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론

‘계란으로 바위를 깰 수 있다면?’

불가능한 질문이자 어리석은 상상이란 소릴 들을 만한 화두다. 그런데 언젠가 교양과 오락을 접목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계란으로 바위를 깰 수 있다는 상상조차 어려운 무모한 실험이 이뤄져 시선을 모은 적이 있다. 계란을 액체 질소에 넣어 완전히 얼린 다음 대포와 같은 원리로 발사하는 발사대에 넣고 날렸더니 바위가 부분적으로 깨졌다. 또 다른 방송의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액체 질소 계란을 투수가 던져서 석회암을 깨뜨리는 실험을 보여줬다. 일부 바위 재질에 따라 계란으로도 부분적으로나마 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 흥미를 끌었다.

두 실험 모두 단순히 살짝 금이 간 정도에 불과했지만 계란보다 강도가 낮은 돌에 던지거나 강력한 속도로 발사하면 계란으로 바위를 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도전 정신의 긍정 메시지를 전달해 준 것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계란으로 바위를 깬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 도전하거나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을 시도할 때는 ‘이란격석(以卵擊石)’이란 말을 곧잘 사용한다. ‘달걀로 바위를 친다’는 뜻의 이 사자성어는 매우 약한 것으로 강한 것에 대항하려는 무모한 행동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자기 분수도 모르고 무모하게 덤비는 만용…’당랑거철(螳螂拒轍)’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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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비슷한 사자성어로는 ‘자신의 실력이나 처지를 전혀 감안하지 않고 무모하게 도전하는 경우’를 비유하는 ‘당랑거철(螳螂拒轍)’이 있다. 그 유래가 재미있다. 중국 춘추시대 초기 제(齊)나라 장공(莊公)이 수레를 타고 가던 중 사마귀 한 마리가 수레 앞에 나타나 수레바퀴를 향해 앞발을 치켜들었다. 사마귀를 몰랐던 장공은 신기한 마음에 수레를 멈추게 한 뒤 수레를 모는 신하에게 “저것이 무엇인지 아는가”라고 묻자 신하는 "저것은 사마귀라는 것인데 어떤 것이든 앞에 있으면 날카로운 앞발을 들고 서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장공은 “만일 저것이 사람이라면 응당 무서운 용사일 것이다”라고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사마귀에게 경의를 표하고 수레를 돌려 지나갔다고 한다.

원래 사마귀의 용맹을 칭찬하는 뜻으로 쓰여야 마땅하지만 춘추시대 말기 위(衛)나라의 거백옥(蘧伯玉)은 “사마귀가 앞발을 들어 수레바퀴에 맞서는 것은 자신이 바퀴에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라며 “자기 분수도 모르고 무모하게 덤비는 만용”이라고 해석하면서 훗날 ‘당랑거철’의 성어로 전해졌다.

최근 김관영 전북지사가 전주시를 앞세워 '2036년 하계 올림픽' 유치를 공식 선언하고 서울시와 경쟁을 벌이는 모습이 이와 유사하다는 우려의 지적들이 나온다. 이미 1988년 올림픽을 치른 서울시가 올림픽 재유치를 위해 총력을 퍼붓는 가운데 유치 경쟁에 뛰어든 김관영호의 전북자치도를 가리켜 ‘이란격석’ 또는 당랑거철’에 비유하며 조롱하는 말들이 세간에 나도는 양태가 예사로 봐 넘길 일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올림픽의 개최 경험과 유산을 바탕으로 신축 없이 기존 경기장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서울시는 일부 부족한 시설의 경우 타 시·도 소재 경기장을 활용해 경제적이면서도 지속가능한 대회를 구현한다는 비전을 내세우며 유치전에 올인하고 나서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서울시 “다른 올림픽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최저 비용” 자신…대대적 홍보

서울시가 최근 밝힌 '2036년 서울올림픽' 유치를 위한 전국 경기장(위) 및 서울시내 경기장(아래) 현황.(자료=서울시 제공)
서울시가 최근 밝힌 '2036년 서울올림픽' 유치를 위한 전국 경기장(위) 및 서울시내 경기장(아래) 현황.(자료=서울시 제공)

서울시는 최근 실시한 사전타당성 조사에서도 1988년 올림픽 때 지은 시설을 활용하고 부산, 인천 등에 일부 경기를 분산하면 총비용은 5조 833억원으로 최근 4차례 올림픽이 12조~18조원 사이였던 것에 비해 압도적으로 경제적인 올림픽이 될 수 있다고 자랑하며 대대적인 홍보전을 펼치고 있다.

