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상의 전북 문화 이야기(56)

물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다. 사람살이에는 물이 첫째 요건이고 마을이 성립하려면 샘이 필수조건이므로, 한자어 고을동(洞)은 같은 샘물을 마시는 무리란 뜻이다. 서울이 세계적인 대도시가 된 것은 큰 물이란 뜻의 한강 덕분이다. 고창 출신 이재 황윤석과 함께 순창 출신 여암 신경준은 호남 3대 실학자로 꼽히며, 영정조시대 최고의 박물학자 석학이었다. 지리학의 아버지 신경준의 업적중 탁월한 분야는, 한국전통사상에 입각한 독특한 한국의 지리체계를 완성한 것이다.
백두대간부터 정맥, 지맥의 체계로 산줄기, 물줄기 족보를 만든 <산경표>는 한국인의 전통산수관을 잘 압축한 것이다. 산경표로 볼 때 전북은 서해로 합수하는 금강, 사수강, 동진강, 인천강, 남해로 나가는 섬진강이 전북의 5대강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날조한 산맥지질도 개념에 세뇌되어 노령산맥, 차령산맥으로 잘못알던 전북인들에게 <산경표>체계에 따른 우리겨레의 산줄기 물줄기를 알리고 표지판을 제작설치한 이는 전북산사랑회와 김정길 회장이다. 그 덕분에 2001년도에 전북5대강 고창 인천강 발원지 명매기샘에도 표지판이 세워지고 관심을 끌게 되었다.

축복받은 고창 땅은, 산 들 강 바다 개펄 천혜의 자연조건 5요소를 두루 갖춘 곳이다. 가장 먹고살기 좋은 곳으로 태곳적부터 소문이나고 사람들이 몰려와서, 세계최고의 고인돌문명시대와 마한의 수도 모로비리국 시대를 열었고, 한반도첫수도 고창이란 별칭의 근원이다. 고창 인천강은 발원지 고수 명매기샘의 물방울이 모든 물을 포용하면서, 곰소만 칠산바다까지 31km를 달리는데, 발원지와 하구 바다가 모두 고창군 영역이다. 온전히 고창 물을 받아 고창 땅을 살려주고 고창 바다로 빠진다는 점은 5대 강 중 유일하다.
바로 고창은 이 인천강 물 덕분에 고인돌시대부터 독립적인 생활권 소국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1760년(영조36년)에 간행된 여지도서에도 인천(仁川)으로 나오고, 1834년 청구도, 1895년 청구요람 등에도 나오는 인천강이 1917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이후 주진천으로 왜곡되어 격하되었다. 광복후 80년이 되는 현재까지도 일제 지도를 무개념으로 답습하여 주진천으로 표기되었으니 안타깝다. 1919년 설립된 민족사학 고창고보 교사이던 심준섭이 작사한 교가에도 인내로 실려있고, 우리 아버지 세대들은 인천강, 인냇강, 인내, 어진내 등으로 불러온 강이다. 홍수 피해를 주지말고 어질게 흘러라고 어질인자를 써서 인천이라 이름지은 것이다.
만경강은 사수강으로 바로잡아야

퇴계와 하서의 문인으로 인천강변 두암초당에서 공부한 변성진의 아호가 인천이다. 혹자는 변성진의 호를 따서 인천이라 했다고도 하는데, 고향지명, 명승지를 따서 호를 붙이는 관례나 아우 변성온의 호가 병바위를 뜻하는 호암인 것을 아울러보면, 두암초당에서 공부한 초계 변씨형제가 인천강과 병바위를 아호에 담았다고 보는 게 순리다. 주진천은 강남천과 무장천이 합류하여 배나루인 주진마을 앞을 지나 쌍천에서 고창천을 합수하기 전까지의 인천강의 지류중 하나이다. 고창의 대표 물줄기는 역사적 기록이나 우리겨례의 물줄기 작명법으로 보나 인천강이 제이름이다. 이제는 제발 일제에게 빼앗긴 내 이름 인천강이라 제대로 불러주오!
일제강점기 근대교육이란 미명하에 조선의 얼을 빼기위해, 백두대간 호남정맥 체계를 노령산맥 등 산맥체계로 날조한 일제가 호남평야의 전북 사수강, 전남 사호강 두 개의 강이름을 만경강과 영산강으로 바꿔치기 해버렸다. 곡창지대 호남 쌀을 수탈하기 위해 군산, 목포를 미곡 반출항구로 개발하면서, 항구에 이어진 수로인 사수강, 사호강을 하류지명인 만경강, 영산강으로 개명해버린다. 흔히 익산은 역사상 네 번의 도읍지로, 전주는 조선왕조 발상지라 하여 풍패지향이라 부른다. 그래서 전주객사도 풍패지관이고, 사수란 강이름도 왕도의 상징이다.

