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상의 전북 문화 이야기(80)

을사년 춘분 신새벽에 고인돌 왕국 고창의 향산리 천제단 굄돌 사이로 어김없이 떠오르는 장엄한 해돋이를 떨리는 감동으로 다시 우러렀다. 꽃샘추위로 영하의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참배객이 부쩍 늘었다. 윤정현 신부님과 함께 하는 다석학회, 씨알학회, 빈놀아나키 회원 등 전국의 종교를 초월한 영성지도자들과 함께 소박한 천제를 올렸다. 한민족의 웅혼한 역사가 광복할 희망의 싹이 자라고 있음을 확인하여 기쁜 날이다.
수천년간 우리 겨레가 하늘을 경배하던 천제단, 천문대 고인돌을 일제강점기 일본학자가 느닷없는 지석묘라는 용어를 날조하여 묘지로 왜곡시켰다. 광복후에도 여전히 식민사학의 무개념 수용자인 이른바 주류 고고·사학계의 부역으로, '돌로 만든 천제단이란 개념의 돌멘'이란 국제 학술용어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유일하게도 우리만 일제용어인 지석묘라 쓰고 있으니 한심하다.
우리 동이족이 만든 사실이 밝혀진 한자(韓字)의 상형과 뜻으로만 톺아보아도 고인돌은 무덤이 아니라 하늘에 복을 빌고 예를 올리던 천제단임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전세계 고인돌의 7할은 한반도와 요하지역 등 옛 고조선, 고구리 강토에 있으니, 고인돌은 고조선의 지표유적이다. 우리는 일찍부터 태양숭배, 거석숭배를 해왔고, 조상들이 하늘에 제사하던 제단이 바로 거석으로 만든 고인돌 아니겠는가?
고인돌을 상형한 제천의식 관련 한자들

한자를 과연 누가 만들었을까? 우리가 그간 한족의 중국 문자라고 잘못 알고 있었으나, 이미 중국의 대문호 임어당(林語堂), 대만대 총장이던 부사년(傅斯年) 등 양심있는 여러 중국학자들은 동이족 문자임을 밝혔다. 최근 국내에서도 동이족이 만든 문자임을 여러모로 증거한 책들이 속속 나왔다. 한자(韓字)를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은나라의 갑골문자인 거북점 관련 한자들이 최초문자로 보이는데, 은나라는 동이족이 세운 나라이고, 기자는 은나라 왕족이었다. 음운학적으로만 보아도 한자는 우리말과 꼭 맞는 글자이지, 중국어와는 음절이 다른 문자다. 모든 한자 한 글자를 우리말은 한 음절씩 발음할 수 있으나, 중국어로는 두세음절로 소리내는 글자가 많다.
예컨대 날숨과 들숨인 호흡(呼吸)의 경우, 우리는 날숨인 호는 내쉬면서 발음하게 되고, 들숨인 흡은 들이쉬면서 발음하게끔 우리말 발음법과 꼭 들어맞는다. 중국어로는 호흡을 '후우씨'로 읽으니, 모두 내쉬는 숨으로만 발음되어 뜻과 발음이 어긋남을 알 수 있다. 동이족 문자를 한족들이 빌려서 써 온 역사적 사실을, 우리의 중화사상, 사대의식과 한자(漢字)라는 용어 때문에 그동안 한족의 글자로 잘못 알아 온 것이다.


