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론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옛 성어가 있다. 중국 <곽무천>에 수록되어 있는 작자 미상의 군자행(君子行)이라는 악부(樂府)에 수록된 말이다. 군자가 행하여야 할 도리로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이란 말에서 유래됐다. ‘오이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의미다. 남의 의심을 살 만한 일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남들에게 조금도 의심을 받을 수 있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는 옛 선비들의 청렴한 마음 가짐을 알 수 있는 격언이다.

오늘날 심심하면 불거지는 각종 부조리와 갑질 행위 등으로 얼룩진 공직사회에 경종을 울려주는 성어다. 여전히 이 성어가 공직사회에서 강조되는 이유는 공무원은 누구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공복(公僕)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침 지난 2022년부터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이 시행 중이다. 이 법은 공직자의 직무수행과 관련한 사적 이익 추구를 금지함으로써 공직자의 직무수행 중 발생할 수 있는 이해충돌을 방지하여 공정한 직무 수행을 보장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행정 '월권' 하면서 민간업체 개발에 힘 실어주는 저의는?

전주시청 전경.(사진=전주시 제공)
전주시청 전경.(사진=전주시 제공)

이해충돌방지법이 오이밭에 들어가 짚신을 다시 신지 말고, 오얏나무 밑에서 갓을 다시 고쳐 쓰지 말라는 옛 성현들의 말을 실현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아닌가 생각들 정도로 청렴을 무척 강조한다. 그런데 최근 전주시가 도심 마지막 노른자위 땅으로 불리는 옛 대한방직 부지를 2000년대 초반 서부신시가지 개발사업 초기 단계부터 제척해 ‘먹튀‘ 논란을 일으킨데 이어 뒤늦은 개발 과정에서 ’용도 변경 특혜 논란‘과 '짜맞추기 감정평가' 등의 시비 속에 휘말려 여러 의심과 오해를 받고 있으니 오이밭과 오얏나무를 저절로 떠올린다.

특히 민선 8기 우범기 시장 체제에 들어서면서 해당 도심 부지 민간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개발을 위한 마지막 남은 행정 절차가 일사천리로 진행 중이어서 의구심을 살 만하다. 더욱이 민간개발업체이자 토지주인 ㈜자광의 자금 사정에 적색 신호가 드리워 시공도 못하고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은 데도 전북자치도 행정 업무를 월권하면서까지 개발에 힘을 실어주는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마침 오현숙 전북특별자치도의원(정의당·비례)이 전주시 도시계획변경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잘 짚어주었다. 오 의원은 "전주시의 명백한 월권 행위에도 전북특별자치도는 전주시의 거수기 역할만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서 주목을 끌었다. 기실 40명의 도의원 중 37명이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인 반면 고작 3명의 도의원이 소수당 소속이이서 비록 목소리는 크지 않지만 이들이 제기한 의제가 오히려 뜨거운 관심을 모으는 경우가 다반사다. 

오 의원은 11월 5일 예정된 전북특별자치도 도시계획위원회 재심의 전후 배경과 과정 등을 문제 삼았다. 당초 전북자치도는 지난 9월 26일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전주시에서 제출한 도시계획 일부 변경안건을 심의하기 위해 도시계획위원회를 개최하고 관련 사안에 대해 의결했지만 말썽이 나고 말았다. 회의 당일 마지막 안건이었던 '2035년 전주시 도시계획 일부 변경안'의 경우 회의가 지연되며 위원회 위원들이 퇴장한 때문이다. 이로 인해 최종 의결 과정에는 위원회 전체 위원 30명 중 과반이 되지 않는 14명의 위원만 심의·의결해 의사정족수가 미달됐다.

회의 운영상 중대 하자 발생했음에도 '무시'...결국 '사달' 

전주시 효자동 일원 옛 대한방직 전주공장 부지 전경.
전주시 효자동 일원 옛 대한방직 전주공장 부지 전경.

공장용지를 상업용지 또는 주거용지로 전환할 경우 인근 토지 소유주들과 달리 특혜는 물론 개발 시 천문학적인 이익을 안겨 주는 도시계획 변경안을 심의하는 회의 운영상 중대한 하자가 발생했음에도 이를 무시해 사달이 난 것이다. 전주시가 요구한 도시계획 일부 변경안을 얼렁뚱땅 통과시키려 하자 오현숙 도의원은 변호사 자문결과를 제시하며 "지방법원과 대법원 판례에 따라 일부 위원의 이탈로 의사정족수에 미치지 못한 상태에서 의결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강력히 주장하자 전북자치도는 재심의를 하겠다며 어물쩍 넘어갔으나 찜찜한 구석이 여전히 남아 있다.  

지난 지방선거 과정을 복기해 보면 외 이토록 전북자치도와 전주시가 옛 대한방직 부지 개발에 집착하며 속도를 내려는지 알 수 있다. 김관영 도지사는 후보시절 해당 공장부지 개발에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우범기 전주시장도 취임 후 한 달 반 만에 해당 부지 소유주이자 개발업체인 ㈜자광 대표를 집무실에 초대할 만큼 중점을 둔 사업이란 점에서 의심의 눈초리가 끊이질 않고 있다. 그러더니 도시계획 변경안 재심의를 하기도 전에 또 다른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개발 시행사인 ㈜자광이 '기한이익상실'(EOD, event of default, 대출금 조기 회수)이 발생해 2개월 안에 다른 시공사를 구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기한이익상실 발생으로 인해 앞으로 2개월 안에  ㈜자광은 수천억원의 자금을 회수 당하지 않으려면 롯데건설 외에 다른 시공사를 구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매우 중대한 문제에 봉착했다. 이처럼 민간기업인 ㈜자광의 개발 가능성이 불확실해진 상황에도 부지 용도변경 행정절차의 진행은 특혜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도의회에서 제기된 게 그나마 다행이다.

