만, 그마저도 넉넉하지 않습니다. 학사 일정을 맞추려면 방학을 전부 반납하거나 주말까지 수업을 편성하는 등 일정을 압축해야 합니다. 학생과 교수진 모두에게 큰 부담이 되는 일정이 되는 것이지요. 또 다른 복잡한 쟁점은 24학번과 25학번, 즉 현재 예과 1학년에 재학 중인 두 학년입니다. 대학별로 의대 정원 증원 폭이 크게 달라서, 어떤 학교는 정원이 거의 늘지 않았지만, 다른 학교는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곳도 있습니다. 이 두 학년을 한꺼번에 묶어 교육할지, 아니면 분리해 단계적으로 교육할지를 놓고, 학교마다 이해관계가 다르고, 교실·실습 환경·교수 인력 수급도 판이하게 엇갈립니다.

이 문제는 6년 후 전공의 수련 과정까지도 영향을 미칩니다. 전공의 정원은 현재 엄격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졸업생이 갑자기 급증하면 필연적으로 병목 현상이 발생합니다. 즉, 지원자는 크게 늘어나는데 정원은 그대로이므로 상당수 학생이 전공의 자리를 얻지 못해 의사 면허는 있지만 수련은 못 받는 공백기가 길어질 우려가 있습니다. 이 문제를 미리 조율하지 않으면, 지금의 학사 일정 차질이 6년 뒤 보건의료 현장에도 다시 큰 충격으로 돌아올 수 있어요.

무엇보다 학교마다 기초의학 교원 수, 실습 인프라, 재정 여력이 제각각입니다. 수도권 상위권 의대는 비교적 여력이 있으나, 지방의대는 교수진도 부족하고 실습 병상 확보도 쉽지 않아서 학사 조정이 훨씬 어렵습니다. 3학년은 이렇게, 2학년은 저렇게 일괄적으로 지침을 내리면, 실제 현장에서는 실행이 불가능한 학교가 속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저는 일단 수업 시작하면서 동시에 협의를 진행하자는 입장입니다. 협의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사실이지만, 학생들의 학습권과 국가 의료 인력 수급을 더는 지연시킬 여유가 없어요. 가능한 빠른 시점에 교육을 재개해 물리적 시간을 확보하고, 그와 병행해 학년·학교별 맞춤형 보완책 마련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해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지난 19일 비대위를 열어 ▷윤석열 정부의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 재검토를 위한 현장 전문가 중심의 협의체 구성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및 수련 연속성 보장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 완화를 위한 논의 기구 설치 등 3가지 요구안을 의결했는데.

“저는 이번 요구안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초기에는 전공의들이 다소 강경한 입장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 핵심은 ‘과도한 정책 추진을 바로잡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3대 요구를 자세히 보면 첫 번째 재검토와 협의에 대한 요구인데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를 백지화하라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가 참여하는 협의체 통해 미래 세대의 목소리 반영하며 다시 살펴보자는 요청입니다.

두 번째는 수련 연속성 보장인데 전공의가 복귀하려면 당연히 훈련 과정이 단절되지 않아야 합니다. 이는 실질적인 복귀의 전제 조건이므로, 이 요구는 지극히 합리적입니다. 마지막으로 법적 부담 완화 논의도 필수·공공의료 영역으로 돌아갈 의지가 있으니, 의료사고에 대한 과도한 형사·민사 책임을 완화해 달라는 뜻입니다. 현장 복귀를 전제로 한 요구이기에 저는 이를 희망적인 신호로 읽습니다. 이 정도 수준의 안은 정부도 충분히 협상할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의정 갈등 해결에도 큰 진전이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 의대생과 전공의 복귀에 특혜주면 안 된다는 견해도 있는 것 같은데.

