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론

2025년 4월 4일은 대한민국 민주역사에 큰 획을 그은 날로 평가할 만하다. 이날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 파면의 선고요지를 읽어 내려가다 마지막에 시계를 보며 시간을 강조한 뒤 주문을 다시 읽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국민의 신임을 저버린 현직 대통령을 파면하는 역사적 순간을 꼭 기억하자는 암묵적 메시지가 강하게 전달됐다. 

특히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한다. 지금 시각은 오전 11시 22분.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로 선고요지를 마무리한 그의 발언 내용과 표정은 기억 속에서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8명의 헌법재판관 중 3명이 다른 의견을 내면서 진통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선고문을 찬찬히 다시 읽어보면 울컥하게 한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헌법수호 책무 저버리고 민주공화국 주권자인

국민 신임 중대하게 배반” 

선고문 '강렬한 메시지'

헌법재판소는 4일 오전 11시 22분, 대심판정에서 재판관 '전원일치'로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파면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4일 오전 11시 22분, 대심판정에서 재판관 '전원일치'로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파면 결정을 내렸다.

선거 기간 내내 '공정과 상식'을 외치며 자신을 '엄정한 법 수호자'로 포장해 최고 권력의 자리를 차지하더니 대통령 권좌에 앉자마자 독단과 광기의 통치로 취임 1,060일 만에 자연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배경과 내용들이 선고문에 빼곡히 적시돼 있는 것을 보면 쉽게 눈이 떨어지지 않는다.

111일 간 대통령 탄핵 여부를 숙의한 8명의 재판관들이 내린 공통된 결론이 ‘파면’이었지만 그 배경에는 ‘12·3 비상계엄’ 선포 절차와 국회의 정치활동 등을 금지한 포고령 1호, 군경을 동원한 국회 장악 시도, 군을 동원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압수수색, 정치인·법조인 등 주요 인사 체포 지시의 '위법·위헌성'이 오롯이 담겨 있다. 

한 달여 동안 탄핵심판 선고일이 결정되지 않자 기각 또는 각하가 유력할 것이란 유언비어가 난무했지만 이는 내란 동조세력에 의해 촉발된 가짜 정보임이 드러났다. 물론 헌법재판관들 중 일부는 법과 양심이 아닌 권력과 정치의 눈치를 보는 측면도 없지 않아 보인다. 자칫 민주주의를 퇴행으로 이끌 수도 있는 흔적이 선고문에서도 엿보인다.

하지만 재판관 다수 의견과 국민들의 탄핵에 대한 뜨거운 기대와 열망을 거스르지는 못했다. 이날 헌법재판소가 내린 선고문 중 가장 강렬한 주문은 바로 “헌법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했다”며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결론 지은 대목 아니었나 싶다. 

그동안 켜켜이 쌓여온 불안과 증폭된 불신이 일순간 해소되는 듯한 시원하고 강인한 메시지를 담은 선고문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는 '대개혁'이라는 새로운 혁명의 불가피성을 암시해 준 것으로도 읽히는 이유는 분명하다. ‘윤석열 파면’으로 ‘12·3 내란’과 ‘외환’, ‘친위 쿠데타’의 1막은 수습됐다고 하지만 최종 종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중요한 과제는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최종 탄핵되고도 승복도 사과도 없는 윤석열과 내란세력의 온전한 청산을 위해서는 철저한 단죄가 이뤄져야 한다. 내란 4개월 동안 검찰과 경찰이 좌고우면하며 내란세력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손도 대지 못한 범죄 혐의들을 철저히 밝혀 단죄해야 한다.

철저한 진상 규명, 단죄 우선돼야…

또다시 어물쩍 넘긴다면

‘잔인한 과오’ 되풀이될 것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비상계엄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는 모습.(사진=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비상계엄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는 모습.(사진=대통령실 제공)

듣도 보도 못했던 민간인이 전 국군 정보사령관이란 직책으로 내란과 외환에 깊숙이 관여했던 내용들이 잇따라 밝혀졌음에도 검찰의 적극적인 수사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특히 그의 수첩에 적힌 ‘북한 공격 유도’ 표현이나 ‘수거팀 구성’, ‘수거소 운용’, ‘수거 대상’, ‘5천에서 1만명 호송선’ 등의 문구는 끔찍한 내란과 외환 계획이 동시에 포함된 것이어서 철저한 수사와 단죄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가슴 철렁하게 하는 내란과 외환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책무를 국가가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윤석열 정부의 의혹 사건 배경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김건희 비리’들도 낱낱이 파헤쳐 그동안 제기된 숱한 의혹과 불신을 해소시켜야 한다.

‘명태균 게이트’를 통해 드러난 윤석열 부부의 선거 공천과 주요 공사 등의 인사 개입, 각종 정책·사업 간여, 1년 반 넘게 진상이 은폐돼 온 해병대 채 상병 순직사건 외압 의혹, 최근 대법원에서 김건희만 빼고 모든 관련자들의 유죄가 확정된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등도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 그런데 벌써부터 화해와 통합을 부르짖는 일부 정치인들과 인권위원회 인사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주로 내란을 옹호했거나 동조한 세력들이다. 

‘12·3 내란 사태’ 이후 혼돈과 갈등 속에 분열된 대한민국 국민 통합이 향후 해결돼야 할 과제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보다 우선 순위는 철저한 진상 규명과 단죄가 선행돼야 한다. 또다시 어물쩍 넘긴다면 잔인한 과오를 되풀이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 어설픈 통합과 화해로 어물쩍 봉합하려 착각한다면 내란과 외환의 씨앗이 언제든 다시 싹을 틔워 우리 사회를 갈등과 분열, 혼란 속으로 몰아넣게 된다는 것은 이미 충분히 학습할 만큼 학습했다.

