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광 기자, 온몸으로 묻는다] 왕선택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대학 대우교수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지낸 임종석 실장이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두 국가론을 주장해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임 실장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사실 임 실장은 정계 은퇴하며 통일운동에 매진하겠다고 했다. 그랬던 그가 왜 두 국가론을 펼치는 걸까?
임종석 실장이 말하는 두 국가론에 대해 평가해 보고자 지난 25일 서울 경복궁역 근처에서 왕선택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대학 대우교수를 만났다. 다음은 왕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두 국가론' 발언, 진보진영 전체를 종북 좌경으로 몰아세울 것...진보진영 차원에서도 손해고, 국가와 민족에도 손해"

-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19일 ‘9·19 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 기조연설에서 ‘두 국가론’을 주장했다. 한반도에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통일 논의를 접고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며, 헌법 3조의 영토조항 개정, 국가보안법 폐지, 통일부 정리를 제안해서 논란이 되는데 어떻게 보세요?
“임종석 전 실장이 국가론을 제기한 것에 대해 논란이 많았는데, 26일 라디오 방송에 나와서 통일을 지향한다는 점은 유효하다면서 자신의 주장은 통일 포기론이 아니고 평화 공존론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다소 타이밍이 늦었지만 임 전 실장이 자신의 주장을 보완 설명한 건 아주 잘한 일이라고 봅니다.
임 전 실장 발언은 처음에는 통일을 포기한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임 전 실장 외에도 통일 포기론을 주장하는 분들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런 분들의 마음을 이해는 할 수 있어요. 남북관계가 장기간 악화돼 있는 상태고, 통일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의하기가 어려운 주장이고 정확하게 얘기하면 잘못된 주장입니다.”
- 어떤 부분이 잘못된 건가요?
“한 5가지 정도로 말씀드릴 수 있는데 본질적으로 통일 문제라는 건 우리가 하자거나 말자는 종류의 사안이 아니에요. 통일 문제는 우리나라가 분단 상황이기에 존재하는 거죠. 그런데 분단된 상황을 돌이켜보면 1945년에 미국과 소련이 일본과의 전쟁 끝내는 과정에서 두 나라 입장 고려해서 절충한 결과입니다. 문제는 한국 사람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79년 전에 벌어진 일인데 시간이 많이 흘렀죠. 그렇지만 시간이 많이 흐르고, 현실적으로 통일이 어려우면 외세에 의한 국가 분단을 수용하는 게 맞는가란 문제가 생깁니다.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나라가 외세에 의해서 갈린 건 불행한 일이고 원상복구를 하는 것이 민족적 자존심으로 봐도 맞고 국가 주권이라고 하는 차원에서 우리의 의무고 역사적 사명일 뿐입니다.
전략적으로도 잘못입니다. 남과 북이 30년 동안 두 국가로 살면 통일의 기회가 올 수도 있다고 하는데, 외부 환경을 보면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통일 포기론이 나오면 주변국이 좋아할 것입니다. 남과 북의 통일은 지정학적으로 격변해 해당하는데 이것이 주변국 처지에서 보면 유리한지 불리한지 계산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현상 유지가 편리한데, 남과 북에서 서로 통일을 포기한다고 하면 박수를 치면서 환영할 겁니다. 그리고 다시는 통일 이야기를 하지 못하도록 대못을 박으려 할 것입니다.
전술적으로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제시한 후여서 보수 진영이 임 전 실장에 대해 김정은의 두 국가론을 추종했다고 공격을 당하는 빌미를 주게 됩니다. 진보진영 전체를 종북 좌경으로 몰아세울 것입니다. 진보진영 차원에서도 손해고, 결국 국가와 민족에 손해가 됩니다. 시기적으로도 손실이 많습니다. 진보 진영 시각으로 보면 현재 대한민국의 지향점은 정권 교체가 돼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2년 반 전에 집권해서 지금까지 손가락, 발가락을 다 합쳐도 모자랄 만큼 많은 실정을 거듭하고 있고, 국민적 실망과 불쾌감은 하늘을 찌르는 형편입니다.
특히 외교·안보 정책에서 오판과 실정이 많고, 국익 손실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을 해결하려면 윤석열 대통령이 정책 기조를 바꿔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러니 정권 교체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진보진영이 단단히 결집해야 하는 것이 지금의 과제입니다. 그런데 국론 분열은 물론 진보진영의 분열도 유발하는 주장을 제기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박장대소하면서 좋아하고 정권 교체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잘못된 주장입니다. 흡수 통일을 지향하는 보수진영 처지에서 본다면 통일 포기는 한반도 북부 영토를 김씨 일가에게 헌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화와 협상을 통한 통일을 지향하는 진보진영에서도 통일은 제국주의 강대국에 의해 국권이 침탈당하고 국토가 분단되는 민족적 고난을 종결하는 신성한 임무입니다. 보수든, 진보든 어느 정치인도 통일을 포기한다는 말을 제기한다면 정치 지도자로서 위상을 유지할 수 없을 것입니다.”
