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길 위에서'

제21대 대통령 이재명 당선자에게 먼저 축하를 보냅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또 다른 길이 시작된다는 말처럼 새로운 기로에 선 대통령 당선자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하고 싶습니다.

언제부턴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이 많아져서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에게 정치학 분야 박사학위를 줘도 서운할 것 같지 않습니다. 지금 이 시대만 그랬던 것이 아니고 예전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1981년 겨울, 57세의 나이로 작고한 제 아버님도 선거 때만 되면 좋아하는 정치인들의 이름을 공책에다 써놓고 개표 방송을 들었고, 김대중 선생이 감옥에 계신 것을 염려했으며, 선생을 그렇게 만든 5공화국 사람들을 '나쁜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라는 말은 백번이고 천번이고 옳은 말입니다. 올바른 정치가 사라지고 변질된 이 시대에 정말로 좋은 정치란 어떤 정치를 말하는 것일까요? 조선의 성군이라 일컬어지는 세종대왕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정치를 잘하려면 반드시 시대의 치란(治亂)의 자취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 자취를 살펴보려면 오로지 역사의 기록을 상고하여야 한다.”

오늘의 이 시대에서 지나간 역사를 더듬어 보고, 비교 분석하는 것, 그것이 정치의 첩경임을 설파한 것입니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이자 현재, 사회와 과거 사회의 대화”라고 주장한 에드워드 카의 말 또한 고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지요.

”하늘은 특별히 가까이 하는 자가 없이 하늘의 뜻을 공경하는 자를 가까이 하고, 백성은 특별히 그리워하는 자가 없이 어진 정치를 펴는 사람을 그리워한다.“

“나라에 정도(正道)가 서 있을 때 녹을 받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나라에 정도가 서 있지 않을 때 녹을 받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고 말한 공자의 말에 덧붙여서 에피쿠로스는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했습니다.

“인간은 사업과 정치라는 감옥에서 자기 자신을 해방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정치인이 아닌 일반인들은 어떤 삶을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일일까요? 

“행복했던 시절, 수세기를 황금시대라고 이름 붙였던 이유는 오늘날 이 철기시대에 높이 평가되는 황금이 복된 그 시기에 쉽게 구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 시절 사람들은 ‘내 것’ ‘네 것’이라는 두 단어를 모르고 살았기 때문이었소. 저 성스러운 시대에는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했지요. 황금시대에는 모두가 평화로웠고 우애가 넘쳤으며 조화로웠지요. 사랑을 나눌 때도 인위적인 언어의 현란함을 추구하지 않고, 자신이 느끼는 그대로 단순하고 소박하게 표현했지요.”

세르반테스의 <동키호테>에 실린 글입니다. 공동으로 ‘소유’한다거나, ‘내 것,’ ‘네 것’이 없는 시대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위치에서 저마다의 일을 잘하면 굳이 저마다의 일만 알아도 되는데, 자기들의 직분을 다하지 못하다가 보니 온 나라 사람들이 다 정치인 아닌 정치인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집단이 아닌 개인은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까요?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 하나하나가 다 우주이고, 우주의 주인입니다. 저마다 자기의 세계를 구축하고 온전하게 사는 것, 다시 말하자면 정치인은 정치를 잘해서 국민들에게 정치에 대해서 더 이상 걱정을 하지 않게 하는 것, 그게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이 세상에서 필요한 일일 것입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사멸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누구나 왔던 곳으로 돌아가고 정신 또한 흩어져 갈 것입니다. 자기 한 몸 아끼지 말고 자기 스스로와 넓게는 세상의 모든 사람, 모든 사물들을 섬기며 사랑하다가 돌아가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그것이 넓은 의미에서 가장 좋은 정치일 것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을 한울님처럼 섬기고, 겸손하고, 성실하게 국민의 뜻을 반영하면서 역사와 문화를 진작(振作)시켜 대동의 세상을 여는 그런 대통령이기를 기원합니다. 

/글·사진=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문화사학자·문화재청 문화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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