아무튼 한자를 만든 우리 조상들이 가졌던 신앙이나 사고체계가, 우리 고조선의 지표유적인 고인돌 조성에도 그대로 반영되었을 터이다. 그런 뜻에서 하늘에 복을 빌고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의 관련 한자들을 살펴보면, 고인돌은 천제단이나 천문대, 첨성대, 점성대 등 해달별을 우러르고 예를 올리며 관측하는 기능으로 세운 것이 자명하다.
하늘의 조짐을 보여준다는 보일시 '示' 한자를 톺아보면, 윗부분 두이二자로 보이는 것은 곧 머리위의 하늘이고, 아래 세가지는 하늘의 해달별을 나타낸다. 하늘의 해달별같은 무수한 별들(天森羅)이 땅의 모든 현상(地萬象)을 관장한다는 사고에서 우주안의 온갖 것을 뜻하는 삼라만상(森羅萬象)이란 말이 생겼다. 우리 천손민족은 하늘의 별에서 태어나 지구별로 와서 하늘 뜻示을 땨라 살다가 다시 하늘의 별이 되는 겨레붙이다. '별하나 나하나 별둘 나둘'이란 노래나, 풍수사상에서 산의 모양을 하늘의 별로 보고 일자문성(一字文星), 삼태성(三台星) 등으로 산 모양에 별 이름으로 부르는 것도 이런 연유이다.
하늘을 경배하는 의미의 제사사祀는 하늘(示)에 인간(아기 巳)의 화복과 건강을 빌던 제천의식에서 유래한 글자다. 주역 계사전에서 "역이란 다른 게 아니다. 만물을 열어서 일을 성사시키는 하늘의 도를 보여주는示 것이다.( 易, 無他也 示開物成務之道也.)"는 취지도 같다. 하늘(示에) 제사하고 복을 빌고 흉사를 막기위해 기도하는 일(빌축祝)은 형님, 우두머리(부족장兄)가 할 일이다. 그래서 족장들은 천제단 고인돌을 세웠으리라.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복(福)은 하늘(示)에서 항아리(畐)를 가득 채운 상형이니 풍년농사다. 재앙화(禍)는 하늘(示)에서 생선 가시(咼)처럼 쭉정이를 내려주는 모양이므로 흉년이다.

고인돌 시대 이래로 농경 사회의 화복은 농사의 풍흉과 같은 의미였다.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는 하늘의 길인 천문을 알아야 했으니, 천문대ㆍ첨성대 고인돌에서 천문을 관측하고 천제를 올려 부족의 복을 비는 일이 족장의 대사였음을 볼 수 있는 글자다. 하늘 신을 귀신 귀(神), 씨앗을 관장하는 땅신을 기 신(祇)이라 한다. 땅귀신의 기(祇)는 하늘(示)과 씨앗을 뜻하는 성씨(氏)가 결합한 것인데 우리말 씨와 소리와 뜻이 같다.
한편, 바르다는 의미의 이 시(是), 옳을 시(是)는 해(日)와 바름(正)이 결합한 문자다. 해가 우리 머리위로 바르게 뜨는 일이 지당한 일이므로, 춘분, 하지, 추분, 동지의 절기별로 해가 천제단 고인돌에 적중하여 뜰 때 천제단 고인돌에 천제를 올리는 이 일이 바로 옳은 일이라는 뜻에서 유래한다. 하늘의 길이 바른 길이므로, 천도를 따르는 이는 잘살고 천도를 거스른 자는 망한다(順天者存 逆天者亡 )는 명심보감의 경구가 여기서 나온다.
고인돌 천문대는 '농사 달력'

도마기, 책상 기(丌)자는 탁자식 고인돌을 상형한 한자다. 돌멘, 돌로 만든 책상, 석상石床이란 뜻이다. 고인돌을 제단으로 보았다는 글로벌한 인식을 확인할 수 있는 한자다. 콩 두(豆)자는 제사상 모양이나 고인돌 위에 제물을 올린 형상이다. 콩은 원산지가 고조선 땅인 만주지역이고, 함북 회령의 청동기 유적에서 콩이 출토된 사실을 살펴 보면, 고인돌시대 대표 작물 중 하나가 콩임을 확인할 수 있다. 콩 두자와 머리 혈(頁)자가 결합하여 머리 두(頭)자가 된다. 빌 축(祝)처럼 고인돌 조성과 제천의례는 우두머리의 일이란 뜻이다. 어찌 기(豈)자는 신성한 천제단 고인돌豆 위에 산(山)이 무너져 덮었으니 어찌할까 몹씨 놀랄 일이다. 풍년을 뜻하는 풍성 풍(豊)은 제기나 천제단 위에 풍성한 예물을 쌓은 모양이고, 예절 예(禮)의 뜻은 하늘(示)에 대한 천제단 고인돌(豆) 위에 옥처럼 귀한 예물을 쌓아놓고 올리는 제천의식을 상형한 것이다.
고인돌시대 해와 별의 운행법칙을 아는 일은 가장 중요한 생활의 지혜였다. 농경에서 가장 중요한 지식은 씨뿌리고 거두는 시기, 비가 많고 적은 절기와 온도, 기후 등에 관한 천문정보일 것이다. 이러한 정보를 가장 많이 가져야 하는 부족장이 천문대, 첨성대, 점성대 기능을 하는 고인돌을 만들기위해 애쓴 까닭이다. 보다 세련된 천문운행 법칙을 역법(曆法)이라 부르게 되었고,

