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광 기자, 온몸으로 묻는다] 정재훈 고려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지난해 2월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발표로 촉발된 의정 갈등이 1년 넘겼다. 3월 새 학기가 시작되었지만, 신입생들도 수업을 안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내년도 의대 정원을 증원 이전으로 동결하겠다고 발표했다. 의정 갈등이 풀릴까?

현재 의정 갈등 상황과 해법에 대해 들어보고자 지난 6일 정재훈 고려대 예방의학교실 교수와 전화로 연결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정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정책 결정의 오류가 얼마나 단시간에 큰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실감한 사례"

정재훈 고려대 예방의학교실 교수.(사진=정재훈 제공)
정재훈 고려대 예방의학교실 교수.(사진=정재훈 제공)

- 의대 증원 문제로 의정 갈등이 벌어진 지 1년 넘었어요. 의정 갈등이 1년 넘길지 누구도 예상 못 했을 텐데 현재 상황을 어떻게 보세요?

“코로나19 당시에도 항상 했던 이야기가 ‘지금이 가장 큰 위기다’ 혹은 ‘이번이 고비다’와 같은 표현들이었습니다. 의정 갈등 역시 같은 양상인 듯합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이 시기가 특히나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이미 1년 동안 학교와 병원 밖에 나가 있는 상황이었는데, 만약 이것이 2년째로 접어들게 된다면 의료계 전반에 너무나 큰 타격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의정 갈등을 보면서 두 가지를 강하게 느꼈습니다. 첫째는 정책 결정의 오류가 얼마나 단시간에 큰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실감한 사례였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여러 정책적 주체 간의 신뢰가 모두 깨져버렸다는 문제입니다. 현재 의료계 상황은 저출산 고령화와 재정 절벽 등 미래의 다양한 문제를 고려할 때 의료 공급자와 국민 모두 일정 부분 양보할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정치적 리더십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지금의 의정 갈등은 정부와 의료 공급자 간의 정책적 신뢰가 깨졌다는 점과 의료계 내부의 세대 및 직역 간 갈등을 극명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심각합니다.

현재 전공의협의회가 주장하는 바는 사실 의료계 선배 세대의 책임론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이에 동의하며, 지금까지 의료계 선배들이 과연 어떤 책임을 다해 왔는지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 시작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미래 세대의 관점에서의 정책 변화가 시급하고, 이들이 정책 환경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번 의정 갈등을 직접 경험한 세대가 향후 정부 정책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갖고 따를 수 있을지는 의문이며, 이것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상황이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한 것은 분명합니다.”

- 지금 학교가 개강했잖아요. 수업이 가능한가요?

“아직 학생들이 복귀하여 정상적인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학사 일정이 계속 조정되다 보니 교수진도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으며, 실제로도 학사 일정을 여러 번 재조정해 온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1년 이상 지속된다면 학사 일정이 본격적으로 지연될 수밖에 없습니다. 의대생이나 전공의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특례 등 가능한 방안을 마련하려고 하지만, 기간이 계속 지연될수록 대책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정부의 보다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접근이 필요하지만, 현 상황에서 정부가 책임지고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본래 이 정책은 행정부가 추진한 사안이었으나, 현재 정책적 판단이나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입법부 차원에서 의료 인력 추계위원회 관련 법안 상정하는 등 문제 해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어요. 결국 결자해지의 원칙에 따라 행정부가 문제를 직접 해결해야 하는데, 앞으로 몇 개월 동안은 행정부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다시 학사 일정이 한 학기 더 지연될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현재 행정부에 남아 있는 책임 있는 관계자들이 보다 적극적이고 책임감 있는 자세로 이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 신입생들도 수업 안 받는 거잖아요. 그게 문제라는 지적도 있더라고요. 어차피 의대 증원 문제를 알고 입학했는데 거부하는 게 맞냐는 거죠.

“신입생들도 현재는 기존 학생들과 행동을 함께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것으로 보여요. 저는 이 문제를 조금 다른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25학번 학생들은 증원 결정된 상황에서 학교에 입학한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의대생이 된 이상 이 문제는 결국 그들 자신의 문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입생들이 이에 대한 의사를 표명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 만약 지금 문제가 풀려서 학생들이 복귀하면 수업이 가능한가요? 인원이 많아서 어렵다는 목소리도 있던데.

