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론
검찰의 지독한 '기소독점주의(起訴獨占主義)'와 '검사동일체(檢事同一體)'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아침이다.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사건’ 수사와 불기소 결정의 적정성을 논의한다던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가 결국 김 여사 무혐의 의견만 듣는 반쪽짜리로 열리더니 ‘모든 혐의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검찰에 권하면서 마무리됐다. 앞서 김 여사를 무혐의로 본 서울중앙지검 수사팀과 같은 결론이다. 검사와 검찰, 수심위가 한 몸처럼 일치된 판단을 내린 결과지만 찜찜한 구석과 많은 의혹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검찰은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며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해 왔으면서도 현직 대통령 부인을 피의자 자격으로 조사하는 중대한 사안에서 대통령실이 지정한 제3의 장소로 비공개 소환한 것 자체가 특혜인데 조사에 나선 검사들이 휴대폰까지 반납한 게 확인되면서 '황제 조사' 논란이 채 가라 않지 않은 마당에 국민적 관심이 높은 이번 사건을 유야무야 덮는다면 어느 누가 ‘법 앞의 평등’이란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것인가. ‘법은 만인에 평등하다’는 말보다 ‘법은 권력에 아부한다’는 말을 먼저 떠오르게 한다.
'깜깜이 수심위’ 결정…누가 곧이곧대로 믿을까?

법조계·학계 등 외부위원 15명으로 구성됐다는 수심위에는 누가 참여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깜깜이 속에 진행됐기 때문에 더욱 의구심만 증폭시킨 꼴이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검찰총장이 임의로 위촉한 위원으로 구성된 수심위는 검찰총장이 직권으로 혹은 검사장의 요청으로 소집되며, 위원회 운영 절차나 논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형태"라며 "검찰의 자의적 판단과 의도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는 의구심을 갖기에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또 참여연대는 수심위 위원 구성과 관련해 "각계의 추천만 받을 뿐 위원을 위촉하는 모든 권한은 검찰총장에게 일임되어 있고, 위촉 기준과 전체 명단은 비공개”라며 “대검은 위촉된 위원 수도 공개하지 않아 투명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비판했지만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어 깜깜이 수심위란 말을 듣는 것이다. 이런 수심위 제도라면 도대체 왜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볼멘소리들이 나온다.
더욱이 이번 수심위 심의 대상은 김 여사가 2022년 6~9월 최재영 목사로부터 명품백과 화장품 등을 받은 행위가 청탁금지법 위반, 특정범죄가중법상 알선수재, 변호사법 위반, 뇌물수수 등에 해당하는지, 최 목사가 주장한 대로 금융위원 임명 등 인사에 개입했는지(직권남용), 명품백을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해 증거를 숨기려 했는지(증거인멸) 등 국민적 관심사가 매우 컸던 6가지 혐의였다.
그런데 검찰은 기소를 주장하는 최 목사의 참석을 요청하지 않은데다 최 목사는 검찰 수사 단계에서부터 무혐의 진술을 강요받았다고 주장했다. 수사부터 수심위까지 졸속으로 일관한 채 내린 결론을 국민들이 과연 납득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면 국민 수준을 낮아도 한참 낮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 검찰은 김 여사에게 건넨 명품백이 ‘감사의 표시’라는 황당한 논리로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대통령 직무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인데, 김 여사가 대통령 부인이라는 지위에서 수백만원짜리 명품백을 받은 그 자체로 직무 관련성이 없다는 결정에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는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어디 그 뿐인가. 대통령은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친 포괄적 영향력을 갖기 때문에 직무 관련성이 폭넓게 인정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논란의 불씨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김건희 여사, 노골적으로 봐주면서 야당과 전 정부 겨냥 수사는 ‘확대일로’

직무와 관련한 청탁금지법뿐 아니라 알선수재와 변호사법 위반 등 더 중대한 혐의가 의심되는 것은 물론 이를 제대로 확인하려면 휴대전화 압수수색 등 치밀한 수사와 검찰이 즐겨 사용하는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가 필요한데도 검찰은 시늉조차 내지 않고 오히려 검찰총장을 ‘패싱’하고 검사들 핸드폰까지 반납한 ‘황제 조사’로 김 여사의 해명만 들어줬다. 게다가 가장 봐주기 쉬운 청탁금지법으로 수사 범위를 축소해 무혐의 결론을 내림으로써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법아귀(法阿貴)'를 보여줬다는 지적을 받기에 충분해 보인다.
여기에 수심위까지 무혐의로 결론을 내려 국민들 정서는 안중에도 없는 들러리 역할에 불과했다는 비판에서 수심위도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소모적인 논란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검찰 외부 의견까지 들어서 공정하게 사건을 매듭짓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수심위를 직권 소집했지만 “수사팀 의견을 존중하고 수심위 심의 결과도 존중할 것”이라며 수사팀 결론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사실상 수심위가 ‘요식 절차’에 불과할 것이라는 예고와도 같은 발언을 했다. 이 때문에 수심위의 이번 결정을 더욱 신뢰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비등하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뇌물죄 피의자’로 적시하고 가족들과 전 정권 인사들의 수사와 조사에는 속도를 내고 있다. 김건희 여사는 노골적으로 봐주면서 야당과 전 정부를 겨냥한 수사는 확대일로에 있는 모습에서 공정성에 대한 최소한의 감각조차 보이질 않는다. 현 정권 출범 2년 반이 되도록 검찰이 전 정권 수사에만 매달리는 것부터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다.
더구나 최일선에 선 전주지검이 수사 중인 이 사건은 현 정권 들어서도 별다른 진척이 없다가 ‘친윤’인 이창수 지검장이 부임한 지난해 말부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5월 서울중앙지검장에 발탁돼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 무혐의 처분을 주도한 인물이다. 정권의 입맛과 필요에 따라 선택적 수사가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떨치기 어려운 대목이다.
‘기소독점주의’, ‘검사동일체’가 만든 괴물권력…일그러진 ‘검찰공화국’

