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론
온라인에서 개인을 대신하는 아바타(Avatar)가 인공지능(AI) 기술이 발전하면서 2차원을 넘어 3차원 인물로 등장하는 모습이 최근 영상매체에서 자주 소개되고 있다.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아바타’ 소재 영화 속에서 구현된 인물들은 컴퓨터 그래픽에 의한 결과물이지만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마다 자신의 아바타를 한번쯤 생각하게 한다고 말할 정도로 아바타에 대한 호기심은 누구에게나 높다.
그도 그럴 것이 아바타가 등장하는 영화를 보는 순간 자신을 대신하거나 ‘분신 또는 화신’의 역할을 하는 아바타가 현실 속에 존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아바타들과 함께 산다면 그야말로 사람대신 아바타가 설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상상조차하기 힘들다. 그런데 정치권에서 아바타가 최근 자주 거론되면서 끔찍한 상상을 정치 현실과 접목시키게 한다.
“한동훈, 윤석열 아바타”, ”민주당 내 이재명 아바타들”…정치권에 자주 등장하는 ‘아바타’의 역할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 아바타’란 주장이 제기돼 갑론을박이 거세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수석 최고위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비롯된 말이지만 한 대표와 윤 대통령 모두 검사 출신에다 권력 지향적 정치 행보가 거의 흡사하다는 점에서 공감과 반감이 교차하는 모양새다. 한 대표가 윤 대통령 아바타란 주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시 박찬대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이 차라리 '검찰당'으로 이름을 바꾸라"며 "한동훈 장관(법무부)은 비대위원장이 되기 전부터 윤석열 아바타인지, 김건희 아바타인지 헷갈릴 정도로 김건희 방탄에 열심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서은숙 최고위원은 "똑같은 행동, 똑같은 생각하는 게 아바타다”라며 “윤석열 대통령과 똑같이 김건희 여사를 지키기 위해 몰두하는 그대는 아바타가 맞다"고 맞장구를 쳤다.
이에 당시 민주당을 탈당한 이상민 의원(무소속)은 그해 12월 27일 “민주당에는 이재명의 아바타들이 얼마나 많느냐”고 반격해 시선을 모았다. 그는 이날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재명과 아바타에 대해 거울을 보지는 못하고 한동훈 위원장에 대한 윤석열 아바타로 공격을 하는 건 민주당의 고질적인 내로남불, 위선적 행태라고 본다”고 꼬집었다.
이 의원은 이어 “이재명과 공범자들, 맹종 세력들만 해도 친명, 비명할 것 없이 다 넓적 엎드려서 공천 받으려고 눈치 보기 급급하지 않느냐”며 “그리고 개딸들이 어우러져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재명 사당과 개딸당,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당시 5선 의원을 지내며 오랫동안 몸담았던 민주당을 탈당하며 쓴소리를 던져 화제를 모았던 그가 국민의힘으로 옷을 갈아입고 같은 선거구인 대전 유성구을에서 지난 4월 총선에 출마했지만 낙선의 고배를 마셔 씁쓸함을 남겼다.
계보·계파정치 활개치는 지역에 자주 등장하는 ‘000 아바타’들...토호세력 결탁, 주민 위에 ‘군림’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아바타는 늘 상대방을 헐뜯거나 공격할 때 주인공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이런 아바타가 지역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특히 선거철이 되면 계보·계파정치의 틈을 타고 '000 분신' 또는 '000 화신'이란 명칭으로 화려한 정치 이력의 소유자 이름을 앞세운 아바타 정치인들이 종종 얼굴을 내밀고 있다. 총선 과정에서도 나타나지만 지방선거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특히 특정당 예비후보들이 선거철마다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지역일수록 자신이 유력 정치인 또는 대선 후보의 아바타임을 과시하며 여론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허풍을 떠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지역에서는 선거철 외에도 이러한 아바타들이 지역의 토호세력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주민뿐만 아니라 법 위에 군림하며 마치 봉건시대의 왕처럼 행세하려는 이들이 적지 않아 볼썽사납다. 지역의 토호세력은 흔히 정치 권력, 경제 권력, 시민사회 권력, 종교 권력, 언론 권력, 문화 권력, 학계 권력 등으로 나뉘어 각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는 층들이 형성하는 세력을 말한다.
이들 토호세력들은 서로 결탁하며 이권에 개입하거나 불법과 편법을 자행 또는 눈감아주며 세력을 확대하고 더욱 세를 공고히 하는 바람에 좀처럼 다른 세력으로부터 위협을 받지도, 붕괴되지도 않는다. 대를 이어 세력을 이어가는 토호세력들이야 말로 지역의 가장 적폐적 세력임에도 버젓이 활개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민선 지방자치제 출범 이후 지역 토호세력들은 방대한 조직력과 막강한 자본력을 이용해 자치단체장으로 출마해 당선되거나 지방의회로 진출해 인사와 각종 개발사업에 관여, 온갖 이권을 챙기는가 하면 혈세를 쌈짓돈처럼 사용하기 일쑤다.
