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시론
이란격석(以卵擊石)이란 말을 최근 자주 사용하게 된다.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는 매우 불가능하고 비상식적인 뜻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사자성어다. 아주 약한 것으로 강한 것에 대항하려는 어리석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지만 때론 이런 당돌함이 일반적인 상식을 깨트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혹 목격한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그럴만한 이유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스스로를 높이고 교만하게 처신한다는 뜻을 지닌 ‘고자표치(高自標置)’로 무장한 상대를 만났을 때 제아무리 계란으로 바위 치기식의 승부라 하더라도 ‘이란격석’이 더 유리하다는 것을 최근 ‘2036 하계올림픽 국내 유치 후보 도시 선정전'에서 보여주었다.
싱겁게 끝나리라 예상됐던 서울특별시와 전북특별자치도(전주시)의 11년 후에 있을 하계올림픽 국내 유치 도시 선정전은 전북의 승리라는 대이변을 연출했다. ‘골리앗’인 서울의 올림픽 주최 경험과 압도적인 인프라를 ‘다윗’인 전북이 뛰어넘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국가균형발전’, ‘지역 연대’라는 명분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그보다 상대인 서울시의 교만과 오만은 무시못할 더 큰 역할을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앞선다.
서울시에 비해 훨씬 불리한 조건 전북, 올림픽 국내 후보 도시 선정 배경은?

'김관영 전북도정'이 지난해 7월 ‘밀실 추진’ 논란을 일으키며 불안한 출발을 보이기 시작한 2036년 하계올림픽 국내 유치 경쟁은 서울시와 뒤늦게 경쟁을 선언하고 나선 전북자치도 간의 ‘계란으로 바위 치기 싸움’으로 비유됐다. 이에 도민들 사이에는 우려하는 시각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비록 48년 전이긴 하지만 1988년 서울시는 이미 올림픽을 치른 경험이 있고 각종 경기장과 수용시설, 세계 각국 선수들의 접근성 등 제반 인프라가 전주시를 앞세운 전북자치도에 비해 월등히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과의 경쟁에 뛰어든 전북은 2017년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린 세계스카우트연맹 총회에서 세계잼버리대회 유치를 어렵게 따낸 후 6년여의 충분한 준비 기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23년 열린 새만금 세계잼버리대회에서 취약한 시설과 접근성, 인프라·준비 부족 등으로 인해 대회가 시작하자마자 참가자들이 다른 지역으로 강제 분산돼 개최되는 수모를 겪은 뼈아픈 사례가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있는 상태이기에 더욱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2년 전 새만금잼버리대회 파행과 참담한 실패로 인해 국내는 물론 참가국을 비롯한 해외 여러 나라로부터 많은 질타를 받아야 했고 이로 인해 실추된 신뢰와 덧씌워진 멍에가 더욱 무거운 전북이 2036년 하계올림픽에 도전해 얻는 것은 실리보다는 오히려 낭패와 예산·행정력 소모가 될 것이란 우려가 곳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더욱이 전북자치도는 이번 하계올림픽 국내 후보 도시 유치전이 본격 시작되기도 전부터 서울시에 공동 개최를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후 단독 개최로 방향을 틀더니 다시 지역 분산 개최에 이어 막판에는 서울시와 공동 개최 쪽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서울시로부터 또다시 거절을 당하는 바람에 ‘갈팡질팡·오락가락 유치전’이란 뭇매를 맞기도 했다.
'자만'하기 시작하면서 '패착의 자충수'에 빠져든 서울시

