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상의 전북 문화 이야기(54)

인류 문명사는 소금과 철의 역사였다. 태초부터 사람살이에 못 먹으면 죽는 게 소금이고, 도구를 만드는 데 가장 쓸모있는 물질이 쇠였다. 그러기에 천하통일한 진나라가 값비싼 소금과 철을 틀어쥐고 국가재정을 채우려는 염철 전매제도를 시행한다. 서양에서도 비싼 소금을 월급으로 주었다고 해서, 월급을 뜻하는 로마자 샐러리(salary)가 소금 솔트(salt)에서 생겼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하물며 고창과 선운사는 소금으로 창건한 역사다. 고창의 역사에서 소금을 빼버리면 싱거운 역사가 아니고, 역사의 보석원석을 통째로 버리는 어리석은 짓이다.
고창을 모르는 이도 선운사는 알 만큼, 미당의 시로, 송창식의 노래로, 기돗발 좋은 치유성지로 선운사는 사랑받는 절집이다. 특이하게도 백제 위덕왕 때 세운 선운사 창건설화는 검단선사의 소금이야기다. 검단선사는 선운사를 세우면서, 인근의 도적들을 선도하여 양민으로 살게 하려고 일자리와 생업을 제공했다. 대대로 먹고 살 생업으로 소금을 만드는 신기술을 전수해준 것이다.
천일염 양대 산맥...고창 삼양 염전, 신안 비금 염전

한국의 전통적인 소금제법인 달인소금, 자염(煮鹽)만드는 방법을 전해주었고, 선운산 너머 심원 사등마을 주변에는 조선시대 기록에도, 염정, 약수정 등 자염과 소금목욕장을 일컫는 지명이 많다. 검단선사의 유래로 검단마을, 검당포 등의 지명이 전승되었고, 소금마을 사람들은 검단선사와 선운사에 감사하는 뜻으로 해마다 소금 두 가마를 선운사에 공양을 했고, 이 소금을 보은염이라 했다.
한국사 최초의 여성명창 진채선의 고향 사등마을과 선운사는 검단선사와 염부들의 아름다운 보은염 이야기를 소재로 선운문화축제와 보은염 운반과 공양 이벤트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새로운 사찰도 짓고 주민들 영구적인 생업을 마련해준 검단선사는 선운산 산신이 되어 선운사와 도솔암 내원궁 산신각에 모셔져 있다. 흔히 사찰 산신각에는 산신과 범이 모셔지는데, 특이하게도 창건주 검단선사와 의운화상을 산신으로 모신 것이다.
그만큼 백제시대 7세기 무렵 검단선사의 소금기술은 소중한 신지식이었다. 자염시대를 끝내게 한 일제강점기의 천일염은 1911년 경기도 주안염전이 시초였다. 해방 후에 천일염 양대 산맥이 1947년에 조업을 시작하고 1949년에 첫 출하한 고창 삼양 염전과 신안 비금 염전이었다. 직영에서 임대제로 바뀐 90년대 초까지 한국소금의 대명사가 삼양사 소금이었다. 전성기에는 삼양염업 근로자가 4백여명이나 되어, 월급날이면 해리시내에 활기가 넘쳤다.
영원한 불로초 빛과 소금...천하제일 미네랄 함량의 고창 소금

세계에서 가장 질 좋은 미네랄 보고인 고창 천일염이 한 때 그 가치를 모르고, 싸구려 저급 수입산에 밀려 고전했다. 금이라 불리던 소금의 굴욕이었다. 잘못된 서양의 맹목적 의학 정보로 소금이 심혈관계 질환의 범인이란 누명을 쓰기도 했다. 성경에서도 말하듯 영원히 썩지 않을 천연방부제가 빛과 소금이다. 소금이 없이는 요리를 할 수도 없다. 자연에서 보면 분명한 건 소금이 불로초라는 것이다. 소금을 많이 먹는 바다거북이나 고래류는 2~ 3백년이나 살고, 초식동물들도 소금을 먹어야 오래 산다.
소금이 만병의 근원처럼 잘못 알려진 의학교범은 서양인이 만든 서양소금 기준 이론이다. 광물질 암염이나 서양 천일염은 우리 천일염보다 짠맛은 3배에서 30배나 강하지만, 미네랄 함량은 거의 없다. 수천년 먹어 온 해산물인 소금을 식품이 아니라 광물로 분류한 것도 서양의 광산에서 캐는 암염 사례를 따라 베낀 웃기는 한국법령이었다. 소금을 광물에서 식품으로 바로잡은 이도 고창출신 정운천 농식품부장관이다. 호주산은 고창산에 비해 소금의 주요미네랄인 칼륨, 칼슘, 마그네슘 함량이 2백분의 1 수준이고, 서양의 최고급 미네랄소금이라고 최고가로 팔리는 게랑드소금도 우리의 3할 수준 함량이다.

