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의 역사칼럼

백승종 역사학자
백승종 역사학자

3월 마지막 휴일인 어제 오후, 거대 야당의 중진인 어느 유명 인사의 특강을 들었습니다. 물론 현 시국에 관한 이야기였지요. 노련하게 청중을 리드하는 그의 말솜씨가 돋보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강연을 들으며, 저는 그 분이 주장하지 않은 몇 가지 진실을 깨달았어요. 아마 그 강의를 들은 대부분의 시민은 제 의견에 동의하지 못하실 줄 압니다. 한 사람의 역사가로서 특히 미시사가(Microhistorian)로서 '사료(史料)'를 대하는 저의 태도는 아무래도 다를 테니까요. 제게는 그분의 말씀 전체가 곧 사료였습니다. 그분의 강연을 분석한 결과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시민혁명 필요 

첫째, 한국은 아직도 미국의 식민지이며, 한국의 지도층은 여야를 막론하고 미국의 인정을 받기에 급급하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은 기득권 중심의 안정된 지배체제를 원하고 있는데, 이는 1945년 이후 줄곧 유지되고 있는 불변의 성향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국의 야권은 미국 지도층과의 스킨십이 부족해 항상 '검증의 대상' 또는 '의혹의 대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둘째, 현재의 거대 야당조차도 한국의 공고한 지배층을 무너뜨릴 것은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민주시민이 지배권력을 무너뜨려주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태생적으로 한없이 나약하고 무능한 집단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처럼 빈약한 정치인들을 믿고 살아가야하는지요.

셋째, 우리가 키운 거대 야당은 사실상 정치력이 제로에 가깝다는 점입니다. 제아무리 그들의 의석수를 늘려주어도 그들은 한국의 기득권 카르텔을 제압할 만한 전략과 전술이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희망고문에 시달리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입니다.

넷째, 진정한 의미에서 시민혁명이 필요합니다. 여당은 물론이고 거대 야당까지 포함하는 지배층 전체를 시민의 힘으로 물갈이하지 않으면, 우리가 소망하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는 이룩되지 못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부담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거대 야당을 도와주어도 그들은 결코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박근혜 정권을 시민이 청산해 주었어도 문재인 정권이 아무 일도 못하고 주저앉은 것은, 실상 구조적 문제였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윤 정권을 무너뜨린다 해도 과연 현재의 야권이 특단의 개혁을 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현재 상태는 매우 미약합니다. 그러나 어쩌겠어요.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이외는 아무런 해결책이 없습니다. 지나친 기대는 물론 허망한 일이요, 그렇다고 낙담할 일도 아닙니다. 우리는 지난 4,000년 동안 이러한 위기를 수없이 해결하며 살아왔으니까요. 

/백승종 객원논설위원(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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