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상의 전북 문화 이야기(51)

또 다시 부끄러운 광복절 79주년을 맞이한다. 때만 되면 토착왜구와 식민잔재 청산이란 정치적 구호는 요란하건만, 아직도 그 입으로는 내가 사는 마을을 일제가 붙여준 차별어인 부락이라 부른다. 세계 유일의 산줄기 족보인 <산경표>를 펴낸 순창 출신 실학자 신경준이 지은 '호남정맥', '금남정맥'이란 한국 고유 산줄기 이름 대신에, 일제강점기 일본 지질학자가 날조한 '노령산맥', '태백산맥' 타령을 태연히도 반복하는 광복절이다.
말은 마음의 알맹이, 곧 사람의 혼이다. 역사는 국혼이다. 오랜동안 사대사상과 식민잔재에 찌들고 왜곡된 한국사는 아직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편수한 조선사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우리 한국사에 이조시대나 민비라는 왕비는 없다. 조선을 비하하기 위해 일제강점기 일제가 날조한 용어를 광복한지 80여년이 되는데도, 태연히도 쓰고 있는 정부와 교육당국,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필자가 기회있을 때마다 글로써 말로써, 공식 기록에서 노령산맥 지우기, 부락 대신 마을이라 쓰기 등을 그토록 호소하고 외쳤는데도 부락이란 안내판이 그대로 있는 곳이 있다. 정서적 식민찌꺼기 청산하기가 이토록 힘들다는 사례이다.
일제강점기 일본 학자들은 서구의 근대학문을 그대로 베끼기에 바빠서 용어만 일본식 한자로 겨우 바꾸어댔다. 거기에다가 식민지인 한국 역사는 일본 역사 보다 못나고 모자라게, 후진적으로 표현하려는 악의적인 의도에서 왜곡하고 비하한 게 일상이었다. 이조시대, 이조백자, 이조가구라는 식으로 습관적으로 쓰는 이조라는 국호는 조선을 비하하려고 일제가 만든 악의적 비하어였다. 일본국이 조선 침략전략상 시해하고 장례식도 제대로 못치르게 한 비운의 명성황후를 일제 비하용어인 민비라고 아무 생각없이 호칭하는 한국인이 아직도 많다. 이 고약한 용어 하나를 바로잡지 않으면서도, 식민잔재 청산을 떠들어대는 게 오늘의 우리 모습 아닌가?
하늘의 자손에게 빗질이나 하라니...누구를 위한 역사?

중학교 시절부터 역사시간이면, 선사시대와 '즐목문토기'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다. 왜 갑자기 거기서 머리 빗이 나오는지 낯설기만했다. 하늘의 자손이란 천손사상, 밝음과 태양 숭배의 건국사화를 가진 우리 겨레가 햇빛을 버리고 하필이면 머리 빗을, 그것도 어려운 한자 즐목문(櫛目文)이라고 했을까? 백년 전인 1925년 이른바 을축년 대홍수로 드러난 한강가 암사동 선사유적에서 빛살무늬 토기가 쏟아져 나왔다. 이를 계기로 일본 고고학자 후지다료사꾸(藤田亮策)가 1930년에 발표한 논문 '즐목문토기의 분포에 대하여' 이후 즐목문, 즐문이란 용어가 쓰여졌고, 얼이 빠진 먹물들이 빗살무늬라 옮겼다.
후지다가 핀란드 고고학자 책에서 베낀 독일어 이름을 한자화한 것이 즐목문이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베낀 독일어를, 한국인이 썼다는 한국사에도 금과옥조처럼 반복하는 식민학자들의 무의식, 무개념이 서글프다. 북한 학계에서는 일찍부터 우리 말로 '새김무늬'라고 써왔다. 다행히도 서예가인 김양동 교수가, 하늘에서 내려온 천손 건국사화를 가진 우리 고대문화 상징물의 원형을 되찾아 햇빛을 상징하는 '빛살무늬'로 제안하였다. 탁견이다. 건국 3신성물인 고조선 지표유물 비파형동검도 '청동 불꽃 모양 신검'으로 명명하여 본디 뜻을 찾게 되어 다행이다.
마침내 한국인이 만든 유물에 한국의 정신과 혼이 깃들게 된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빗살과 빛살이 받침하나 차인데 뭐가 그리 대단하냐고 딴지거는 얼빠진 고고학자가 있다면, 국혼광복은 절망이다. 선사시대 우리 겨레와 인류 보편의 신앙의식 체계는 하늘, 태양, 별, 등 천문 자연현상에 대한 경외와 숭배에서 기원한다. 단군사화에서 보는 천손강림, 비, 구름, 바람을 거느리고 홍익인간 세상을 펴려한 세계관이다. 해와 별자리의 천문운행 법칙과 자생풍수 원리에 따라 세운 천제단, 천문대, 첨성대, 점성대, 신성물이 고창 고인돌이다.
선조들이 천제단이란 뜻으로 석상(石床)이라 부르던 고인돌을, 뜬금없이 지석묘라는 용어 하나로 무덤이라고 왜곡한 것도 일제강점기 일본 학자가 한 일이다. 춘분날 새벽 하루라도 양심을 회복하고, 굄돌 사이에 적중하는 일출을 한번만 보면 명약관화하게 드러나는 진실이 보인다. 그런데도 식민사학의 주술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조차도 하지 못하는 서글픈 현실이다.
강우방과 김양동을 따라 한류의 고향을 찾아야

