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길 위에서'

”보령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면 어떤 사람은 대천 해수욕장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머드 축제를 말한다. 그런데 나에게 물으면 이문구 선생의 고향 관촌마을이 떠오른다. 지금은 치즈축제로 사람들에게 각인된 임실읍 금성마을에서 청소년 시절 몇 년을 살았다. 그때는 임실군 관촌면 금성리였다.
관촌, 그래서 그런지 보령의 관촌마을을 찾아갈 때마다 제 2의 고향 관촌의 옛집 풍경이 물안개가 피어오르듯 아릿하게 피어오른다. 보령시 신흑동에 있는 대천항은 서해안의 중요한 어업 전진기지로 인근 섬들인 원산도, 삽시도, 효자도, 등을 왕래하는 선박이 출항하는 항구다. 낚시객과 관광객을 위한 쾌속선도 운항하고 있으며 대천항 어판장 이외 인근에는 수산시장, 횟집촌이 형성되어 있는데, 몇 년 전에 원산도로 연결하는 해저터널이 생겨서 더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대천읍 강당마을과 대천읍 내항동 내송마을에서 대천천 2교를 건너며 바라본 대천천 상류에 소설가 이문구의 고향인 관촌마을이 있다. 이문구는 나날이 변모하는 모습을 연작 소설인 《관촌수필》 ‘보령시 대관동 갈머리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남겼다.
세월은 지난 것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새로 이룬 것을 보여줄 뿐이다. 나는 날로 새로 이루어진 것을 볼 때마다 내가 그만큼 낡아졌음을 터득하고, 때로는 서글퍼지기도 했으나 무엇이 얼마만큼 변했는가를 알아내는 것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관촌부락을 방문할 때마다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사라져 간 것이 그뿐만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정, 친구와 친구 사이의 우정도 세월의 흐름 속에 자꾸만 사라져 가는데, 이문구는 마음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몇 사람이 자신의 곁에는 있다는 글을 <공산토월>에 남겼다.
“더러 예외가 없을 수 있겠지만, 나는 누구보다도 아무 타산 없이 자기 천성으로 나를 아껴 준 사람을 좋아한다. 애초 이렇다 할 인연도 없었고, 재산 권세 이해득실 따위를 개떡으로 알면서 그냥 그저 그렇게 명목 없이 좋아할 수 있던 사람,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런 사람을 많이 알고 있었다.”

그래, 살아가면서 이해타산 없이 서로 아껴주는 사람이 절실히 필요한데, 그런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겠는가? 그 사람만 생각하면 문득 달려가서 보고 싶고, 목소리 듣고 싶은 그런 사람, 관촌마을 쪽을 한없이 바라보며 느낀 생각이었다.
/글·사진=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문화사학자·문화재청 문화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