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론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대한민국 검찰 조직의 중추 역할을 하는 검사들이 신임 검사 임관식에서 의례처럼 하는 ‘검사 선서’ 중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다. ‘검사 선언문’과도 같은 ‘검사 선서’에는 이 외에도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 받았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진실, 공평, 봉사, 정의, 공익’ 등 선의(善意)와 공공(公共)을 상징하는 온갖 좋은 단어들이 포함됐다.

‘검사 선서’와 ‘하수인’

검찰 로고
검찰 로고

그런 검사들이 오늘날 ‘검찰공화국의 하수인’이란 말을 공공연히 듣고 있는 게 대한민국 현실이다. 모든 검사들이 다 그렇지 않지만 오로지 사리사욕만 챙기는 ‘권력바라기형 검사’와 정치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정치형 검사’ 때문에 '하수인'이란 소릴 자주 듣는다.

원래 하수인(下手人)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좋지 않은 뜻을 지닌다. '사람 밑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부하 노릇을 하는 사람’ 외에 ‘직접 손을 대어 사람을 죽인 사람’이란 의미를 지닌 말이기도 하지만, 이 외에도 사회적 통념상 '고수(高手)의 대척점에 위치한 사람'이거나 '누군가의 지배를 받아 움직이는 사람'을 지칭한다.

그런데 진실과 정의, 공평과 봉사의 상징인 검사들이 하수인이란 말을 듣게 되다니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오죽하면 ‘권력과 돈 앞에 내팽겨쳐진 검사 선언문을 주워 벽에 걸어 놓고 아침저녁으로 한 번씩 읽어 보길 간곡히 권한다’는 사람들의 주문이 많이 나오는 요즘이다. 그래서 일까. 최근 언론에 묘사되는 검찰과 검사의 이미지는 '극과 극'이다. 상반된 두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살아 있는 권력 앞에서는 정의도 공평도 사명도 찾아볼 수 없는 대신, 사라진(죽은) 권력 앞에서는 정의, 공평, 사명 외에 공익, 봉사 등이 활활 타오르는 대조적인 모습들이 자주 비쳐진다. 이를 두고 ‘하이에나의 습속과 같다’고 비판하는 학자와 평론가들도 있다. 누가 이들을 이토록 만들었을까.

‘기소 중지’ 사건, 정권 바뀌고 다시 '수사 속도'…이유는?

전주지방검찰청 전경
전주지방검찰청 전경

가까운 우리 주변에서 한 사례를 들춰보자. 전주지검에서는 지난 2018년 ‘타이이스타젯’이라는 태국의 저가 항공사에 전무로 취업한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전 사위였던 서모 씨의 특혜 채용 의혹 수사가 한창이다. 2019년 6월 국민의힘의 전신인 전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이 '문재인 전 대통령 사위 특혜 채용 의혹'을 제기한 이후 2021년 12월 ‘정의로운 사람들’이란 단체가 문 전 대통령과 이스타항공 회장이자 타이이스타젯의 실질적 소유주로 행세하며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아 전주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이상직 전 의원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촉발된 사건이다. 

검찰은 문 전 대통령과 이 전 의원을 '뇌물 수수와 뇌물 공여 혐의'로 입건했지만 2021년 12월 검찰은 ‘타이이스타젯 설립 배임·횡령 의혹 수사’를 시한부 기소 중지한다고 밝혀 잊혀지는 듯했다. 그러더니 정권이 바뀌고 2022년 12월 검찰은 다시 '타이이스타젯 관련 사건’의 기소 중지 처분을 해제하고 수사를 재개하고 나서 세간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그러다 2023년 4월 전주지검은 타이이스타젯 설립 배임·횡령 혐의로 이상직 전 의원과 박석호 타이이스타젯 대표를 전격 기소하면서 수사에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전주지검은 앞서 지난 2022년 7월 22일 서울남부지검에서 이첩 받은 '이스타항공 채용 비리 의혹' 수사에 더 속도를 내는 중이었다.

당시 상황을 복기해 보면, 공직선거법 위반과 자신이 창업했던 이스타항공에서 수백억원의 돈을 배임·횡령한 혐의로 시작된 이상직 전 의원을 상대로 한 전주지검의 수사는 이스타항공사 직원들의 특혜 채용에 이어 이스타항공 창업주인 이 전 의원이 실소유주로 알려진 태국 저가 항공사 타이이스타젯에 문 전 대통령 전 사위가 임원으로 특혜 채용됐다는 의혹으로 번지면서 수사 물꼬가 급격히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수사의 칼끝이 점점 문 전 대통령 일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정치보복 수사" 논란...왜 하필 전주지검에서?

