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론
새만금의 광할한 영토를 놓고 군산시, 김제시, 부안군이 벌이는 관할권 분쟁과 갈등이 갈수록 태산이다. 10년 넘게 3개 시·군이 새만금 매립지 관할을 놓고 벌여온 영토전쟁이 언제 끝날 줄 모르고 치열하기만 하다. 새만금 관할권 분쟁은 만경 7공구 방수제, 새만금 동서도로, 새만금 신항 방파제·비안도 어선 보호시설, 새만금 남북도로 등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앞으로도 매립지와 기반시설을 놓고 해당 지자체들은 계속 다툼을 벌일 태세다.
방파제와 도로, 항만 등을 해당 지역의 행정구역에 편입시키기 위해 법원과 행정안전부 중앙분쟁조정위원회에 줄소송이 이어지고 있지만 사전에 중재하거나 막을 대안이 마땅치 않다. 이를 바라보는 도민들의 마음도 영 편치 못하다. 여기에 언론과 정치권은 크고 작은 새만금 관할권 분쟁을 ‘삼국지 혈투’와 ‘전쟁’에 비유하거나 심지어 ‘서로 죽고 망하는 싸움’이라고까지 조롱 섞인 우려를 하지만 싸움을 적극 말리는 정치인과 언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바다 대신 ‘메워진 땅’ 놓고 '군산·김제·부안' 관할권 분쟁 갈수록 ‘치열’

정부와 전북자치도가 그동안 자랑해 온 바에 따르면 새만금은 개발을 전제로 서해의 군산·김제·부안 등 3개 시·군지역 앞바다에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33.9㎞)를 쌓아 2050년까지 국토 409㎢(토지 291㎢와 담수호 118㎢)를 새로 만든다는 '단군 이래 최대 국책사업' 지구다. 그런데 1991년 11월 첫 삽을 뜬 새만금사업은 잦은 기본계획 변경 등으로 실질적 개발은 늦어지고 정쟁의 소재로 사용되고 있어 새만금을 바라보면 늘 불안하기만 하다.
올 11월이면 착공된 지 어언 35년이 되는 새만금사업은 그동안 대통령이 8명 바뀌었고 올해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9번째 대통령을 맞게 된다. 그동안 대통령선거 때만 되면 새만금은 단골 공약 메뉴였다. ‘조기 완공’, ‘특별법’, ‘비농지 확대 조성’이란 달콤한 메시지를 던지며 표심을 자극했지만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달라졌다면 광활한 바다를 이은 방조제와 도로뿐이고, 바다를 가둔 곳은 황량한 사막과 같이 여전히 쓸모가 없고, 자연이 살아 숨 쉬며 어류 자원이 풍성했던 드넓은 갯벌들은 하나둘 사라져 이제는 흔적조차 찾기 힘들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140배에 달한다는 새만금은 1987년 12월 대선 당시 민정당(국민의힘 전신) 노태우 후보가 호남 표를 얻기 위해 처음 공약으로 내건 이후 38년 동안 줄곧 대선 공약이었지만 초기 단계에서부터 사업 타당성이나 예산 검토가 전제되지 않은 탓에 환경 오염과 예산 낭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2006년 4월 방조제 33.9㎞ 전 구간의 물막이 공사가 끝났지만 심각한 환경 훼손과 그에 따른 파생 논쟁은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바다 대신 메워진 땅을 놓고 군산시, 김제시, 부안군의 관할권 분쟁은 갈수록 열기가 뜨겁다. 게다가 새만금사업의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관리를 위한다며 2013년 9월 새만금개발청이 문을 열고 7개 기관에서 분산 추진하던 업무가 새만금개발청으로 통합됐지만 이후 2018년 9월 새만금개발공사가 설립돼 옥상옥은 더 늘게 됐다. 개발에 속도를 내기 위해 옥상옥 구조는 늘어난 대신 새만금사업은 점점 엉뚱한 방향으로 향하면서 진척도 더디기만 한 상황에서 심각한 환경 훼손과 생태계 파괴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세계 최장의 방조제가 끝물막이 공사를 완료한 이후 시작된 인접 지자체들 간 관할권 분쟁은 가히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다.
바다를 방조제로 막아 1억 2,400만평이라는 거대한 내부 토지가 조금씩 생기면서 벌이는 군산·김제·부안의 행정 관할 분쟁은 2010년부터 본격화됐다. 1호에서 4호까지 이어진 새만금 방조제를 누가 관할하느냐를 놓고 3개 시·군은 양보 없는 싸움을 벌여왔다.
2010년부터 시작된 소송전, 방조제 이어 도로·항만 등 관할권 놓고 갈등·분쟁 지속…언제 끝날지 ‘예측 불허’

