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근의 지리산 문화대간(126)

지리산 구전 자원 조사차 장터를 찾아 다닐때 채록했던 구술자료중 보감 이야기가 있어 꺼내본다. 나라에는 동의보감, 마을에는 마을보감, 소리꾼은 소리청 보감, 장터에는 장터보감이 있었다고 했다. 동의보감은 서책으로 기록되어 왔고 마을보감, 소리청보감, 장터보감 같은 백성들의 경험방은 이웃끼리 나누어 쓰는 구전의 의학경험방이었다.
지리산 속담에 '크게 아프면 장터에 가서 소문을 내면 약전거리에 그 병을 낳게 해줄 약초와 사람이 나타난다'고 했다. 그 사람은 장터에서 난장 공연을 하던 소리꾼들이었다고 한다. 소리꾼들은 유랑생활에서 얻은 수많은 환자들의 치료 경험을 목격한 사례를 모아 '소리청보감'으로 활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동의보감은 나랏병을 치료하고, 마을보감은 집안병을 치료하며, 소리청보감은 소리꾼을 치료하고, 떠돌이 병은 장터보감이 낳게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 중 '소리청보감' 이야기 하나는 이렇다.


소리꾼들의 생계형 주업은 일상에 있었고 소리는 생계형 주업을 바탕으로 생겨났다. 소리꾼들이 많이 종사했던 일은 약방이었다. 서편제 창시자 박유전 명창도 순창의 어느 약방에서 일을 했었다고 하고 조선 창극사에 등장하는 동파의 수령 양학천 명창의 집안도 약방을 했다고 하는등 내가 소리꾼 후손들을 찾아 들었던 조상 소리꾼 집안은 약방 이야기가 많았다.
소리꾼 집단은 여타한 이웃의 백성들보다 건강하게 장수했다. 소리의 세계를 향한 평생동안의 여정에 건강관리의 씀씀이가 동반되었을 것이고, 그 방법의 하나가 일상의 섭생을 통한 약방의 활용이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소리꾼들의 의학 지식은 장터에서 나온 경험민방의 정보를 수집 축적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장터 약전거리에 나온 약초와 그약초를 파는 촌로들에게서 다양한 약초사용 정보를 수집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생겨난 말중에 '중한 병이라도 장터 난장공연하는 소리꾼에게 소문을 내면 어디서 귀신같이 약초와 치료법을 들고 나타난다'고 했다. 나는 오래 전에 소리꾼 집안에 내려오던 의학경험방이 수록된 휴대용 의학서책을 보게 되었다.
그 내용에는 음식섭생과 증상별 치료약제와 오행에 의한 치유법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중 하나는 '겨울동안 방안에 갇혀 지내던 쇠약한 노인들에게는 이른 봄날 수양버들의 푸른 기운을 보여주는 산책을 해주면 봄의 기운이 간에 들어 온몸에 기운이 생겨난다'는 것이었다. (중략) 조상의 이야기는 활용자원이고 세상의 소통체다.
/글·사진: 김용근(지리산문화자원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