밀어붙이기식 개발 이후 불미스런 사태에 대한 책임 누가 지나?

전북특별자치도 전경.(사진=전북자치도 제공)
전북특별자치도 전경.(사진=전북자치도 제공)

김 지사와 우 시장은 전국 어느 곳에도 진행 사례가 없는 행정 절차로 전북자치도는 주어진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전주시는 월권을 하며 옛 대한방직 부지 개발을 밀어붙이기식으로 진행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걸 보면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불미스런 사태에 대한 책임은 두 수장이 분명히 져야 할 것이다. 

설상가상, 이런 와중에 또 다른 의심을 살 만한 일이 불거졌다. 옛 대한방직 부지에 수조원대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자광이 전주시에 시립미술관을 지어주겠다고 하필 이 시점에 제안한 것이어서 싸늘한 시선을 받고 있다. 누가 봐도 시기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자광이 전주시에 시립미술관 기부채납 의향서를 제출한 내용을 보면 전주종합경기장 옛 야구장 부지에 총사업비 491억원을 투입해 지하 1층~지상 3층, 연면적 1만 2470㎡ 규모로 시립미술관을 지어주겠다는 것인데, 시는 각종 인허가 등 후속 절차에 속도를 내 내년 하반기 공사에 들어가 2026년 말 준공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전북자치도 도시계획위원회의 ‘2035년 전주시 도시기본계획 일부 변경안’ 재심의를 불과 1주일 앞두고 전격 발표한 속셈이 뻔히 드러나 보인다는 지적이다. 진정성에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아무리 두 단체장이 선거 기간에 공약으로 개발 약속을 했다고 하지만 경영 등 제반 여건이 녹록지 않은 상황임에도 밀어붙이기식으로 개발을 강행한다면 뒤에 몰려올 거대한 부작용과 후폭풍을 누가 감당할 것인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형국이다.

가뜩이나 전주시는 도시관리계획의 변경에 따른 구체적인 개발계획 등에 관한 사항에 대해 이미 전북자치도 권한인 도시기본계획까지 운영함으로써 월권을 하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옛 대한방직 부지에 대한 용도변경의 경우 인근 지역 교통영향평가가 중요한 요소인 만큼 도시계획위원회 위원 중에서 전주시 교통영향평가심의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한 인물이 해당 안건을 심의·의결한 사안과 관련해 해당 위원의 제척·회피 의무에 대해 법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는 지적까지 받고 있어서 총체적 부실 논란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청렴하고 공정한 일 처리 보장할 수 있어야 행정 이해하고 시행사 신뢰할 것 

옛 대한방직 전주공장 부지 개발 조감도.(자광 제공)
옛 대한방직 전주공장 부지 개발 조감도.(자광 제공)

너무 상식적인 수준이지만 오해 받을 만한 일 처리로 문제와 논란을 키우고 있는 건 바로 전주시와 전북자치도 두 행정기관이다. 더구나 이미 대주단과 많은 언론을 통해 민간개발업체에 대한 부실 징후가 잇따라 예고된 바 있다. 다른 시기도 아니고 전북자치도와 전주시의 중요 행정 절차가 마무리되는 단계에서 토지주이자 시행사인 ㈜자광에 프로젝트파이낸싱(PDF)으로 수천억원을 대출해 준 대주단이 돈을 갚으라고 요구한 ‘기한이익상실’ 조치가 취해진 건 대충 넘길 일이 아니다. 설령 얼렁뚱땅 위기를 모면한다 해도 그 이후 닥칠 위기가 더 위험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북자치도는 도시계획위원회를 다시 열어 어정쩡하게 재심의를 통해 도시계획 일부 변경안을 승인해 준다면 누가 신뢰할 것인가. 공직자가 아무리 청렴하게 업무를 수행한다고 하더라도 신뢰를 얻지 못하거나 본인 또는 가족, 주변의 이해와 관계된 일이라면 그것을 바라보는 시민들은 혹시나 사적 이익을 위한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하고 의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전에 그런 오해를 방지할 수 있게 사적 이해관계자에 대해 신고하고 회피 신청하도록 법적으로 규제하고 있는 것 아닌가. 

결국 행정에 대한 불신을 잠재우고 공직자의 청렴하고 공정한 일 처리를 보장할 수 있어야 무수한 논란이 쌓인 옛 대한방직 부지 개발에 대해서 시민들은 행정을 믿고 이해하며 시행사를 신뢰할 것이다. 어물쩍 넘길 일이 아니다. 모든 공직자는 오이밭에 있는지, 혹시 오얏나무 아래에 서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 보라는 옛 성현들의 가르침이 예나 지금이나 통용되기는 마찬가지다. 전북자치도지사와 전주시장은 물론 관계 공무원들은 이제부터라도 한치의 오해나 의심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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