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론
“회사를 갉아먹는 쥐새끼들을 소탕하러 왔다.”
두 달 전쯤 종영된 한 방송사 드라마 ‘감사합니다’ 중 흥미를 끈 주인공의 명대사다. 무척 인상적이었던 이 드라마의 장면과 대사들이 국정감사 시즌인 요즘에 문득문득 떠오른다. 횡령과 반칙, 특혜 등 각종 비리로 얼룩진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건설회사 감사팀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어느 회사나 조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소재로 한 드라마여서 많은 인기를 누렸던 것 같다.
특히 주인공은 ‘회사를 갉아먹는 쥐새끼를 잡고 나면 다른 회사의 쥐새끼를 잡으러 간다’는 믿음직스러운 감사팀장이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이성파 감사팀장과 감성파 감사팀원들의 멋진 감사 활동을 그린 드라마여서 흥미진진했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어지러운 시국에 자주 기억의 언저리를 맴도는 이유는 뭘까?
‘감사합니다’ 드라마 속 주인공, 간절히 떠오르는 이유는?

요즘 검찰 수사와 감사원 또는 감사당국의 감사가 정치적 외압에 휘둘리며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농락당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마다 ‘감사합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을 더욱 간절하게 떠올리는 것은 아마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가 온통 무수한 ‘김건희 여사 의혹’들을 놓고 분노와 분열, 갈등과 반목, 좌절과 실망에 휩싸여 있음에도 공정하고 정의롭게 시시비비를 가려주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검찰조차 ‘황제 조사’ 논란에 이어 4년 6개월 만에 내놓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 ‘무혐의 처분’, 게다가 김 여사를 불기소 처분하면서 4시간 동안 진행된 ‘거짓 브리핑’ 논란이 국민적 공분을 더욱 자극시키는 모양새다. 오죽하면 “나라 꼴이 가관이어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고 어이가 없다”는 푸념과 "용산을 둘러싼 여러 가지 증상이 감염병보다 더 심각하고 무섭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검찰은 ‘도이치모터스 사건으로 김 여사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됐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가 불과 하루 만에 ‘도이치모터스 사건은 영장을 청구한 적이 없다’고 해당 지검장이 국감장에서 번복해 더 이상 검찰을 신뢰할 수 없다는 비난이 고조된 형국이다.
이런 어지러운 시국에 우리 지역에 이전해 한동안 ‘진원지를 알 수 없는 냄새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국민연금공단이 국민들의 노후 자금인 기금 규모가 1,000조원을 넘어섰다고 자랑하지만 여전히 골 깊은 낙하산 인사 논란과 갑질, 도덕적 해이 등으로 악재의 늪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국민연금공단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낙하산 인사가 임명돼 내부 통제 시스템이 무너졌다는 비판이 올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고된 바다. 18일 개최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류지영 국민연금공단 상임감사에게 "낙하산입니까"라고 갑자기 물어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국감서 제기된 국민연금공단 상임감사 낙하산 논란과 지사장 갑질 ‘솜방망이 처벌’...주목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공공기관 직원 채용에 인맥 특혜를 주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지만 공공기관 곳곳에 140명이 특혜 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후여서 더욱 시선을 끌었다. 이날 서 의원은 “류 감사가 국민연금공단에서 이뤄진 채용 특혜”라고 주장했다.
류 감사는 그동안 김건희 여사의 모교인 숙명여대 총동문회 회장 출신이란 점에서 초기부터 낙하산 인사란 의심을 받아왔다. 더구나 윤 대통령 인수위 자문위원과 유보통합(영유아교육·보육통합)추진위원회 등에서 활동한 후 2023년 11월에 공단 상임감사로 임명 받아 더욱 합리적인 의심을 배가시켰다.
그런데 이날 국감장에서 서 의원이 대통령 부부와의 안면 여부를 묻자 류 감사는 "선거 기간에 대통령과 만난 적은 있지만 김 여사와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없다"고 답했으나 따가운 시선을 피하지 못했다. 무려 1,000조원대의 국민 노후연금을 운영하는 국민연금공단 감사직을 맡기에는 전문성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민연금공단 감사 임명 이후 공단 감사실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계속 나왔다. 지난 6월 국민연금공단에서 1급 지사장의 갑질이 도마 위에 올랐다. 해당 지사장은 직원에게 욕설을 퍼붓고 인사 협박을 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징계는 정직 3개월에 그쳤다. 이때 공단은 '정직 3개월의 엄중 처분'이라고 밝혔지만 이날 국감에서 서 의원은 "징계가 아닌 휴가를 준 것 같다"며 "다른 공공기관이나 기업이었다면 파면감"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해당 지사장은 바로 국민연금공단 본부가 위치한 전북지역의 1급 지사장이란 점에서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공단 인근 편의점 앞에서 음주 중 여성 부하 직원에게 수차례 욕설을 하면서 “너는 영원히 승진 못 하게 한다”, “기금본부에 발 못 붙이게 하겠다”고 인사 협박까지 했는가 하면 “결혼을 늦게 해서 오랫동안 애가 생기지 않았다”는 등 부적절한 발언도 서슴지 않아 파장이 컸지만 이 내용이 국회의원실과 언론에 의해 알려지기까지 내부 감사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예산 담당 부서에서 일하던 해당 여직원이 욕설과 협박 등을 당한 이유는 예산 지원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란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이러한 갑질 피해 민원이 외부에 고발되고 언론에 보도되기까지 내부 감사 기능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국감장에서 도마 위에 올려져 혼쭐이 났지만 국민연금공단의 상임감사 낙하산 및 비전문가 인사 논란은 줄곧 있어왔다.
상임감사 ‘부적격·낙하산’ 논란…"공적 기능에 비해 내부 시스템 취약"

