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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세하며 선택적 수사와 기소를 계속 할 것만 같던 검찰이 불과 한두 달 사이에 바짝 움추러든 모양새다. 새 권력 앞에 다시 납작 엎드린 것일까? 정권이 바뀌자마자 검찰의 추한 민낯이 가장 먼저 속속 드러나는 형국이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동안 국민에겐 가장 힘세고 무서운 권력기관으로 행세하고도 정권에는 한없이 관대한 시녀처럼, 최고 권력자에겐 호위무사를 자처해 온 검찰이었기에 광장의 요구대로 새 정부 출범을 맞아 이제 해체 위기에 처한 것은 순전히 자업자득이다. 누구를 탓할 것도 없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이재명 정부에 검찰 개혁 5대 핵심 과제를 제안하며 수사·기소 분리를 골자로 한 전면적 해체 수준의 개혁을 촉구하고 나선 것은 그동안 검찰이 보여온 행태 때문이란 걸 '검찰 공화국'의 철옹성을 쌓고자 했던 검사들은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참여연대·민변 "검찰, 수사·기소 완전 분리해야"…'5대 개혁 과제' 제시 

검찰 깃발.(자료사진)
검찰 깃발.(자료사진)

참여연대와 민변은 18일 서울 종로구 국정기획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사·기소 분리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권한 및 역량 강화, 법무부의 탈검찰화, 수사절차법 도입, 검찰권 오남용 견제 방안 마련 등 5대 검찰 개혁 과제를 제시했다. 그 세부 내용 중에는 검찰권 오남용 견제 방안으로 ▲재정신청 제도 확대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검찰청 정보수집 전담조직 폐지 등을 제안해 시선을 끌었다. 이날 단체들은 회견 직후 관련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국정기획위원회에 전달했다. 그러나 이 같은 개혁안이 얼마나 반영될지 초미의 관심사다.

그도 그럴 것이 앞서 문재인 정부 당시 수사권 조정을 통해 검찰의 직접수사 개시 범위를 2대 범죄로 축소했지만 윤석열 정부에서는 시행령과 비공개 예규로 이를 사실상 무력화되고 말았다. 오히려 검찰 권한이 한층 강화됐다. 특히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명품백 수수 의혹 등 윤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 관련 사건만 보더라도 검찰이 권력 앞에서 한없이 관대하고 무기력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김검희 씨 관련 수사는 무마된 반면,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에는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수사에 적극 나선 사례 등은 지난 정권 내내 수없이 보아왔다. 

이 때문에 이날 참여연대와 민변은 "광장의 힘으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검찰의 권한 오남용을 근절하고 검찰 개혁을 완수하라는 시대적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며 검찰 개혁의 강도 높은 개혁을 촉구했다. 이날 모인 참가자들은 “검찰의 수사권 완전 폐지와 함께 공수처 권한 강화 등을 위한 공수처법 개정, 기소·영장청구권에 대한 실질적 통제를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역진 불가능한 검찰 개혁을 위한 과정에 함께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수사·기소 분리 ‘중수청’ 설치 등 검찰 개혁 법안 발의”...입법 '속도'

더불어민주당 로고(사진=민주당 제공)
                  더불어민주당 로고.(사진=민주당 제공)

이들은 또 “더불어민주당이 수사·기소를 분리한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 등 검찰 개혁 법안을 발의하며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정부 역시 제도 개혁에 적극 나서야 한다”며 “검찰 개혁의 전면적·신속한 추진, 역진 불가능한 제도화, 수사역량 강화와 인권 보호를 위한 개혁 등 3가지 방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참여연대와 민변은 "국회가 입법 추진중인 중수청 설치, 국가수사위원회 설치, 검찰청 폐지 등과 같은 입법 논의 과정에 의견을 적극 개진할 것"이라고도 덧붙여 앞으로 정치권에서 검찰 개혁이 제대로 추진되는지 꼼꼼히 관찰하고 참여할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 하필 이날 검찰에서는 '김건희 주가조작 의혹' 재수사 속보가 불쑥 튀어나왔다. 도이치모터스 주식 거래가 다른 종목에 비해 거액이었던 점을 확인하고, 주가조작 방조 혐의 입증에 속도를 낸다는 뒤늦은 수사 속보가 중앙의 거의 모든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재수사하고 있는 서울고검이 김건희 씨가 증권사 직원과 통화하며 수익 배분을 언급하는 내용의 육성 녹음파일을 확보했다는 내용이 주된 핵심이다. 

