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초점
검찰이 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을 수사하면서 정치인과 언론인,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물론 일반인까지 무더기로 통신조회를 해온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파장과 후폭풍이 거세다.
한국기자협회와 방송기자연합회, 언론노동조합 등 6개 언론현업단체는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 권력 기관에 의한 유례없는 민간인 사찰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고 규탄했다. 참여연대도 논평을 통해 “법원 통제 없는 무분별한 통신이용자정보 조회는 명백한 헌법 위반”이라며 국회에 법 개정을 촉구했다. 또 야당도 "불법사찰'로 규정하며 대대적인 비난 공세에 나섰다.
6개 언론현업단체 “무차별 사찰, 독재 회귀의 명백한 물증”

5일 방송기자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한국영상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등 언론현업단체들은 서울시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8층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언론과 시민에 대한 무차별 사찰은 독재 회귀의 명백한 물증”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은 관련자 전원 파면하고 명예훼손 수사를 중단시킬 것”을 촉구했다.
이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반부패수사 1부가 통신사로부터 무차별적으로 통신 정보를 제공받아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훼손 수사에 활용했다는 내용이었다. 당일 이 문자를 받은 사람들은 무려 3,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밝힌 단체들은 “검찰의 통신 정보 조회는 이전부터 벌어져 온 일이지만, 언론계와 정치권, 시민사회, 일반인들까지 망라한 3,000여명이라는 숫자는 국가 권력 기관에 의한 유례없는 민간인 사찰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단체들은 “검찰이 정보를 제공받는 시기는 올해 1월로 검찰 해당 부서가 김만배 녹취 기사를 빌미로 대통령 명예훼손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수사를 진행하던 때다”며 “언론의 감시와 비판이 당연한 국가 최고 권력이 언론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고 언론사와 기자들에 대해 무더기 압수수색과 강제수사를 남발하는 동시에 검찰은 윤석열 한 사람의 심기 경호를 위해 아무런 범죄혐의도 없는 언론인과 노동조합 관계자, 시민단체 관계자 등 국민의 수천명의 기본권을 유린한 것이며 ‘대통령이 검찰의 수사권을 사유화한 민간인 사찰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요구에 답하지 않으면 국민들 나서서 맡긴 권력 회수할 것”
이밖에 단체들은 “게다가 검찰은 통신 정보를 제공 받은 지 무려 7개월이나 지나 당사자들에게 통신 정보 조회 사실을 통보했다. 전기통신사업법이 규정한 통신 조회 후 30일 내 통보 기간을 유예한 것이다”며 “법에 따르면 유예 규정을 적용한 3,000여 명은 ‘국가 안전보장이나 피해자의 생명과 신체를 위태롭게 할 우려’가 있거나 ‘증거 인멸·도주·증인 위협’ 또는 ‘사건관계인의 명예·사생활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중대한 범죄자에 해당한다. 검찰은 대통령 한 명의 ‘명예’를 위해 3,000여 명에 달하는 국민을 범죄자로 낙인 찍은 셈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초유의 사태는 압수수색과 무더기 기소, 극우인사 투하를 통한 방송장악, 언론 검열에 이어 무차별, 무더기 통신 정보 조회까지 동원해 국민의 입을 틀어막고 눈과 귀를 가리려 한 윤석열 정권의 언론탄압, 아니 대언론 테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비판한 뒤 “대통령 윤석열은 무도한 민간인 사찰과 언론탄압을 저지른 검찰 수사 책임자 전원을 즉시 파면하고,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라”고 요구했다.
이와 함께 이날 단체들은 “이 사건의 본질은 오직 윤석열 대통령 한 명의 심기 경호를 위한 수사권 사유화, 언론 탄압, 국민 기본권의 침해다. 대통령, 검찰, 그리고 국민의힘 모두 우리의 요구에 즉각 답하지 않는다면 주권자인 국민들이 나서서 당신들에게 맡긴 권력을 회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참여연대 “무차별적 통신정보 수집 통제할 법안 마련 시급”