해마다 관상감에서는 새로운 책력(冊曆)을 발행한다. 역법의 역(曆)자를 파자하여 풀어보면, 고인돌 천문대는 농경문화의 상징글자임이 확인된다. 책력 력(曆)자는 농경지나 고인돌이 놓인 언덕을 나타내는 민엄 호(厂)에, 곡식을 대표하는 벼 화(禾)자가 두 개 있고, 벼농사에 필수적인 일조량과 천문을 뜻하는 해(日)가 결합하여 만든 글자다. 태양의 운행법칙, 역법은 농사의 풍흉을 결정하는 필수요소이기에, 고인돌 천문대와 첨성대를 통해 천문의 기초자료를 관측한 것이다.(이병렬, <하늘의 길 고인돌에 새기다>).
이같은 사실은 고수면 무실마을 첨성대 고인돌에 새겨진 별자리가 주로 농사철인 봄여름에 관측되는 동방칠수 별자리인 각항저방심미기 성혈이, 고인돌의 동쪽부분에 정확히 새겨져있는데서도 알 수 있다. 고인돌이 보여주는 고조선시대 우리 겨레 천문지식의 높은 수준에 새삼 감탄할 따름이다.
고인돌 연구의 '지동설'...이병렬의 '고인돌 원리'

오늘날 보편적 과학상식인 '지동설'은 16세기 르네상스 시대, 코페르니쿠스가 처음으로 제안했으니, 진실을 밝힌지가 불과 5백여 년밖에 아니 된다. '지동설' 이전 수천년간 과학적 사실이 아닌 '천동설'이 진리인양 행세를 했다. 목숨걸고 발표한 코페르니쿠스의 새로운 학설을 적극 지원한 갈릴레이와 케플러 같은 용기있는 학자들이 '지동설'을 입증하는 천문관측 자료와 수학적 증거를 제시했지만, 기득권 교회와 학계의 거센 조롱에 직면했다. 심지어 갈릴레오는 '지동설'을 옹호했다는 이유만으로 종교재판에 회부당하여 탄압받기도 했다. 오늘날 '지동설'은 현대 천문학과 우주 과학의 부동의 진리로 자리잡았다.

고인돌은 무덤이다는 일제의 지석묘 주술에 걸려, 백년동안 검증도 없이 묘지설에 매몰된 고고 역사학계의 '천동설'을 과감히 깨고, 고인돌은 고도의 천문지리 원리에 따라 조성된 천제단 천문대임을 밝혀, 고인돌연구의 새 지평을 연 고창문화연구회장 이병렬 박사의 고난의 연구역정에 박수갈채를 보낸다. 그는 고창에서 17년간 3천 여기의 고인돌을 발로 찾아내서 청소하고 측정하며, 새벽이슬 맞으며 별을 보고 성혈자국을 만지며 고인돌과 대화하면서 마침내 고인돌의 천문지리 배치법칙을 밝혀낸다.
이병렬의 고창 고인돌 천문배치 원리틀로 보면, 경주 첨성대나 마야달력의 티칼천문대도 다 손바닥 안에 보인다. 익산, 부여, 공주, 경주 등 고대국가의 수도 배치원리도 한 꿰미에 다 꿸 수가 있다. 가히 고인돌 연구의 '지동설'이라 할만하다. 필자도 3년간 발품을 팔며 전국의 고인돌을 대상으로 그의 고인돌론을 종합과학적 방법론으로 검증했다. 앞으로의 한국 고인돌 연구는 이병렬의 고인돌론이 분수령이 되어, 부장품 발굴조사 위주 지석묘시대에서, 천문지리적 접근을 기본으로 학제적 연구가 보편화하는 새로운 고인돌 연구시대로 바뀔 것이다. 위대한 한국사 광복의 빛나는 첫 걸음이어라.

/사진·글=유기상(문학박사·전 고창 군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