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론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12·3 기습 계엄사태’ 이후 엄습한 공포와 불안이 우리 사회 전반을 무겁게 휘감은 채 좀처럼 쉽게 걷힐 기미를 보이질 않는다. 생경한 ‘계엄(戒嚴)’, ‘내란(內亂)’, ‘탄핵(彈劾)’이란 암흑의 화두들이 모든 일상을 짓누르며 숨통을 조여오는 듯한 현실이 꿈인지 생시인지 믿기지 않는다는 볼멘소리가 높아만 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전북지역에서는 공직사회에 잇따른 특혜·비리 의혹과 포퓰리즘 ·매표 논란, 불통으로 얼룩져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먼저 부안군수는 아들 채용을 대가로 관내 관광휴양콘도 사업자에게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이 군의회와 지역사회에서 오랫동안 제기돼 오더니 급기야 시민사회단체와 지역 정치권에 의해 고발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내막을 들여다보면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다.
부안군수, 관광휴양콘도 사업자 특혜 의혹 이어 아들 취업 논란까지

전주시민회와 진보당 김제부안지역위원회가 최근 권익현 부안군수를 뇌물수수 및 수뢰 후 부정처사 혐의 등으로 전주지검에 고발한 내용이 예사롭지 않다. 권 군수가 아들 채용을 대가로 부안군 변산면 일대의 관광휴양콘도 사업자에게 특혜를 제공했다고 주장하며 수사를 통해 이를 규명해 달라고 요구한 고발장에 따르면 부안군은 2022년 4월부터 12월까지 ㈜자광홀딩스와 변산해수욕장 관광휴양콘도 조성 협약과 체비지 매매계약을 체결했지만 온갖 특혜 의혹으로 악취가 진동한다.
민간사업자인 ㈜자광홀딩스가 변산해수욕장 뒤편 변산면 대항리 612번지 일대 4만 3,887㎡에 지상 11층 관광휴양콘도(연면적 5만 6,287㎡) 및 부대시설을 2023년 착공해 2026년까지 조성한다고 부안군은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계약이 이행되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 당초 계약서대로라면 ㈜자광홀딩스는 부안군 소유 체비지 매매계약과 동시에 계약금 26억원을 납부하고, 매매계약 체결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중도금 106억원을, 매매계약 체결일 6개월 이내에 잔금 132억원을 각각 납부해야 했다.
그러나 이 업체는 어찌된 영문인지 2022년 12월 계약금 26억원만 납부하고 2023년 3월 20일까지 납부해야 할 중도금 106억원과 그해 6월 20일까지 납부해야 할 잔금 132억원을 올 3월 현재까지 납부하지 않았음에도 부안군은 또다시 기한을 연장해 주는 특혜를 제공했다. 부안군은 계약을 해지하지 않고 되레 업체의 납부기한을 올해 10월까지 유예해 주었으니 명백한 특혜가 아니고 무엇인가?
게다가 이 과정에서 권 군수의 아들이 2021년부터 해당 업체인 ㈜자광홀딩스에 취업해 2023년까지 급여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양측 간 모종의 거래 의혹이 지역 언론과 시민사회단체에 의해 제기됐다. 오죽하면 지역 시민단체가 나서서 “공무원의 직무를 부당하게 행사해 특정 기업에 과도한 특혜를 줬다”며 “특혜 규명과 함께 부안군수와 ㈜자광홀딩스 대표와의 권 군수 아들 비리 채용에 관한 뇌물수수 의혹도 철저히 수사해 줄 것”을 촉구했다.
군수 아들 취업·관광콘도사업 '㈜자광홀딩스', 전주시 옛 대한방직 터 개발사업 '㈜자광'…같은 대표, 특수관계사

㈜자광홀딩스 대표는 부안군과의 사업 진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부안군수의 아들 권모 씨를 2022년 초부터 2023년 11월까지 취입시키고 급여를 지급한 만큼 이는 명백한 뇌물 제공 및 대가성 금품 수수에 해당한다는 주장이 그동안 제기돼 왔다. 이에 대해 권 군수는 “아들은 정상적인 채용 절차를 거쳐 취업했으며, 이후 공교롭게도 소속 회사의 투자 계약이 이뤄졌을 뿐”이라고 밝혔지만 특혜와 대가성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는다.
권 군수의 아들은 이 회사에서 퇴사해 현재 부안군 관내 면사무소에서 공직생활을 하고 있지만 의구심과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 게다가 ㈜자광홀딩스는 부동산개발 등 업체로 전주시 서부신시가지 옛 대한방직 부지에 대단위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자광과 특수관계사란 점에서 또 다른 의구심과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주시 효자동 일원의 옛 대한방직 부지 23만 565㎡에 대한 개발을 추진 중인 ㈜자광은 무려 6조원대의 사업을 진행하면서도 지난해 10월 2,700억여원의 채권상환 기간이 만료됨에 따라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 등 대주단으로부터 기한이익상실(EOD) 조치를 취할 것을 통보 받아 세간의 의혹을 받기도 했다.
㈜자광이 추진하는 사업지구는 막대한 공업용지를 상업용지 등으로 전환해 천문학적인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곳이어서 초기부터 특혜 시비에 이어 최근까지 짜맞추기 감정평가 논란 외에 도시계획 변경 과정에서의 월권·행정 미숙이란 지적을 받아왔다. 그럼에도 전주시는 개발권을 자광에 내주며 속도를 부추기는 형국이어서 의혹과 의구심이 가시지 않고 있다.
부안군수, 시민단체 등 고발에 '법적 대응' 엄포…전주시장, 밀어붙이기 통합 공약 ‘부메랑’

