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상의 전북 문화 이야기(59)

지난 대선 전부터 가장 유명해진 동네 이름이 '대장동'이다. 착하게 사는 국민들을 분노케한 희대의 초권력층 부패종합선물 꾸러미가 이른바 '대장동 한탕 사건'이다. 사회 정의의 마지막 보루라고 믿었던 대법관, 검찰총장, 검사장 출신 법조인, 정치꾼, 언론인 등 최고 학벌 권력 자들이 국민을 배신하고, 끼리끼리 작당하여 소위 50억 클럽을 짜고 제멋대로 해먹었다.

없는 자들에게 공적으로 가야할 몫을, 가장 많이 가진자들이 몰래 싸그리 먹어치웠다는 약육강식 끝판이다. 쩐신을 믿는 돈종교가 모든 종교를 이겨먹었다는 나라에서, 극도로 타락한 우리 정치사회의 압축판을 보여준 졸부천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고창에도 대장동이 있다?

전국에 수십 개의 대장동이 있다고 하는데, 하필 성남시 대장동만 노른자위였을까? 그러고 보니 우리 고창에도 대장동은 있다. 대산면 대장리 장자산 기슭에 대장동이 있다. 장자산은 전시에는 대장군이 되고 평시에는 재상이 될 큰 인물이 날 출장입상형(出將入相形) 장군명당이 있다고 해서 장자산이다. 조선시대에는 이 지역이 무장현 장자산면에 속했고, 고지도에도 나타나는 것을 보면 전략적으로 중요시한 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장자산은 102미터의 그리 높지않은 산이지만, 사방이 확 트여서 일망무제의 조망이 좋은 전망터이다. 장자산이 감제고지로서 옛적부터 비범한 터임을 직감한 필자가 지표조사한 끝에 고인돌시대 장자산 천제단을 발견한 곳이다. 애초 풍수물형의 장군봉에 걸맞게 장군이 쓰는 투구봉, 깃발을 꼽을 천기봉, 장검등, 활모양 청도봉으로 둘러싸인 살기좋은 길지임을 보면, 장군장자 대장이었을 터이다. 어느 때인가 주역을 익힌 유학자가 주역의 좋은 괘인 뇌천대장(雷天大壯)괘를 따서, 크고 씩씩하다는 대장동(大壯洞)으로 쓴 것으로 보인다.

전국민이 다아는 성남시 대장동은 조선시대 인조임금 태실이 있었던 명당이다. 태실에서 유래한 태봉산, 태장산(胎藏山)이 있어서, 태장리, 태장으로 불리다가 다시 대장(大庄)으로 변했다. 대장동 택지개발사업에서 돈냄새를 맡은 돈신문사 법조전문 기자는 주역의 대장괘를 떠올리고 크게 한탕 해먹을곳이라고 쾌재를 불렀던 것일까? 왕창 해먹을 생각이 급하다보니 대장괘의 교훈인 " 바르게 해야 이롭다. 예가 아니면 하지말라(大壯 利貞, 非禮弗履)"는 하늘의 뜻을 배반한 것이리라. 대장동 싹쓸이사건 뉴스를 볼 때마다 국민들은 천화동인이니 화천대유니 하는 요상한 회사이름을 낯설어 했다. 고작 5천만원 자본금으로 순이익 1천5백억원을 다먹는 놀음판, 단군이래 최대 돈잔치판 음모를 짜낸 회사이름을 모두다 주역의 좋다는 괘명을 따다가 지었다. 천화동인, 화천대유, 지산겸, 휘겸 등이 분노하고 절망한 국민들께 주역공부를 시킨 괘이름 회사명이다.

몰래 끼리끼리에서, 열린 대동사회로 가라는 '천화동인'

이 기막힌 큰 판을 설계한 기자가 대학에서 동양철학과를 나왔으니 주역겉핥기를 한 것이다. 얄팍한 주역공부 덕분에 주역에서 형통한다는 괘명을 따서 간판으로 내걸고 대박을 노렸다. 사람살이의 지혜를 가르치는 동양최고 고전 주역은 분명하게, 하늘의 뜻을 따라야만 허물이 없고 길하다고 했는데도, 돈종교에 심취한 그들은 탐욕에 눈이 멀어 하늘을 보지 않고 돈만 본 것이다. "하늘 그물망은 성긴 것 같지만 결코 빠트리지 않는다"는 노자 도덕경 말씀처럼, 하늘에 지은 죄는 씻을 길이 없다. 한국 최고 학벌, 최고 권력자들끼리 패거리 클럽을 짰는데, 누가 우릴 감히 치겠는가 하고 마음놓고 해먹었다. 하늘과 역사는 누구도 감싸지 않고, 하늘의 법도와 춘추의 필법으로 재판하고 기록할 뿐이다.