김씨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을 인식한 정황이 담긴 육성 녹음파일을 검찰이 확보했다는 것인데, 아무리 뒤져도 없다던 범죄 증거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것이어서 아리송하고 희한하기만 하다. 이는 그동안 서울중앙지검의 무혐의 논리를 뒤집는 물증이란 점에서 주목도가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다. 검찰이 수사를 시작한 지 무려 4년이 되어가는데 기초적인 수사도 하지 않고 봐주고 있었다는 사실이 재수사로 드러난 꼴이다.

검찰, ‘김건희 도이치 녹음파일' 이제야 확보?…4년 동안 뭐했나?

김건희 여사가 2024년 9월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서울 마포대교에서 마포경찰서 용강지구대 근무자와 함께 도보 순찰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김건희 씨가 2024년 9월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서울 마포대교에서 마포경찰서 용강지구대 근무자와 함께 도보 순찰을 하고 있는 모습.(사진=대통령실 제공)

그동안 나온 증거와 증언만으로도 ‘김건희 주가조작’ 가담 혐의는 충분히 입증할 수 있었지만 김건희 씨를 제외한 다른 모든 관련자가 기소돼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음에도 김씨만 쏙 빠진 채 여태 기소조차 되지 않는 특혜를 누린 사실이 이제야 들통난 셈이어서 검찰이 정권의 시녀, 최고 권력의 호위무사 역할을 해왔다는 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조상원 서울중앙지검 4차장은 지난해 10월, 당시 김건희 씨에 대한 무혐의 처분을 발표하면서 “시세조종 범행을 인식 또는 예견하면서 계좌관리를 위탁하거나 직접 주식거래를 했다고 보기 어려워 ‘혐의 없음’ 결정을 했다”고 밝혀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이를 곧이 곧대로 믿을 사람은 거의 없었다.

손으로 하늘을 가리려다 한계를 드러낸 양태가 화를 치밀어 오르게 할 정도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김씨의 미래에셋증권 계좌에서 도이치모터스 종목 거래내역 등을 확인하면서도 증권사 서버에 저장된 통화 녹취는 확보하지 않았음이 이제야 들통이 났으니 무능한 것이었을까, 봐주려고 작정한 것이었을까? 명백한 봐주기라는 것은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과 조상원 차장이 새 정부 출범 직전에 서둘러 사표를 내고 도망친 사례에서도 드러났다.

봐주려고 작정하다 들통 날 것 같으니 사표 내고 도망?

봐주려고 작정하다 들통이 날 것 같으니 피하려던 것이었음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라는 게 검찰 안팎의 중론이다. 최재훈 서울중앙지검 반부패2부장을 포함한 이들 핵심 검찰 인물들이 헌법재판소 탄핵 법정에서 뻔뻔하게 책임을 회피하던 광경을 많은 국민들은 지켜보았다. 헌법재판소는 '김건희 봐주기' 의혹을 받는 이창수·조상원·최재훈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했으나 이들의 행위가 온전히 정당했다고 판단하지 않았다.

헌재는 이들이 '김건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수사를 제대로 했는지 '의문이 있다’고 판시했다. 이보다 앞서 이창수 지검장 체제의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7월 당시 이원석 검찰총장을 '패싱'하고 휴대전화를 맡긴 채 '제3의 장소'에서 김건희 씨를 조사, 주가조작·디올백 수수 사건을 무혐의 처분했다.

