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지역, 다른 언론-볼만한 뉴스(101)

‘호남 정치’가 변방의 변방으로 밀려 정체성과 존재감을 찾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배출한 이후 호남 정지는 정치의 중심에서 벗어나 어느 당에서도 중량감 있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에서조차 변방으로 밀려 외딴 섬에 갇힌 형국이 되고 말았다는 푸념들이 쏟아져 나온다. 

심지어 민주당의 텃밭과 심장부라고 불리는 광주·전남에서 최근 10년간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된 당 대표나 최고위원은 단 2명에 불과하고 이웃 전북은 아예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호남 정치 복원론'에 서서히 불씨가 지펴지고 있다. 광주·전남지역 언론들을 중심으로 호남 정치에 관한 의제를 지난주에 이어 연속 톺아본다.


민주당에서 조차 변방인 ‘호남 정치’, 어쩌다?

전북에서는 지난 21대 국회에서 한병도 의원(익산을)이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으로 나섰다가 낙마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후 22대에서는 아예 최고위원 경선 대열에 아무도 합류하지 못한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민주당은 지난 7월 14일 8·18 전당대회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예비경선을 실시해 전현희·한준호·강선우·정봉주·김민석·민형배·김병주·이언주 후보(기호 순) 등 8명을 최종 후보로 확정했지만 초선인 전북 출신 이성윤 의원(전주을)은 탈락하고 말았다.

민주당 최고위원 후보 8명 중 7명은 서울, 경기 등 수도권 출신이고 민형배 의원(광주 광산구을)만 유일하게 지역 출신이자 호남 출신이다. 아예 최고위원 후보조차 내지 못한 전북은 3일 익산 원광대에서 열린 민주당 지역 순회 경선에서 경기도 고양시을이 지역구인 한준호 의원이 1위를 차지해 눈길을 끌었는데 그 배경이 눈물겹다. 

부모의 고향이 전북이고 자신이 태어난 곳이 전주란 이유로 최고 득점을 할 정도로 민주당의 텃밭이자 심장부라고 하는 호남지역에서조차 민주당의 인물난은 극심한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남도일보 7월 15일 인터넷판 기사(홈페이지 갈무리)
남도일보 7월 15일 인터넷판 기사(홈페이지 갈무리)

남도일보는 지난 7월 16일 ‘민주당 최고위원 나올지 ‘호남 정치 시험대’’의 기사에서 “22대 국회 호남 정치 복원의 시험무대는 더불어민주당 8·18 전당대회가 될 전망”이라며 “최근 10여년간 광주·전남에서 당 지도부 도전은 지역 정치권에서 흑역사로 기록된 가운데 민형배(광주 광산을) 의원이 최고위원 선거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면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고 분위기를 띄웠다.

이어 “지역 정치권에서는 이번 전당대회 관전 포인트를 민 의원의 최고위원 당선 여부로 보고 있다”는 기사는 “민주당의 지지기반이면서 심장부를 자처하는 광주·전남에서 최근 10년 동안 주승용(여수을)·양향자 의원(광주 서구을)만이 최고위원에 당선됐을 뿐이다”고 덧붙이며 호남 정치가 변방으로 밀려났음을 강조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들 중 '호남 지역구' 의원들 눈 씻고 찾아봐도 없어

이웃인 전북지역 상황도 마찬가지다. 21대 때 초·재선 국회의원 중심이었던 전북은 22대 국회에서는 5선의 정동영 의원(전주병)과 4선의 이춘석 의원(익산갑)이 중진 역할론에 기대를 모으고 있지만 낙선의 아픔을 딛고 재기한 정치인들이어서 그런지 호남 정치 복원에 총대를 메고 앞장서거나 맥이 끊긴 지역 정치력 복원을 위한 역동성을 부여할 만한 형편은 아직 되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호남 정치권에서 당분간 10년 이내에 민주당 대표와 최고위원은 물론 대선 후보도 배출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10일 민주당 당대표 선출을 위한 경기지역 합동연설회에서 김두관 후보가 “이재명 후보를 포함해서 우리 당에 김경수 전 경남지사 등 많은 대선 후보들이 있다”고 발언한 이후 장내에선 고성과 야유가 쏟아진 것도 이러한 우려를 더욱 고조시킨 원인이다. 

김 후보는 이날 경기 부천체육관에서 열린 당대표 및 최고위원회 후보자 합동연설회에서 “이재명 후보를 포함해 우리 당에는 많은 대선 후보들이 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 김부겸 전 총리, 복권이 예상되는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도 있지 않나. 이탄희, 박용진, 임종석 전 비사실장도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러자 객석에서 야유와 고성이 쏟아졌다.

이어 김 후보는 “정상적인 당이면 이런 이야기에 침묵하고 박수를 치겠지만 야유로 몰아가는 정당이 정상적인 정당인가”라고 말했지만 호남 현역 의원들과 당원들은 아마 뜨끔했을 것이다. 그나마 야유 속에서 거론된 대선 후보들 중 호남을 지역구로 둔 의원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기 때문이다. 지역 분열과 ‘친명(친이재명)’ 주자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 탓에 지도부 입성에 실패한 호남 정치의 변방론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과 분석들이 쏟아지는 이유다. 

