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상의 전북 문화 이야기(53)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가 지났는데도 찜통더위와 열대야는 기세등등하다. 지구온난화가 몰고올 기상이변이 심각함을 증거하는 늦여름 폭염이다. 삼라만상 중 오직 분수를 모르는 인간이란 생명체 하나가 산업화이후 분에 차고도 넘치는 생태계 파괴의 탐욕 소비생활을 지속한 응보의 대재앙이다. 우리 선인들은 천지인 상생과 하늘마음을 지니고, 사람끼리도 서로 살리고, 천지 자연과도 공생하는 삶을 살아왔다. 세계는 하나의 꽃, 인드라망이란 그물로 만물이 얽혀서 서로 돕고 살아갈 존재라는 인식을 갖고 산 것이다. 심지어는 먹이사슬 상극관계의 생명체 마저도 함께 살아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상생의 사고체계가 반영된 것이 풍수사상이고, 동물모양 지명에 잘 나타난다.

선운산의 새 부리같은 주봉이 수리봉이다. 수리봉의 수리, 소리개, 솔개의 솔, 소리, 소라 등은 하늘을 뜻하는 우리 토박이말이다. 일본어의 소라가 하늘인 것은 우리와 말의 뿌리가 같기 때문이다. 불교계에서는 도솔봉이라고도 부르는데, 실은 수리봉도 불교인연 용어다.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법한 곳이 영축산 또는 영산이라 하여, 영축산 통도사처럼, 영축산, 영취산, 축령산, 취령산 등 지혜로운 하늘지킴이 독수리 축자를 쓴 명산이 많다. 풍수물형상 상극관계인 세 동물이 함께 있으면, 서로 견제하므로 공격을 못하고 생기가 왕성하다는 이른바 삼수부동격(三獸不動格)으로 설계한 지명이다. 수리봉은 꿩, 수리, 개로 구성된 선운산 삼수부동의 중심봉우리다. 대웅전 뒷골짝 옛 백장암터인 인촌 김성수 조부 묘가 엎드린 꿩인 복치혈(伏雉穴)이다. 이 꿩을 노리는 수리가 수리봉이고, 수리를 견제하는 개가 개이빨봉이다. 꿩, 수리, 개가 서로 노리느라 잡아먹지 못하고 생기가 왕성하여 길하다는 생각틀이다.

이 원리를 알고 보면 개이빨봉에서 굳이 개이빨 닮은 바위를 찾느라 수고할 필요가 없다. 넖게 보면, 좌치나루를 앉아 있는 꿩으로 보아 좌치(坐雉)라 이름지은 것이다. 대표적 삼수부동인 무장읍성과 관련하여 사두봉과 스님이야기는 안내판에도 있어서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무장현 객사인 송사지관 바로 뒷편 산줄기가 뱀머리인 사두혈이다. 무장읍성은 사두혈에 입지했고, 천적관계인 개구리, 뱀, 황새로 만든 3수부동격이다.

동물 지명에 새긴 '생태상생 사상' 

송사지관 뱀의 먹잇감인 개구리바위가 영선학교 자리고, 이 뱀을 노리는 황새가 읍성 뒷편 황새산이다. 황새산이 한자표기시 음변하여 한제산이 된 것이다. 조선초기에 일찍이 무장읍성과 주변이 정리되면서 무장현은 7당산을 잘 갖춘 격조있는 계획도시가 되었다. 흔히 성곽의 주출입문 앞쪽에 장시를 두게 되는 전시(前市)가 일반적인데 반하여, 무장현은 뒷편으로 멀리 떨어진 창해면 안산에 안즌머리장을 후시(後市)로 개설한 것도 무장읍 주산이 사두혈이라 뱀머리를 피하려한 풍수상의 배려로 보인다.

