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태(世態) 뒤집어 보기] 2025년 2월 5일
‘눈 속에서 태어난 아기, 119 목소리가 있었다’
'119구급상황관리센터, 폭설 속 새 생명 탄생 도와'
'폭설 속 119 응급 지도로 산모 순산'
'전북소방본부 119구급상황관리센터, 신속한 대처로 산모와 아이 구해'
'“구급대 오기 전 남자 아이 순산"…폭설 속에 119 전화로 분만 유도'
4일과 5일 사이 전북지역 주요 언론들에 의해 보도된 동일한 내용의 기사 제목들이 다르다. 같은 내용이지만 제목이 강조하는 내용은 약간씩 차이가 묻어난다. 제목이 전달하고자 하는 언론사들의 의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주된 제목의 키워드는 ‘신생아’ , ‘출산’, ‘119’, ‘폭설’ 등이 눈에 띈다. 아울러 '소방의 도움이 있었다'는 점도 제목에서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얼핏 보면 대수롭지 않은 기사일 수 있지만 '6하 원칙'이 거의 같은 내용의 기사를 이처럼 공통적으로 메시지를 부각시켜 보도한 이유는 뭘까. 역외 유출 심화와 출산율 저조 등으로 가파른 인구 감소가 지속적으로 이뤄져 지역 소멸·붕괴 위기가 다른 지역보다 매우 심각한 상황에서 새 생명 탄생을 소중히 부각시켜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히 엿보인다.
‘6하 원칙’ 같은 내용 기사들…제목에서 강조한 메시지는 '제각각'


우선 보도된 기사 내용들을 살펴보면 신문과 방송, 통신사 할 것 없이 거의 일치한다. 올해 신설된 119구급상황관리센터가 응급 분만 상황에서 귀한 새 생명 탄생을 도왔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순창군 인계면에서 “아이가 금방 출산될 것 같다”는 다급한 신고가 전북자치도 119종합상황실로 접수된 것은 4일 새벽 3시 50분께다.
신고자는 "다섯째 아이를 출산한다"는 경산부의 시어머니로 긴급한 상황 속에서 도움을 요청했고, 신고를 접수한 119종합상황실은 즉시 순창구급대에 출동 지령을 내렸지만 당시 순창에는 대설경보가 내려져 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구급차가 신속히 도착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119구급상황관리센터는 출동과 동시에 한편에서는 신고자와 전화를 연결한 후 응급처치 방법 등을 안내하며 즉시 분만을 유도해 성공적인 출산을 도왔다는 게 보도된 기사들의 핵심 내용이다.
그러나 이를 편집한 기자들은 ‘눈 속에 태어난 아기’, ‘폭설 속 산모 순산’, ‘폭설 속에 119 전화로 분만 유도’ 등의 제목을 뽑아 달았다. 어느 곳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일이지만 희소성과 간절함을 제목에 함축시키고자 노력한 흔적들이 공통적으로 묻어났다. 기사를 쓴 취재기자들도 기사 리드에서 특이함을 부각시키고자 노력한 흔적들이 보인다.
“눈보라 속 신생아 순산?”…언론들 흥분하며 신생아 탄생 강조


전북일보의 경우 관련 기사(제목: 전북소방본부 119구급상황관리센터, 신속한 대처로 산모와 아이 구해) 리드에서 “응급분만상황에서 전북특별자치도소방본부 119구급상황관리센터의 신속한 대처로 새 생명이 건강하게 태어났다”고 강조했다. 전라일보는 관련 기사(제목: 폭설 속 양막 파열된 임산부, 119전화로 무사 출산)에서 “올해 신설된 119구급상황관리센터가 응급 분만 상황에서 귀한 새 생명 탄생을 도왔다”고 했다.
새전북신문은 ‘119 전화 지도로…눈보라 속 신생아 순산’이란 제목과 함께 “대설이 내리던 새벽 119구급상황관리센터가 새 생명의 탄생을 이끈 사연이 전해졌다”고 기사 리드에서 밝혔다. 전민일보는 ‘119구급상황관리센터, 폭설 속 새생명 탄생 도와’란 제목의 기사에서 “올해 신설된 119구급상황관리센터가 응급 분만 상황에서 전문적인 안내로 새 생명의 탄생을 도왔다”고 방점을 찍었다.

