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론

‘체력은 국력이다.’

과거 1960년대 이후 박정희에 이은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의 통치가 수십 년간 이어지면서 '체력은 곧 국력'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며 스포츠를 독재정치의 도구로 삼았다. 특히 1980년대 전두환 군사정권은 독재정치로 인한 암울하고 어두운 사회문제를 감추려 '3S 정책'의 일환으로 스포츠를 줄곧 정치에 활용했다. 당시 전두환 군사정권은 스포츠(Sports), 영화(Screen), 섹스(Sex)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3S 정책'을 통해 교묘한 통치 수단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멀게 하거나 현혹시키기도 했다.

‘88서울올림픽’과 ‘2002 한·일월드컵’은 당시 국내의 정치적 과오를 덮기 위한 기회로 이용됐다. 정치와 스포츠의 묘한 함수관계는 그 후로도 계속 이어졌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유치한 것도 경제적인 위기를 맞은 국민들의 사기를 높이며 경기 부활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속성이 잘 드러났다. 어둡고 암울했던 시절의 ‘체력은 국력’이란 표어가 사라진 지 오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스포츠 팬덤 문화까지 널리 확산돼 과거 강요에 의한 인위적 참여와 관심보다는 자발적인 참여와 관심도가 더 높아졌다.

정권 바뀔 때마다 다른 형태로 반복되는 체육계 헤게모니 싸움, 왜?

대한체육회 홈페이지 초기화면.(갈무리)
대한체육회 홈페이지 초기화면.(갈무리)

이런 틈을 노린 스포츠와 정치의 불온한 함수관계는 늘 유지되고 있다. 정치인들이 스프츠 관련 단체에 눈독을 들이며 정치 세력을 확장시키려는 데 혈안인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 때문에 체육계 내부의 부당한 인사와 비위 행위들이 심심치 않게 드러나고 있다. 2024 파리올림픽이 끝난 후 금메달을 딴 안세영 선수가 '대한배드민턴협회의 지원이 부족했다'고 폭로한 것을 계기로 올 국정감사에서 대한배드민턴협회장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려졌지만 내부 폭로나 고발이 없었더라면 언감생심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이를 계기로 체육계 내부의 기득권 다툼은 정부(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 간 반목과 갈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지난 4월 총선과 파리올림픽을 치르며 잠시 휴전에 들어가는 듯했으나 배드민턴 금메달리스트인 안 선수가 대한배드민턴협회의 운영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재점화 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대한체육회장은 대한배드민턴협회를 두둔하고 문화체육관광부는 협회의 횡령·배임 의혹에 대해 고강도 조사를 실시한다며 으름장을 놓아 힘을 과시하는 양태다. 

그러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다른 형태로 반복되는 정부와 대한체육회의 헤게모니 싸움을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은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이 뿐만 아니다. 대한축구협회가 축구대표팀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내부 규정을 여러 차례 어긴 사실이 감사에서 드러났다며 팽팽한 신경전을 펼치는 행태는 과하다 못해 황당하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몇몇 선수들의 기적에 의존하는 '천수답식' 스포츠 경영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란 지적도 나오지만 정치와 스포츠의 결합에서 불거진 파열음이 더 문제로 보인다. 이 때문에 국내 스포츠 내부 시스템의 문제는 무능한 정치인들에 의해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체육계 수장이 되기를 원하는 정치인들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체계를 흔들고 엘리트 종목을 고사시키는 등의 행위를 일삼는 게 다반사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스포츠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휘둘려 질식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체육계 내부에서조차 고조되고 있지만 허공에 맴돌 뿐이다. 중앙 정부와 대한체육회 그리고 관련 단체들뿐만 아니라 지역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각종 체육단체 수장 자리를 놓고 벌이는 각축전은 기성 정치판을 능가한다. 전북지역의 체육계도 예외는 아니다. 지역 체육계의 볼썽사나운 민낯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다.

