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론
어수선한 시국인 요즘 심심치 않게 들리는 섬뜩한 말들이 오싹하게 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매국노(賣國奴)’이다. 듣기 거북한 ‘매국노’란 말을 굳이 사전적 의미로 풀이하면 ‘본인과 정신적·물질적 유대관계에 속해 있던 민족이나 국가의 주권 혹은 이권을 다른 나라에 팔아 넘겨 그 대가로 일신의 영달을 얻으려고 한 사람’을 일컫는다. 법적으로는 ‘외환의 죄’로 외환유치(外患誘致), 여적(與敵), 이적(利敵) 등의 행위에 해당한다.
암울한 역사 속에서 매국노의 대명사로 손꼽히는 인물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1순위로 꼽히는 인물은 바로 '이완용'이다. 악명 높은 일제 부역자로 ‘을사5적’ 중 한 사람이자 대표적인 친일반민족 행위자인 그는 ‘욕망의 화신’으로도 불린다. '을사조약'을 적극적으로 체결하고 고종의 강제 퇴위를 주도한 그는 '정미 7조약', '기유각서',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하여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에 유일하게 모두 포함된 자다. 친일반민족행위자들 중 으뜸이자 매국노의 대명사격으로 일컬어진 인물이다.
그런데 오늘날, 아니 지금 이 순간까지 이완용과 같은 ‘욕망의 화신’의 가면을 쓴 매국노들이 득실거리는 까닭은 ‘미완의 친일 청산’과 ‘불의한 내란 권력의 미단죄’ 때문이란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치욕스런 매국 행위자들을 제대로 청산하고 불의한 내란·권력자들을 과감히 단죄했더라면 부끄러운 과거사가 반복되는 일은 없을 텐데 엄중하고 단호하지 못한 대가가 후대에게 계속 전가되는 양태다.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에 ‘매국노’ 들끓는 이유?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에서 매국노가 득실거리며 들끓고 있다니 가당키나 한 얘기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 매국노에 버금가는 자들을 구별해 내기란 그리 쉽지 않다. 국가를 망치게 할 작정으로 못된 일들을 저질러 놓고도 자신의 안위만 지키려는 파렴치한 정치인들과 법조인 등을 빗대어 제2 또는 제3의 매국노란 별칭이 지난해 12월 3일 밤 이후부터 극성이다.
참담한 ‘12·3 비상계엄·내란 사태’ 이후 4개월동안 불안과 혼란,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국가의 안위와 신용은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고 민생경제는 도탄에 빠져 있는데도 정치적 갈등은 최고조로 치닫게 하고 무정부 상태나 다름 없는 지경으로 국가를 내몬 내란 우두머리와 동조 세력들은 자신들의 안위와 명예, 욕망을 지키는데 혈안이다. 국민과 국가는 안중에도 없는 듯한 행태를 보이고 있으니 세간에서 그들을 매국노라고 지칭하고 있는 것은 당연지사다.
망상에 젖은 군통수권자 때문에 많은 고위 장교들이 하루 아침에 범법자 신세로 전락해 재판을 받고 가족들은 날벼락 같은 고통을 겪게 됐다. 뿐만 아니라 군 사기도 극도로 저하된 상태에서 안보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군 내부에서 조차 높다. 불법 계엄 이후 우리 사회는 불안과 혼돈, 갈등과 마찰로 뒤범벅인 채 국민 분열과 정부 불신이 임계치를 넘어서고 있는 가운데 최후로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을 통해 갈등과 분열, 불안정을 해소해 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기약 없는 탄핵 선고일은 기대와 기다림을 걱정과 불안으로 바꾸어 놓고 말았다.
내란 수괴 혐의를 받는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 선고일을 공지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고 있으니 무슨 꿍꿍이속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어느새 100일을 훌쩍 넘겼고 탄핵심판 변론이 끝난 지 한달이 지났다.
'12·3 비상계엄' 후 4개월 '혼란·분열' 극심…헌재, 탄핵심판 선고 왜 미루기만?

당초 ‘3월 초·중순’ 정도로 예상됐던 파면 여부 결정이 4월로 넘어가면서 헌법재판소에 대한 성토가 연일 쏟아지고 있지만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으니 내란 수괴범을 감싸고 도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최장 대통령 탄핵심리 기간 기록도 연일 바꿀 만큼 심리가 길어지면서 탄핵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시민 모두가 답답함을 넘어 ‘도대체 왜 저러는가?’, ‘무엇이 문제인가?’란 질문과 의심을 던져보지만 마지노선은 좀처럼 보이질 않는다.
결론이 나올 때까지 헌법재판관들의 평의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하니 참으로 어이없고 답답할 뿐이다. 갈등과 반목 속에 국민은 두 갈래, 세 갈래로 분열되어 있고 무정부 상태나 다름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바라보면서도 시간 끌기로 오히려 친위 쿠데타와 내란 세력이 계속 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이토록 엄중하고 위급한 상황에서 헌법재판소가 되레 헌법적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지적과 비판을 피하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동안 꾹 참아왔던 시민들조차 "사법 카르텔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다"며 "탄핵심판 선고를 하루빨리 내리지 않는다면 21세기 이완용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헌법재판관들이 침대축구를 하려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자기 팀이 이기고 있으면 살짝 스친 것에도 매우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자동차에 치인 것처럼 넘어진 다음에 심판이 올 때까지 침대에 누운 것 마냥 편안히 누워서 시간을 보내며 경기를 지연시키는 축구 전술을 침대축구라고 말한다. 시간을 마냥 흘려 보내는 헌법재판소를 보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일침이다.
'윤석열·김건희 측' 외압 때문?...법률과 양심에 따라 신속히 판단하라

경기장에 누워 시간을 끄는 것도 모자라 선수 교체가 이뤄질 때는 일부러 다리를 질질 끌며 느리게 나가고, 교체 선수는 다리를 끌며 나가는 선수를 격려하며 천천히 입장하는 얄미운 행태를 더 이상 헌법재판소가 보여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내란 수괴 혐의를 받는 자는 다름 아닌 권력의 최고점에 있는 대통령 자신이다. 그런데 탄핵심판에 대한 변론이 2월 25일 종료된 지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났지만 숙의를 핑계로 선고를 고의로 지연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 때는 변론 종료 후 14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 때는 11일이 걸렸다는 것을 생각하면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선고가 지연되는 것은 이례적인 상황임을 누구보다 헌법재판관들이 잘 알 것이다. 물론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에 그렇다 치자. 하지만 백번을 양보하더라도 선고가 지연되는 것이 혹시 헌법재판소에 ‘윤석열 측이나 김건희 측의 외압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오는 마당에 시일을 계속 지체하는 이유를 왜 분명히 밝히지 못하는가?
이 때문에 일부 헌법학자들 사이에서 조차 ‘고의로 지연시키고 있다’는 말까지 공공연히 나온다. 차제에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 지연이 계속됨에 따른 사회적 혼란, 더 나아가 국가의 심각한 위기 상황을 자초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어떻게 질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부디 정치적 판단이 아닌 법률과 양심에 따라 신속히 판단해 줄 것을 온 국민이 학수고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새기길 바란다.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