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의 역사칼럼

백승종 역사학자
백승종 역사학자

독일 재통일 때였어요. 영국의 대처수상도 반대했고, 프랑스의 미테랑도 반대하였다는데요. 헬무트 콜 독일 총리와 디트리히 겐셔 외무장관이 고르바초프와 정말 긴밀한 관계였지요. 고르비(고르바초프의 애칭)가 동독의 개방을 넘어 독일의 재통일까지 적극적으로 찬성했어요. 물론 고르비의 소련은 그 보답으로 독일(서독) 정부가 주는 두둑한 현금을 선물로 받았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르비의 '개혁정책'과 '개방정책'은 어이없이 좌초했어요. 체제의 전환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고르비는 현실을 잘 몰랐던 것이고요. 정확히는 누구도 몰랐던 미증유의 실험이었는데, 결국 실패하고 만 것이지요.

소비에트가 해체될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현 러시아 대통령)은 동독에 파견된 KGB 간부였어요. 세월이 조금 흐르자 정치에서 실패한 고르비는 역사의 퇴물이 되었지요. 그와는 반대로 영악한 푸틴은 러시아의 독재자로 등극했어요. 이제 그는 소비에트의 영광을 되살린다며 온 세상을 멋대로 휘젓는 폭군이 되었습니다. 

정치가 고르비의 일생을 다룬 뉴스나 동영상들을 잘 살펴보면 꽤 흥미로운 대목이 있어요. 과거에 고르비가 핵무기 없는 세상을 주장한다는 사실입니다. 1990년대 초에 고르비의 주장대로 핵무기를 싹 다 없앴어야 했어요. 그러나 현실주의자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핵무기를 조금밖에 손대지 않아, 큰 화근이 되고 말았습니다.

고르비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개혁정책'과 '개방정책'을 미국 등 서방세계가 적극적으로 후원해주기를 바랐어요. 도움을 간청하기도 했고요. 그러나 미국 대통령이던 '아버지 부시'가 철저히 외면했지요. "소련은 아주 망해라!" 이런 주문을 외우며 흔들어 댄 셈입니다. 그 바람대로 소련은 아주 콩가루가 되었어요.

그럼 그것이 미국에게 그리고 서방세계에 얼마나 큰 이익이 되었을까요? 그때 당장에는 아주 속이 시원했을 테지만, 후환이 깊었어요. 진보적이고 똑똑한 인물이지만 오바마 미국 대통령까지도 푸틴의 러시아를 일개 지방정권으로 하대했어요. 이러한 태도가 러시아의 자존감에 엄청난 상처를 주었어요.

돌이켜보면 2004년까지만 해도 블라디미르 푸틴은 개방 노선을 취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러나 완전히 추락한 러시아의 위상을 평범한 방법으로는 도저히 회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고는 마음을 확 바꿨어요. 고르비 역시 푸틴의 "좌절"을 깊이 공감하더라고요. 가재는 결국 게 편이지요. 고르비는 분명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서구의 배신에 대한 러시아인의 분노가 매우 깊다!"

그렇습니다. 상대가 아무리 철천지 원수라 해도 너무 짓밟으면 안 되지요. 못살게 굴더라도 금도(襟度)를 알아야 합니다. 윤석열은 대통령에 당선되자 함부로 실력행사를 하였습니다. 특히 거대 야당의 대표를 너무나 못살게 굴었어요. 야당 대표를 수백번 압수수색하고, 전 정부 장관의 온 가족을 왜 그렇게도 무참히 짓밟았나요?

세상의 기회와 운수란 돌고 도는 법입니다. 힘이 넘쳐도 멈출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윤석열은 검찰과 법원, 경찰과 경호처, 극우파들을 총동원해 민주주의자들과 극단적인 싸움을 벌이고 있어요. 과연 어디까지 가려는 것인가요. 이미 늦었으나, 그가 순리(順理)의 위대함에 눈뜨기를 바랍니다.

똑같은 말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와 러시아의 푸틴에게도 들려주고 싶어요. 그러나 제 말을 들을 리가 없겠지요. 지나친 재앙이 따라옵니다. 역천(逆天)하는 이는 망(亡)하지 않을 수가 없는 법입니다. <헌법>이나 <육법전서>에 기록되어 있지 않을 지 모르나 순천(順天)하여야 흥(興)한다는 것이, 우주자연의 법도입니다.

/백승종 객원논설위원(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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