다행히도 세브란스 병원에서 14만여명을 대상으로 10년여간 실행한 실험결과를 작년에 국제학술지에 발표하여 진실이 밝혀졌고, 그동안 살인자로 소금이 누명을 썼고 주범은 설탕으로 드러났다. 사망자를 대상으로 소금 주성분인 나트륨, 칼륨 섭취량을 기준으로 사망과 심혈관계사망에 미치는 영향을 살핀 결과, 나트륨의 섭취는 사망률과 심혈관계사망률과 관련이 없었으며, 오히려 소금에 함유된 칼륨 섭취가 많은 그룹은 총사망률은 21%, 특히 심혈관계 시망률은 32% 낮았다. 좋은 소금의 적량섭취는 건강장수에 오히려 좋다는 결론이다. 이것이 한국병원에서 한국의사들이 밝혀낸 한국 천일염의 진실이다.
세계 최대 미네랄 함유 고창소금을 사업화하기 위해 고창군과 해리농협이 손잡고, 위생적인 첨단시설에서 깨끗하고 질 좋은 소금을 먹기 좋은 다양한 신제품으로 출시하여, 전국의 하나로마트와 일반시판, 미국 등 해외 수출길에 나섰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금년 4월에는 농협중앙회가 농식품 가공공장 경영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소금 찜질과 해수탕은 치유목적으로 옛날부터 활용되었고, 조선시대 기록에도 치료목적으로 무장현의 소금목욕장을 찾은 기록이 있다. 최근까지도 동호해수욕장 모래찜질, 뒷개의 해수탕 등이 유명했고, 구시포 해수탕은 얼마전까지도 운영되다가 코로나 시절 문을 닫아 안타깝기만 하다.
고창은 한반도 도자문화의 수도답게 초기 청자부터, 조선의 백자, 최근의 고수자기까지 도자문화를 꽃피운 곳이다. 이 도자기를 초벌 구울 때 황토그릇에 천일염을 구워서 먹으면 불순물은 사라지고, 부드럽고 몸에 좋은 소금이 된다. 도공의 후예들이 도자기 가마에서 구워내는 황토 구운소금도 고창특산물이다. 사찰에서 비전된 죽염은 천일염, 황토, 대나무, 송진이 빚어내는 신비한 물질이 최근 과학적 임상실험 결과 항암항염효과, 건강 유효성분 등이 속속 밝혀지면서, 자연치유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전북무형문화재 죽염장 혜산스님 이수자 죽염장인이 만드는 삼보죽염, 가족기업인 선운산 죽염도 다양한 죽염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알래스카를 사들이던 미국의 심정으로 사들인 60여만평 소금밭

