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상의 전북 문화 이야기(82)

을사년 식목일이다. 나무를 많이 심자는 식목일인데도 청명 한식 성묘와 겹쳐, 안타깝게도 신불이 가장 많이 나는 날이다. 탄핵정국으로 국민들 애태우던 올 봄에는 산불 생중계를 보는 사람들 속까지 타들어가게 했다. 사상초유의 경상도 의성, 안동, 산청 지역 등 초대형산불로 수많은 인명, 재산피해와 수십년 가꿔온 숲이 잿더미로 변해버린 을사 산불참사다. 이 시대의 성자 김장하 어른의 선한 마음이 키운 문형배 재판관의 선한 탄핵선고에 감동해서인지, 하늘은 식목일에 단비를 내려 주신다.

나무없이는 사람이 살 수 없다. 사람이 쉰다는 뜻의 한자 '쉴 휴(休)'자를 풀어보면 사람 인(人)이 자연의 대명사인 나무(木)에 기대는 모양인 것만 봐도 그러하다. 최초의 한문 시가집으로 기원전 1천여년 전에 쓰여진 시경에는 311편의 시가 있다. 이 가운데 3분의 1인 99편은 나무를 시의 소재로 삼았다. 나무와 인간의 뗄 수 없는 상명(相命)관계를 알 수 있다. 유대인들의 시가인 구약성경 시편 1편에도 나무의 덕을 칭송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님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ᆢ"

식민지와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서도,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대한민국이 자랑스럽다. 마침내는 케이컬춰로 K문화 발신국가인 한국의 또 하나의 자랑거리가 녹색혁명, 조림기술 선진국, 숲가꾸기 모범국가다. 필자의 어린 시절 근처 야산의 이름들이 나무하나 없다고 해서 빨강산, 민둥산, 민재 등이었다. 현재 고창읍 월산저수지 바로 옆산이 벌거벗어 온통 붉은 황토만 보이기에 빨강산이었다. 오리나무와 리기다 조림으로 울창한 숲으로 변했다. 현재 한국 100대 명품숲이 된 문수산 편백숲 조림지 산 능선이 억새만 무성하다고 하여 민둥산, 민재라고 불렸다.

산에는 땔감을 구할 나무도 없어서 솔잎까지 갈퀴로 긁어 왔고, 억새를 베어다 연료로 쓰던 시절이었다. 그런 나라가 한 세대만에 세계최우수 조림축적국이 된 것이다.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FAO) 통계에 따르면 최근 25년간(1990∼2015) 임목축적 증가율에서 한국이 단연 세계1위다. 우리 숲의 경제가치만해도 250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개발도상국들이 한국의 절대녹화 성공사례와 조림기술을 배우러 달려오는 조림선진국 한국이 된 것이다. 벌거숭이 민둥산을 세계1위 조림선진국으로 만든 조림선구자들을 기리는 곳이 '숲의 명예전당'이다.

한국의 조림왕...임종국선생과 고창 문수산 명품 숲

국립수목원 ‘숲의 명예전당’에는 조림영웅 여섯 분을 기리고 있다. 나무 할아버지 김이만 선생, 육종학자 현신규 교수, 박정희 전 대통령, 축령산 조림왕 임종국 선생, 천리포수목원 민병갈 원장, SK 최종현 전 회장이다. 이 가운데 고창 문수산과 장성 축령산 편백숲을 한국 민간 조림역사의 교과서로 만드는 일을 시작한 큰 위인이 조림왕, 독림가, 나무심는 사람 춘원 임종국선생이다.

춘원 임종국(春園 林鍾國, 1913~1987)선생은 한국전쟁으로 민둥산이 되어버린 민재라고 불리던 장성 축령산에 삼나무, 편백나무를 계획조림하여, 한국의 조림성공 가능성을 몸소 보여준 조림 영웅이다. 먹고살기도 힘든 시절인 1950년대 중반, 그의 나이 40대에 장성 덕진에 있던 인촌 김성수 선생 소유의 삼나무 조림지의 울창한 숲을 보고 크게 감동한다. 그는 바로 축령산 조림에 착수하여 전 재산과 평생을 바쳐 미래세대가 기댈 쉼터를 마련한다.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문수산 편백숲, 한국100대 명품숲, 산림청선정 ‘22세기를 위해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숲’을 선물하신 위인이다.

60년대 중반 조림사업의 식목과 물주기에는 필자의 아버지 등 고창읍 산정, 월산, 화산, 고수 은사 등 많은 고창 주민들이 울력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특히 1968년 고창지역 큰 가믐때는 나무를 한 그루라도 더 살리려고 물지게로 물을 져서 산꼭대기 나무까지 물을 주느라 엄청난 고난을 겪기도 했다. 여의도 면적 두 배가 넘는 숲치유명소를 만든 임종국은 나무심는 사람으로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리고, 동화책도 나왔다. 장성군에서는 그를 3월의 인물로 선정하기도 했다. 예술단체에서는 그의 공적을 창극으로 제작 공연하기도 했다. 산림청은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가 조성한 숲 가운데 임종국 선생 내외를 위한 수목장을 조성하고 공적비를 세웠다. 이토록 빛나는 공적의 조림왕도 당대에는 자신의 모든 걸 조림에 쏟아붓고, 나무에 미친 사람 소리를 들어야 했고, 말년에 병고와 빚에 시달리며 어렵게 살다가셨다.