전주MBC 8월 16일 뉴스 화면(영상 갈무리)
전주MBC 8월 16일 뉴스 화면(영상 갈무리)

특히 전주지검은 올들어 대통령기록관을 비롯한 문 전 대통령 전 사위 자택 압수수색에 이어 전 정권의 청와대 핵심 인사들을 줄줄이 소환해 조사를 벌이고 나서자 '정치적 수사'란 비판이 나왔다. 이번 사건을 맡은 전주지검은 정권이 교체되고 전 대통령 전 사위 특혜 채용 의혹 수사로 집중되자 야당으로부터 ‘정치보복 수사’란 거센 비판을 계속해서 받게 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전주지검은 이 사건과 관련해 최수규 전 중기부 차관과 홍종학 전 중기부 장관, 김우호 전 인사혁신처장, 김종호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주영훈 전 경호처장, 유송화 전 춘추관장, 조현옥 전 인사수석 등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인사들에 대해 줄줄이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함으로써 대검과 서울중앙지검 이상으로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중 조현옥 전 인사수석을 피의자로 입건해 관련 수사를 벌인데 이어 최근에는 임종석 전 비서실장까지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할 것을 통보하자 임 전 비서실장은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에 굴종하면서 지난 정부는 먼지털이식 보복 수사를 일삼고 있다"고 즉각 비판하고 나섰다.

그도 그럴 것이 문 전 대통령 전 사위 특혜 채용 의혹을 수사 중이던 전주지검은 그동안 지검장이 무려 3명이 바뀌는 등 오랜 시간을 끌며 결론을 내지 못하고 문 전 대통령 일가와 전 정부 인사들을 상대로 수사를 계속 확대하면서 ‘정치보복 수사’란 오명을 떨구지 못하고 있다.

“검찰이 처음부터 그림을 그려놓고 수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내 문재인 정부 출신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5월 12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전 사위와 관련해 검찰이 피의자도 아닌 참고인 가족에게까지 공포감을 느끼게 하는 불법적 수사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더불어민주당 내 문재인 정부 출신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5월 12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전 사위와 관련해 검찰이 피의자도 아닌 참고인 가족에게까지 공포감을 느끼게 하는 불법적 수사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동안 관련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전주지검은 2022년 6월부터 2023년 9월까지 문홍성 지검장이 수사를 지휘한데 이어 이창수 지검장이 바통을 이어 받아 지휘를 해오다 올 5월 서울고검장으로 이동하고 대신 박영진 지검장이 취임하기까지 무려 3명의 지검장이 교체됐다.

문 전 대통령 전 사위 채용 특혜 의혹 수사가 장기간 진행되더니 최근에는 문 전 대통령 부부 계좌 추적까지 벌이는 등 문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수사로 확대되자 "그림을 그려놓고 수사하는 정치보복" 또는 “먼지털이식 모욕 주기 수사”란 지적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문 정부의 청와대 출신 국회의원들은 "검찰이 4년간 탈탈 털고도 그림에 맞는 퍼즐이 안 나오자 전임 대통령을 모욕 주는 방식으로 여론몰이를 하려 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민주당 의원 27명은 16일 "검찰이 무려 4년 동안 스토킹 수준으로 대통령의 주변을 탈탈 턴 수사는 전 사위뿐만 아니라 그 가족과 주변인까지 괴롭히면서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억지 수사"라며 "명백한 정치보복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또 "검찰 측 인사가 문 전 대통령을 잡아넣어야겠다는 말을 했다는 증언도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전주지검은 문 전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에 대한 금융 계좌 추적용 압수수색 영장을 법원에서 발부 받아 수사를 이어왔다. 검찰의 계좌 추적 목적은 문 전 대통령의 옛 사위와 딸 다혜 씨의 자금 거래 흐름을 분석하기 위함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당초 이상직 전 의원의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 임명과 문 전 대통령 전 사위였던 서씨의 타이이스타젯 취업과의 '대가성'에 의심을 갖고 수사를 벌여왔다.

