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론
‘사살’과 ‘수거’ 등 끔찍하고 충격적인 내용이 담긴 ‘노상원 수첩’이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12·3 불법 계엄’ 사태 이후 내란 혐의로 구속 기소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수첩에 담긴 내용이 조사와 수사 과정에서 일부 언론에 의해 하나둘씩 공개되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차마 입을 다물기 어려울 정도로 소름 돋게 한다.
1980년대 전두환 신군부의 반란세력이 정권을 찬탈하는 과정에서 피로 물들인 참혹한 '광주학살'과 사회를 정화한다며 무고한 시민들을 '삼청교육대'에 끌어다 가두어 무차별 폭력을 행사했던 공포의 그 시절을 새삼 떠오르게 한 내용들로 가득 적혀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한겨레와 MBC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70쪽짜리 ‘노상원 수첩’에는 '여의도 30∼50명', '언론 쪽 100∼200(명)', '민노총'(민주노총),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어용판사' 등이 ‘1차 수집·수거’ 대상 500여명에 포함됐다고 한다.
불법 계엄 핵심 인물 노상원, 수첩에 적힌 명단과 섬뜩한 표현들…누가 지시하고 누구와 협의했나?

‘500여명 수집·수거 대상 처리 방안’에는 ‘이송 중 사고’, ‘막사 내 잠자리 폭발물 사용’, ‘확인 사살 필요’ 등 형언하기 조차 어려운 잔혹한 표현들이 들어 있다.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그런 계획을 세웠을까? 특히 ‘체포조’ 인원 편성은 5명에서 7명씩 한 조로 하고, 버스나 승용차를 이용해 이동시키려는 계획도 적혀 있을 뿐만 아니라 '여(인형): 행사인원 지정, 수거명부 작성', '박안수 계룡대: 수집 장소, 전투조직 지원' 등 내란에 가담한 군 장성으로 추정되는 이름과 역할도 구체적으로 적혀 있고 ‘수거 조처’로 1·2차는 기무사(현 국군방첩사령부), 3∼10차는 경찰을 활용하겠다고 적혀 있다니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또 수첩에는 야당 국회의원들 외에 문재인 전 대통령,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다수의 야권 인사들까지 체포 대상으로 적혀 있었다고 한다. ‘수집 대상’이라고 표현한 500명 중 언론인들도 100~200명에 이른다. 이들을 어떻게 처리할 계획이었까? 검찰이 확보했다는 그 수첩엔 노상원이 A~D급으로 분류한 ‘수거 대상’이 적혀 있고, 이들을 체포한 뒤 감금·제거할 계획을 의미하는 표현들도 포함돼 있는 걸 보면 생각조차 끔찍하고 소름이 돋을 정도다.
비상계엄 사태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노상원은 2022년부터 약 2년간 군산의 한 무속인을 수시로 찾아 전북과는 희한한 인연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비단아씨’로 통하는 무속인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그는 올해 1월까지 수십차례 사주를 보러 군산을 방문했다는 내용이 여러 언론에 보도됐다. 심지어 최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증인으로도 출석한 무속인은 “노 전 사령관이 배신자 색출을 위한 군인 명단을 가져와 점괘를 의뢰했냐”라는 국회의원의 질문에 "맞다"고 답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현역 군인도 아닌 신분임에도 내란 중요 인물로 가담한 사실도 의아하고 어처구니 없지만 그의 수첩에 적힌 괴기한 내용들은 충격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내란 수괴 및 내란 주도 혐의로 구속된 대통령과 전 국방부장관의 사주 또는 지시와 협의 없이 가능한 일이었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절로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수첩에 적힌 인물들, 계엄 지속됐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더욱 끔찍한 것은 ‘A급 체포’ 대상은 ‘간첩죄’로 엮어 연평도 등 접경 지대에 수용한 뒤 ‘이송 중 사고’로 처리하려 했다고 한다. ‘NLL 인근에서 북의 유도’ 등의 표현으로 미뤄 정적 제거에 북한까지 끌어들일 구상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불법 비상계엄 후속 조치로 보이는 ‘3선 집권 구상 방안’, ‘법 개정’, ‘후계자 지목’ 등의 표현도 등장한다. 온 국민을 불안과 공포에 몰아넣고 국가의 안위와 경제를 나락으로 추락시킨 불법 계엄과 내란을 통해 정적을 제거하고 장기 집권을 꾀한 '민주주의 말살 시나리오'란 해석이 일리가 있다.