이러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자광홀딩스와 ㈜자광은 대표가 같고 특수관계사이지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개된 자료 등에 따르면 재산 대비 부채가 지나치게 많고 일부 보유 시설 등은 담보로 잡혀 ‘부실 회사’란 지적을 받아왔다. 그런데 부안과 전주지역에서 해당 지자체들과 손잡고 개발사업을 추진하며 온갖 특혜 논란을 일으키고 있으니 지역사회의 따가운 눈총을 피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해당 지자체나 단체장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3선 도전을 공식화한 부안군수는 기업 특혜 및 아들 취업 논란 등으로 고발을 당했지만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분위기다. 오히려 해당 업체와 함께 고발 단체 등을 향해 '법적 대응'을 예고하며 엄포를 놓고 있다. 공교롭게도 같은 부안 출신인 우범기 전주시장은 내년 지방선거에 재선을 노리며 자충수를 남발해 완주군의회 등으로부터 호된 비난에 직면했다.
우 시장은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완주·전주 통합 시청사와 의회청사를 완주지역에 건립하기로 하는 등 시·군의 시설관리공단 통합 이전과 6개 전주시 출연기관도 완주로 이전하겠다는 내용을 뜬금 없이 밝혔지만 '포퓰리즘 공약'이란 비판과 함께 오히려 더 큰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즉각 반박에 나선 완주군의회는 “예산 폭탄은 커녕 빚잔치를 하고 있는 전주시가 무슨 돈으로 시청과 의회를 비롯한 6개 출연기관을 완주로 이전하겠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며 “우 시장이 완주군민과 충분한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계획을 발표해 혼란과 갈등만 부추기고 있다. 즉각 사과하고 사퇴하라”고 주장해 되레 갈등만 키운 꼴이 되고 말았다.
이어 유희태 완주군수도 기자회견을 열고 "우범기 전주시장은 다분히 정치적이고 실현 가능성도 없는 공약을 발표했다"며 "완주군의 갈등을 조장하지 말라"고 비판했다. 유 군수는 특히 "법적인 근거와 주민 의견 수렴이 없고 전주시의회의 동의조차 얻지 못했다"며 "완주군의 또 다른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라고 발끈했다. 이 외에도 완주군과 전주시의 통합을 지지하는 시민단체가 "전주·완주 통합시 완주군민에게 1인당 300만원의 통합지원금을 지원해 줄 것"을 제안해 '매표 논란'까지 제기됐다.
자신의 선거 공약을 밀어붙이려 무리수를 잇따라 두는 우범기 전주시장은 개발과 통합을 빌미로 지난해부터 하천과 공원의 무차별 벌목으로 시민사회단체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고 있는 데다 시민들과의 폭넓은 소통 과정을 외면해 빈축을 사고 있다. 특히 각종 난개발을 밀어붙이면서 임기 내내 불통과 특혜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특혜·오해' 일으키고 있는 공직자들이 꼭 새겨들어야 할 가치 있는 ‘옛말’은?

모름지기 공직자의 도덕성과 청렴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이다. ‘참외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지 않고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을 매지 말라’는 뜻이 담긴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이란 고사성어는 그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이가 익은 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으면 마치 오이를 따는 것 같이 보이고, 오얏(자두)이 익은 나무 아래에서 손을 들어 관을 고쳐 쓰려고 하면 자두를 따는 것처럼 보이니 남에게 의심받을 짓을 아예 삼가라'는 뜻이다. 특혜와 오해를 일으키고 있는 공직자들이 꼭 새겨들어야 할 가치가 있는 옛말이다.
여기에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오비이락(烏飛梨落)’ 또한 의심받는 공직자들이 새겨야 할 성어로 손색이 없다. 사전적 의미로는 ‘아무 관계없이 한 일이 공교롭게도 때가 같아 억울하게 의심을 받거나 난처한 위치에 서게 된다’는 뜻이지만 공직사회에서 ‘오비이락’은 우연히 공교롭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마땅히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난 것일 때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공직자의 처신은 매사에 조심해야 한다.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과 ‘오비이락’은 특혜 의혹과 불통·포퓰리즘 논란에 휩싸인 부안군수 및 전주시장에게 딱 맞아 떨어지는 고사성어라는 점에서 꼭 깊이 새기길 바란다.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