무장면 덕림리 용오정사 주위에 귀한 닭이 알을 품는 모양의 명당인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 있다. 이에 연유하여 닭뫼(계산 鷄山), 매봉(응봉 鷹峰)이란 지명이 전해온다. 지네, 닭, 매가 이루는 3수부동격이다. 원래 이 지역은 금계포란 명당이라고 닭의 숲, 닭숲이었으므로 계림이었을 곳인데, 지명을 한자화 하면서 유학자들이 좋아하는 큰덕자를 써서 덕림(德林)으로 바뀌었다. 아산면 호암마을 차일봉과 우산봉 사이 고갯마루가 소리개, 솔갯재다. 이 고개앞 인천강가 강정에서 선운사 방면 고개가 오골계인 오계재, 오계재 앞산 바위가 닭먹이인 지네바위다. 지네, 오골계, 솔개로 구성된 3수부동격인데, 다행히 이곳에는 솔갯재 이야기를 소개한 마실길 안내판이 서있다.

고창읍 화산리 복호는 도선국사 비결에도 나오는 길지인데, 먹잇감을 노리며 매복한 호랑이 모양이라서 복호(伏虎)다. 호랑이가 힘을 쓰려면 먹이가 필요하므로, 먹잇감으로 마을앞 언덕에 놓인 개바위가 있고, 개바위앞 봉우리는 개가 노리는 까치(작소봉鵲巢峰)다. 까치, 개, 호랑이의 3수부동격으로 잘 짜여진 지명이다. 이밖에도 해리 금평리 명고, 용호마을, 성내면 구동마을도 호랑이, 잠자는 개(면구眠狗), 쥐로 이어진 3수부동격인데 해리의 면구는 발음이 비슷한 명고(鳴鼓)로 잘못 전해져서 북소리 나는 동네가 되고 말았다.

면구 바로옆 용호(龍虎)마을이란 이름 속에는 호랑이가 분명히 살아있는데도 말이다. 성내면의 면구는 개구자 한자가 어렵다고 행정편의상 가장 간단한 아홉구자로 바꾸면서 구동(九洞)이 되고 말아 오랜 마을의 역사와 선인들의 생태적 사고틀을 잃어버렸다. 다행히도 구동마을 안내표석에는 구동 아래 작은 글씨로 면구동이란 기록을 남겨 놓아 역사연구의 실마리 하나를 제공해준다.

'교육도시 전주', 코끼리를 잘 부려야

심원면 두어리에는 109미터짜리 나지막한 황학산이 있어서, 두어마을에 황학정이란 정자가 있다. 이 황학산도 심원초교 뒷산을 쥐, 소재지와 두어사이 낮은 능선을 뱀으로 보고, 쥐, 뱀, 학의 삼수부동을 만든 지명이었다. 왜 하필이면 노란색 학, 선인들이 탔다는 전설속의 황학인가? 오방사상에서 황색은 중앙이다. 심원 해리 바닷가 중심지를 이곳 두어리 황학산으로 보고 선인이 되고싶었던 것이리라. 이런 고사를 모르고 황학산을 풀이하다 보니, 산에 나무가 없어서 누런 학처럼 보였다는 엉터리 궤변을 날조하게 된다.

이밖에도 흥덕면 제하리 고리실에 엎드린 꿩 복치등과 매봉재, 상하면 소재지 장사산 아랫녘에 닭뫼, 복치뫼 등의 지명이 남아 삼수부동격을 갖춘 산이름임을 알 수 있다. 부안면 코끼리포구, 상포 앞바다에 코끼리의 천적이라는 쥐바위를 둔 것도 이런 이치에서 유래한 것이다. 필자가 전북 혁신도시추진단장, 공공기관이전지원단장 시절 현재의 전주혁신도시의 입지를 선정하고 기본설계를 했다. 전주혁신도시는 주산인 황방산을 배경으로 새만금, 황해 쪽으로 계속 뻗어갈 수 있는 좋은 터다. 덕분에 전국혁신도시 중에서 생활여건이나 직원 정착률도 상위권으로 평가된다니 다행이다.