이에 많은 서울 언론들은 ‘2036 서울올림픽 개최 총비용으로 도출된 5조 833억원은 2000년 이후 열린 다른 올림픽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최저 비용’을 장점으로 내세우며 2016 리우(18조 2,000억원), 2020 도쿄(14조 8,000억원), 2024 파리(12조 3,000억원) 등 최근 10년 전·후로 열린 올림픽 모두 개최 비용이 10조원을 넘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서울시 유치에 힘을 잔뜩 실어주고 있다.

이에 비해 서울시와 나란히 올림픽 유치 경쟁에 나선 전북자치도는 준비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지난 7월 전북연구원의 전북도의회 업무보고에서 올림픽 얘기가 나오자 ‘밀실 추진’ 논란이 불거져 시작부터 혼란과 불신을 가중시켰다. 짧은 준비 기간에 치밀함마저 부족한 악조건을 과연 극복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자 전북도의회는 행정사무감사에서 올림픽 유치 계획과 관련해 도와 의회 간 소통 부족과 행정 절차 등의 문제점을 질타해 공론화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김관영 지사는 "지난해부터 서울과 공동 개최를 추진했으나 결렬된 후 단독 개최로 전환해 긴박하게 준비해왔다"며 "공개 시점을 고민하다 논란을 피하기 위해 우선 대규모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른 뒤 논의하려고 했다"고 실토했지만 설명회의 비공개 진행과 세부 내용 부족은 또 다른 논란을 낳았다.

김관영 지사 “1% 가능성만 있어도 도전해야?”

20일 전북특별자치도 공연장에서 열린 '12월 소통의 날' 행사에서 김관영 지사가 직원들을 대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사진=전북자치도 제공)
20일 전북특별자치도 공연장에서 열린 '12월 소통의 날' 행사에서 김관영 지사가 직원들을 대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사진=전북자치도 제공)

급기야 전북도의회는 입장문을 내고 "전북자치도는 도의회와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동반자"라며 "하계 올림픽 유치를 둘러싼 소통 부재의 아쉬움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더 긴밀한 소통과 협력을 하고 국내 도시 선정시까지 만전을 기해 달라"고 촉구해 도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그럼에도 전북자치도는 올림픽 대회 시설의 적합성 간이 조사가 예정보다 두 달 지연됐고 연구용역 과정에서 협업 부족과 인수인계 미흡이 문제점으로 제기됐다. 그러자 김 지사는 뒤늦은 지난달 7일에서야 ‘2036년 하계 올림픽 유치를 공식 선언한다’고 밝히기까지 우여곡절과 해프닝이 많았다.

김 지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구촌 대축제인 2036년 하계 올림픽 유치 도전을 공식 선언한다"며 "저비용 고효율의 올림픽을 만들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한계를 뛰어넘어 도전하고 꿈이 이뤄지도록 전진하기 위해 어제보다 더 뛰어나고, 번영이라는 위대한 꿈에 다가설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지만 상대는 김 지사 말 대로 공동 유치를 추진하다 결렬됐던 서울시란 점에서 ‘계란으로 바위 치기 경쟁’이란 지적이 당장 나왔다.

이를 의식한 듯 김 지사는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우리는 도전해야 하며, 1%를 10%, 20%, 50%로 가능성을 늘려가는 작업이 필요하고, 이 작업에 직원들의 열정과 노력이 가미되고, 도민들의 하나된 결집된 힘이 더해지면 1% 가능성이 90% 이상이 될 것이다"고 에둘러 강조했지만 많은 도민들은 당장 1년 전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 실패의 악몽을 소환하며 기대보다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아직도 새만금잼버리 실패 악몽의 후유증과 후폭풍이 가시지 않은 마당에 1%의 가능성을 들며 올림픽에 유치하겠다는 도백의 강력한 의지 앞에서 도민들은 '배포가 크면 재앙도 깊을 수 있다'는 기심화심(機深禍深)을 떠올리며 내심 불안해 하는 눈치가 역력해 보인다.