한고조 유방의 고향인 풍패를 본따서 풍패지향이라 했고, 한고조 유방 고향의 강이름이자, 유학의 종주인 공자 고향의 강이름이 바로 네물머리, 사수강(泗水江)이다. 백제왕도 익산은 금마국,보덕국, 고조선의 왕도다. 후백제, 조선왕조발상지 전주의 상징 강이름, 왕도이던 익산과 전주를 흐르는 물이름은 마땅히 사수강이어야 하는 것이다. 사수강은 완주 동상 밤치재에서 발원하여, 지류인 소양천, 고산천, 익산천, 전주천 주요 네 지류가 합수하므로 지형학적으로도 네 물이 만난 사수강이 마땅하다. 한문화발상지 익산, 후백제왕도 전주의 깃발을 든 익산, 전주가 손잡고, 전북이 함께 사수강을 되살리는 일이 전북수도의 혼과 자존심을 일깨우는 시작점이다.
명매기샘 빗방울이 고수천·고창천·주진천을 안아주며 칠산바다로

조선시대 고지도에 나오는 물이름은, 고창현의 인천, 도산천, 죽천, 서교천이 있었고, 고창천을 경계로 천북면, 천남면이 나뉘었다. 흥덕현에는 게내인 해천, 오천, 장교천이 나오나, 무장현에는 물이름 기록이 없다.
명매기샘 뒷등 장문재, 들독재 산마루의 북쪽 빗방울은 장성 황룡강을 타고 목포 유달산 앞바다로 항해한다. 빗방울 하나 사이로 남쪽에 떨어진 빗방을은 명매기샘에 모여서 산짐승과 산꾼들의 감로수가 된다. 명매기샘에서 팔십리 길을 떠난 물이 신기계곡을 이루고, 시인묵객들이 노닐던 은사천이 되어 내려오다가, 상말치 구암 두평천과 합수하여 조산저수지가 된다. 조산저수지 제방옆 조산사 앞이 하말치였고, 저수지공사로 수몰된 곳에 중말치가 있었다. 신기은사골 물과 구암 두평골 물이 합수한 고수저수지부터 고창천과 합수하는 도산리 보도산 앞 합수처까지가 고수천이다.
여기서부터 주진천과 합수하는 쌍천까지는 고창천이고, 쌍천부터 선운사 앞 풍천, 도솔천 합수처까지가 인천강, 그 하류는 장수강, 장숙강, 장연강이라 불러왔고, 강 전체를 일컫는 대표명칭을 인천강이라 부르는 게 한국전통의 물이름 족보법이다. 예컨대 장수 뜬봉샘에서 금강하구까지를 금강이라 부르지만, 부여는 백마강, 무주는, 남대천, 진안은 주천, 정천, 안천이라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따라서 하류의 지명만을 수계의 통칭으로 쓴 만경강, 영산강이나, 지류명을 본류에 잘못 붙인 주진천은, 한국전통 강이름 작명법을 왜곡한 일제강점기 식민통치 찌꺼기로 어서 바로잡을 일이다.

