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광 기자, 온몸으로 묻는다] 정찬승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지난해 12월 29일 제주항공 여객기 폭발로 179명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가 벌어졌다. 12월 초 윤석열 대통령이 벌인 내란 사태에 대한 트라우마가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이하는 대형 참사는 국민 모두에게 큰 상처를 낳았다.
연이은 사건에 대한 트라우마 치유 방법을 찾아 보고자 지난해 12월 31일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사회공헌특임이사인 정찬승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전화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정 전문의와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유족들 심리적 충격 트라우마, 마음 위로하는 심리지원 굉장히 중요”

- 29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179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참사 초기인데도 트라우마를 호소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시간이 지나면 늘어날 것 같은데 지금 상황 어떻게 보고 계세요?
“재난 종류 중에 자연 재난과 사회재난이 있거든요. 그리고 사회재난 중에서도 어떤 건물 붕괴나 또 화재 테러 전쟁 등 많아요. 이번 참사는 그중에 항공 재난으로 분류해요. 항공 재난이 다른 재난과 두드러지게 차이 나는 건 사망률이죠. 굉장히 높아지거든요. 화재나 건물 붕괴, 홍수, 가뭄 같은 건 다 그 재난의 생존자들이 주 대상으로 되는데 항공 재난의 경우 특히 유족에 대한 대처가 아주 중요하고 그러다 보니까 행정적인 지원과 사고 원인 규명, 보상 문제 이런 건 당연히 공식적으로 잘 진행이 돼야 되는데 그것과 나란히 유족들에 대해서는 유족들의 심리적인 충격 트라우마 그리고 마음을 위로하는 심리 지원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특징이 있어요.”
- 이런 대형 참사가 일어나면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방송에 집중하게 되는 데 이것도 부작용이 있다던데.
“재난이 발생하면 사람들이 미디어 소비가 급증하게 되는데 그건 재난이 너무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사건인 경우가 많으니 여기에 대응할 수 있는 정보를 찾기 위한 의도거든요. 특히 이번에 발생한 항공 재난의 경우 규모가 대단히 크고 아주 자극적인 화면이 나오기 때문에 사람들의 호기심도 자극 많이 돼요. 그렇기 때문에 뉴스 매체에서도 사고 장면이나 잔해를 보여주는 경우들이 많아요. 그래서 사람들은 더 미디어의 자극적인 화면이나 소식에 더 몰두하게 되기도 해요. 그리고 사망자의 스토리들이 사람들의 또 감정을 많이 자극해요. 그렇기 때문에 더 미디어 소비를 많이 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꼭 주의해야 되는 건 지나치게 미디어 소비를 하는 게 정신 건강에 굉장히 해롭거든요.”
- 어떤 게 해로워요?
“어떤 분들의 경우 이런 충격 받고 불면증이 생겨서 밤에도 잠을 잘 못 자거나 아니면 자다가 깨서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확인할 수가 있잖아요. 사실 이것은 자기가 너무 불안하니 정보를 찾아서 불안을 완화하기 위한 행동인데 실제로는 오히려 자극적인 정보를 봄으로 그 사람의 불안이 증폭되거든요. 미디어 소비나 정보 찾기가 불안을 완화시키는 행동처럼 처음에는 시도 되지만 오히려 반대로 불안을 더 악화시키고 더 유발시키는 작용을 하게 돼요. 그래서 재난 발생할 때는 미디어 소비를 조절해야 돼요.”
"공신력 있는 뉴스 통해 필요한 만큼만 정보 제공받는 것이 좋아"
- 미디어 소비를 어떻게 해야 돼요?
“그때 미디어 소비를 아예 안 하지 말라고 지시 하면 안 되거든요. 필요한 만큼만 뉴스를 보라는 거죠. 지나치게 비공식적인 유튜브 등의 영상 시청을 하는 건 좋지가 않고. 또 다른 중요한 가이드는, 영상 매체는 우리가 수동적으로 소비를 하게 되잖아요. 보이는 대로 보게 되고 그 영상이 편집된 의도대로 우리가 받아들이게 되는데 수동적으로 영향 받는 영상 시청보다는 우리가 능동적으로 생각도 하고 또 해석도 할 수 있는 신문 읽기가 좋거든요. 특히 뉴스나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지나치게 불안과 흥분에 빠지는 사람들도 많아요. 이런 사람들의 경우에는 미디어 소비를 더 적극적으로 제한을 할 필요가 있어요.
특히 그중에서도 어린이 청소년 그리고 심신이 좀 미약하신 분들 또 임산부 노약자 같은 어려움을 겪으실 수 있는 분들 같은 경우 미디어 노출 시간 자체를 제한해 두는 것이 좋고 정 소식이 궁금하다고 하면 다른 여러 가지 비공식적인 그런 채널이 아니라 정규적인 뉴스를 통해서 공신력 있는 뉴스를 통해서 필요한 만큼만 정보를 제공받는 것이 좋습니다.”
- 사고 화면을 보는 게 얼마나 안 좋은 영향을 주나요?