‘노상원 개인의 망상’이라며 거리 두기를 하려는 국민의힘 등 내란세력의 주장과 달리 민간인 신분인 전 정보사령관이 불법 계엄 과정에 개입한 것은 물론 수많은 정치인과 언론인, 시민사회단체 대표, 종교인 등의 생명을 위협하는 계획을 세운 게 드러난 만큼 진상 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은 타당하고 지당하다. 불법 계엄이 계속 유지됐더라면 수거 대상 명단에 오른 500명은 지금쯤 어떻게 됐을지 상상조차 끔찍하고 전율이 치민다.
가뜩이나 ‘12·3 내란 사태’ 이후 정치인 체포 지시는 불법 계엄의 위법성을 가르는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거두절미하고 ‘노상원 수첩’의 ‘수거’와 ‘사살’ 등 살벌한 용어로 가득한 ‘체포 시나리오’는 분명 그 진위 여부와 작성 경위 등을 철저한 수사를 통해 밝혀야만 한다. 윤석열 탄핵의 중대 사유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더욱 ‘망상’ 또는 ‘괴담’ 수준으로 치부돼선 안 된다.
이런 끔찍하고 괴기스러운 탄핵정국에서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 조성현 수도방위사령부 1경비단장은 국회와 헌법재판소 등에서 중요한 진술과 흐트러짐 없는 증언을 일관되게 함으로써 불안에 휩싸인 많은 국민에게 진실 메신저 역할을 해주고 있으니 주목을 받을 만하다.
‘홍·곽·조 3인방’, 윤석열 파면 이뤄질 경우 '1등 공신'...이유는?



이른바 ‘홍·곽·조 3인방’으로 불리는 이들은 윤석열의 파면이 이뤄질 경우 ‘1등 공신’이란 소리를 들을 것이란 평가가 나올 정도다. ‘문짝을 부수고서라도 국회의원들을 끄집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곽 전 특전사령관의 증언과 ‘이번 기회에 싹 다 정리하라'며 정치인 등의 체포를 지시 받았다는 홍 전 국정원 1차장의 증언, 비상계엄 당일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명확히 증언한 조 경비단장은 지난 12월 3일 비상계엄이 불법이자 내란이었음을 널리 알린 인물들이다.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국회와 선관위에 군병력을 투입시킨 행위는 엄연한 위헌적이고, 위법적인 것이다. 또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 노조위원장 등을 체포하려고 계획한 행위도 법관이 발부한 영장이 없는 체포·구속을 금지한 헌법에 위반된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거나 ‘경고성 계엄’, 심지어 ‘계몽용 계엄’이라며 국민을 기망하는 내란 수괴 앞에 떳떳하게 증인으로 마주 앉은 홍 전 국정원 차장은 정치인 등의 체포 명단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증언해 ‘수거·체포 시나리오’가 그냥 나온 말이 아님을 증명해 주었다.
또한 군 통수권자임에도 내란 수괴 혐의를 받는 대통령을 겨냥해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했던 장본인이라고 지목한 참군인들이 있어서 그나마 진실이 하나둘 밝혀지고 있다. 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많은 정부 관료들과 군 장성들이 불법 계엄에 가담 또는 동조하고도 입을 꾹 다물거나 허위 증언 등으로 자신의 안위 지키기에 급급한데 반해 국민과 헌법, 부하들과 부대 명예를 지키는데 주저하지 않는 이들 3인방에게 감사의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