한편 윤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의 무더기 통신정보 조회가 확인되자 참여연대는이날 논평을 통해 “무차별적인 통신정보 수집을 통제할 법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참여연대는 “윤석열 대통령의 검사 시절 부산저축은행 수사무마의혹 사건을 취재보도한 뉴스타파 기자 등을 ‘대통령 명예훼손’혐의로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반부패수사제1부(당시 부장검사 강백신, 부장, 현 부장검사 이준동)가 언론인, 정치인 등 수천여 명의 통신이용자 정보를 무분별하게 조회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검찰은 적법한 절차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과연 대통령의 명예훼손 수사가 3,000여명에 달하는 언론인, 정치인들의 통신자료를 조회할 사안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에 대한 충성경쟁에서 시작된 검찰의 저인망식 수사방식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참여연대는 “오랫동안 지적되어 왔으나 바로 검경의 반대로 법원 통제화 방안이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 전기통신사업법상의 허점이 함께 만들어낸 위헌적 상황이 아닐 수 없다”며 “검찰의 행태는 권한남용으로 위헌이다”고 못박았다.
또한 “검찰은 법원 영장을 통해 확보한 적법한 수사라고 주장하지만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수사대상자의 통신내역(통신사실확인자료)에 대해서만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야 하는 반면, 확보한 통신내역에 있는 수천명의 통화대상자 전화번호의 인적사항은 법원 허가없이 수사명목으로 통신사로부터 제공받은 것”이라는 참여연대는 “3,000여명의 통신이용자정보가 모두 수사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었다고 보기는 도저히 어렵고, 검찰도 그 모든 사람들의 정보를 확인할 수사상 필요성을 설명하지 않고 있다”며 “무엇보다 이들 정보들은 단지 전기통신 가입자의 인적사항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통신의 비밀과 사생활의 비밀 및 자유와도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참여연대는 “이번 사태에서 명확하게 드러났듯 수사기관은 지나치게 포괄적인 근거로 무차별적으로 수많은 국민의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며 “현행법 하에서 합법이라는 명목으로 법원의 허가 등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기관의 통제를 전혀 받지 않고 무차별적인 정보 조회와 수집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다시한번 국회가 합헌적이고 온전한 법개정에 조속히 착수할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참여연대 등에 따르면 앞서 2016년 수사·정보기관이 영장 없이 이용자 정보를 볼 수 있도록 한 전기통신사업법 조항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이 제기됐지만 헌법재판소는 2022년 7월, 영장 없는 이용자 정보 수집은 합헌, 당사자에게 통지하지 않은 것만 헌법불합치라고 판단했다. 헌재 결정에 따라 통지 조항이 신설되며 전기통신사업법이 개정됐지만, 검찰의 저인망식 수사 탓에 무더기 통신정보 조회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야당 “게슈타포가 판치는 나치정권...검찰, 비굴한 콜검” 비난

이날 야당도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검찰이 야당 정치인들과 언론인 등 수천명을 상대로 전방위적 통신사찰을 해왔던 사실이 드러났다”며 “총선 직전에 야당과 언론을 상대로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정치사찰이 자행된 배경이 무엇이지 윤 대통령이 직접 국민 앞에 해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수사기관의 통신조회에 대해 ‘불법사찰이다’ ‘게슈타포나 할 짓이다’라고 말했던 당사자”라며 “그의 말대로라면 윤석열 정권이야말로 게슈타포가 판치는 나치정권”이라고 비난했다. 서영교 최고위원도 이날 “여권이 검찰을 하수인으로 알고, 검찰을 함부로 대하고, 검찰은 ‘콜검’이 돼 하라는대로 하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밖에 황운하 조국혁신당 원내대표는 "(검찰이) 명품백 수수 사건에서 김건희 씨의 통신 정보를 조회한 적이 있는지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