대박전문회사 천화동인 덕분에 학창시절에 배운 한국문학 동인시대, 동인(同人)지 이름이 떠오른다. 본래 주역의 천화동인 괘는 "어울림의 정신을 나타내며, 서로 어울려 지내면서도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는 화이부동"의 교훈이다.(김기현, 주역) 문학의 동행길에서 뜻이 맞는 문인들끼리 화이부동으로 사귀면서 집필활동을 함께 하고 같이 책을 낸 것이 동인지다. 이 동인의 어원이 바로 주역의 천화동인괘다. 1919년 <창조>를 시작으로 20년에 <폐허>, 22년에 발간된 <백조> 등 동인지가 이어져서, 그 시절을 동인 문학시대라고도 부른다. 9인회, 시인부락, 청록파 시인 등도 동인지 이름이었고, 그시절 한국문인들은 거의가 동인지에 작품을 발표했다. 무수한 동인문학회와 동인지가 한국문학사를 주도했고, 오늘날까지에도 활발하다. 예술의식과 마음으로 어울리고 소통하던 문학인의 산실인 동인의 착한 이미지를, 대장동 한탕파들이 갑자기 천하의 악명으로 만든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을 낳은 한승원 작가의 문학스승인 김동리는 서정주, 김달수 등과 시인부락 동인이었다. 한강의 석사논문 주제였던 이상 시인은 정지용, 이효석, 유치진 등이 활약한 9인회 동인으로 활동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의 문학유전자 속에는, 한국문학선배들이 식민지 광야에서, 문학동인들과 어깨동무하며 축적해 온 한국문학의 정수가 응결되었을 것이다. 식민지, 내란, 군사독재의 폭압을 이겨내고 한국의 정신문화를 지켜온 무명의 한강, 무수한 한강처럼, 한국문학이 보여준 착한 동인활동을 돕고자, 국운상승기 한류의 때를 만나 하늘이 한강에게 선물을 주신 것이리라.

본디 주역의 동인괘는 들판처럼 공개적으로, 하늘과 소통할 공공심을 가지고, 사람을 모으고 함께해야 형통하다는 뜻이다. 나랏일 하려는 자들이 들판이 아닌 밀실에서 남모르게, 널리 좋은 인재를 쓰지 않고 가족끼리, 동창끼리, 선거브로커끼리, 당파끼리만 해먹을 생각으로 패거리를 짜고, 광기의 팬덤으로 여론을 조작하여 공직을 훔칠 음모를 꾸민다면, 어찌 하늘이 그냥 두겠는가?

스스로 돕는 이를 돕는 하늘, '화천대유'

화천대유 괘는 크게 소유한다는 말뜻처럼 크게 형통한다는 괘다. 태양이 하늘에서 만물을 비추는 형상을 본받아, 군자는 악을 제거하고 선을 앙양하여 아름다운 천명을 따라야 좋다.(遏惡揚善 順天休命, 김기현, 주역). 오직 권선징악하며 살라는 하늘의 명을 따라야만 크게 형통한 괘다. 나라 덕분에 모든 것을 누린 대장동 일당들은, 탐욕이 지나쳐서 덜가진 자, 못가진 자와 공공의 몫까지 배터지도록 훔쳐 먹었다가 탈이 난 것이다. 인문학의 나라 조선 선비의 지조를 지키게한 6자비결, 퇴계가 수행법으로 강조한 경구가 "하늘의 뜻을 보존하고 사람의 욕심을 막으라는 존천리 알인욕(存天理 遏人慾)"이었다. 사람이 하늘 뜻을 받들고 사리사욕을 억제하기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착하게 농사짓는 농민들도 잘 지은 벼농사 끝무렵에 가끔 욕심내다가 낭패를 보곤 한다. 수확량을 늘리려고 마지막에 주는 이삭거름을 과욕으로 너무 많이 준 곳은 어김없이 쓰러진다. 하늘의 도가 그렇다. 하물며 가진자 누린자, 공직자가, 끼리끼리만 크게 해먹는 화천대유를 꿈꾼다고 해서야 천벌을 어찌 면하겠는가? <주역 계사전>은 화천대유의 하늘이 도와주는 내용설명에서 "하늘은 순수한 사람을 돕고, 사람들은 진실한 사람을 돕는다. 그가 진실하고 순수한 가치를 추구하고 지혜를 숭상하므로 하늘이 알아서 돕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지성이면 감천이다는 가르침이다.