“저는 이 문제를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의대생과 전공의는 지난 행정부의 과도한 정책 추진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본 당사자들입니다. 의견 수렴 없이 강행된 탓에 이들은 이미 1년 이상 학업과 수련을 잃어버렸습니다. 따라서 이들에게 제공되는 조치는 ‘특혜’라기보다 ‘피해 복구’에 가깝다는 점을 사회가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둘째, 그렇다고 해서 전공의와 학생들이 사회적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다는 뜻은 아닙니다. 국민 여러분이 제기한 특혜 우려를 경청하고, 앞으로 필수 의료와 공공의료에 더욱 책임감 있게 기여하겠다는 인식도 분명히 보여야 합니다. 지난 정책 혼란의 일차적 책임은 명백히 전 행정부에 있지만, 복귀 과정에서 국민 눈높이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면 그것 또한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 아마 국민 중에는 의대생이 휴학한 것에 대해 밥그릇 지키지 아니냐는 시각도 분명히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특혜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시각이 있는 거 같거든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만, 저는 두 가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직업 선택의 가치는 다양하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발전하려면 의사 외에도 이공계, 인공지능, 신산업 분야 등 다양한 직군이 균형 있게 성장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의사가 되느냐, 되지 않느냐에 따라 향후 삶의 조건이 지나치게 크게 달라집니다. 이런 불균형 자체가 사회적 문제라고 봅니다.

둘째, 하지만 이를 해결하려면 한 직군을 일방적으로 희생하도록 만드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윤석열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한 배경에는 의료 인력이 너무 많은 자원과 혜택을 독점한다는 여론이 깔려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과학·공학 분야 R&D 예산은 오히려 삭감됐습니다. 즉, 한쪽을 억누르기만 하고 다른 분야를 실질적으로 지원하지 않았으니, 결과적으로는 혁신 생태계 전반이 약화된 셈입니다.

저는 앞으로 보건의료의 지속 가능한 성장 속도를 조절하면서, 동시에 과학·기술 분야에 과감히 투자해 다른 산업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서 격차를 줄이는 방식의 점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의사 수요는 기술, 제도, 수요라는 세 변수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어" 

의사 가운(자료사진)
의사 가운(자료사진)

- 그럼, 의대 증원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세요?

“의대 증원 논의의 출발점은 분명합니다. 필수 의료 현장에서 이미 인력 공백이 발생하고 있고, 미래에는 이 공백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니까요. 하지만 얼마나, 언제, 어떤 방식으로 늘릴 것인가는 단순히 숫자를 맞추는 수급 계산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닙니다.

유입과 수용 능력은 반드시 함께 설계돼야 합니다. 사람을 더 뽑으면 해결된다는 발상은, 증원된 인력이 실제로 감당 가능한 교육·수련 시스템 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지를 간과한 접근입니다. 또 정부가 말하는 ‘과학적 추계’ 예컨대 의사 인력 수급 추계위원회를 통해 미래 수요를 예측하겠다는 접근도 한계가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미래 의료 체계의 형태가 아직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령 우리가 인공지능 진단, 비대면 진료, 플랫폼 기반 의료를 적극 도입해 의사의 역할을 부분적으로 대체·보조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지금만큼의 인력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대면·고난도 진료 중심으로 의료 체계를 유지한다면, 오히려 의사 부족이 더 심화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의사 수요는 기술, 제도, 수요라는 세 변수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 가지 중 어느 방향을 택하느냐는 과학적 모델링만으로 답을 낼 수 없으며, 사회적 합의와 정책적 선택이 필수적입니다. 만약 의사가 더 필요 없는 미래를 선택한다면, 우리 사회는 비대면 진료 제도적 장벽을 완화하고, 기존 의료 시장 구조를 일부 조정해야 합니다. 반대로 의사를 더 늘려야 한다는 선택을 한다면, 국가 재정이 감당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의사 한 명당 국민이 부담해야 할 의료비 증가 속도를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국민적 동의가 선행돼야 합니다.

현 제도를 그대로 두고, 늘어나는 의료 수요를 감당하려고 의사를 더 뽑겠다는 방식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증원 여부 자체가 답이라기보다, 앞으로 50년, 60년 뒤에도 지속 가능한 의료체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가 핵심 질문입니다. 지금, 이 논의를 시작할 최적의 시점이 바로 현 정부의 임기 중이며, 각 분야 전문가가 정책 결정의 핵심 자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증원 문제는 단순한 공급 확대가 아니라, 미래 의료 모델, 기술 발전·재정 지속 가능성을 모두 엮어 논의해야만 올바른 해답에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영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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