더구나 서울시는 사전타당성 조사에서도 지난 올림픽 때 지었던 시설들을 활용하고 부산·인천 등에 일부 경기를 분산하면 총 비용은 5조 833억원으로 최근 4차례 올림픽이 12조~18조원 사이였던 것에 비해 압도적으로 경제적인 올림픽이 될 수 있다고 자랑하며 대대적인 홍보전을 펼치고 나서 전북과 비교되지 않았다.
많은 서울 언론들도 ‘2036 서울올림픽 개최 총비용으로 도출된 5조 833억원은 2000년 이후 열린 다른 올림픽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최저 비용’을 장점으로 내세우며 2016년 리우(18조 2,000억원), 2020년 도쿄(14조 8,000억원), 2024년 파리(12조 3,000억원) 등 최근 10년 전·후로 열린 올림픽 모두 개최 비용이 10조원을 넘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서울시에 힘을 잔뜩 실어주었다.
그런 서울시가 자만하기 시작하면서 패착의 자충수에 빠져든 모양새를 내비쳤다. 결정적으로 지난달 19일 서울시의회 시정질문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2036 하계올림픽’의 전북과 공동 개최 건에 대해 “마음 같아선 응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했다"며 "최대한 절약하며 흑자를 내 그 이익을 스포츠인에게 환원시킬 여지가 많아야 가점을 받는데 공동 개최는 감점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히면서 지나친 자만심과 오만함을 드러냈다.
이날 제328회 서울시의회 임시회 2차 본회의에서 시의원으로부터 전북과의 하계올림픽 공동 유치와 관련한 질문을 받은 오 시장은 "공동 개최는 점수만 낮아지는 게 아니라 준비 기한이 6개월 이상 연장될 수 있다"며 "새로 처음부터 평가받아야 하는 공동 개최의 난점을 충분히 고려해 공동 개최안에 동의 못했다"고 답했다.
또 오 시장은 "올림픽은 서울시의 내부 행사가 아니라 국제 행사이고, 개최를 원하는 경쟁 도시들이 외국 도시이지 않느냐"고 반문한 뒤 “만약 개최권을 서울시가 가져오게 되면 그때부턴 시설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전북도 함께 분산 개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는 이미 전달된 바 있다"고 강조함으로써 마치 국내 올림픽 유치권이 서울시로 확정되기라도 한 듯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때부터 2036년 하계올림픽 유치전은 ‘이란격석’ 대 ‘고자표치’의 볼 만한 싸움이 될 것이란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결과는 서울시의 참담한 패배로 막을 내리며 언론들은 ‘대이변과 대반전이 연출됐다’고 앞다퉈 전달했다.
호남·영남·충청 아우르는 ‘지역 연대’ 통한 ‘국가균형발전’ 카드 ‘유효’

전북은 2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대한체육회 2025년도 정기 대의원총회에서 진행된 2036 올림픽 유치 국내 후보지 선정 투표에서 총 61표 중 49표를 얻어 12표를 얻은 서울을 큰 격차로 꺾었다.
서울은 1988년 올림픽을 개최한 경험과 스포츠 시설은 물론 교통·숙박 등 모든 인프라가 잘 갖춰진 경쟁력을 부각했지만 허사로 돌아갔다. 2019년 부산시를 따돌리고 2032년 하계올림픽 유치 신청 도시로 선정된 뒤 남북 공동 유치를 추진했으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호주 브리즈번을 ‘우선 협상 도시’로 선정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던 서울은 또 다시 올림픽 유치전에서 쓴맛을 보게 됐다.
대신 이날 ‘국가균형발전’을 주장하며 ‘지역 도시 연대’란 숨은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든 전북은 1988년 올림픽 성공 개최 경험과 각종 기반시설에 대한 장점을 부각한 서울에 압승을 거뒀다. 투표에 앞서 현장에선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관영 전북지사가 직접 발표자로 나서 각각 45분간 프레젠테이션(PT)을 진행한 뒤 평가위원회의 조사결과 보고 후 대의원들이 무기명 비밀투표를 통해 한 곳의 후보지를 정했지만 결과는 49표 대 12표의 큰 차이로 전북이 서울을 앞질렀다.
이날 김 지사는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호남과 영남, 충청을 아우르는 ‘지역 도시 연대’를 통한 ‘국가균형발전 실현’에 초점을 맞춰 표심을 끌었다. 올림픽을 유치하면 육상경기를 대구스타디움에서 개최하고, 광주(국제양궁장·남부대 시립국제수영장), 충남 홍성(충남 국제테니스장), 충북 청주(청주다목적실내체육관), 전남 고흥(남열해돋이해수욕장) 등에서 분산 개최한다는 계획을 내세웠다.
항공 및 철도, 고속도로 등 이동 조건과 시설이 열세하고 불리하기는 하지만 IOC가 지향하는 인접 도시 연대를 통한 비용 절감 요구에 부합하고, 수도권에 집중된 인프라·경제력의 분산으로 균형 발전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북자치도는 2014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무주를 내세웠으나 경쟁을 벌인 강원도 평창에 국내 유치 후보 도시 자리를 내줬던 당시 아쉬움을 씻어낼 수 있게 됐다는 자평을 내놓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2년 전 악몽과 같은 새만금잼버리대회 실패를 교훈 삼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실추된 전북 이미지와 신뢰도를 되찾는 기회를 부여 받게 됐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잼버리 망친 전북, 올림픽 가당키나 하냐?” 따가운 비아냥...깊이 새겨야

