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론

5월 2일 오후 5시 40분경. 광주 북구에 위치한 국립5·18민주묘지 앞에서 보기 드문 진풍경이 펼쳐져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기습적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한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5·18민주묘지를 막 참배하려는 순간, 시민들의 거센 저항과 비난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한 전 총리를 향한 야유 세례가 이어지는 모습이 언론의 많은 카메라에 클로즈업됐다. 

이날 오전 한 전 총리는 국회에서 무소속으로 대통령 출마 선언을 하고 국립서울현충원과 서울 종로구 쪽방촌을 차례로 방문한 뒤 곧바로 5·18민주묘지를 향했다. 하지만 그가 광주에 도착하자 참배를 반대하던 시민들은 ‘민주의 문’ 앞을 가로막은 채 "한덕수는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그의 민주묘지 진입을 저지했다.

한 전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과 총리직에서 사퇴한 지 불과 하루 만에 “대통령에 당선되면 개헌을 통해 2028년 총선과 대선을 함께 실시한 뒤 직(職)을 내려놓겠다”며 ‘임기 단축 개헌’을 화두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이날부터 예비후보 행보에 본격 나섰다. 그런데 그의 출생지인 전주 인근의 같은 호남지역인 광주를 방문하는 순간부터 시민들에게 따가운 성토와 거센 야유의 선물을 받은 셈이다.

광주시민들 따가운 성토·거센 야유에

‘호남사람론’ 들고 나선 한덕수 예비후보,

비난·야유 더욱 ‘자극’

2일 오후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와 5·18 단체 등으로 구성된 '내란청산·사회대개혁 광주비상행동'과 '오월정신지키기 범시도민대책위원회' 회원들은 민주묘지 추모탑으로 향하는 길목인 ‘민주의 문’ 앞을 지키며 “5·18 정신 훼손을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한덕수 전 총리의 진입을 막았다.(사진=독자 제공)
2일 오후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와 5·18 단체 등으로 구성된 '내란청산·사회대개혁 광주비상행동'과 '오월정신지키기 범시도민대책위원회' 회원들은 민주묘지 추모탑으로 향하는 길목인 ‘민주의 문’ 앞을 지키며 “5·18 정신 훼손을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한덕수 전 총리의 진입을 막았다.(사진=독자 제공)

이날 모인 시민들은 "한덕수는 국민의 가슴에 총구를 겨눈 내란수괴 윤석열의 파면을 막기 위해 헌법을 유린하면서까지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했던 자다”며 “내란에 대한 책임을 지기는커녕 감히 대통령 후보가 되겠다니 참으로 개탄스럽다. 이미지 세탁을 위해 5·18민주묘지 참배를 악용하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단 한 발짝도 들여보낼 수 없다"고 외치며 그의 참배를 반대했다.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와 5·18 단체 등으로 구성된 '내란청산·사회대개혁 광주비상행동'과 '오월정신지키기 범시도민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중심을 이룬 이날 시민들은 추모탑으로 향하는 길목인 ‘민주의 문’ 앞을 지키며 “5·18 정신 훼손을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한 전 총리와 일행의 진입을 막았다. 그러자 충돌을 우려한 경찰이 현장 통제를 시도했으나 시민단체들의 항의가 계속되자 한 전 총리 측은 참배를 포기하고 대신 ‘민주의 문’ 밖에서 묵념하는 것으로 참배를 대신하고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날 한 전 총리가 보여준 행동은 어이없게도 ‘호남사람론’을 들고 나선 것이어서 광주시민들의 공분을 더욱 자극시킨 꼴이 됐다. 그는 "여러분 저도 호남 사람입니다.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아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미워하면 안 됩니다"라고 목청껏 반복해서 외쳤다. 그러나 그의 이런 발언은 성난 민심에 오히려 기름을 부은 형국이 됐다.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호남 사람이란 말을 입에 담지 말라. 내란 주범의 대선 출마를 어느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느냐"며 "윤석열의 비상계엄에 대한 진심 어린 사죄는 못 할 망정 어떻게 뻔뻔하게 광주를 찾을 수 있느냐"고 고성을 질렀지만 한 전 총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선 예비후보 행보를 이어갔다. 그러나 “예전의 눈빛과 얼굴 모습까지 바뀌었다. 더욱 뻔뻔해졌다”는 이날 시민들의 반응이고 보면 조기대선 정국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읽을 수 있다.

초유의 내란 사태로 대통령이 파면되고 정국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치러지는 대선 관리는 물론 내치 및 외치의 막중한 역할과 책임이 부여된 대통령 권한대행이란 '행정 수반'으로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를 다해도 모자랄 판에 대선에 직접 후보로 나선 그에 대한 호남 민심이 이토록 싸늘한 이유는 또 있다.

전북 변호사들

“이제 와서 ‘고향 프리미엄’으로 대망론 포장하려는 시도,

기회주의적 처신”

'전북 100인 변호사' 모임은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을 열어 ‘12·3 내란에 관여한 의혹 뿐 아니라 특검 후보자 추천 의뢰 거부, 야당 단독처리 법안에 대한 일괄적 거부권 행사,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를 통한 탄핵심판 사건 지연·방해, 대통령 몫 헌재 재판관 지명이라는 월권 행위 등 국가 권력을 사적 정치 목적에 활용한 이가 바로 한덕수 권한대행”이라며 “선거를 중립적으로 관리해야 할 권한대행 신분의 대선 출마 시도에 대해 깊은 우려와 분노를 표한다’고 규탄했다.
'전북 100인 변호사' 모임은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을 열어 ‘12·3 내란에 관여한 의혹 뿐 아니라 특검 후보자 추천 의뢰 거부, 야당 단독처리 법안에 대한 일괄적 거부권 행사,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를 통한 탄핵심판 사건 지연·방해, 대통령 몫 헌재 재판관 지명이라는 월권 행위 등 국가 권력을 사적 정치 목적에 활용한 이가 바로 한덕수 권한대행”이라며 “선거를 중립적으로 관리해야 할 권한대행 신분의 대선 출마 시도에 대해 깊은 우려와 분노를 표한다’고 규탄했다.