이러한 역사문화 자원으로서의 가치와 세계 최고급 미네랄 소금의 가능성을 확인한 고창군은, 2018년부터 스마트 염전과 첨단산업화, 브랜드화를 시작했다. 과학적 근거를 통한 브랜드 작업을 제대로만 하면, 고창소금은 최고급 식품이며 돈벌이 소금이 된다. 현재 2만원 대인 20킬로 1포를 게랑드소금 수준으로 팔면, 100배인 2백만원이 된다. 고창보다 주요미네랄이 3분지1 수준인 소금이 브랜드 효과만으로 우리 소금보다 백배 비싸게 팔리는 게 현실이다.
전통의 삼양사 염전이 태양광업자들의 표적이 되어 사라질 위기가 있었다. 민선 6기, 7기 들어 전국의 염전들이 태양광의 광풍에 사라진다. 가장 넓은 신안 염전, 염산 염전의 절반이 사라졌다. 고창염전에도 태양광 허가신청이 쇄도했으나, 고창의 미래가치를 위해 갯별과 염전을 보존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되어 염전을 지켜냈다. 계속해서 행정소송이 들어오고 태양광개발 시도가 이어지니, 염전을 제대로 보존하려면 고창군이 매입하는 게 최선이라는 판단이 섰다. 60여만평이라는 큰 땅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쉽게 구할 수도 없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소유자의 상속자가 급속히 늘어나므로 신속히 사지 않으면 매입이 힘들다는 판단에서 일부 기채를 해서라도 시급히 매입키로 했다.
의회에서도 난상토론 끝에 매입승인과 예산편성에 동의하여, 고창군 역사상 가장 큰 땅을 사들였다. 땅살 돈으로 선심성 사업했으면 선거에 도움이 될텐데 멍청한 군수가 정치를 모른다고 비아냥 대거나, 반대하는 의원과의 문답에서, 필자는 “미국이 알래스카를 구입한 것처럼, 엄청난 잠재가치를 고창군 미래에 안겨줄 것을 확신한다. 10년후, 50년후 이 땅의 가치를 지켜보고 누가 옳았는지 보자”고 답변했다. 군수가 뒷 돈 받고 비싸게 사주고 쓸모없는 땅 사줬다고 온갖 모함을 한 정치꾼들도 많았지만, 다수 군민은 잘한 일이라 했고 진실은 늘 역사앞에서 승리한다고 확신한다. 매입과 동시에 전문가와 주민들과 함께 거버넌스를 만들어, 친환경적 세계유산 갯벌생태체험학습, 노을 갯벌치유문화 중심의 큰 그림을 그렸었다.
천만년 소금이냐, 30년 골프장이냐?

듣자니 요즈음 군에서 염전에 골프장을 만들려고 사업자에게 30년 임대를 해준다는 소문이 나돈다. 좁은 소견으로는 사실이 아니라면 참 좋겠다. 땅은 제 고유의 성질이 있다. 세계유산인 고창갯벌은 갯벌로 활용할 때 생명이 있다. 한국 소금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은 고창의 마지막 소금밭을 없애는 일은 고창과 선운사의 역사를 송두리째 지우는 만행이다. 백번을 양보하여 골프장이 세 개씩이나 있는 고창에 또 하나의 골프장이 죽어도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비싼 돈 들여 만든 소금판을 없애지는 말고, 인근 농지를 제공하면 더 좋을 일이다. 일조량이 가장 많은 염전은 소금생산에는 최적지나 골프놀이터로는 부적합한 땅이다. 대규모 염전이 사라진 한국의 염전은 이미 희귀자원이다.
선운사 검단선사가 백제시대 최고의 신지식이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이 시대의 새로운 문화를 고창식으로 창조해야 한다. 아무래도 타지에서 검증이 이미 끝난 철 지난 테마파크나 골프장으로 버리기엔 너무나 아까운 갯벌이다. 조선말 판소리의 수도이던 높을고창은 오늘날 신재효 문학상을 재창조했다. 제1회 당선작은 판소리 소재 여류명창 허금파이야기, 제2회 신재효 문학상 당선작은 소금을 글감으로 쓴 박이선 작가의 염부다. 소금과 진채선 고향 사등마을에서 피어난 국경없는 사랑, 소금꽃처럼 변치 않는 사랑이야기다.

공음 청보리밭 어귀에 가수 진성의 보릿고개 노래비가 있다. 그의 가슴시린 한의 노래가 보릿고개와 최근의 히트작 소금꽃의 직접 쓴 가사가 된 것이다. 그를 키운 고달픈 어린시절이 에너지가 되어 한국적 정서와 한을 녹여낸 명가수 진성을 키웠다. 진성은 유소년기를 고창 고수면 은사리에서 할머니 품에서 서럽게 보냈다. 그랬기에 아버지 등짝의 소금꽃을 볼 수 있는 가슴이 생겼으리라.
소금꽃은 거짓없고 진실한 일꾼의 등에서만 피어나는 영원히 변치않는 꽃이다. 착한 염부의 고단하지만 건강한 삶은 이렇게 노래로도 피어난다. 진실한 노동의 가치를 알아주는 소금꽃 피는 높을 고창을 계속 보고 싶구나! 소금밭이 영원히 읽힐 불후의 고전이라면, 골프장은 한번 읽고 쓰레기통에 버릴 삼류 신문기사 종이 쪼가리다. 빛과 소금은 사람과 지구를 썩지 않게 지켜줄 하늘이 주신 선물이다.
/사진·글=유기상(문학박사·전 고창 군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