고창천은 양고살재에서 발원한 외정천, 솔재에서 시작한 월산천, 횟기재 발원한 신수동천, 방장산 동남쪽 발원의 월곡천, 운월천이 함께 모여서 흐르다가, 노동 화산리 수계 의 노동천 합수처에서 고창천을 이룬다. 주진천은 무장쪽 강남 죽청천에서 주진마을 앞을 거쳐 고창천 합수처인 쌍천까지가 주진천이고, 고창천과 주진천이 인천강의 양대지류이다. 인천강 수계 이외의 물줄기로는 방장산 용춧골에서 발원하여 후포만으로 빠지는 갈곡천, 왕림 갈록치에서 발원하여 고부천으로 가는 왕림도림천, 고산에서 발원하여 대산을 지나 영광쪽으로 흐르는 와탄천 등이 있다.
치수가 정치·경제의 근본

올 여름은 사상 초유의 찜통더위로 여름의 판을 바꾸고, 지구위기를 실감케했다. 가뭄도 심하여 비탈면 소나무가 메말라 죽기도 하고, 늦게 온 호우는 많은 피해를 동반하기도 했다. 고대부터 물을 잘 다스리는 일이 정치의 시작이었다. 요순시절 우임금이 치수에 성공하여 태평성대를 열었다는 대우치수(大禹治水)는 잘 알려진 고사다. 고창은 연안습지로 세계자연유산인 고창갯벌, 내륙습지로 람사르습지인 운곡습지, 하천습지인 인천강 습지를 고루 갖추고 있다. 이를 생태적 삶으로 잘 보존하고 활용하는 일이 우리의 사명이다. 수질오염과 지구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갯벌, 염습지, 습지에 사는 갈대와 칠면초 등 습지생물이 탄소흡수, 수질정화, 폐기물처리의 핵심일꾼들이다. 고창군은 2018년부터
고창갯벌의 세계자연유산 등재작업과 발맞추어, 인천강하구 연안습지 보전계획을 실행했다. 2018년 10월에 국가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80여억원을 들여 인천강하구 바닷물과 민물교차구역 훼손지 복원사업을 진행중이다. 농경지로 훼손된 갯벌을 매입하여 염습지로 복원하여, 수질오염원제거 기능을 극대화하고, 내륙습지와 연안습지 조성, 주민편의시설을 갖추어 습지복원과 함께 이를 생태관광 공원화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바다를 끼고 있는 고창군의 치수대책에는 조류의 흐름을 고려하는 게 중요한 요소다. 만조시에 호우가 겹치면, 한나절 동안 하천수의 배수가 어려워 상습침수지가 생기는 점을 고려한 치수대책을 세웠다. 인천강 재해방지 하천정비에 이어서, 2019년부터 고창천 정비사업에 착수하였다. 홍수절정기 고창읍내 피해저감 재해대책으로, 공설운동장 남쪽에 월암저류지 조성, 노동저수지 하류 저류지 조성을 통하여, 대홍수 유사시에 만조시 절정기 고창천 수위를 통제하여 홍수를 예방하는 치수대책이다. 평상시에는 전국대회를 할 수 있는 대규모 파크골프장 등 체육시설로 활용할 계획을 세우고, 연차사업으로 실행중이다.
석정온천은 세계 제일의 게르마늄 온천수다. 고창 토양에는 게르마늄 같은 각종 미네랄과 청국장균 같은 유효미생물이 타지역보다 월등히 많다. 고창농수산물이 명품인 이유다. 이 황토흙이 인천강을 지나며 송홧가루 등 신비한 물질들과 융합하여 갯벌에 축적된다. 고창갯벌은 세계 제일 미네랄 함유 고창소금과 지주식김, 바지락을 키워 사람을 살리고 철새도 보듬는다. 물을 살리는 일이 농생명산업의 기본이다. 인천강을 잘 살려내고 깨끗이 물려주는 일이 고창의 가장 소중한 일이다. 인천강은 고창의 얼이고 생명수이고 미래다.
/사진·글=유기상(문학박사·전 고창 군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