방송들 중 KBS전주총국은 4일 ‘폭설 속 119 응급 지도로 산모 순산’이란 제목과 함께 “전북소방본부에 따르면 최근 신설한 119구급상황관리센터의 응급 분만 지도를 통해 폭설 속 구급대 도착 직전에 산모의 출산이 무사히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이날 전주MBC는 관련 기사(제목: "구급대 오기 전 남자아이 순산"…폭설 속에 119 '전화로 분만 유도')에서 “폭설 속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가 구급대가 도착하기 전 119 센터의 안내로 무사히 분만에 성공했다”고 전했다.
JTV도 ‘응급 분만 임신부, 대설에 119 통화로 순산’이란 제목과 함께 “순창의 한 임신부가 119 구급상황관리센터의 전화 안내를 받아 집에서 무사히 다섯째 아이를 출산했다”고 리드에서 전했다.
내용이 일맥상통한 기사들의 출처는 전북소방본부발이지만 언론들이 흥분하며 다섯째 신생아 탄생을 강조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앞서 신년 기획특집 보도들을 통해 일부 언론들은 다른 지역과 달리 2년 연속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순창지역을 조명한 바 있다. 따라서 연이어 순창발 희소성 있는 뉴스를 특별히 강조하기 위한 의제 설정이란 점에서 더욱 주목을 끌만 하다.
“순창군, 전국 89개 인구 감소지역 중 2년 연속 인구 증가한 곳”

일부 지역 언론들은 신년 특집기사를 내보내면서 순창군의 인구 증가를 주목하며 특별히 조명했다. 전주MBC는 1월 31일 ‘전북 순창군 인구 '깜짝' 증가…이유는?’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지난 2021년 인구가 전년 대비 4.2% 줄며 '인구감소율 전국 1위'의 불명예를 안았던 순창군이 재작년과 작년 말엔 인구가 전년 대비 각각 37명과 58명씩 늘었다”며 “사망자보다 출생자가 적은 자연감소는 피할 수 없었지만 빠져나간 인구보다 유입된 인구가 355명이 많아 인구가 소폭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기사는 “전국적으로 89개 인구감소지역 중 2년 연속 인구가 증가한 곳은 순창과 전남 신안, 충남 예산 등 5곳 뿐이다”고 강조한 뒤 “지자체에서는 거주 공간을 지원해줬고, 아이마다 지급되는 아동행복수당도 도움이 됐다”며 “순창군은 1세에서 17세 모든 아이들에게 아동행복수당 10만 원씩, 대학 진학 시엔 생활지원자금을 학기당 최대 200만 원씩 지원하며 또 매달 15만 원을 통장에 넣으면 군에서 30만원을 더 얹어서 2년이면 1,000만원의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청년 종자통장', 어르신 이·미용비 지원 등의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북일보는 1월 24일 ‘새해 달라지는 순창: 2년 연속 인구 증가…인구소멸 위기 정책으로 승부’란 제목의 기사에서 “순창군이 도내 인구 감소 지역 중 유일하게 2년 연속 인구 증가라는 뜻깊은 성과를 기록했다”며 “민선8기 추진한 보편적 복지 정책들에 대한 높은 주민 만족도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며, 순창군이 추진한 아동행복수당, 청년종자통자 지원, 이·미용비 지원 등 보편적 복지 정책은 인구소멸 위기를 극복하는 하나의 모범사례로 평가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새 생명의 탄생, 희소성 있는 기사 취급…'위기의 지역 현실' 반영
기사는 또 “지난해 순창군은 농촌유학생 51명을 비롯한 학부모 등 103명이 순창으로 전입해 도내 자치단체중 농촌유학생 유치 1등을 기록했다”며 “올해는 농촌유학생 75명이 신청하며 학부모 등 160여명이 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목할만한 점은 지난해 농촌유학생 51명 중 37명이 농촌 유학에 만족하며 연장 신청을 했다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는 순창군이 농촌 유학생 유치의 핵심인 거주시설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군 차원의 체계적인 유치 활동을 펼친 결과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부연 설명했다.
거스를 수 없는 인구 감소의 속도를 늦춰보자는 지자체의 정책 실험들이 지역의 질적인 변화로 지속 가능할지 주목된다는 점을 지역 언론들이 강조하며 애써 부각시키고 있는 가운데 대설특보가 내려진 순창지역에서 이미 산모의 양막이 파열돼 아이의 머리가 보이는 상황에 119 센터의 분만과 응급처치를 유도한 건강한 신생아 탄생이 합작품을 이룬 의제 설정의 결과물로 보여진다.
실제로 신생아가 탄생한 이날 순창에는 대설경보가 내려져 시간당 3~5cm의 많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급대원들은 10여분 만에 도착해 산모와 아이를 병원으로 이송했다는 내용을 소방은 널리 알리고 싶었고, 언론은 훈훈하고 잔잔한 감동으로 포장해 전달했다. 날로 심각한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 위기 속에 새 생명의 탄생을 희소성 있는 기사로 취급하는 지역 언론들의 경쟁적인 보도 행태가 갈수록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