전국체전 '하위' 전북체육회, 규정조차 모른 배드민턴협회...돈만 쏟아 붓고 '실격패'

KBS전주총국 10월 23일 뉴스 화면.(영상 갈무리)
KBS전주총국 10월 23일 뉴스 화면.(영상 갈무리)

올해 전주시가 배드민턴 팀의 창단을 준비하면서 나온 감독 선임 논란에 이어 전북배드민턴협회의 행정 난맥상은 가히 가관이다. 최근 경남 김해에서 열린 제105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일부 배드민턴 전북 선수들이 실격패를 당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뒤늦게 알려지면서 도민들의 충격과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전국체전에 전북을 대표해 출전한 배드민턴 남자 일반부 선수들이 경기 한번 뛰지 못하고 실격패를 당하는 수모를 겪은 것이라니 그럴 만도 하다.

선수를 새로 영입하면서 연고지 규정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전북배드민턴협회의 실수 때문이었다고 하지만 대회 기간에 협회 임원들의 외유성 출장 의혹까지 나와 더욱 황당하고 어이없게 한다. 더욱이 도내에 실업팀이 없어 국군체육부대 소속 선수 7명을 전북 선수로 영입하고 출전 수당 등 명목으로 1,000만원이 넘는 비용까지 사용했는데 7명 중 4명의 주소지가 전북이 아니어서 대회 규정상 전북 선수로 뛸 수 없었던 것이라고 하니 전북체육회와 관련 협회가 얼마나 안이하게 준비하고 대응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남자 선수들이 혼합복식 경기에도 나갈 수 없어 여자 선수들까지 기권패를 당했다는 소식은 더욱 혀를 내두르게 한다. 선수 영입 당시 전북배드민턴협회 전무였던 전주의 한 실업팀 감독이 주도한 일이라고 하는데 더 가관인 것은 전북배드민턴협회 수뇌부들의 행태가 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전국체전 기간 동안 선수단 응원을 뒤로한 채 태국으로 외유성 출장을 다녀왔다고 하니 더는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전국배드민턴협회 회장과 각 시‧군 협회장, 임원 등 총 18명이 지난 10월 6일부터 10일까지 3박 5일 일정으로 태국에 다녀왔다는 것인데 이번 전국체전에서 배드민턴 종목은 개막 전 사전 경기로 10월 6일부터 12일까지 진행됐다. 명목상 배드민턴을 통한 국제교류였지만 전체 3박 5일 일정 가운데 태국 관계자들과 경기를 하고 환담을 나눈 건 고작 3시간으로 나머지는 모두 태국 관광이라는 언론 보도가 전해지면서 더욱 공분을 자아내고 있다.

전북배드민턴협회장은 출장 일정이 5개월 전에 잡혔고 대한체육회가 갑자기 체전 일정을 바꿨다고 해명했지만 국제교류로 보기 어렵다는 반응에 무게가 실린다. 차기 전북배드민턴협회장 선거가 오는 12월부터 내년 1월까지 진행될 예정이기 때문에 곳곳에서 협회장이 사전 선거운동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여기에 전북배드민턴협회는 최근 3년 동안 매년 전북자치도로부터 1억원 가량의 예산을 지원 받고 있다. 이번 출장에 자부담을 포함해 1,200만원에 가까운 예산이 쓰였다고 하니 과연 누굴 위한 협회인지 알 수 없다.

그러고도 전북특별자치도체육회는 이번 전국체전에서 ”전북 선수단이 종합 14위로 잘 마무리했다“고 자평했다. 전국체전에 출전하기 전에는 보도자료 등을 통해 ”전북 체육의 명예를 드높인다“고 자신만만하더니 꼴찌나 다름없는 성적을 3년 연속 거두었다. 목불인견(目不忍見)이 따로 없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자신만만하더니 3년 연속 '꼴찌'나 다름없는 초라한 성적...누구도 책임지지 않아 

전북특별자치도체육회 입구.(자료사진)
전북특별자치도체육회 입구.(자료사진)

이번 전국체전에서 전북의 성적은 17개 시·도 가운데 14위로 세종과 제주, 울산에만 앞섰을 뿐 인구가 비슷한 강원 7위, 충북 9위에도 크게 뒤져 사실상 최하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선과 민선을 포함해 어느새 37대째 이어온 전북체육회는 민선시대를 맞아서도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전북체육의 실력 저하와 협회의 부실·방만한 운영, 내부 갈등이 문제점으로 드러나곤 한다.

