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론
한동안 잠잠하더니 최근 사이비 언론과 사이비 기자들이 극성이란 소식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사이비(似而非)란 말은 사전적 의미로 ‘겉으로는 비슷하나 본질은 완전히 다른 가짜’를 뜻한다. 좀더 깊숙이 그 뜻을 들여다보면 ‘단순한 가짜가 아니라 의도를 가지고 진짜인 척하는 가짜’란 의미를 지닌다.
원래 ‘사시이비(似是而非)’의 준말인 사이비란 말의 근원은 맹자(孟子)의 ‘진심장구하(盡心章句下)’ 편에서 기인한다. ‘공자왈오사이비자(孔子曰惡似而非者)’에서 맹자의 제자 만장이 ‘향원(鄕原)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묻자 맹자가 이르기를 "그들은 겉치레를 완전히 꾸며 고결하고 충직하여 믿을 만해 보이게 살아가나, 실제로는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말을 돌아보는 선비의 덕을 지킬 마음이 없는 자들이다"며 "그런 자들이 자신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 세상을 어지럽힐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고 말하면서 ‘가짜 선, 가짜 도덕을 자기의 이익을 위해 실천하는 자’를 가리켜 사이비자로 불렀다.
이처럼 중국 고사성어에서 유래된 사이비는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기생한다. 어떤 직함에도 따라붙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이비 기자, 사이비 검사, 사이비 의사, 사이비 국회의원, 심지어 사이비 대통령이란 말까지 나오며 유행할 정도다.
사이비 기자들이 가장 활개치는 곳은?

그런데 오랜 기간 우리나라에선 유독 사이비 기자들이 활개치고 다니는 경우가 쉽사리 목격되며 그 피해 사례가 계속 이어오고 있다. 왜 그럴까? 그럼 진짜 기자가 있고 가짜 기자가 있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자세히 보면 언론의 본령과는 거리가 먼 행위를 하는 가짜 기자들이 횡행하고 있으니 그런 말이 자주 나올 만도 하다. 진실을 파헤쳐 주민들의 알권리 충족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기자들이 대다수지만 진실과 알권리의 가면을 쓴 채 사익을 취하는데 주력하거나 부도덕한 언론사 사주 또는 특정 세력의 하수인이나 거간꾼 역할을 하는 자들이 주로 관공서와 공사현장 등에서 활개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돈과 권력이 모여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는 사이비 언론과 사이비 기자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 이후 현재까지 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들은 주로 개인보다는 단체나 협회 등을 구성해 활동하기 때문에 관공서 등에서 위력을 행세하거나 사익을 편취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인근 전남지역에서는 최근 건설공사 현장의 위법 사항을 빌미로 금품을 받아 챙긴 전형적인 사이비 기자들이 경찰에 무더기 검거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전남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이달 들어 폭력행위처벌법상 공동공갈 혐의로 9개 언론사 15명을 검거해 2명을 구속했다.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들은 지난 2020년 2월부터 올 8월까지 전국 공사 현장을 돌면서 폐기물 처리 등 위법적인 사항을 기사화할 것처럼 협박하는 수법 등으로 모두 76차례에 걸쳐 1억 8,000여만원을 갈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은 건설현장 위반 사항을 촬영해 사무실에 근무하는 공범에게 전송하고 공범은 이를 토대로 기사를 작성해 피해자에게 보냈다고 한다. 기사를 보냈는데도 현장에서 금품을 받지 못하면 하도급을 준 상급 건설회사에 연락해 기사를 내겠다고 협박하자 피해자들은 공사 진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불안한 마음에 어쩔 수 없이 금품을 제공했다고 하니 그 수법이 과감하기 이를 데 없다.
출입 등록기자 늘면서 사이비 기자, 가짜 뉴스 증가?