기득권 대물림, 권력·재력 지배하기 위해

친일청산 반대…

'퇴행의 역사' 반복

'윤석열 파면'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선 전주시민들 모습.
'윤석열 파면'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선 전주시민들 모습.

되돌아보면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헌정사상 초유의 촛불시민혁명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친일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서 기인한 친일적폐세력에 대한 청산 열망이 그 원천이었음은 가히 역설적이다. 그런데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을 취임 초부터 강력히 주창했음에도 결국 청산과 단죄에 실패함으로써 광기와 독단의 통치자를 낳게 하고 뼈아픈 민주주의 퇴행을 반복하게 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역사의 아이러니는 부끄럽게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반민족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구성되고 친일파에 대한 반민족 행위 처벌을 위한 조사활동이 있었지만 혼란스러운 당시 정세 속에서 반민특위의 활동이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만 것이 그 원천임을 알 수 있다. 아픈 역사의 과오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기득권을 대물림하며 권력과 재력을 지배하기 위해 친일청산 반대에 앞장서며 수미일관되게 단죄에 늘 반대 논리를 주장해 온 친일세력들의 뿌리는 굳건하기만 하다. 그들의 궤적은 역사의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역사의 시계 바늘을 되돌려 거슬러 올라가 해방 직후 상황을 복기해 보면 더욱 분통이 터진다. 당면 과제가 일차적으로 자주적인 통일정부의 수립이었던 당시, 무엇보다 일제 강점기에 반민족 행위를 저지른 친일파의 청산이 가장 중요한 현안이었음에도 친일세력은 미국과 미군정의 보호정책으로 부활하여 사회 각 분야의 요직을 장악했다. 이런 상황에서 반민특위는 친일청산의 벽을 넘지 못했다. 정부 수립을 앞두고 해방에 기여한 애국선열의 넋을 위로하고 무너진 민족 정기와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설치됐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만다.

오히려 친일세력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결국은 이들이 대한민국 지배 세력으로 군림하기에 이른다. 결국, 이승만 정부의 방해공작으로 반민법의 공소시효는 1950년 6월 20일에서 1949년 8월 말일로 단축됨에 따라 친일청산은 실패에 그쳤다. 그 이후 박정희 정부는 일본의 자본을 차관해야 한다는 명목 등으로 친일청산에 대한 논의 자체를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다 지지부진을 거듭해 온 친일청산 과제는 보수를 참칭하며 정권을 강제로 찬탈하거나 유지해 온 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윤석열에 의해 더욱 험난한 암초를 만나게 돼 한발짝도 진척을 이루지 못하거나 되레 퇴보하기 일쑤였다.

‘역사적 과오 청산’,

통합·화해와는  분명 별개의 차원에서 논의되고

실행돼야 마땅

전주 객사 앞에서 열린 '윤석열 파면 1만 도민대회' 무대 모습.
전주 객사 앞에서 열린 '윤석열 파면 1만 도민대회' 무대 모습.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은 인터넷 토론 게시판을 활용해 ‘친일사전 발간이 노리는 목적’ 등의 글을 게재하며 친일청산을 방해했음이 확인되기도 했다. 이에 더해 박근혜 정부에서는 역사 교과서를 왜곡하고 건국절 논란을 촉발시킨 행위를 일삼았다. 그러더니 윤석열 정부는 친일 외교에 더해 굴종 외교가 극으로 치닫았다. 특히 일본의 과거사 부정과 역사 왜곡에 침묵하거나 굴욕적인 자세를 취하며 ‘암묵적인 동조’를 한 윤석열 정부는 공약과는 정 반대로 위안부 관련 예산을 해마다 삭감하고, 한-일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제3자 변제안을 밀어붙였다. 국가 이익을 내세워 인권을 저버렸다는 점에서 1965년 한일 협정(기본조약) 체결 때로 역사의 시계를 되돌린 폭거란 비난을 받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민족 정기를 바로잡아야 할 독립기념관 관장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정통성을 전면 부정하며 건국절을 주장하는 뉴라이트 인사를 임명한 것만 봐도 윤석열의 친일관은 가히 남달랐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보수와 기득권을 장악하고 있는 친일세력의 친일관은 사회의 정의가 무너지고 질서와 가치관이 혼란에 빠지고, 이기주의와 부정부패, 지역주의, 토호세력이 횡행하는 토대를 제공한 원천과 직결된다. 오랜 군부독재 정권에 의한 뼈아픈 역사적 과오는 바로 친일청산의 대과업을 이루지 못한데서 기인한 결과이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친일청산 문제는 중요하게 논의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군부독재·보수 정권으로 이어지는 동안 적폐의 똬리를 틀고 지금도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역사적 과오 청산은 통합 또는 화해와는 분명 별개의 차원에서 논의되고 실행돼야 마땅하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는 이유다. 따라서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최종 탄핵되고도 승복도 사과도 없는 윤석열과 내란세력의 온전한 청산을 위해서는 단죄가 반드시 필요하다. 

개혁과 청산은 무관용 원칙으로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는 사실은 이미 다른 국가들의 사례에서 중요한 교훈으로 일러주었다. 북유럽이 ‘나치즘 무관용’이라는 원칙 아래 파시즘을 청산한 것은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 크다. 아울러 친일청산 과제를 80년 동안 지체해 온 대가가 그동안 얼마나 혹독했는지는 역사가 잘 일러준다. 더는 지체 없이 역사적 과오 청산과 단죄를 수행해야 할 책임이 무겁다. 그 책임은 정부와 국민 모두에게 있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해졌다. 

/박주현 기자

저작권자 © 전북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