게다가 선거철만 되면 관권선거 개입 의혹의 싸늘한 시선까지 받는다. 돌이켜보면 지난 민선 1기 3년 동안 전북체육회는 바람 잘 날 없이 내홍과 잡음으로 얼룩져 왔다. 부실·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돼 따가운 눈총을 받아왔지만 개선은 요원하기만 하다. 전북자치도로부터 한해 200여억원의 보조금을 받아 운영되는 전북체육회가 민선 2기에 들어서도 부실·방만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자율성이 커진 반면 회계관리와 수익금 운영 등에 문제점을 잇따라 드러내는 등 관리 감독까지 부실하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됐다.

앞서 지난 2022년 열린 제103회 전국체전에서 전북은 전국 17개 시·도 중 14위를 차지해 바닥권을 맴돌더니 지난해에도 13위를 기록해 전국 17개 시·도 중 시를 제외한 도 중에서는 사실상 꼴찌나 다름없는 성적을 연속 거두었다. 그러더니 올해도 14위에서 맴돌아 사실상 전북체육은 꼴찌나 다름없는 지역으로 내몰렸다. 선거에 의한 민선 체육회장 체제로 전환된 이후 전북체육회의 위상이 계속 실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법도 하다.

오히려 민선 체육회 이전인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전북은 시·도별 집계 결과 대체로 3위에서 5위권에 위치했었다. 그런데 근래 들어 성적이 급전직하(急轉直下)해 10위권 밖으로 밀려나더니 2022년 14위, 2023년 13위의 결과가 말해주듯이 10위권 진입은 더 이상 넘볼 수 없는 장벽이 되고 말았다. 학생체육의 몰락과 실업팀의 퇴조, 우수 선수의 타 시·도 유출 등을 성적 하락의 원인이라고 변명하지만 협회 내부의 강도 높은 인적 쇄신과 훈련 시스템 개혁 등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됐다. 하지만 듣는 척도 하지 않는 분위가다.

염불엔 뜻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

전북특별자치도체육회는 10월 22일 제10차 이사회를 열고 주요 안건을 심의·의결했다.(사진=전북체육회 제공)
전북특별자치도체육회는 10월 22일 제10차 이사회를 열고 주요 안건을 심의·의결했다.(사진=전북체육회 제공)

막대한 혈세를 퍼주는 전북자치도 역시 수수방관하며 오히려 체육회 눈치 보기에 급급한 모양새다. 막강한 조직력을 갖춘 체육회야 말로 다른 어떤 세력이나 기관보다 선거철에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일까. 지자체장과 정치인들은 체육회 내부 비리 등의 문제점을 들춰내기 보다는 자리에 눈독을 들이며 오히려 관리하는 대상의 최상위 순위에 포함시키는 형국이 지속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체육회장이 민간으로 이양된 이후 오히려 성적이 계속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도민들 사이에는 “선거철만 되면 늘 잘 하겠다'고 공언해 놓고 전국체전에 막상 나가면 성적이 초라하기만 하니 도무지 자존심 상하고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는 푸념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 막대한 혈세를 지원하는 전북자치도는 감독과 관리를 보다 철저히 하고 전북체육회는 뼈를 깎는 성찰과 분골쇄신(粉骨碎身)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비등한 이유다. 가뜩이나 전북자치도 등 행정의 지원 의존도가 민선시대 이후에도 여전히 높고 구태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게다가 전북체육회 등 지역 체육계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은 지난해 도민들에게 깊은 상처만 남기고 22년 만에 연고지였던 전주시와 동행을 끝낸 프로농구단 KCC의 부산 이전 때와 최근 전주시민축구단 단장의 갑작스런 사망 이후 누적된 내부 비리들이 드러면서 팀 해체 위기에 직면한 최악의 상황에서도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채 무기력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전북 체육계가 '염불엔 뜻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다'는 따가운 비판이 쉼 없이 나오는 까닭이다.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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