4년 가까이 결론 내지 못하는 수사…검찰 ”루틴·적법 절차” 강조

MBC 8월 16일 뉴스 화면(영상 갈무리)
MBC 8월 16일 뉴스 화면(영상 갈무리)

검찰은 문 전 대통령 부부가 결혼 후 일정한 수입원이 없던 딸 가족에게 생활비를 지원해 오다 서씨가 타이이스타젯에 취직한 뒤부터 생활비 지원을 중단하자 서씨의 월급과 주거비 지원 등 타이이스타젯 측의 금전적 지원이 결국 문 전 대통령을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대가성과 연관지어 수사를 벌여왔지만  4년 가까이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전 정권에 대한 정치보복 수사란 논란이 일자 전주지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을 잡아넣어야겠다' 등의 소문 및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수사가 적법 절차에 따라서 이뤄지고 있음에도 아무런 근거없이 검찰 수사를 폄훼하는 주장을 하는 데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또 검찰 관계자는 "수사는 정치적 부담 등에 의해 속도가 빨라지거나 느려지지 않고 '루틴'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법원으로부터 적법하게 발부받은 계좌추적용 영장에 기초해 실체적 진실규명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신중하게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검찰이 '루틴한 수사', '적법 절차에 의한 수사'란 점을 강조하며 유감의 뜻을 표했지만 정치권은 물론 많은 국민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왜 이토록 집요하게 오랫동안 광범위한 수사를 펼치면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지, 도대체 누가 수사의 최종 목표 인물인지 애매모호하기 때문에 의문만 커지고 있다. 가뜩이나 다른 사건들도 많은데 하필 지역 검찰에서 민감한 정치 문제와 직결된 사건을 오랫동안 수사하고 있는지 이에 대한 의구심과 유감 표명은 오히려 전북도민들이 해야 할 처지 아닌가 하는 지적들이 나오는 이유다.

김건희 여사 비공개 조사…“소환 쇼, 공평한 수사인가?” 비판

자료사진
자료사진

“언제까지 전임 정부 보복에만 몰두하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따가운 여론이 더욱 고조되고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또 있다. 지난달 20일 대통령실 경호처 청사로 찾아가 피의자인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 대표를 조사한 검사들의 조사 방식이 빌미를 제공했다. 검사가 피의자를 조사하면서 신분증을 제출하고 휴대전화를 맡긴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각에선 '검찰이 굴욕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이 '명품가방 수수 의혹 및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등을 받는 김건희 여사에 대한 비공개 조사를 진행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소환 쇼"라고 즉각 비난했다. 그도 그럴 것이 통상 피의자가 검찰청에 소환될 경우 자신의 신분증을 제시하고 신원 확인을 받는 것과 대비되는 절차를 거쳤을 뿐만 아니라 휴대전화를 맡기는 바람에 '주요 인물 조사 시 상급자에 실시간 보고'하는 통례도 깨졌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한 야당 정치인은 “검사가 수사를 한 것이 아니라 검사가 오히려 조사를 받았다”고 일갈했을 정도다. 조사 장소와 시간 모두 상대방 측을 고려해 준 결정인 데다 휴일인 토요일 오후에 조사가 시작됐는데 당시 검찰총장이 보고를 받은 건 토요일 밤 11시 30분경으로 언론의 주목도가 가장 낮은 시간대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국민들은 과연 공정하고 공평한 수사인가?란 물음과 함께 공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시간을 끌어 온 국민적 관심사가 높은 사건이다. 더구나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차일피일 미루다 겨우 실시한 조사에서 검찰이 굴종하는 듯한 모습은 전 정권에 대한 수사가 보복성 또는 먼지털이식으로 장기간 진행되고 있는 모습과 너무 대조적이다. 이 때문에 "결론을 정해놓고 하는 보복수사는 수사가 아니라 정치 개입이며, 정치 검찰의 끝은 파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비판이 들끓을 만도 하다.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붉은 꽃의 아름다움이 10일을 넘기지 못하고 달도 차면 기울기 마련이며, 권력이 제 아무리 좋다 한들 10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이 말의 뜻을 살아 있는 권력과 권력 하수인들만 망각하고 있는 듯하다.

권력 앞에서 나약해지지 말고 ‘검사 선서’ 잊지 말기를

가뜩이나 광복절 기념식이 둘로 쪼개져 열린 것도 모자라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의 공허하고 편향된 발언과 섬뜩한 이념과의 선전포고로 국민적 불안과 우려가 커져만 가고 있는 요즘 ‘강물(백성)이 화가 나면 배(임금)를 뒤집을 수 있다’는 의미의 ‘군주민수(君舟民水)’란 사자성어를 절로 떠오르게 한다. 

순자(苟子) 왕제(王制)편에 나오는 이 성어는 “백성은 물, 임금은 배와 같으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아무리 살아 있는 권력이라도 그 권력을 뒤집을 수 있는 백성, 즉 깨어 있는 시민들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특히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검사들이여! 제발 권력 앞에서 나약해지지 말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늘 반추하며, 임용 때 큰소리로 외쳤던 ‘검사 선서’를 절대 잊지 말기를 많은 국민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 

/박주현 기자

저작권자 © 전북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