그렇다고 민주당의 호남 정치 변방론의 틈새를 열심히 파고 드는 조국혁신당 역시 지난 총선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호남지역에서 이끌어냈지만 호남 정치가 그 당의 뿌리를 이루고 있지는 않다. 조국혁신당을 이끄는 조국 대표 역시 부산, 즉 영남 출신이다. 여기에 호남을 정치적 지지 기반으로 삼아왔던 민주당 대표로 유력시되는 이재명 후보와 경쟁을 벌이는 김두관 후보 모두 영남 출신들이다.

“박지원 의원, 호남 정치 복원 총대?”…녹록지 않은 현실

KBC 광주방송 8월 1일 뉴스 화면(영상 갈무리)
KBC 광주방송 8월 1일 뉴스 화면(영상 갈무리)

그렇다고 영남지역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는 국민의힘에 호남 출신 의원이 대표로 나설 만한 인물은 더욱 찾기 힘들 뿐 아니라 언감생심 엄두도 내지 못할 형편이다. 어쩌다 이처럼 호남 정치가 변방으로 밀려났는지에 대해 많은 오피니언리더들은 말은 아끼지만 고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최근 민주당 지역 순회경선 과정에서 박지원 의원(해남·완도·진도)이 호남 정치 복원론에 불씨를 지피고 나섰다는 보도가 광주·전남지역에서 솔솔 나오고 있는 이유도 이런 분위기를 간파한 때문인 듯하다.

광주일보 등 광주·전남지역 언론들은 “박 의원이 호남 전당대회를 앞두고 지난달 31일 저녁에 서울 여의도 모처에서 광주·전남지역 국회의원 12명을 만났다”며 “22대 국회에서 광주·전남 의원들이 지역 의제를 가지고 한자리에 모인 것은 처음”이라고 보도하며 크게 주목했다.

또 이 지역 언론들은 “박 의원과 전북지역 국회의원 10여명이 한 자리에 모여 정치 현안과 당내 문제 등을 논의할 예정”이라고도 보도했지만 그 이후 속보가 나오지 않고 있는 걸로 보아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호남 정치의 결속과 복원이 녹록지 않다는 점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호남 정치가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몇 가지 이유와 해석들이 나와 주목을 끈다.

“변방의 변방으로 밀린 호남 정치…이유는?”

광주매일신문 8월 7일 칼럼(홈페이지 갈무리)
광주매일신문 8월 7일 칼럼(홈페이지 갈무리)

광주매일신문은 7일 ‘변방의 변방으로 밀린 호남 정치’란 김미남 칼럼에서 호남 정치가 변방으로 밀린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들었다. “첫 번째는 한때 민주당 당원 절반 이상을 호남이 차지했지만 최근에는 30%대까지 떨어진 이유가 주된 원인”이라고 주장한 칼럼은 “두 번째는 당 대표에게 집중된 막강한 권한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부분 초선인 민주당 현역 의원들이 공천을 받기 위해 당 대표와 지도부에 줄서기와 눈치를 보며 목소리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이어 칼럼은 “셋째는 인물난이다. 지역과 호남의 목소리를 내줄 수 있는 중량감 있는 인물이 필요하지만 눈에 띄는 정치인도 없을뿐더러 기존 정치인들의 존재감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외에도 칼럼은 “지역에 어느 정치학자의 분석에 따르면 김대중 대통령을 배출하고, 노무현 대통령 시대를 거치면서 정치는 점차 역동성을 잃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며 “그 원인으로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이제 민주화가 이뤄졌다는 ‘자기 위안’과 함께 이 지역의 인사들이 대거 정부와 정치권에 충원되면서 과거와 같은 정치적 욕구, 간절함 그리고 지역민들의 ‘연대의식’ 등이 저하된 데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결국 ‘인물난’이 호남 정치를 변방에 서게 한 중요 원인임을 확인시켜준 대목으로 읽힌다. 여러가지 해석과 분석 외에도 이 칼럼은 말미에서 호남 정치의 인물난을 이렇게 진단했다. “정치 전반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와 냉소가 짙어지기 시작하면서 지역에서 큰 인물을 키워야 한다는 과거와 같은 분위기도 사라지게 됐고, 자연스럽게 중량감 있는 다선 의원이 배출되지 못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호남 정치권에 인물이 없기 때문에 오늘날 호남 정치가 변방으로 밀린 것일까? 기실 그동안 대권 후보로 정동영 의원과 이낙연 전 국무총리 등도 거론됐지만 모두 실패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신념과 정치적 식견은 물론 지도력이 탁월한 힘 있는 정치인 있어야”

이 때문일까. “지역 사회와 정치권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옳은 일을 위해서 몸을 아끼지 않고 싸워나가는 정의로운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지적과 함께 “김대중·노무현 전직 대통령처럼 신념과 정치적 식견은 물론 지도력이 탁월한 힘 있는 정치인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에 무게감이 실린다.

앞서 무등일보도 지난달 29일 ‘길 잃은 호남 정치 복원···불씨 살리나’란 구길용 칼럼에서 “지금은 개인을 넘어 호남 정치의 복원이라는, 더 큰 그림을 봐야 할 시점”이라고 말미에서 강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칼럼은 “수도권 일색인 민주당 지도부로는 지역의 뿌리 깊은 소외와 차별을 해소할 수 없다”며 서두에서 이미 방점을 찍었다. 그러면서 대안으로 “국회의원들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각자도생할 것이 아니라 호남 정치의 부활을 바라는 지역민들의 기대와 우려를 읽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과연 이러한 민심과 주문을 지역 국회의원들이 제대로 읽어내고 실천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당장 가장 큰 문제는 호남 정치가 변방의 변방으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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