“현재 정책은 상당히 무책임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원 확대를 계속 유지할 계획이라면 당초 약속한 대로 학교의 시설 및 교수 인력 확보도 함께 진행되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이러한 준비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일부 의과대학은 기존 대비 2배에서 3배가량의 교육 부담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기초의학·지방 의과대 필수 의료 분야, 수도권으로 이동·퇴직·개원 등으로 인력 부족 도미노 현상"

MBC 3월 6일 뉴스 화면(영상 갈무리)
MBC 3월 6일 뉴스 화면(영상 갈무리)

- 아예 준비가 안 된 건가요?

“준비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강의실 확보나 재정적인 투자는 의지만 있다면 비교적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교수진 확충과 같이 장기적인 인적 자원 관리가 필요한 부분은 현실적으로 단기간 내 해결이 어렵습니다. 실제로 기초의학이나 지방 의과대학의 필수 의료 분야에서는 수도권으로의 이동, 퇴직, 개원 등으로 인해 인력 부족과 도미노 현상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현재 인력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추가적인 인력 확보는 더욱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 올해 의사고시 합격자가 269명으로 작년 합격자의 10분의 1도 안 된다던데 합격자가 적을 경우 어떤 문제가 있나요?

“결국 필수 의료 분야와 인력의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은 한 세대가 비게 되면 크게 저하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속했던 예방의학과처럼 레지던트 수가 적은 분야에서는 한 해에 단 한 명의 레지던트라도 있는 것과 몇 년간 한 명도 없는 상황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발생합니다. 단순히 교수와 학생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같은 직역과 연차를 공유하며 함께 성장하는 과정에서 동료의식과 협력 의지가 형성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의료 시스템은 초기 대형 병원에서 인력 문제 등으로 운영이 어려웠으나, 상급종합병원 등도 결국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고 있습니다. 실제 통계상 많은 상급종합병원에서 수술 건수가 다시 회복되는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회복은 현재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정책적 지원이나 재정 투입으로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 업무를 누가 맡게 될 것인가라는 더 큰 문제가 남아있습니다.

현재의 문제 해결 위해 지출할 재정은 결국 미래 세대가 써야 할 자원을 미리 당겨 사용하는 개념입니다. 결국 더 큰 문제는 5년에서 10년 뒤 현재의 세대가 전문의가 되어 필수 의료 분야에서 활동해야 할 때 발생할 것입니다. 그 시점에서 인력 수급과 재정적 지원이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큽니다. 이번 1년의 공백과 현재의 정책적 한계가 미래의 의료 시스템에 심각한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됩니다.”

- 그런데 어차피 환자가 병원을 연차 보고 아는 건 아니니까 크게 상관없지 않을까 하는데.

“현재 의료 시스템은 의정 갈등 초기에 대형 병원들의 인력 부족 문제 등으로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상급종합병원 등도 결국 변화된 환경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고, 최근 통계에서도 다수 병원의 수술 건수가 다시 회복되었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습니다만 이는 지금 당장의 문제를 잠시 해결한 것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결국 이러한 상황은 현재보다 미래에 더 큰 문제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 전공의 상황은 어떤가요?

“당연히 전공의들도 복귀할 수 있는 계기와 여건이 주어진다면 복귀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정부의 전향적인 정책 변화나 전공의들이 요구해 온 여러 사안 중 해결된 부분이 매우 적습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될수록 양측의 매몰 비용이 점점 더 커지게 되고, 매몰 비용이 증가할수록 복귀는 더욱 어려워집니다.

따라서 정부의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진다면 복귀가 가능할 것이지만, 우선적으로 정부가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3월 6일 당정이 3,058명의 정원 문제에 대해 원점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과 같은 조치가 앞으로도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이루어져야만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전공의는 기본적으로 피교육자이면서 동시에 노동자로서, 의료 시스템 내에서 취약한 집단 중 하나입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얽혀 있으면서도 병원 내 노동의 가장 힘든 부분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전공의들은 노동자보다는 피교육자의 역할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고, 전공의가 없더라도 상급종합병원 운영에 문제가 없도록 의료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동안 전공의들은 피교육자이자 노동자로서 저렴하고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인력으로 인식되어 왔으나, 앞으로는 그러한 인력에 의존하지 않고 의료 시스템을 설계해야 합니다.”