“미국 정신의학회가 발간하는 정신장애진단통계편람(DSM-5)이라는 것이 있어요. 여기에서 트라우마에 대해 설명하기로는 충격적인 사건을 직접 겪거나 현장에서 생생하게 목격한 경우 또 이런 트라우마 사건이 가족 가까운 친척 친한 친구에게 일어나는 걸 알게 된 경우에 한해 트라우마로 인정했거든요. 그리고 디지털 미디어나 텔레비전 영화 사진 등 미디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노출된 경우에는 트라우마 사건에서 제외 해왔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미디어 기술이 발달하고 현장을 너무 생생하게 기록한 충격적인 사건 영상 때문에 그 영상 시청만으로도 트라우마 증상을 겪을 수 있다는 것으로 정신건강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이고 있거든요. 예를 들어 2013년에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가 발생했어요. 이때 폭탄 테러 사건에 대해 미디어 노출과 또 현장에서 직접 노출 받은 두 그룹을 비교 분석했거든요. 그랬더니 하루 6시간 이상 폭탄 테러 관련 미디어를 시청한 사람들이 폭탄 테러 자체에 직접 노출된 사람들보다 더 급성 스트레스 증상이 더 높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이걸 미디어 유발 트라우마라고 해요. 그래서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서 생생한 참사 보도 보고 나면 여러 가지 스트레스 반응을 겪을 수 있어요.
그러면 미디어 유발 트라우마에서 무엇이 우리가 미디어 유발 트라우마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 하는지 아는 게 중요하거든요. 영상이 우리에게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가장 큰 요인은 놀람과 폭력의 소리예요. 특히 영상 자료 중에서 충격적이고 아주 잔혹한 장면에 대해서 스스로 준비할 시간이 없이 갑작스럽게 노출된 경우에 트라우마가 가장 크거든요. 미디어로 인한 트라우마 반응 중 가장 흔한 건 플래시백이라고 해요. 이것은 트라우마를 직접 겪거나 트라우마 장면을 본 후에 트라우마와 관련된 이미지가 수시로 일상생활 중에 머릿속에 팍 떠오르는 거예요. 마치 영화 속에서 순식간에 과거 회상 장면이 떠오르는 플래시백 기법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증상의 이름을 플래시백이라고 붙인 것인데 미디어를 통해서 보는 건 그런 화면 통해서 우리가 그 트라우마를 봤기 때문에 이런 플래시백이 많이 경험될 수 있어요.”
- 영화나 드라마에서 폭파장면이 나오잖아요. 그것과 실제 폭파 장면 보는 게 다를까요?
“다르죠.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폭파 장면은 그것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작품 속에서 연출된 이 장면이고 우리가 실제 재난 참사가 일어난 장면 보는 것은 그 안에 살아 숨 쉬던 수많은 우리와 같은 생명들이 거기에서 죽고 다치는 생생한 현실이기 때문에 우리의 감정이 거기에 더 몰입할 수밖에 없어요.”
"정부가 진실하고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트라우마나 재난 회복에 있어서 최우선"

-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한 충격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참사에 대한 게 더해지니 더 문제이지 않을까 하는데?
“맞아요. 정치적 혼란 상황 자체가 매우 심한 스트레스거든요. 그래서 정부나 정치인들의 혼란스러운 게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이 있을까란 질문을 하기도 하는데 실제 2024년도에 발표된 미국심리학회 연구에서도 ‘정치적 우려’가 미국인들의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으로 꼽혔거든요. 그리고 미국 성인의 77%가 ‘국가의 미래’를 삶의 중요한 스트레스 요인으로 느낀다고 답할 정도였거든요. 그러니까 이런 정치적인 안정감 또는 정치적인 혼란이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크게 좌우할 수 있다는 거죠.
근데 이런 정치적인 혼란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정서적으로 정신건강에 미치는 가장 큰 영향은 사회적 안정감을 저해한다는 거예요. 비상계엄은 원래 사회가 극도의 혼란과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일부 제한해서라도 사회적인 안정 회복하기 위해 시행하는 고육지책인데 이번 비상계엄은 그 자체가 사람들에게 극도의 불안과 공포감을 가져왔거든요. 그리고 이후로 이어진 정치적 혼란은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사회적 안정감을 많이 훼손시켰어요.
그리고 재난이 닥치면 사회적 안정감에 중대한 충격이 더 또 가해지거든요. 그래서 안정감이 잘 확보한 사회는 재난에 처해도 안정적으로 대처할 가능성이 높아요. 하지만 정치적 혼란 상황에서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질 수 있으니까 사고 원인의 조사 또 재난 대책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이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반응이에요. 그러니까 지금과 같은 정치적인 혼란기엔 적어도 재난 대응에 있어서 정부가 진실하고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트라우마나 재난 회복에 있어서 최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 트라우마가 뭔지 설명해 주세요.