가뜩이나 새만금잼버리대회 파행 이후 전북에는 패배감과 상실감이 팽배했다. 성공 개최를 자신했으나 폭염과 해충, 여기에 태풍까지 겹쳐 끝내 잼버리가 파행으로 끝나자 도민의 자존감은 철저히 무너져 내렸다. 터무니없이 부족한 화장실과 샤워실 등 편의시설과 대회 초반까지 해결 못한 야영장 배수 문제, 우왕좌왕한 조직위원회 등이 한몫 했지만 대회 파행에 따른 온갖 비난의 화살은 전북도로 향했다.
이 때문에 이번 하계올림픽 유치를 선언했을 때도 일부 누리꾼들 사이에는 '잼버리도 망쳤으면서 올림픽이 가당키나 하냐', '또 나라 망신시키려고 하느냐', '전북에는 국제행사를 주면 안 된다' 등 지역 비하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아직 새만금잼버리 파행의 책임 소재도 명확히 가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감사원 감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마당에 비난과 조롱은 더욱 따갑게 느껴진다. 전북자치도와 지역 정치권이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더구나 전북자치도는 그동안 올림픽 유치전을 두고 우왕좌왕하는 등 재원과 전략의 디테일에서 미흡하다는 지적을 계속 받아왔다. 그럼에도 전북자치도는 전북연구원과 함께 '2036 하계올림픽이 가져올 경제적 유발효과'가 42조원이라고 추산하는 등 지나치게 효과를 강조함으로써 빈축을 샀다. 새만금잼버리대회 유치부터 내내 치적으로 내세우며 자랑과 홍보를 일삼았던 과거 송하진 도정이 그랬던 것처럼 아직 유치가 확정되지도 않은 올림픽을 벌써부터 치적으로 홍보하며 우려먹어서는 안 된다.
‘2036 하계올림픽’ 유치전 이제부터 시작…결코 자만해선 안 돼

이제 겨우 ‘2036 하계올림픽 국내 유치 후보 도시'로 선정됐을 뿐, 아직 세계 여러 나라 도시들과 경쟁해야 하는 큰 과제가 남아 있다. 앞서 문화체육관광부에 ‘국제행사 개최 계획서’를 제출해야 하고 문화체육관광부 및 기획재정부의 승인을 받은 후 대한체육회와 협력해 본격적인 유치 활동을 벌여야 한다. 또 IOC에 유치 의향서를 제출한 뒤에는 IOC 미래유치위원회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후 미래유치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우선협상 대상 도시가 추천되는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IOC 총회에서 투표를 통해 개최지가 결정되기까지 많은 단계가 남아 있다.
현재 올림픽 유치를 희망하는 나라들은 인도,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튀르키예, 이집트 등 10여 개 국가에 이른다. 이들 나라 중 인도는 수도권을 벗어나 국가 전역 개최를 검토 중이며, 인도네시아는 동남아 최초 올림픽을 목표로 비장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온다. 여기에 ‘2030 세계박람회’ 개최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2022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카타르도 강력한 경쟁 국가로 꼽힌다. 전북이 결코 자만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2036 하계올림픽 유치전’은 이제부터 시작이나 다름없다.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