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구의 '생각 줍기'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도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입추와 말복이 진작 지났고 지난 목요일에는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마저도 지났으니 이제는 절기상으로도 완연한 가을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한낮의 더위가 꺾이지 않는 것은 여름 내내 땡볕에 달궈진 대지의 열기가 식지를 않고 늦더위가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이런 무더위 속에서도 가을은 그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은 채 새벽녘 베란다 문틈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스며들 듯이 자연의 섭리에 따라 묵묵히 다가오고 있습니다. 가을은 물질적으로 풍성한 수확의 계절이지만 정서적으로는 풍성함 속에서 항상 정신적인 빈곤함을 느끼며 머릿 속은 이런저런 생각들로 채워지며 우리를 센티멘털(sentimental)하게 만듭니다.

사실 우리는 지나온 과거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 가을이 되면 사람을 그리워하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 동안 살아온 과거 속에서 맺어진 소중한 인연이나 스쳐간 인연들에 대한 많은 추억들이 떠오르면서 생각은 자연적으로 과거로 향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임실군민회에서 주관하는 청와대 탐방 행사에 나왔습니다. 과거에는 주로 관촌면향우회에서 활동하다가 부회장의 자리에 오르고 보고 임실군민회에 진출한 셈입니다. 주 중에 5일 동안은 조석으로 삶의 현장에 나가 몸으로 때우는 알바형 일을 하다가 토요일에 이렇게 반가운 고향 분들을 만나 같이 걷고 나서 점심을 겸해서 소주라도 한잔하면서 고향의 옛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만남이어서 너무 좋습니다.

이런 행사에 나오다 보면 갈수록 나오시는 분들이 줄어드는 걸 피부로 느낄 수가 있는 거 같습니다. 세월이 흘러 연로하신 선배님들께서 타계하신 점도 있겠으나, 갈수록 삶이 각박해져서 그런지 참석하는 분들이 줄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임실은 판소리 호남가(湖南歌)에서 “나무나무 임실(任實)이요 ~”라고 나무의 고장으로 소개되고 있는 지역입니다. 또한 ‘임실(任實)’은 한자의 의미로도 열매의 고장이라고 불리며 계절적으로는 수확을 의미하는 가을의 고장이며, 순우리말로 ‘임실’은 ‘그리운 임이 사는 마을’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임실’이란 지명 속에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결실을 이뤄내고, 또한 사람을 구해내는 천혜의 환경이 있습니다. 과거 ‘임실’하면 고추 말고는 변변한 특산품 하나 없던 지역이었으나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 치즈의 고장이 되었습니다. 또한 관광의 측면에서 보면 옥정호에서 ‘붕어섬’으로 갈 수 있는 ‘옥정호 출렁다리’가 개통된 이후에는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드는 관광지로 발전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인재(人材)를 양성한 측면에서 보면 임실군 삼계면에는 전국에서 박사를 가장 많이 배출한 ‘박사골’이라는 자랑스러운 동네도 있습니다. 임실에는 오수면의 의견(義犬)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오수의 의견(義犬) 이외에도 임실에는 충성스러운 개(犬)나 말(馬) 등 짐승들의 이야기가 많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죽은 주인을 따라 죽은 충성스러운 말인 ‘충마(忠馬)’의 이야기도 전해 내려올 만큼 임실에는 다른 지역에 비해 유독 충성스러운 짐승들의 이야기가 많이 전해 내려오는 까닭은 아마도 짐승을 사람처럼 따듯한 인정(人情)으로 대했던 임실 사람들의 마음이 전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에게 ‘귀거래사’라는 시로 잘 알려진 중국 송나라 때 시인 도연명은 그의 시에서 “歲月不待人(세월부대인)” 즉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리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리워지는 게 고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이렇게 고향 선후배 분들과 만나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풍요로운 인생살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끝으로 갑작스럽게 소나기가 내리는 짓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번 행사를 준비하느라 노심초사 고생이 많으신 임실군민회 임원 여러분께 고개 숙여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글·사진: 이화구(CPA 국제공인회계사·임실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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