또 인근 대전과 세종 등지에 자격이 불분명한 이른바 사이비 언론이 난무하는 가운데 대전시의회가 이들이 생산하는 출처 불명의 가짜 뉴스에 대응하는 방안 마련에 나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특히 대안 중 하나로 다양한 미디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인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교육 활성화가 제시돼 주목을 끌었다.
대전시청과 세종시청에는 해마다 출입 등록기자가 늘어나며 최근 기준 각각 260여명, 450여명 이상으로 집계되고 있는데 문제는 기자들의 숫자가 증가하다 보니 이 중 악의적인 편집·보도, 온라인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취재하지 않고 보도한 기사, 언론 보도의 형식을 띠고 마치 사실인 것처럼 유포되는 가짜 뉴스 등을 쏟아내는 언론사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타 언론사 수습기자나 저 연차 기자들에게 제보해 보도를 종용하거나 공동 취재를 빙자해 기관장과 공무원들을 압박하는 식의 사실상 갈취에 가까운 협박성 보도를 쏟아내는 매체까지 심심찮게 등장하자 사이비 언론과 사이비 기자 경계령을 지방의회가 나서서 내린 보기 드문 사례가 펼쳐지고 있다.
급기야 이달 들어서는 사이비 언론과 사이비 기자로부터 피해를 방지하고 개선방을 위한 토론회가 마련됐다. 이 자리에서 한 지방대 교수는 ▲취약계층 교육 강화를 통한 시민의식 고취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진단 도구 개발 및 추적 조사 ▲초·중등 교육을 넘어 평생교육 차원으로 확대 ▲전문 교육·연구기관 설립과 운영 ▲지역 기관간 협력적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고 하니 웃음이 절로 난다. 과연 그러한 교육과 조사 등으로 쉽게 해결이 가능할까? 기대보다는 의문과 회의감이 앞선다.
또 이 자리에서 한 지역 언론인은 대안으로 “명망있고 검증된 언론단체나 언론인을 중심으로 기관이나 시민사회, 학계 등과의 논의를 통해 사이비 언론과 가짜 뉴스에 대한 폐해를 진단하고 이를 바로잡을 긴급 처방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좋은 말이지만 이 역시 근본적인 처방책에는 미치지 못한다. 대한민국 사회에 수십년 동안 굳건하게 뿌리를 내려온 사이비 언론과 사이비 기자의 고질적 병폐의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하면 근시안적인 단기 처방만으로 해결하기 힘들다.
군청 돌며 광고비 요구 기자 단체, 알고 보니…

그러자 마침 전북지역에서도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사이비 언론 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뉴스가 큼지막하게 전해졌다. ‘전북특별자치도 기자협회’라는 곳으로부터 홍보비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는 한 방송 보도가 지난 11일부터 이어지더니 경찰 내사가 이뤄진다는 소식과 함께 해당 협회가 자진 해체하기로 했다는 속보가 나오기까지 불과 2~3일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찜찜한 구석은 여전히 곳곳에 남아있다.
해당 기자 단체는 얼마 전까지 광주·전남에서도 비슷한 수법을 써오다 전북으로 옮겨온 것 외에 단체의 사무실 번호는 불통이지만 도내 각 자치단체를 돌며 광고비를 요구하거나 긱종 행사에도 관여했던 것으로 드러나 여진과 충격이 가시지 않고 있다. 이들은 무리를 지어 주로 군청의 홍보실과 군수실을 찾아 자신들을 '전북특별자치도 기자협회' 소속 기자라고 소개한 뒤 일차적으로 광고비를 요구했다고 한다.
그런데 취재 결과 해당 단체 사무실이 있다는 곳은 단독주택이고, 협회 번호라는 곳으로 전화를 걸어 보면 ‘없는 번호’라는 안내만 나온다는 점에서 유명무실한 단체임에도 부당한 요구가 일부에선 통용됐다는 점에서 우려가 깊지 않을 수 없다.
