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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개헌안을 놓고 김관영 전북특별도지사가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장인 유정복 인천시장과 날선 대립각을 세움으로써 정치권은 물론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 지사는 4일 자신의 개인 SNS(소셜 네트워크 사이트)를 통해 “오늘 유정복 인천시장이 발표한 개헌안에 대해 분명한 반대를 표한다”며 “아울러 합의되지 않은 의견을 시도지사협의회 명의로 발표한 것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김관영 지사 “헌법 제84조, 선관위, 임기 단축 관련 등 동의할 수 없어…전혀 합의되지 않은 사항”

김 지사는 또 “유정복 시장에게 이틀 전 전화를 받았으나 당시에는 개헌과 관련한 구체적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다”며 “오늘 초안을 확인하고 나서, 특히 헌법 제84조, 선관위, 임기 단축 관련 등은 동의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유 시장이 개인적으로 발표하는 것은 막을 수 없으나, 시도지사협의회 명의로는 할 수 없고 제 이름도 빼 달라고 밝혔다”며 “그럼에도 전혀 합의되지 않은 내용을 사견이 아닌 시도지사협의회 명의로 발표한 것은 매우 부적절한 처사임을 밝힌다”고 거듭 강조했다.
앞서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유정복 시장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 4년 중임제와 양원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헌법 개정안을 공개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대통령에 쏠린 권한을 나누기 위한 개헌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나왔지만 시도지사협의회가 분권형 헌법 개정안을 공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어서 주목을 끌었다.
특히 대통령 권한 뿐만 아니라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정부로 이양하는 내용 등 그간 논의됐던 내용 상당 부분이 포함됐지만 헌법재판소 탄핵소추안 기각을 전제한 내용이 포함됐는가 하면, 김관영 지사를 비롯한 일부 단체장들은 ‘합의된 바 없다’고 밝혀 의아하다는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개헌안' 14개항, 무슨 내용 담겼기에?

유 시장이 이날 국회에서 헌법 전문에 지방분권과 균형을 명문화하는 개헌안을 공표한 자리에는 조재구 대한민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대표회장, 김현기 대한민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장 등이 함께했다.
이날 발표한 14개항으로 구성된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개헌안’은 중앙-지방정부 관계 재정립뿐만 아니라 대통령제와 국회 구조 변화를 주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국회를 상원과 하원으로 구성하는 양원제를 도입하고, 상원은 광역 지방정부 대표로, 하원은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해 현재 방식으로 선출한 의원들로 구성하도록 했다. 또 정·부통령제를 통해 대통령 궐위 시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해 국정 혼란을 최소화하고, 대통령 임기는 4년으로 하되 중임할 수 있도록 했다.
이밖에 자치입법권을 명문화하고, 법률과 다른 내용으로 자치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자치계획권을 신설했다. 아울러 지방정부가 지방세 종목과 세율을 추가할 수 있는 지방세 신설권도 부여했다. 이날 가장 눈에 띈 항목은 헌법 제84조 대통령 형사상 불소추 특권의 범위 명확화, 중앙선관위의 행정부 내 편입, 대선 시기를 개정 헌법 시행 100일 이내로 규정한 내용이 포함됐다.
유정복 시장 “개헌 통해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 폐해 막고, 지역균형발전 위한 분권성장 이루어 내야”

유 시장은 “역동적인 국민 대통합으로 국민이 행복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것”이라며 “개헌을 통해 대통령과 국회에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의 폐해를 막고 지방정부 중심의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분권성장을 이루어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김관영 지사를 비롯한 강기정 광주시장과 김영록 전남지사, 홍준표 대구시장, 김동연 경기지사, 오영훈 제주지사 등 여야 단체장들이 즉각 반발했다.
이를 의식한 듯 유 시장은 이날 자신의 SNS를 통해 “저는 지난해부터 개헌 필요성을 얘기하면서 개헌을 주도해오고 있는 가운데 주요 정치인들은 물론 학계와 시민단체 그리고 국민들까지 지금이 개헌이 적기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며 “그러나 개헌 주장을 넘어 헌법개정(안)을 만들어 이를 공표한 것은 제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관영 지사 등은 합의되지 않은 의견을 시도지사협의회 명의로 발표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하는 동시에 “헌법 제84조, 선관위, 임기단축 관련 등은 동의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강기정 광주시장·김영록 전남지사 등 “지금은 탄핵 완수할 때", "논의된 바 없어 반대”
이에 대해 이날 강기정 광주시장도 “대통령 불소추 조항이나, 선관위를 행정부에 두는 조항 등은 시도지사협의회에서 한 번도 논의되지 않은 내용”이라며 “지금은 개헌을 논할 때가 아니라 탄핵을 완수할 때”라고 밝혔다. 김영록 전남지사도 "대통령 불소추 특권 조항이나, 선관위를 행정부에 두는 조항, 헌법에 의해 선출된 첫 번째 대통령의 임기 단축 등은 전혀 논의된 바가 없다"며 유감을 표시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유 시장으로부터 전화는 받았지만, 일단 반대한다”며 “조만간 개헌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홍 시장의 이 같은 입장은 개헌안이 필요하지만 본인의 생각은 다르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이처럼 탄핵 정국 속에서 시도지사협의회장이 들고 나선 개헌안은 많은 단체장들이 일부 내용에 대해 ‘합의된 바 없다’거나 '반대한다'는 뜻을 잇따라 내비치며 선을 그음으로써 탄력을 받기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결과적으로 설익은 개헌안을 내민 배경에 의구심만 커지는 모양새가 됐다.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