‘새만금잼버리 실패 악몽 소환’ 도민들...“희망고문 이제 그만”

김관영 전북지사가 11월 7일 도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36회 2036 하계 올림픽' 전북 유치를 선언했다.(사진=전북자치도 제공)
김관영 전북지사가 11월 7일 도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36회 2036 하계 올림픽' 전북 유치를 선언했다.(사진=전북자치도 제공)

어렵게 새만금잼버리대회를 유치하고 6년이란 긴 준비기간이 있었음에도 참담한 실패로 막을 내린 아픈 추억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는 반응과 함께 더 이상 희망고문을 받고 싶지 않다는 푸념이 팽배하다. 더구나 국내 주요 언론들은 최근 서울시와 전북자치도의 경쟁을 두고 '가성비'대 '균형발전 논리'로 전개해 나가는가 하면 서울시의 올림픽 유치 경험을 부각시키며 이미 판세는 기울었다는 듯이 보도하는 기사들이 부쩍 눈에 띈다.

서울시가 올림픽 유치의 필수 요소인 경제적 타당성과 재유치 찬성 여론을 모두 확보했다며 개최지들이 올림픽 개최 이후 막대한 빚에 시달리는 이른바 ‘올림픽의 저주’ 부담을 피해갈 수 있다고 분위기를 띄우는데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는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기존 경기장을 적극 활용해 최근 올림픽 대비 절반도 안되는 비용으로 올림픽을 유치해 지속가능한 ‘경제올림픽’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2036 서울올림픽' 개최를 위한 총비용 추산금액 5조 833억원은 최근 하계올림픽 개최 비용과 비교할 때 절반도 안되는 수준이란 점을 강조하는 서울시의 유치 전략 중에는 서울 뿐만 아니라 전국의 스포츠 시설을 활용한다는 방안을 일찌감치 세워뒀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경기, 인천, 부산, 강원 등 다른 지자체의 주요 시설물을 공동 활용하는 협의를 마쳤고 특히 해양스포츠 등 서울에 없는 경기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서울시 계획에 따르면 축구, 골프, 요트, 서핑, 사격, 조정, 카누·카약 등 10개가 넘는 종목이 서울이 아닌 다른 지자체에서 개최된다. 축구는 2002년 한·일월드컵 때처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 뿐만 아니라 인천, 수원에 위치한 월드컵경기장도 활용된다. 골프는 인천에 위치한 잭니클라우스GC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하키는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을 위해 개장한 선학하키경기장을 개보수해 국제공인을 획득한다는 계획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요트 경기를 위해 만들어진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은 2026년까지 민간투자사업 방식 재개발을 통해 2036년 올림픽에도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비해 전북자치도는 올림픽 유치를 통해 지역 균형발전과 친환경 미래를 동시에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지만 구체성이 모호할 뿐 아니라 세부 전략에서도 서울시와 비교되지 않는다.

“세상에는 늘 속이는 자와 속는 자가 존재한다”…“더 이상 속지 않는다”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가 열린 부지 전경.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가 열린 부지 전경.

이번 유치는 단순한 스포츠 행사가 아닌 지역과 국가 발전의 핵심 동력으로 삼겠다는 전략과 함께 전북자치도는 유치 활동을 위한 전담 TF팀을 구성하고 국내외 유치 활동을 본격화하고 나섰으나 경기장과 선수들의 수용 시설 등 인프라가 미흡하다는 지적을 당장 받는다.

이에 대한 고육지책으로 전북자치도는 필요한 경우 임시 건축물을 도입해 비용을 절감하며 37개 경기장 중 22개는 기존 시설을, 나머지는 탄소 저감형 임시 시설로 계획해 IOC의 '저비용·고효율' 가이드라인에 부합할 계획이라고 한다. 또 충청권, 호남권, 경상권 등과 협력해 전국적 균형발전 모델을 제시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여전히 재원과 전략의 디테일에서 서울시에 비해 역부족이란 평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전북자치도는 '2036 하계 올림픽이 가져올 경제적 유발효과'를 42조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중 관광업, 숙박업, 외식업 등 서비스업 매출 증대와 일자리 창출이 주요 성과로 예상하고 있다. 김관영 지사도 "2036년 올림픽 유치는 전북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세계화로 가는 길목이 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지만 ‘떡 줄 사람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비아냥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란격석’과 ‘당랑거철’ 같은 성어의 처지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기우이길 바라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 두 사람의 정치적 계산과 호기로 실패와 재앙의 기틀을 밟으면 돌이킬 수 없다는 교훈을 전북은 이미 수차례 뼈저리게 경험했다. 미국의 과학철학자 리 매킨타이어(Lee McIntyre)는 그의 저서 ‘포스트 트루스’(Post-truth)에서 “세상에는 늘 속이는 자와 속는 자가 존재한다”고 주장했지만 전북도민들은 이구동성으로 "더 이상 속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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