일본 황실이 한반도 가야계와 백제계 후손이고, 일본의 고대사는 가야, 백제, 신라 등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 이른바 도래인들이 우수한 선진문화를 전파해줘서 일군 문화다.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사 미화, 한국사 비하를 위한 역사 날조·왜곡 과정에서 한반도의 가야, 가락, 구리, 구다라를 뜻하던 가라를 굳이 발음이 비슷한 가라(唐 중국의 당나라)로, 중국의 당나라로 바꿔치기했다. 고창 모로비리국 왕릉인 봉덕리 고분출토 금동신발, 익산 제석사지 출토 와당, 삼국시대 고분 등에 많이 그려진 넝쿨무늬, 인동초 무늬를 당초문(唐草紋 가라구사, 당나라 넝쿨 무늬)이라고 불러왔고, 얼빠진 한국 학자들도 아는 체하며 답습하였다. 다행히도 국운이 있어서,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을 역임한 미술사학자 일향 강우방 원장은 '영기무늬(靈氣文)'라는 탁월한 발상을 제시한다.
고대 미술사에서 흔히 보이는 인동초 넝쿨, 일제가 중국 문명으로 왜곡한 영기문은, 한국인과 인류의 우주관, 생명의 탄생과 순환원리인 '영기화생(靈氣化生)'의 법칙성을 담고 있다는 위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한다. 그의 '영기문'이란 위대한 발상 하나로, 한국 고대 미술의 뛰어난 영감과 정신세계를 되찾게 된 것이다. 유럽 미술사의 유럽 왕조의 문양 재해석, 우리 전통 사상인 용과 봉황 무늬 등도 새롭게 읽어낼 눈을 갖게 해준 위대한 업적이다.
케이팝을 비롯한 한류가 지구촌의 주류 문화가 되고 있다. 우리의 오래된 미래인 역사문화, 홍익인간의 빛나는 사상, 하늘 민족의 혼과 얼이 한류의 바탕 상징이 되어야만 비로소 진정한 한류다. 강우방 원장의 영기문과 김양동 교수의 빛살무늬는 어마어마한 소프트 파워, 한민족과 한류의 근원적 저력이 될 것이다. 사대와 식민의 시대에 상처입은 한국인의 위대한 영혼을 광복하고 눈을 뜨면, 한국사와 한류의 진면목을 볼 수 있으리라.
우리 역사의 깊이가 1만년 전으로 확장되는 홍산문화의 상징 유물이 용과 봉황, 용봉사상이다. 일본이 구부러진 옥이라고 곡옥(曲玉)이라고 부르니, 얼이 썩은 학자가 굽은 옥, 굽은 구슬 이라고 한다면, 한국사의 뜻과 혼이 쏙 빠진 것이다. 옥으로 만든 용, 옥룡을 볼 수 있어야 진정한 한국인이다.
한일 원형문화 축구대전, 호랑이 대 삼족오

고대의 고분, 왕관이나 부장품 장식에도 무수하게 보이는 게 용과 새 무늬 장식이다. 새는 하늘의 전령으로 오늘날 대통령 상징으로도 쓰이는 봉황, 주작이거나 삼족오다. 어미가 새끼를 업고 있는 모자 옥룡의 홈수가 81개다. 용의 비늘이 81개이니 분명한 용이다. 겨레의 지혜경전 천부경 81자, 도덕경도 81장, 구구팔십일은 한민족 시원사상의 상징수다. 그러기에 도선국사의 아호도 옥룡자이고, 그를 기리는 절 이름도 옥룡사다. 중국에 불교 유학을 했던 도선, 한국 풍수의 비조로도 불리는 도선국사는 옥룡자라는 인식 하나만 보더라도 한국의 뿌리 사상에 대한 통찰과 혜안을 지닌 위인으로 보인다.
삼복 찜통더위 속에서 불어온 파리올림픽의 승전보는 한줄기 신바람이다. 한류바람을 일으키는 젊은이들, 선진국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이나 세계 어느 국가에 대해서도 열등감 일도 없이 당당한 청년 세대들이 스포츠계에도 개혁 바람을 일으키다니 희망이다. 이미 경제 선진국, 스포츠 강국인 한국 체육계에도 스포츠 한류문화가 절실하다. 대한축구협회 상징 엠블럼은 백호다. 설명문에 나온 근엄하고 위엄있는 백호와 문양들이 한국인에게 한국 축구인에게, 도대체 무슨 상징과 뜻이 있을까? 어디에도 한류의 흔적인 점과 선 하나 없다. 일본 축구협회 상징 엠블럼은 태양과 삼족오다. 우리의 천손사상, 고구리 고분벽화, 해모수 건국신화 등에 자주 등장하는 삼족오와 태양이다. 닮은 꼴 건국신화를 가진 한일 양국 축구협회 엠블럼 문양의 문화적 내공만을 대조해보면, 한국의 참패다.
다행히도 세계 속의 문화 선진국 한국을 각인한 2002년 월드컵 붉은악마 응원단은 서양인들이 부르던 붉은 악령 귀신을 부르지 않았다. 슬기롭게도 중국 대륙을 호령하던 정의의 군신인 우리의 조상 치우천황을 모셔왔다. 한국인의 유전자 속에 스며있던 불굴의 치우천황이 국혼과 국민 통합을 불러일으켰고 대성공 월드컵 신화를 썼다. 불멸의 이순신 장군도 평생 치우천황을 혼에 새기고 살았다. 연 2회 치우천황을 기리는 둑제를 모시면서, 인간의 지극정성을 다한 이순신은 천우신조로 23전 23승의 신화를 쓸 수 있었다.
광복 이후 3세대가 다가온다. 강소국 한국에서 태어나서 사대와 식민 사상 찌꺼기를 말끔히 털어내고, 빛나는 하늘 민족의 혼을 광복한 젊은이들이여! 부디 역사광복의 주역이 되어다오.
/사진·글=유기상(문학박사·전 고창 군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