이른바 '황제 수사' 논란을 일으킨 서울중앙지검은 '김건희는 주가조작 사실을 몰랐다'는 수사 결론을 언론에 브리핑하면서 '도이치모터스를 수사하면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지만 모두 기각당했다'는 거짓 발표 논란까지 일으켰다. 되짚어보면 검찰 권력 사유화와 정치적 남용의 대가는 검찰 조직 전체가 감당할 수밖에 없다는 공분이 이 무렵 가장 거셌다.

문재인 정부 시절 검찰 개혁 실패 사례 ‘반면교사’ 삼아야

2019년 7월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검찰총장 임명식에서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총장이 환담을 위해 이동하는 모습.(사진=청와대 제공)
2019년 7월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검찰총장 임명식에서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총장이 환담을 위해 이동하는 모습.(사진=청와대 제공)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제출한 공소청 및 중대범죄수사청 신설 법안을 중심으로 빠르게 논의를 진행해 공정하고 민주적인 수사와 기소 체계를 만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더욱 명백해졌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앞장서 추진 중인 ‘검찰 개혁 4법’이 국회 본회의 통과까지 최대 3개월 시한을 설정한 가운데 이르면 내년 9월께야 검찰청이라는 조직이 공식적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따라서 집중력을 발휘해 신속하게 추진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문재인 정부 시절 검찰 개혁의 속도가 더뎌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실패한 사례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앞서 민주당이 지난 11일 수사와 기소의 완전 분리를 핵심으로 하는 검찰 개혁 법안 4건을 일괄 발의한 내용을 보면, 핵심은 검찰청을 폐지하고 그 자리에 공소청(기소 전담), 중대범죄수사청(수사 전담), 국가수사위원회(조정·감독)를 각각 신설하는 구조다. 검찰청 폐지법과 공소청 신설법은 김용민 의원이, 중수청 설치법은 민형배 의원이, 국가수사위원회 신설법은 장경태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가운데 민주당은 올 9월 정기국회 전 본회의 처리를 마치고 이후 1년간의 유예를 거쳐 내년 9월까지 조직 개편을 완료하겠다는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다.

이 같은 절차를 거쳐 검찰청이 해체되면 현직 검사들은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하나는 법무부 산하 공소청 소속 검사로 남아 기소와 공소유지 업무를 수행하는 것, 또 다른 하나는 행안부 산하 중수청으로 이동해 수사관 신분으로 수사 업무를 계속하는 것 중 하나를 택하는 방법이다. 헌법상 '영장청구권은 검사만이 가진다'는 규정 때문에 ‘검사’라는 명칭 자체는 사라지지 않지만 그 조직으로서의 ‘검찰’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76년 이어진 '검찰청' 체제 종결…신속하되 역진 불가능한 개혁 이뤄야

이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76년간 이어진 검찰청 체제가 사실상 종결된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지만 앞으로 관련 개혁 법안이 통과되고 시행되기까지 남은 기간에 적지 않은 반발과 저항이 예상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히 공소청을 택하더라도 검찰총장의 위상이 장관급에서 차관급으로 격하될 가능성이 거론되는 등 기존 권한과 조직력의 상징들이 사실상 무력화되는 흐름 속에서 검사라는 직함만으로 버틸 수 있는 위상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불만이 벌써 나온다. 이 때문에 법조계 출신인 국민의힘 조배숙 의원 등은 “이재명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에 대한 감정적 보복이 검찰청 폐지법의 숨은 동기”라며 “입법권이 정치적 응징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개혁 이후 인권침해·중복 수사 우려도 나온다. 검찰 해체 이후 공소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경찰, 공수처 등 네 개의 수사기관이 병존하는 구조 속에서 수사권이 중첩되고 피의자 방어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나아가 기관 간 권한 충돌로 인해 수사 효율성까지 저하될 수 있다는 지적도 법조계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예상되는 문제점을 철저히 분석하고 보완하여 신속하되 역진 불가능한 검찰 개혁, 퇴행적 사법 시스템의 개선과 제도화를 위해 정부와 여당이 온 힘을 다해야 할 것이다. 검찰 개혁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돼야 한다. 그래야 정의가 바로 서고, 국민 모두가 법 앞에서 평등한 사회가 이룩될 것이다.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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