앞서 '전북 100인 변호사' 모임은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을 열어 ‘12·3 내란에 관여한 의혹 뿐 아니라 특검 후보자 추천 의뢰 거부, 야당 단독처리 법안에 대한 일괄적 거부권 행사,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를 통한 탄핵심판 사건 지연·방해, 대통령 몫 헌재 재판관 지명이라는 월권 행위 등 국가 권력을 사적 정치 목적에 활용한 이가 바로 한덕수 권한대행”이라며 “선거를 중립적으로 관리해야 할 권한대행 신분의 대선 출마 시도에 대해 깊은 우려와 분노를 표한다"고 규탄했다.

이들은 또 “자신의 정치적 야욕만을 쫓아 대선 출마를 추진하는 것은 명백한 이해충돌에 해당하며, 향후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 선거운동 기간 전 선거운동 금지의무, 공직자 지위 이용 선거운동 금지의무, 공무원 등의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 금지의무 등 각종 선거법 위반 논란 소지가 있다”고 비판하며 “도민들은 과거 그가 전북 출신임을 숨기며 지역 현안에 냉담한 입장을 취했다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유불리에 따라 고향 세탁을 해왔던 작태, 총리 취임 시에 보내준 도민들의 응원을 배신하고 새만금 예산 삭감을 주도했던 행태를 잊지 않고 있다”고 힐난했다.

무엇보다 이날 기자회견 내용 중에는 “또다시 전북 출신을 내세워 호남 출신 대망론 따위에 편승하려는 기회주의적인 모습은 도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모욕감을 주는 배신 행위”라는 비판이 정곡을 찔렀다. 이제 와서 ‘고향 프리미엄’으로 대망론을 포장하려는 시도는 기회주의적 처신에 불과하다는 지적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지만 국민과 헌법에 대한 의무 준수는 물론 내란 사태에 대한 책임과 사과는 커녕 국정과 대선을 공정하게 관리해야 할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레 모든 책임을 내팽개치고 끝내 대선 출마를 선택한 것이어서 호남지역 분노가 더욱 커지는 양태다. 

이를 두고 ‘정상이 아닌, 우연도 아닌 사법의 결정과 정치 기획이 맞물린 윤석열 체제의 내란 극우세력이 기획한 재집권 시도를 보여주는 행태’란 날선 지적이 나올 만도 하다. 가뜩이나 민주적 권력 창출 과정에 사법부가 무리하게 개입하고 있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특히 ‘12·3 내란 사태’로 촉발된 국가적 위기 속에 주권자가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선거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에 좌우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우려와 불안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국민들 "도대체 쉬운 일 하나도 없다…

그래도 끝까지 인내하며 앞으로 나아가자"

위안·자조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자료사진)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자료사진)

내란 사태 이후 국민들은 한 고비 또 한 고비를 넘기는 불안한 정국을 바라보면서 “도대체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끝까지 인내하며 앞으로 나아가자”며 위안과 자조로 하루하루를 버텨 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내란 동조 세력은 물론 법조계의 이상 증세를 바라보며 ‘국민신경 안정제가 필요하다'는 호소가 점점 늘고 있는 처지다.

이런 판국에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란 막중한 직책을 짊어진 공직자가 숱한 우려와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조기대선 출마를 위해 1일 공직에서 전격 사퇴한 데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회 탄핵안이 상정되자마자 사임해 졸지에 2일 0시부로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는 사상 초유의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행의 대행'이란 불안한 정부 체제가 가동됐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이 매우 일사불란하게 진행됐다는 점에서 더욱 불안하고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사의 표명과 사의 재가, 대선 출마 선언 등이 일순간 이뤄져 많은 국민들은 의혹의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국무총리 다음의 행정부 서열임에도 내란 사태 발생 초기부터 갖가지 의혹과 논란의 중심에 섰던 최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일 밤 10시 30분께 자신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자 한 전 대행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한 전 대행은 정부서울청사에 등청해 집무실에서 신속하게 사의를 재가해줬다. 

그런 뒤 한 대행은 정부청사에서 대국민 담화를 통해 사퇴를 발표한 후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예비후보 행보에 본격 나선 일련의 과정들이 마치 준비된 시나리오처럼 매우 신속하고 치밀하게 이뤄져 더욱 싸늘한 시선을 받고 있다. 기실 ‘12·3 내란 사태’ 이후 하루하루를 고통과 불안 속에서 살아가며 내란이 하루 빨리 수습되고 국가가 안정되기를 갈망하는 국민들의 정서는 안중에도 없는 듯 특검 후보자 추천 의뢰 거부를 비롯해 국회 통과 법안에 대한 일괄적 거부권 행사,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를 통한 탄핵심판 지연·방해, 대통령 몫 헌재 재판관 지명 등으로 월권 논란을 일으켰던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란을 막지 않은 공범이자 월권으로 윤석열을 비호한 내란수괴 대행”이란 비판과 함께 “대선 출마의 망상을 버리라”는 따끔한 충고와 주문이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모른 체, 못 들은 체하고 있다. 그래서 일까. 세간에 이런 유행어가 급속히 나돈다.

“테스형, 제발 덕수형 좀 말려줘요.”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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