황방산의 황방(黃尨)은 누렁이 삽살개다. 삽살개가 달을 보고 짓는 형국의 황방패월이란 명당이 있는 곳이다. 개구자 대신 삽살개 방자를 쓰고, 개앞에 누루황자를 붙인 현인은 이곳이 전주의 새로운 중심지가 되리란 염원과 예언을 담은 것이리라. 심원면 황학산 이름을 붙인 선인도 하전 만돌 넓벌 부등도 명사십리 너른 땅과 바닷를 응시하면서 이곳이 세상 중심지가 되기를 빌었던 것처럼.

큰 틀에서 전주를 보면 황방산지역은 풍수상 쥐, 고양이, 개, 호랑이, 코끼리로 짜여진 5수부동격이다. 황방산 서곡마을은 늙은 쥐가 먹이가 널린 밭으로 내려온다는 노서하전형(老鼠下田形)이므로, 본디 쥐서자 서곡인데, 쓰기 쉬운 서녘서(西)자로 바뀌었다. 이 쥐를 노리는 고양이 바위가 서곡들 세냇가에 있었고, 황방산 삽살개는 고양이를 노리고, 삽살개를 노리는 호랑이가 쑥고개다. 고창 방면에서 전주로 가는 나들목인 쑥고개는 잠자는 호랑이고개 숙호(宿虎)재다.

지구촌 살릴 한국전통사상...홍익인간·홍익지구

숙호재 범을 노린 코끼리가 태인 상두산 코끼리다. 천행으로 교육도시 전주가 복이 있어서, 상두산 정기받은 불후명저 <수학의정석> 저자인 상산 홍성대 선생이 전주에 상산학교를 세운다. 상산을 일약 전국구의 명문학교를 만든 상산선생이 전주의 코끼리이고, 상산고는 전주풍수의 신의 한수다. 전주에 코끼리를 키우는 일도 결국은 사람의 몫이다. 전주혁신도시 입지선정시 필자는 전주의 성공가능성을 상산학교의 성공사례와 교육에서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오직 사람키우기, 교육의 힘이 가장 강하고 오래가는 방책이다. 소멸위기 농촌을 살리는 대안도 결국은 사람이다. 고인돌시대 문명수도였던 높을고창, 오늘날 심리적 마지노선 인구 5만명도 이미 무너져버린 우리 고창을 살리는 길도 사람키우기와 나와 우주를 함께 생각하는 인문학으로 시작해야 한다. 농생명문화수도 고창, 인문학수도 고창, 자식농사 잘 짓는 고창, 치유문화수도 고창이란 미래전략도 평생의 고뇌와 믿음에서 세운 깃발이다.

고창 심원의 황학산이나 전주의 황방산에 오르는 젊은이들이 내가 우주의 주인이고, 이 땅이 세상의 중심임을 자각하기만 한다면, 지방도 다시 살아날 수를 찾지 않을까? 나와 이웃이 서로 함께, 뭇생명체와 지구촌이 한 몸이므로, 함께 살리며 살아가야 한다는 한 생각을 갖고 살 수만 있다면, 내 고향과 우리나라, 지구촌을 다시 살려낼 수 있지 않을까? 농촌과 도시도 함께 살 묘수가 나지 않겠는가?

한류의 끝판왕이 되어야 할 우리 전통사상이 홍익인간, 천지인합일 같은 상생사상이다. 기후위기시대 지구촌을 살릴 유일한 대안사상이다. 산줄기 물줄기, 나무 한 그루도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고 함부로 해치지 않았고, 인간과 자연, 천지인이 사이좋게 살자는 게 한국의 전통사상이다. 심지어는 먹이사슬 관계인 상극의 생명체들과 함께 공생할 방안을 찾은 선인들의 넉넉한 마음씨가 담긴 지명이 풍수물형론의 삼수부동격 이야기다. 일제강점기와 새주소사업 과정에서 아름다운 상생의 철학이 새겨진 땅이름들이 무더기로 사라져 버린 게 참 아쉽기만 하다. 

/사진·글=유기상(문학박사·전 고창 군수) 

저작권자 © 전북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