천화동인과 화천대유 자회사로 유명세는 좀 떨어지지만 지산겸과 휘겸이란 회사도 있다. 주역의 지산겸괘와 겸괘의 효사에서 따온 휘겸이다. 세상을 바꾸려면 착한사람을 많이 길러야 한다는 신념에서 벼슬과 서울을 버리고 낙향하여, 도산서당에서 도덕적 인재양성에 힘쓰신 퇴계선생이 가장 좋아한 괘가 지산겸괘라 한다. 서울 북촌의 한옥 문화공간 휘겸재도 주역 지산겸괘의 휘겸을 따온 당호다. 높은 산이 몸을 낮추어 땅속에 있는 모양을 보고, 군자는 "가진자의 것을 덜어서 없는자에게 보태주라"는 교훈인데, 회사 간판은 지산겸으로 걸고 도리어 없는자 몫까지 착취했으니 동티가 난 것이다.

사서삼경중 하나인 주역은 우주변화의 원리를 밝힌 동양의 고전이다. 상경의 30괘로써 천지운행원리를 설명한 뒤에, 사람살이, 인사의 지혜를 밝힌 하경 첫번째가 모두 함咸, 다 함자의 택산함괘(澤山咸)로 시작한다. 사람살이는 소년소녀의 교제처럼 서로 잘 소통하며, 함께 더불어 공생하고 동고동락해야 한다는 뜻이다. 호남가의 첫 구절이 함평천지인 것도 동양 정치철학의 근본정신인 "모두 함께 태평성대를 누리자"는 함괘의 상징인 것이다. 인심은 함열인데의 함열도 다 함께 기뻐해야 좋은 세상이란 지명이다. 여민동락, 무릇 국민과 더불어 동고동락해야 바른 정치다. 내로남불 패거리 정치는 하늘이 외면할 행태다.

한강의 열풍을 타고, 인문한국·문화대국으로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한강의 시대가 마침내 온다. 한글로 쓴 한국인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온다. 그것도 불행한 현대사의 그늘을 조명하는 작품을 썼다는 누명을 쓰고, 야만의 권력에 의해 핍박받은 여성 작가가 온다. 식민지배와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이룩한 한국의 경제성장을 "한강의 기적"이라 부른다. 물질적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판을 바꾼 변혁을 스스로 해낸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준 역사다.

이제 다시 노벨문학상 수상을 분수령 삼아, 문화국가 인문한국을 깃발로, 문화대국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갈 때가 온다. "한강의 인문학 쓰나미"가 대장동 사건 같은 불의의 경제와 구조적 폭력정치, 철지난 이념논쟁, 광란의 팬덤정치를 싹 쓸어버리고, 정신문화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모두 함께 동인하고 대유하는 홍익인간 나라를 열 때가 온다. 수상 1주일 사이에 그녀의 책 백만부가 팔렸다. 불황에 허덕이던 출판업계, 문학계, 인문학 전반에도 한강의 열풍이 불어 온다.

박세리 우승이 신호탄이 되어 한국 소녀들이 앞다투어 진출하여, 꿈의 미국 프로골프판을 한국 선수들의 앞마당 놀이터로 바꾸었다. 지구촌 문화판에 이제 한강이 떼지어 온다. 겨레의 청년들에게 문학과 인생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과 꿈을 주는 한강이 온다.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 아시아 최초 여성 수상이 한국의 문예부흥시대를 열어갈 엄청난 동력이 될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퇴계가 꿈꾼 착한 사람이 활개치는 좋은 정치판의 선진국, 백범이 소원하던 문화대국 대한민국의 새 날을 열 상서로운 기운이 온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이유가 "역사적 상흔에 대항하고 인간의 삶의 취약성을 드러낸 강력한 시적 산문"이라고 평가했다. 그녀는 불의한 정권에 의해 불순한 작가명단에도 올라가 해외문학계 진출에도 불이익을 받아왔다. 그의 작품은 경기도교육청의 금서목록에도 올랐었다. 지금 이 시대에 국내에서 벌어지는 치졸한 이념논쟁, 패거리정치, 끼리끼리 다해먹기가 지구촌의 상식으로 보면 비웃음거리라는 것이다. 역사의 그늘에 가려진 없는자 못배운자 소외된 자와 함께 걸어온 그녀의 발길이 문학의 마땅한 지향점임을 시사하는 노벨문학상이 한국여성에게 온다.

한강의 열풍이 '초권력층 부패 꾸러미'와 '쩐종교', '돈 숭배' 풍조도 날려버려라! 주역의 경구하나가, 백석의 시 한수가 50억보다 가치있다는 소년소녀들이 손잡고 나오면 참 좋겠다. 부끄러움과 분수를 아는 착한 사람이 많아지는 상식이 통하는 나라, 기본을 회복한 문화강국 대한민국 시대, 문예중흥시대가 열리기를 간절히 빈다. 한강의 시대에 대한민국 국운이 온다. 

/사진·글=유기상(문학박사·전 고창 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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