자신의 치적을 알리거나 다음 선거를 위해 펑펑 예산을 사용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목격해 왔고 지금도 그런 악행은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여기에는 경제계와 학계는 물론 시민사회계와 문화계, 심지어 언론계까지 예외일 수 없다. 요소요소에 토호의 핵심 측근들이 우두머리 자리를 장악해 지역사회의 여론 형성을 주도하거나 적대 세력과 그들의 반대 목소리에 낙인을 찍으며 호도해 세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 이런 그들을 누구도 감히 무시하지 못한다. 더구나 지지 표를 생명처럼 여기는 선출직 공무원들이야 말로 토호세력들의 호구가 되기 십상이다. 이런 토호세력은 지역의 패권주의를 부추기며 오랫동안 적폐를 쌓아 온 중추세력으로 볼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심지어 시장·군수들이 '토호의 호구' 소리 듣는 이유

최근 전국 각 지역마다 거세게 부는 통합의 바람 속에 전북지역 시·군 또는 농·어촌간 통합 추진 과정에서 유독 목소리를 크게 내며 여론 형성을 주도하는 정치 권력 또는 시민사회 권력에 의해, 그리고 도심 노른자 땅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자본 권력과 언론 권력에 의해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은 물론 심지어 시장·군수들이 호구가 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잦은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문제는 이러한 토호세력들이 지역 언론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전북지역에서는 굵직한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지만 언론이 침묵하며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오히려 사안을 호도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비근한 예로 지난 7월 기록적인 폭우로 인명·재산 피해가 속출한 전북에서 국회의원과 도의원, 도의회 일부 출입기자들이 술자리 회식을 벌여 지역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관련자들을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지만 지역 언론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침묵으로 일관했다.
또 최근 전주시로부터 매년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받아온 전주시민축구단이 자금 횡령·유용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던 중 지역 일간지 기자를 겸직하던 단장이 스스로 사망해 파장이 커지고 있음에도 지역 언론들은 침묵으로 외면해 피해자들의 의구심과 공분을 더욱 키우고 있다. 이 외에도 자치단체 내에서 벌어지는 굵직한 사건에 대해 출입기자단이 '무보도'로 외면하거나 주민들 시각이 아닌 해당 자치단체(장) 입장에서 도정, 시정, 군정 등에 관한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전달하는 경우가 우리 지역에서 자주 발생하고 있음을 심히 우려스럽게 바라보는 시선들이 적지 않다.
“재정자립도 가장 낮은 전북자치도, 혈세 수십억원 '도정 홍보' 명분 삼아 각 언론사 먹여 살려?”

이에 대해 인근 광주·전남지역의 한 언론사 조차 "전국 17개 시·도 중 재정자립도가 가장 낮은 전북자치도가 도민 혈세 수십억원을 도정 홍보 차원을 명분 삼아 각 언론사를 먹여 살리고 있다는 비판의 중심에 서 있다"는 보도를 내보내 주목을 끌었다. <호남뉴스24>는 정보공개 요청 자료를 토대로 쓴 최근 연속 기획기사에서 “전북자치도의 신문사 및 인터넷 언론, 방송사 광고비 집행(2023년 전체) 내역을 분석한 결과, 신문사 및 인터넷 언론에는 총 309건에 10억 9,300여만원을 집행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중 방송사 광고비로는 8억 7,000만원으로 JTV(3억 3,000만원), MBC(1억 9,000만원), KBS(1억 4,000만원) 등 3개 방송사가 전체의 76.4%를 독차지했다”고 보도했다.
또 이 언론사는 “특정 3개 통신사의 통신료(IP 사용료)가 2023년도에만 1억 3,260만원(연합뉴스 6,240만원, 뉴시스전북 3,900만원, 뉴스1 3,120만원)으로 특정사 위주의 편파적인 집행이 이뤄졌다”고 추가로 보도했다. 그러면서 “효과성 검증·분석 자료도 없이 매년 전북기자협회에 가입한 특정 3개사에게만 편파적인 예산 집행이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보도가 다른 지역에서 나올 정도면 전북 각 자치단체들이 혈세를 언론에 얼마나 무분별하게 집행하고 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런 현상은 지역의 대표적인 토호세력들이 지역 언론사를 운영하거나 경영에 깊숙이 관여함으로써 세력 확장의 도구나 방패막이처럼 사유화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의 집요한 광고 또는 협찬 요구나 로비를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지자체들도 문제지만 지역 언론계가 지역 토호의 아바타 역할을 자처하는 형국이 더 큰 문제로 볼 수 있다. 사주들의 이익과 기득권 경쟁으로 복마전을 이루고 있는 전북지역 언론계가 정치·경제·문화·시민사회 권력이 결탁된 토호세력의 아바타 소릴 듣는 것은 자승자박(自繩自縛)에 다름 아니다.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