전국 최초 치유 문화도시...고창, 국립산림치유센터

고창은 치유를 주제로 한 한국 최초의 법정 문화도시다. 고창군은 민선7기부터 문화치유의 한반도수도를 깃발로 문화예술 이외에도 산림치유, 농업치유, 해양치유 등 농생명산업을 치유산업으로 확장 승화하는 비전을 세웠다. 산림치유의 수도를 목표로 전북 최초로 국립 고창숲치유센터를 유치한 것도 그런 구상의 하나였다. 올해는 전북 문화관광재단에서 선정한 ‘2024 전북형 치유관광지’로 꼽혔다. 향후 고창군, 산림청, 숲체원, 고창치유의숲이 울력하여 어려운분들 대상 산림치유프로그램 제공, 산림자원을 활용한 숲여행 프로그램 운영, 관광객 편의 증진, 지역사회 소득 창출을 위한 산림치유 연관사업을 지속 추진할 계획이다.

특히 고창읍 온수동 쪽의 제1치유센터와 주차장을 연결하는 승강기와 전망데크를 설치하여, 노약자, 장애인을 배려하는 무장애 접근로를 확보할 계획이다. 이 사업들은 산림청 사업은 당초 계획대로 2022년까지 완공되었다. 아쉽게도 문수산 편백숲 재창조계획 등에 담긴 고창군 사업인 주차장, 편의시설, 승강기, 스카이워크 조성 등이 기약없이 늦어져서 안타깝다. 고창지역 숲치유명소 문수산 편백숲 이웃에는 국내 최초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300여년생 자생종 토종인 아기단풍 군락지 단풍나무숲을 비롯하여, 고로쇠나무, 비자나무, 졸참나무, 서어나무 등 울창한 숲이 장관을 이루는 또하나의 숲치유명소다.

나무를 사랑하고 심는 사람은 위대한 지도자다. 적어도 백년, 길면 천년 농사인 나무농사를 지을 안목과 호흡을 갖추어야 미래를 준비하는 수장이다. 최근 전북의 지도자중 꿈나무 심은 위인들이 김완주 전 전주시장과 장명수 전 전북대총장이다. 

전주시, 무모한 벌목 만행...천년의 숲을 꿈꾸고 나무 심는 사람을 보라 

1998년 전주시장에 당선한 도시계획전문가인 김완주 시장의 공약 중에 '60만그루 나무심기'가 있었다. 모든 시민이 한 그루씩 나무를 심어 도시녹화로 전주를 살기좋게 하자는 취지였다. 취임즉시 특유의 추진력으로 나무심기를 몰아부쳤다. 2년뒤 간부회의에서 당시 덕진구청 이진수 청장이 관내 모든 공한지에 나무 심기를 끝내서 더는 나무심을 땅이 없다고 보고했다. 김 시장 말이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 "도시녹화는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를 깨버리고 나무를 심어 녹지로 바꾸는 겁니다." 그의 집념으로 전주시청앞 아스팔트 주차장이 노송광장 숲으로, 전북대 병원앞 백제로 인도 보도블럭 가운데에도 이팝나무 숲길이, 팔복동 철길가에도 이팝나무 명품숲이 생긴 것이다. 60만그루 목표를 조기달성한 김시장은 목표를 2백만 그루로 상향하여 기어이 달성해냈다.

도시계획전문가이자 문화예술기획가인 장명수 전 총장은 전북대와 우석대 총장 재직시절에 진안 용담댐 수몰지역이나, 도내의 도로공사나 개발공사로 희생될 나무를 다 살려내서 학교에 이식했다. 오늘날 전북대와 우석대를 숲속 캠퍼스로 만든 위인이다. 도시계획과 문화에 대한 통찰력을 가진 위 두 분은, 전주의 큰 그림도 그렸고 나무심는데 솔선하여 전주시의 품격을 크게 높였다. 도시의 녹화지수가 살기좋은 도시의 척도임을 잘 알고 계획적으로 실행해낸 참 지도자들이다. 필자도 민선 7기 고창군수 공약으로 고인돌 박물관 주변에 모든 군민과 출향인들이 한 그루 나무를 대대로 심고 영원히 가꾸자는 '천년의 숲' 계획을 세웠다. 이 꿈나무가 좋은 나무라면 군민들이 계승하여 계속 심고 가꾸어 가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최근 전주의 무모한 전주천 버드나무 숲 벌목, 고창의 공원내 30여 년된 잣나무 숲 벌목 만행으로 언론과 환경단체 등의 몰매를 맞았다. 요즈음 소나무 조경수의 한반도수도인 고창지역 소나무에도 재선충 피해목이 수백그루가 생겼다 한다. 아침저녁 산책하는 어르신들이 모양성안 노송들이 벌목되어 쌓여가는 모습을 보면서 속이 타들어간다고 걱정 하신다. 나무는 심고나서도 계속 가꾸어가야 한다. 남이 심은 나무라고 방치하거나 베어버린다면, 우리의 삶터와 기댈 숲은 사라져버린다.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이 고향사랑, 나라사랑의 시작이다. 나무를 심는 사람은 꽃다운 이름을 남기고, 나무를 베는 자는 기대어 쉴 곳도 없어 망한다. 산불로 생명과 삶터를 잃은 귀한 분들께 위로의 기도를 드린다. 제발 올해 식목일은 산불없는 식목일로 기록되길 간절히 바란다. 

/사진·글=유기상(문학박사·전 고창 군수) 

저작권자 © 전북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