단체에 속한 기자들은 지자체를 돌며 광고비를 요구한 것 외에 지자체와 기획사에 지역 축제장에서 특별 대우와 특정 가수의 섭외를 요구하고 이 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일제히 비판 기사를 써서 내보냈다고 하니 전형적인 사이비 언론 행위를 보여준 셈이다. 이들 단체나 개인도 문제지만 언론에 지나치게 저자세인 도내 지자체들도 문제란 점에서 사이비 언론과 사이비 기자가 기생할 수 있는 '약점'을 스스로 제공한 데 대해 냉철한 반성과 성찰,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사이비 언론 행위 기승 부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이비 언론 행위가 주로 주민 혈세를 집행하는 지자체를 중심으로 기승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언론에 지나치게 저자세인 도내 지자체들의 약점을 이용한 사이비 언론 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쉽게 근절되지 못하는 행태는 그동안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생공존 관계를 유지해 온 지자체와 지역 언론들과의 부적절한 관행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해 보인 대목으로 보아야 한다.
앞서 전북시·군공무원노동조합협의회(공무원노조)는 지난 4월 전주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판 기사를 빌미로 공무원들을 괴롭힌 지역의 한 매체 소속 언론인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지켜볼 것"이라며 "우리는 공직사회를 갉아먹는 사이비 언론인의 퇴출과 엄정한 사법적 제재를 요구해 왔다"고 목소리를 높여 주목을 끌기도 했다.
당시 공무원노조는 "해당 기자가 법의 처벌을 받더라도 또다시 언론계로 복귀하려 한다면 이를 막을 수 없는 현실"이라며 "언론계가 제 식구 감싸기로 일관하지 말고 항상 경계하고 자정 기능을 유지해 이와 유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 달라"고 주문했다. 해당 기자는 군청에 대한 비판 기사를 게재하겠다고 공무원을 협박해 모두 22차례에 걸쳐 2,600만원의 광고비를 지급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이처럼 사이비 언론과 사이비 기자가 지자체를 중심으로 기승하고 있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을 들 수 있다. 전북자치도를 비롯해 각 시·군은 한해 수십억원의 혈세를 언론 상대 홍보 또는 광고비로 펑펑 쓰면서도 투명한 절차도, 세부적인 지급기준도 없이 쌈짓돈처럼 사용하고 있는 데서 일차적인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방만하고 무분별한 예산을 너도 나도 내돈처럼 여기며 눈독을 들이고 심지어 협박을 일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북자치도부터 홍보·광고 예산 절반 삭감한다면?

또 다른 요인은 지자체들이 저지른 비위를 감추고 일부 공직자들의 악행으로부터 주민들의 눈과 귀를 멀리하게 하거나 단체장의 치적을 부풀려 포장하기 위해 언론을 홍보의 전위대로 활용하려는 오랜 관행에서 기인한다. 그러기 위해선 혈세를 들여 입막음을 하거나 내편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약점을 스스로 제공하는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이 늘 상존한다.
그렇지 않고 투명하고 공정한 행정을 펼친다면 언론과 공생공존 관계를 유지하지 않아도, 막대한 예산을 들여가며 과장되게 부풀려 홍보하지 않아도 된다. 차제에 이러한 피해와 폐단을 방지하기 위한 대안으로 사이비 기자들이 기승을 부리는 지자체들일수록 홍보비와 광고비를 대폭 삭감하면 어떨까?
이를 위해 우선 전북특별자치도부터 내년도 언론 상대 홍보 예산을 절반으로 과감히 줄일 것을 제안하다. 그러면 다른 시·군들도 따라서 하게 될 것이고 관련 예산이 줄어들게 되면 홍보비나 광고비에 눈독을 들이는 사이비 언론사나 사이비 기자들도 줄게 될 것이다. 물론 홍보·광고비 집행을 둘러싼 공무원들의 부담과 부작용도 훨씬 덜할 것이다. 김관영 지사의 통 큰 결단을 기대해 본다.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