"'처단'이라는 표현 사용...전공의 의욕 심각하게 떨어뜨리는 매우 부적절한 처사"

-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포고문에 미복귀 전공의는 처단한다는 내용도 있었죠. 교수님은 전공의가 아니지만 섬뜩했을 것 같은데.

“저는 현재 상황이 정말로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합니다. 특정 문구가 들어감으로써 문제의 해결이 불가능할 정도로 악화되었으며, 이러한 일이 전공의 세대에게 남길 트라우마 또한 매우 우려됩니다. 전공의 중 일부는 시장으로 나가 필수 의료와 무관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도 있지만, 절반 이상은 필수 의료와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인생을 바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정부나 정권에서 이들을 대상으로 '처단'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이들의 의욕을 심각하게 떨어뜨리는 매우 부적절한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외부에서는 모든 의사가 경제적 동기에 의해 움직인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로 많은 의사들은 환자를 진료하거나 생명 살리는 데서 큰 보람과 만족 얻는 비경제적 동기로 움직입니다. 이처럼 열정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에게 ‘이 길로 오지 말라’고 말한 것과 다를 바 없는 메시지 준 것입니다.”

- 의대 학장들은 정부 설득하겠다며 학생들에게 복귀를 요청했는데 학생들이 돌아올까요?

“아니요. 당연히 학장님들은 선생님의 입장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돌아와서 공부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며, 그러한 말씀을 하시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재 학생들이 나가 있는 이유는 정부의 정책 때문이므로, 학생들이 돌아오기 위해서는 정부 정책의 변화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따라서 학장님들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물론 학장님들의 의견은 존중받아 마땅하고 중요한 논의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정부의 정책 변화에 달려 있습니다.”

- 정부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일단 작년에 추진된 정책은 너무나 과감하다기보다 거의 과격한 수준으로 급격한 변화였잖아요. 이러한 급격한 변화로 인해 빚어진 혼란들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유감을 표명하거나, 최소한 전향적인 입장 표명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의료 인력 수급 추계 위원회 같은 논의들이 장기적으로 이루어질 텐데, 의대 정원 확대라는 문제는 사실 15년 뒤를 바라보고 이야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15년 정도가 걸리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15년 뒤의 재정 상황, 부양 구조, 그리고 경제적 미래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논의해야만 합니다.

정부 입장에서도 매우 장기적이고 긴 호흡으로, 점진적인 변화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물론 한 번에 구조 개혁을 이루어서 깔끔하게 업적 남기고, 세상이 정상화되면 가장 좋겠지만, 의료라는 문제는 너무나 복잡합니다. 의료가 현재 GDP의 거의 10%를 차지하는데, 이는 우리나라가 직면한 문제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크기라는 뜻입니다. 저는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단지 한두 가지 정책이나 과격한 몇 번의 조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주세요.

“이미 너무 오래된 문제가 되었고, 갈수록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지고 있지만, 저는 이 문제가 본질적으로 매우 단순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장기적으로 봤을 때 건강보험이든 국민연금이든 미래 세대가 현재 세대를 어떻게 부양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논쟁이 이 문제의 근본에 숨어 있다고 봅니다. 현재 세대의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자신들이 기여해 온 바가 있으니 가능한 많은 혜택 누리고  유지하려는 관점에서 접근하게 될 것이고, 반대로 미래 세대 입장에서는 현재 세대가 자원을 지나치게 소모하게 되면 자신들이 쓸 자원이 부족하게 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관점 차이가 바로 의정 갈등의 가장 기저에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부양 부담을 둘러싼 세대 간 갈등인 것이죠. 우리나라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늘 성공해 왔습니다. 작년보다 올해가 더 좋고, 올해보다는 내년이 더 좋아지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나라였지만, 앞으로는 정말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인식을 모두 가져야만 이 문제를 제대로 풀어갈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이영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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