- 임 실장 말은 이상만 보지 말고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냐는 것 같아요.
“현실적으로 상황이 어렵다는 평가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어도 79년 전에 국토가 외세에 의해 분단됐다고 하는 사실을 변경시키지는 않아요. 외세가 우리 국토를 갈라놓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거부하고 하나의 나라로 복원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시간이 많이 흐른다고 해서 이 구도가 바뀌지는 않습니다. 79년이 지났고 어려워졌으니까, 현실적으로 어려우니까 다른 길을 가보자고 하는 건 미국과 소련이 결정할 걸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뜻인데 용납할 수 없는 거예요.”
"분단된 1945년 상황이 아직도 유효...이것을 원상복구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과제"
- 임 전 실장은 정계 은퇴하면서 통일운동에 매진 한다고 한 거로 알거든요. 왜 갑자기 이걸 꺼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올해 1월에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적대적 두 국가론이라고 하는 화두를 제시한 것과 연관 지어서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으로 보여서 우려됩니다. 북한은 현재 김 위원장이 제시한 두 국가론에 따라 법적, 행정적으로 후속 조치를 준비 중이거든요. 그런 것들 때문에 아마도 통일을 준비하던 남쪽의 분들은 굉장히 실망스럽고 좌절스러울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직접적인 원인이 됐는지 저는 모르겠어요.
김정은 위원장은 여러모로 대내외 환경이 좌절스럽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또는 전술적으로 통일 적대적 두 국가론을 던져볼 수 있을 거예요. 저는 거기에 많은 함의가 있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우리 남쪽에서 본다면 나라가 분단된 1945년 상황이 아직도 유효하고, 이것을 원상복구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과제입니다. 통일을 하자나 말자고 말 할 권리 자체가 없는 거예요. 분단의 시간이 장기화되다보니 외세에 의해 나라가 두 동강 났던 그 처참했던 과거를 잊어버리고 지금 불편하니까 상황에 맞춰서 생각을 바꿨다고 봅니다. 그런 식으로 할 거면 뭐든지 간에 한 100년 정도 지나면 불의도 정의가 되고, 불법이 합법이 된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겁니다.”
- 북한이 얘기하는 건 적대적 두 국가론인데 정말 통일 안 하려는 건지 아니면 협상카드일까요?
“통일할 생각 있죠. 김정은 위원장은 그 말을 하면서 또 무슨 말을 했냐 하면 전쟁이 벌어지면 남한을 완전히 흡수 통합해서 하나의 국가로 만들겠다고 했어요. 북한은 오랫동안 남북통일을 중대한 국가적 과제로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을 했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고 특히 보수는 물론 진보 진영 정치인들도 북한을 흡수통합한다는 생각 자체가 똑같더라는 거예요. 저런 사람들과 대화와 협상을 해서 통일을 한다는 게 의미가 없고 단지 적대적 두 국가라는 거예요. 그런 상태에서 통일하는 방법은 무력을 통해서 한 방에 접수하는 것밖에는 없다는 거죠. 그래서 한편으로는 두 국가를 만들면서 한편으로는 무력으로 남쪽을 흡수 통합하는 방법을 계속 추진하고 있어요. 그게 핵무기고 온갖 전략무기를 만드는 이유예요.”
- 지금 상황에서 통일이 가능하다고 보세요?
“한국 사람에게 분단된 조국을 통일하는 것이 역사적 사명입니다. 통일이 가능하냐, 불가능하냐는 제3자 관찰자 시점에 대해서는 관심을 둘 필요가 없습니다. 통일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도 우리는 통일을 위한 노력을 멈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통일이 가능하냐 아니냐를 토론하지 말고, 통일에 대한 의지, 그리고 통일을 어떻게 이뤄낼 전략에 대해서 토론해야 합니다. 국가적, 민족적 의지가 있고 전략이 있고, 노력하면 통일은 반드시 됩니다.”
- 북한은 통일할 생각 없다는 거잖아요.
“현재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론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어떤 생각을 하면 그대로 이뤄진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5년 전에 생각과 10년 전에 생각, 또 지금 북한의 생각이 다릅니다. 앞으로 30년 동안 김정은 위원장이 통치하고 남한과 대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 오는 수령이 지금 정책을 그대로 승계할지 모릅니다. 100년이고 200년이고 꾸준히 추진하면 통일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앞서서 북한이 생각하기에 남한 진보층도 흡수통일 바란다는 거잖아요, 왜 그렇게 생각할까요?