새만금 방조제가 완공되면서 시작된 관할권 분쟁은 새만금 3호(2.7㎞)·4호(11.4㎞) 방조제를 정부가 군산시에 귀속시키면서 본격화됐다. 2010년 당시 안전행정부는 새만금 3·4호 방조제의 행정구역 귀속지를 군산시로 결정했으나 김제시와 부안군이 그해 12월 결정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대법원에 제출하면서 공방은 달아올랐다.
이어 행정안전부(행안부)는 2015년 부안군에서 시작하는 새만금 1호 방조제는 부안군에, 김제 앞바다의 2호 방조제는 김제시에, 군산에서 시작하는 3·4호 방조제는 군산시에 각각 관할권을 부여했다. 그러자 행안부의 결정에 해당 지자체들이 반발하고 2라운드의 오랜 법적 다툼 끝에 2021년 대법원이 행안부 결정에 손을 들어주면서 방조제 관할권은 일단 종지부를 찍었지만 방조제 관할권 다툼은 전초전에 불과했다.
방조제 안에는 지도상에 없던 새로운 땅이 생기면서 행정구역 관할권 분쟁이 본격화됐으니 이는 '삼국지 대혈투'로 비교될 정도로 광범위 한 데다 언제 끝날지 예측 조차 어렵다. 김제시 진봉면 심포항 시점에서 새만금 2호 방조제 종점까지 잇는 새만금 내륙 간선도로인 새만금 동서도로의 경우 2015년 11월 착공해 만 5년 만인 2020년 12월 준공됐지만 행안부 중앙분쟁조정위원회는 최근에서야 심의를 통해 관할 지자체를 김제시로 결정했다.
하지만 군산시는 이 같은 결정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새만금 동서도로 관할권 다툼은 행정소송으로 다시 이어질 전망이다. 동서도로는 지난 2022년 12월 행안부 분쟁조정위원회에 안건이 상정된 이후 수 차례 회의를 진행해오다 결론이 나지 않다가 올 들어 어수선한 탄핵정국 속에서 슬그머니 결정이 났다. 하지만 그 결정은 또 다른 분쟁을 예고한 것이나 다름 없다.
동서도로 관할권 김제시 결정에 군산시 ‘발끈’…새만금 신항 놓고도 갈등·마찰

가뜩이나 행안부 중앙분쟁조정위원회는 심의를 통해 새만금 동서도로 관할 지자체를 김제시로 결정한데 이어 같은 날 새만금 수변도시의 관할권도 처음으로 심의에 올렸다. 새만금 수변도시는 새만금의 첫 계획도시로서 관련 지역의 정주 여건 개선과 지역 주민의 생활권에 큰 영향을 미치는 대단위 조성 사업으로 인접 지자체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 때문에 군산시와 김제시, 부안군은 관할권 확보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행안부의 결정에 이의가 있는 지자체는 통보를 받은 날부터 15일 이내에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당장 군산시는 동서도로 심의 결정에 즉각 소송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따라서 새만금 관할권 분쟁은 다시 3라운드로 이어질 전망이다.
설상가상, 군산시와 김제시는 새만금 신항만의 운영 방식을 두고도 갈등을 벌이고 있다. 군산시는 군산항이 새만금 신항을 관리하는 '원 포트' 방식을 주장하고 있지만 김제시는 새만금 신항이 군산항과 별개로 운영되는 '투 포트' 방식을 요구하고 나서 갈등과 마찰이 볼썽사납다. 해양수산부가 조만간 새만금 신항을 국가 관리 무역항으로 지정하는 절차에 들어가 신항의 운영 방식을 결정한다는 방침이지만 이 또한 결과에 따른 소송전이 불가피해 보인다.
다른 지역 관할권 분쟁은?
관할권 분쟁은 이처럼 새만금에서만 치열하게 전개되는 건 아니다. 지난해 8월 29일 헌법재판소는 경남 남해군과 통영시 간 욕지도 인근 해역의 관할권 다툼에 대한 결정을 내려 주목을 끌었다. 그간 지자체들 간 해양 관할구역 경계 분쟁은 주로 바다를 매립한 토지(매립지)나 어업 분쟁이었다. 그러나 공유수면(바다)에 해상풍력 발전시설, 해양 신도시, 석유나 가스 채취시설, 이산화탄소 저장시설, 해저케이블, 가스관 등 다양한 시설이나 건축물이 설치되고 있는 사업지의 해양 관할구역 분쟁이 늘고 있는 가운데 내려진 첫 결정이어서 더욱 관심을 끌었다.
헌법재판소의 이 같은 결정은 해상풍력 발전단지 건설사업지의 관할구역 분쟁이란 점에서 앞으로 새만금사업지구에서도 이대로 가다간 헌법재판소까지 이어질 분쟁 소지가 차고도 넘칠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이밖에 인천의 송도5·7·9·10·11공구 관할권을 놓고 인천시에서는 ‘연수구 대 미추홀구·중구·남동구’의 법정 소송까지 이어졌다. 소송 결과 인천시 연수구가 승소했지만 그동안 쌓인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행정개편을 통해 특별자치구를 이뤄내야 한다는 주장이 높게 일고 있다. 그러나 관할권 분쟁과 그에 따른 갈등 조정은 일차적으로 행안부 중앙분쟁조정위원회 등의 심의를 거쳐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까지 이어지는 법적 다툼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더욱이 지자체들 간 육지 관할구역 분쟁은 토지의 현황을 정리한 '지적 공부'가 있어 그 기재사항에 기초해서 관할구역 귀속을 판단할 수 있지만, '지적 공부'가 없는 바다는 어디까지가 각 지자체의 관할구역인지 명확하지 않아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심판 결정에 맡기고 있다는 점에서 상위 광역지자체의 갈등 중재 및 조정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관할구역 분쟁을 원천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지자체들 간 관할구역 획정을 위한 법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다. 그동안 해상 관할구역 획정을 위한 입법적 노력은 지속됐으나 아직 결실을 맺지 못한 것도 지자체들 간 갈등과 분쟁을 키우는 한 요인으로 볼 수 있다.
다시 주목 받는 '특별지방자치단체' 제도…지역 간 분쟁·갈등 해소 위한 '법률적 근거'