가뜩이나 검찰은 야당과 전 정권 수사에만 ‘올인’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수사와 기소가 이어졌고, 부인 김혜경 씨도 ‘10만원 법인카드 결제’로 기소됐다. 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씨도 ‘인도 출장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고 문 전 대통령 딸과 전 사위는 항공사 특혜 채용과 해외이주 부정지원 등의 낙인을 찍어 강제수사에 나섰다. 살아 있는 권력에 ‘맹종’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행태에 과연 만인 앞에서 평등한 수사라고 여길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게다가 검찰발 수사 정보가 연일 언론에 흘러나오면서 ‘피의사실 공표’ 논란까지 불거지고 있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당시 ‘논두렁 시계’ 보도를 떠올리게 하는 검찰의 전 대통령 일가 수사는 망신주기 수사가 현대사의 커다란 비극으로 이어졌던 경험과 기억을 다시 소환시켜주는 양태여서 공분을 더욱 키우고 있다.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을 당당하고 신속하게 수사한다면 다른 수사도 신뢰받을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하니 더욱 답답하고 안타깝다.
해방 이후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엄혹하고 서슬 퍼런 군부독재권력이 우리 사회를 무겁게 짓누르며 암울하게 했다면 현재의 우리 사회는 막강한 검찰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정 정치 세력이나 정치인을 죽이거나 살리는 일, 특정 기업을 죽이거나 살리는 일 등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힘이 언제부터 이렇게 비대해진 것일까?
죄가 있건 없건, 기소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기소독점주의’ 또는 ‘기소전속주의’에다 검찰조직 전체가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상명하복 관계를 가지고 검찰사무를 집행하는 ‘검사동일체’란 말을 스스로 만들어 낼 정도로 ‘괴물권력 집단’으로 비대해진 탓이 크다. 공룡처럼 비대해진 검찰은 조직 자체도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데, 그 막강한 권한이 모두 검찰총장 1인에게 집중되어 있다.
검찰총장은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지만 법무부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검찰청법 제34조). 따라서 검찰총장에 대한 인사권을 갖는 대통령 입장에서는 검찰총장 한 명만 장악하면 검찰조직 전체를 안정적으로 장악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검찰총장 출신이 대통령인 대한민국의 검찰조직이 최고 권력의 눈치를 살피며 맹종하는 행태를 보이니 언필칭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내세우는 이 나라가 일그러진 검찰공화국이란 소릴 더욱 듣고 있는 것이다.
권력과 검사들 손에서 빼앗아 국민들 손에 되돌려 놓아야

그래서일까. 권력의 독기(毒氣) 앞에 맨몸으로 맞서던 법조인들이 더욱 간절하고 그리운 시절이다. 피의사실을 언론에 흘려 인격권 침해는 물론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검찰의 기소독점과 검사동일체를 견제할 마땅한 권력도, 조직도 없다. 특검제도가 있지만 특검법안이 국회 의결을 거쳐 통과되더라도 대통령이 거부하면 그만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지난 2년 반 동안 국회가 통과시킨 법에 대해 21번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 중에는 대통령의 배우자 김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에 대한 특검법도 포함돼 있다. 검찰이 공명정대한 수사를 통해 제기된 의혹들을 말끔히 해소시켜주었더라면 이러한 특검법안이 남발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검사 출신 대통령은 이러한 검찰조직의 내막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텐데 특검법안 거부권을 남발하고 있으니 별도의 조직을 두지 않고도 검찰의 독점적 기소권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라고 하는 특검을 최고 권력이 유명무실하게 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차제에 근본적으로 검찰의 기소권을 여러 기관으로 나눠 서로 견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다시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후진적인 검찰조직과 공룡처럼 비대해진 검찰권력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검찰을 권력과 검사들의 손에서 빼앗아 국민의 손에 되돌려 놓아야 한다. 검찰은 본디 '사법정의를 추구하며 공정한 법 집행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 책무를 지닌 공공의 기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