2020년 국민연금공단 직원들의 대마초 흡입 등 마약 사고로 시끄러웠던 당시에도 국민연금공단 감사 기능과 역할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당시에도 상임감사가 전직 언론인 출신이라는 점에서 낙하산 또는 비적임자란 논란이 제기됐다. 국민들의 노후 자금을 관리하는 막대한 공적 기능 수행에 비해 감사 기능이 너무 취약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이처럼 심심치 않게 제기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상임감사 외에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인사의 정치적 입김 개입과 낙하산 논란은 더욱 심각하다는 점에서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근래 상황만을 복기해 보더라도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부실 대응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그해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임명되자 야당과 노동계, 시민단체 등은 ‘낙하산 인사’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이어 2017년 임명된 김성주 전 이사장은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전주지역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정치인이어서 낙하산과 부적격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김 이사장은 문재인 전 대통령 대선 캠프와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전문위원 등을 맡아 복지 관련 공약과 정책 전반을 손질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야당과 노동계로부터 ‘낙하산’이란 오명을 받았다. 그러더니 김 이사장은 2020년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8개월 임기를 남겨두고 퇴임해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자리의 장기 공석이 이어졌다.
문형표·김성주·김용진·김태연 전·현 이사장 “낙하산” 지적…공통 분모
이어 2020년 8월 임명된 김용진 이사장은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이천지역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인물로 역시 낙하산 논란을 피하지 못했다. 그는 전 기획재정부 제2차관을 지내기도 했지만 그의 이사장 임명 당시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연금행동)은 "부적합한 낙하산 인사"라고 비판했다. 연금행동은 "국민연금과 관련한 활동과 경험이 전무한 기재부 관료 출신이 이사장으로 선임된 것은 명백히 부적절한 낙하산 인사"라며 "오랜 기간 숙고하고 검증한 결과가 고작 이 정도인가"라고 비난했지만 그 때 뿐이었다.
그런 뒤 정부가 다시 바뀌고 2022년 현 김태현 이사장이 임명됐지만 출근 첫 날 노조 반발에 취임식도 하지 못했다. 김 이사장 역시 낙하산 논란에 직면했다. 국민연금노조는 “윤석열 정부는 연금개혁 논의가 어느때보다 중요한 이 시기에 기획재정부 출신 보건복지부 차관의 제청으로 ‘모피아’ 출신 김태현 예보공사 사장의 이사장 임명을 강행했다”며 “서울 요지 예보공사 사장 재직 10개월 만에 경력상 아무 연결 고리도 없는, 전주에 위치한 반토막 연봉의 연금공단 이사장 자리로의 이례적 낙하산 임명이 국민 피해와 제도 신뢰 훼손으로 이어질까 크게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정치적 입김, 내부 통제·감사 체계 ‘허술’…지속가능한 국민연금 미래 가능할까?

이처럼 국민의 막대한 노후 자금을 운영하며 국가의 백년대계인 연금개혁을 눈 앞에 두고 있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과 감사 자리가 정치적 입김에 의한 낙하산 인사 논란에 휘말리며 국민연금의 지속가능한 미래가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에 늘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더욱이 조직 내부에서 심각한 범죄 행위인 직장내 갑질과 인사 협박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심심치 않게 전해지고 있다. 심지어 4년 전 일이긴 하지만 직원들의 대마초 흡입 등 마약 사고까지 발생했다. 그런데 내부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국민들의 노후 자금을 관리하는 막대한 공적 기능 수행에 비해 감사 기능이 너무 취약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정도로 내부 통제, 감사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외부 지적과 내부 제보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최근 국감에서 국민연금기금운영본부 퇴직자 상당수가 로펌, 회계법인, 금융회사, 공공기관으로 취업함으로써 이해충돌 논란까지 제기됐다. 국민연금의 내부 정보가 퇴직자에게 유출될 경우 공정하고 투명한 책임투자와 주주권 행사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도를 넘은 도덕적 해이와 부당한 인사, 갑질, 투명성 훼손 등의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데도 이를 바로잡지 못하고 방관하거나 솜방망이 처분을 내리는 국민연금공단이야 말로 ‘감사합니다’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회사를 갉아먹는 쥐새끼들을 소탕하러 온 감사팀장’과 같은 전문가가 절실히 필요한 게 아닐까?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