다행히 현행 지방자치법은 두 개 이상의 지방자치단체가 공동으로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특별지방자치단체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은 관할권 분쟁으로 갈등과 마찰을 빚는 지자체들이 고민하며 지역 사회가 함께 숙의해볼 만하다. 관할권 분쟁에 휩싸인 시·군들 간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차제에 전북자치도의회에서 ‘새만금 특별지방자치단체 구성 촉구 건의안’이 발의됐다는 점은 새삼 주목할 만하다. 그동안 새만금 권역인 군산·김제·부안의 3개 시·군 간 갈등이 고조되면서 늘어나고 있는 소모적인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전북의 미래를 담보할 새만금사업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문제점을 원활하게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거의 부재했던 게 사실이다.
3개 시·군의 눈치를 보아가며 김관영 전북지사도 그동안 새만금 특별지방자치단체 설립과 출범을 줄곧 제안하며 강조해 왔다. 하지만 새만금 내부 시설들을 둘러싼 '우리 땅' 주장이 맞서면서 이 같은 제안은 공허한 메아리에 그쳤다. 그런데 마침 도의회에서 제기된 새만금 특별지방자치단체 설립안은 김관영 도정이 추진해 왔던 안과 접목시켜볼 만하다.
특히 도의회에서 제기된 안은 새만금 3개 시·군의 통합을 뜻하는 게 아니고 현행 기초자치단체로서의 외형과 실질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3개 시·군이 새만금 발전을 위한 공동의 사무를 처리하기 위한 별도의 특별지방자치단체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다만 실행을 위한 접근 방법이 문제다. 그동안 켜켜이 내재된 갈등을 먼저 풀기 위해서는 새만금 특별지자체 구성을 위한 사전 단계로 특별지자체 합동추진단 구성이 선행돼야 하며, 3개 시 ·군과 전북자치도가 대승적 차원에서 한 발씩 양보하며 진지한 논의와 협의가 전제돼야 한다.
'새만금 대혈투' 대신 '새만금특별시' 적극 추진을

그래서 분쟁과 갈등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대신 환경·기후·지진 문제 등에 적극 대처·대응해 나가는 한편 각종 개발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새만금사업을 특별지자체가 주도해 간다면 도민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최장 기간 진행되고 있는 국책사업이 지금처럼 ‘삼국지 전쟁·혈투’에 비유되거나 조롱받으며 더욱 느리게 진척될 것이다.
무엇보다 세계잼버리대회 실패 이후 실추된 새만금 이미지와 전북의 신뢰도를 되찾기 위해서도 인접 지자체들 간 분쟁과 갈등 대신 협력하는 지혜와 상생의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그 첫 대안으로 '새만금 대혈투' 대신 '새만금특별시'부터 적극 추진해 보는 것은 어떨까?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