“김정은 위원장이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한 거라고 봐요. 대한민국 사람 5천만 명 중 우리가 북한 방식으로 남북이 통합되는 걸 바라는 사람이 있겠어요? 저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 5천만 명 한 사람도 빠짐없이 현재 우리가 사는 방식대로 통일하기를 원한다고 봅니다. 정치적으로 민주주의고 대통령 잘못하면 과감하게 욕하고 선거 때 반대표 던지고 경제적으로 풍요롭잖아요.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많지만, 꾸준히 좋아지고 있잖아요. 문화적으로 대한민국 전 세계적으로 탑 클래스잖아요. 이런 대한민국인데 뭐 하러 북한식으로 살아요?”
- 흡수통일이라는 건 북한 붕괴를 전제로 하는 것 아닌가요?
“글쎄요. 동독과 서독이 평화적으로 통합했잖아요. 그런데 실질적으로는 동독이 서독에 흡수된 겁니다. 그렇지만 동독이 붕괴됐다고 하나요? 그렇지 않아요. 동독 주민들이 동의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대화와 협상을 통해서 조율하면 됩니다. 이건 흡수 통일이라는 개념과 맥락이 다른 거죠.”
"햇볕정책은 폐기됐지만 화해와 협력 정책, 또는 관여 정책은 유효"

- 보수층은 북한 붕괴를 전제로 하는 거지만 진보층은 그걸 전제로 하는 건 아니지 않나요?
“좀 더 정밀하게 살펴보면 보수진영이 북한의 붕괴를 바라고 있는 건 아니고 김정은 정권 붕괴를 바라겠죠. 그러므로 북한의 붕괴가 아니라 북한 기득권층의 와해를 기대하고, 그걸 흡수 통합의 주요 내용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진보진영에서 바라는 건 현재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한과의 대화와 협상 통해서 합의로 통일 하는 거죠. 그렇게 된다면 북한도 자유민주주의 질서 속에서 하나의 정치 세력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을 거라고 봐요. 김정은 위원장이 북핵 문제 해결에 적극 협조하고, 북한의 개혁개방을 적극 추진하고, 남한에 대한 무력 도발을 하지 않는다면 남과 북의 협상에 따라 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그런 시나리오로 통일이 된다면 북한이 붕괴됐다고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김정은 위원장도 검토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럼, 아직도 햇볕정책은 유효할까요?
“햇볕정책의 정신은 유효하지만, 햇볕정책이라는 표현은 폐기된 개념입니다. 햇볕정책은 적절하지 않다는 걸 김대중 대통령도 인정했어요. 김대중 대통령께서 98년에 집권하고, 햇볕정책을 한다고 대내외적으로 선포 했어요. 그런데 2000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는데, 김정일 위원장이 햇볕정책은 어떤 사람의 외투를 벗기는 것을 의미하는데, 북한의 사회주의 제도를 박탈하려는 것으로 들린다고 항의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은 온건한 접근, 평화공존의 태도를 강조한 것인데, 북에서 그렇게 불편하게 여긴다면 굳이 햇볕정책 용어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정책의 이름으로서 햇볕정책은 폐기됐지만 화해와 협력 정책, 또는 관여 정책은 유효하고, 또 유일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통일은 물론이고, 그 전 단계 평화적 공존이라는 것도 화해와 협력만이 유일한 방식입니다. 그것이 아닌 방법, 예를 들어 남한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자유를 북한에도 확장하겠다란 얘기는 곧 북한의 사회주의 제도를 박탈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북한이 수용할 수가 없죠.”
- 어쩌면 김정은 위원장이 얘기하는 거와 윤석열 대통령이 얘기하는 게 같은 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자기 방식으로 통일해야 한다는 점에서요.
“비슷한데 전후 맥락을 봐야 돼요. 지금 윤석열 대통령 정부 들어서기 이전까지 대한민국 남쪽의 모든 대통령은 남북 간에 기본 합의서 내용을 지켰어요. 그래서 상호 비방 금지, 내정 간섭 금지 등을 다 존중했어요. 다만 정책 추진 과정에서 강경함을 강조하다가 북한과 충돌한 사례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걸 명확히 했어요. 자유 민주주의를 북한에 확산하겠다는 겁니다. 이것은 남북 기본합의서 위반이에요.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 공존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고, 강경하고 단호한 태도로 흡수 통합을 꾸준히 추진하는 정책을 추진 중입니다.
2022년 3월에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 됐잖아요. 그다음부터 강경한 입장을 강조했습니다. 그걸 보고 김정은 위원장은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남쪽의 새로운 지도자가 자유주의를 북한에 확장시키겠다고 하는데 그게 사회주의 제도 박탈이고 김정일 위원장은 자기 권력의 상실인데 어떻게 대화와 협상을 하겠어요? 오히려 남쪽에서 그런 주장을 하면 북에서는 더 강한 표현이 나간다는 차원에서 적대적 두 국가론이 나온 겁니다. 맥락은 비슷해도 윤 대통령이 먼저 공세를 취하고, 김정은 위원장은 더욱 강경한 공세를 채택하는 악순환이 발생하면서 사태가 악화됐습니다.”
/이영광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