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의 역사칼럼
이번에 노벨 문학상 수상작이 발표되기 전부터 비(非) 영어권 여성 작가가 뽑힐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여성 작가가 선정되리라고 짐작한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 때문에 수상 소식이 알려지자 놀란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번에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의 영예를 안게 된 점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저는 다음의 세 가지 생각을 잠깐 하였습니다. 첫째, 구조적인 측면입니다. 요즘 노벨 문학상이 여성 작가에게 많이 돌아간다는 점이지요. 좋은 일인데요, 특히 유럽어권이 아닌 다른 나라의 여성 작가가 선호되는 듯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한국의 여성 작가가 안성맞춤이라고 볼 수 있지요. 일본과 중국은 이미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들이 있었습니다. 21세기 한국의 문화적 위상을 헤아려 볼 때 한 번쯤은 상을 받을 차례가 되었다고 볼 수 있지요.
현대의 역사적 문제,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본 '군계일학'의 작가
둘째, 한국 작가 중에서는 말이지요. 현대적인 미학이랄까, 문학적 감성을 가진 작가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국의 여성 작가 중에는 세계적으로 이름이 난 분들도 몇 분이 있습니다. 가령 신경숙과 같은 작가들이지요. 그분들의 소설은 많이 팔리는 편입니다. 그러나 날카롭게 따져보면 조금은 통속적이기도 하고, 문학적으로 보면 개성이 강하다고 보기는 어렵겠습니다. 그런 점을 생각할 때 한강은 다릅니다. 그는 5.18이나 4.3 사건 같이 현대사의 비극, 즉 현대의 중요한 역사적 문제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야말로 군계일학의 작가로 돋보이는 존재입니다.
셋째, 서구어로 작품을 번역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일 것입니다. 수십 년 전부터 한국의 역대 정부는 예산을 많이 쏟아부으며 한국의 현대문학을 서구 언어로 번역하는 사업에 공을 들였습니다. 그 결과, 20년쯤 전부터는 서구 여러 나라에서 한국어를 제대로 번역하는 양질의 번역작가들이 여러 명 탄생하였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세 가지 요인이 하나로 통합된 결과, 작가 한강이 이번에 큰 행운을 누리게 된 것 같아요. 한강은 현재 53세의 청년이지요. 정말 축복을 받은 것이라고 봅니다.
문학의 세계에서 '평등'이 구현되고 있는 셈
아마 앞으로 15~20년간은 한국에서 노벨 문학상이 다시 나오기가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도 노벨 문학상을 받을 기회가 여러 번 오겠지요. 호주,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베트남, 인도 등에서 활동하는 역량 있는 작가들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할 것입니다.
현재 생존하는 아시아의 작가 중에는 무라카미 하루키도 매우 유력하고, 살만 루슈디도 흠잡을 데 없는 작가일 것입니다. 그들은 훌륭한 기량을 가졌으나 아직 노벨상을 타지 못해서 많이들 아쉬워하지요.
노벨 문학상은 아무래도 지역적으로나 언어권 별로 안배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유럽어권의 작가들이 도리어 역차별을 받는다는 생각도 들 것 같습니다. 문학적 기량만 가지고 보면 유럽에는 뛰어난 작가들이 넘쳐 난다고 볼 수 있어요.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에는 서구식의 기준으로 보면 특출한 작가가 가뭄에 난 콩처럼 드문 편이라고, 서양 사람들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제 중요한 문학상은 지구적인 차원에서 안배하지 않으면 이념적으로 허용되지 못하는 때가 되었어요. 적어도 문학의 세계에서는 평등이 구현되고 있는 셈인가 봅니다.
/백승종 객원논설위원(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