“간단하게 설명하면 생명 혹은 신체와 정신의 안위를 위협하는 충격적 사건 말하거든요. 자신이 직접 크게 다치거나 또 생명에 위협을 당하는 경험, 타인의 큰 부상이나 사망을 목격하는 것 그리고 가족이나 친밀한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도 트라우마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번 여객기 사고의 경우 항공 재난의 특성상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가족과 지인이 사망한 대단히 충격적인 트라우마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트라우마와 스트레스는 어떻게 구분하느냐가 중요할 거예요. 우리가 그전에는 스트레스라는 말을 훨씬 더 많이 썼죠. 근데 지금은 트라우마에 대해 인식함으로써 대처할 수 있으니 다행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트라우마가 너무 남발되는 경향도 있거든요.”
- 어떤 경우인가요?
“스트레스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한 현상을 트라우마라고 많이 표현 하기도 해요. ‘니가 그런 말 해서 나 트라우마 받았어’라고 농담 삼아 일상에서 가볍게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일이 너무 많아 업무가 너무 많아 이건 정말 트라우마야’라는 표현을 유머러스하게 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트라우마라는 용어가 남발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왜냐 트라우마를 남발하면 실제로 충격적인 사건 당한 사람의 고통이 가볍게 치부될 수가 있거든요. 트라우마라는 건 충격적이고 위협적인 사건에 대해서만 사용하는 것이 맞아요.”
"트라우마로 인한 고통을 축소하거나 간과하지 않으면서도, 이해하고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 열어주어야"
- 트라우마로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은 어떤 게 있을까요?
“우리는 낯선 변화 또는 새로운 변화,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서 네 가지 영역에 있어서의 변화를 경험해요.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네 가지 영역으로 그 영향을 받는다고 할 수 있는데 심리적인 반응, 또 생리적인 반응, 행동 반응, 그리고 인지적 반응 등이에요. 첫 번째 심리적 반응은 불안, 공포, 우울, 의욕 저하 등을 느끼는 걸 심리적 반응이라고 해요. 심한 경우에는 공황을 느끼기도 해요. 또 생리적 반응은 불면, 식욕 저하, 근육통이나 소화 불량, 피로감, 여러 가지 신체 증상 등을 경험하게 되는 거예요. 행동 반응에는 대인관계가 위축되고 사회 활동이 위축되고 쉽게 흥분한다든지 공격성을 보인다든지 또는 음주량이 증가한다든가 중독 물질을 남용하는 것 등이고, 네 번째 인지적 반응에는 집중력이 떨어지고 또 판단력이 떨어지고 의심이나 또 피해 의식이 생기게 되는 현상들이 나타나는데 이건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나타나고 또 트라우마를 겪을 때는 훨씬 강하게 나타나기도 해요.”
- 그러면 트라우마를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요?
“중요한 건 어떤 충격적인 사건 겪고 나타나는 트라우마 반응을 병적인 것으로 보고 환자 취급을 하는 게 아니라 이것이 비정상적인 사건에 대한 정상적인 반영으로 이해하는 게 필요하요. 이걸 감정의 정상화라고 하거든요. 트라우마 반응의 정상화는 트라우마를 겪으신 분들이 보이는 심리적·신체적 반응을 비정상적이거나 병리적인 것으로 볼 게 아니라, 인간으로서 보일 수 있는 정상적인 반응으로 봐야 한다는 개념이에요. 트라우마 경험 이후 나타나는 불안, 두려움, 과각성, 회피, 또는 감정적 둔화 같은 반응은 개인의 약점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몸과 마음이 적응하려는 결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상화는 트라우마를 경험한 분들이 ‘내가 이상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다’라고 느끼며, 자신을 비난하거나 수치심 느끼지 않도록 돕는 데 목적이 있어요.
심리치료에서 트라우마 반응의 정상화가 중요한 역할을 해요. 치료자는 환자분께 ‘이러한 반응은 트라우마를 겪은 분들께 흔히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라고 설명드리며, 이를 통해 환자분이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거예요. 자신을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회복의 가능성을 믿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정상화를 강조하는 접근은 트라우마 반응에 대한 낙인을 줄이고, 이를 트라우마 사건에서 기인한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받아들이게 하여 보다 포용적인 분위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정상화는 트라우마로 인한 고통을 축소하거나 간과하지 않으면서도, 이를 이해하고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이는 트라우마를 겪으신 분들께 안정감과 용기를 드리며, 회복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계엄과 참사를 거치면서 불안해하는 국민들 위해 위로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먼저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생존자분들을 깊게 위로하고 또 유가족에게 정말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그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며 또 여러분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사람들과 함께 많은 정신건강 전문가가 무안 공항 현장과 또 각 지역에서 도움을 드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에요. 절대 혼자 고립되지 마시고 자기의 감정을 억누르지 마시고 그 고통스러운 감정을 꺼내고 함께 나누시기를 당부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많은 국민들이 이런 갑작스러운 비상계엄과 이어진 정치적 혼란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다가 항공 재난까지 발생해서 심리적 부담이 매우 크거든요. 그래서 사회적 안정감이 훼손되고 우리 활동이 많이 위축될 우려가 높아졌는데 재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일상을 소중하게 지키고 회복하는 거예요. 또 그분들에 대한 애도 잘하는 것도 우리가 일상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많이 돼요. 우리가 어떤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또 어떤 분들은 트라우마까지 겪고 있지만 우리가 회복할 수 있다는 걸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영광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