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언: 거버넌스에 관한 기고문 세 번째

도시이야기와 거버넌스 이야기를 두 번에 걸쳐 했다. 나의 생각과 우려에 동의하는 분도 계실테고 동의치 못하고 과한 이야기라 여기는 분들도 계실지 모른다. 그런 입장차가 있다 하더라도 변화와 혁신에서 중요한 동력이 되어야 할 거버넌스에 대해 주의 깊게 환기해 볼 때가 되었다는 점만은 꼭 한번 새겨주셨으면 좋겠다는 당부로 이야기를 마무리 하고자 한다.​

도시에 관한 공부를 하면서 깊은 인상에 남은 도시 중 하나가 미국의 디트로이트라는 도시다. 도시의 비극을 담고 있기 때문이며 피하고 싶지만 같은 운명을 만나면 안되겠다 싶어서 관심을 가졌던것 같다. 한때 세계 자동차 산업을 주무르며 수십 년에 걸친 호황을 누린 대도시였다. 뉴욕과 시카고를 잇는 네 번째 도시였는데 이 도시가 나락에 빠지기 시작한다.

단순하게 자동차 산업의 퇴조로 인한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장난만은 아니었다. 변화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무분별하게 도시를 확장시키고 교통이나 인프라 면에서 취약해지는 구조를 만들어 내는 등 스스로가 재촉한 여러 것들이 뒤엉킨 결과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비슷한 위기를 겪었지만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혁신하면서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낸 도시도 존재하기에 그렇다. 역시 미국의 또 다른 도시인 포틀랜드가 그걸 말한다.​

인구 감소와 소멸현상은 지역의 위기로써 오래전부터 경고되었다. 우리보다 앞서 경로를 밟아온 선진지 사례들의 경고와 사례에도 불구하고 대비를 못하면서 우리는 시간과 기회를 놓치고 있다. 도시계획을 세우는 일은 모든 도시에게 주어진 숙제일 것이다. 숙제를 잘 풀어 나가는 사람들의 실력과 근육량은 커지고 튼튼해진다. 반면에 부실하게 베끼고 분량만 채우는 등의 흉내만 경우 이들이 치러야 할 후과는 크다. 숙제 검사야 미뤄주고 기회를 주기도 하지만 한번 지나간 도시의 운명을 한번 더 부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10년 후인 2035년의 전주 인구를 60만 가까이로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붕괴할 것으로 예측한 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0년대 중반의 일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은 이런 예측에도 불구하고 계획인구를 80만으로 설정해버린 것이다. 희망사항을 도시계획에 담아내는 게 이제 비밀도 아닌 모양이다. 나는 이해하지 못하는데 굳이 그걸 좋은쪽으로 해석해서 '중앙정부로부터 돈을 끌어올 수 있기 때문이 아니냐'며 해석 하는 사람들도 있다.

​끌어온 중앙정부의 돈, 쉽게 말해 '뭔가를 나아지게 하겠다'면서 세우는 예산이 어떻게 도시를 소모시키고 망가뜨리는데 일조하는가를 하나의 분야로만 국한해서 이야기해 보겠다.

두 도시와 전주는 어디로 갈 것인가? : 디트로이트(미국 미시건)와 포틀랜드(미국 오리건)의 인구변화에 전주(녹색)까지 같이 대입시켜 본 그래프. 세 도시 공히 2023년 현재 65만 수준에서 만나고 있다. 그 뒤에 얇은 실선은 현재의 추세를 이어본 것으로 세 도시의 운명이 다시 다르게 전개 될 거라는 추정이다. 2025년 이후의 미래에 현재 추세는 포틀랜드, 디트로이트=전주(위에서부터) 순서로 연장선을 긋는게 무리가 없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추세이며 지금에 의해 달라 질 수 있다.
두 도시와 전주는 어디로 갈 것인가? : 디트로이트(미국 미시건)와 포틀랜드(미국 오리건)의 인구변화에 전주(녹색)까지 같이 대입시켜 본 그래프. 세 도시 공히 2023년 현재 65만 수준에서 만나고 있다. 그 뒤에 얇은 실선은 현재의 추세를 이어본 것으로 세 도시의 운명이 다시 다르게 전개 될 거라는 추정이다. 2025년 이후의 미래에 현재 추세는 포틀랜드, 디트로이트=전주(위에서부터) 순서로 연장선을 긋는게 무리가 없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추세이며 지금에 의해 달라 질 수 있다.

교통분야에서만 10여 년 사이에 설계도를 그려놓고 날려버린 계획이 여럿이다. 경전철과 한옥마을 트램 구축, 자전거도로 개설 등이 그것이다. 애초 착안과 입안단계부터 억지가 동원된다. 막무가내로 ‘필요성과 타당성’이 주장되다가 어느 순간 아무도 모르게 사그라들고 만다. 이게 계획단계에서 주장되었다 철회된 경우라면 좋겠는데 꼭 몇 걸음 더 진척되고 만다. 그래서 더 불행하다. 불쏘시개로도 못쓰고 말 그대로 그냥 ’휴지조각’ 신세의 설계도만 덩그러니 남았다. 공중으로 날아간 실시설계비용만 100억 여원 이상이라면 말 다했다. 그러나 누구도 이런 것들을 문제 삼지도 않는다. 이러니 얼마 안가 똑같은 일을 또 저지른다. 지독한 악순환이다.

​충분하게 상의하지 않고 섣부르게 입안해 공중으로 날려버리는 시민들의 혈세는 누가 책임질 수 있는가?

이런 일들을 방지하기 위해 시민들로부터 출발되고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거버넌스라는 장치를 만들어 활용하지만 무용지물처럼 보인다. 오히려 이런 엉터리 계획의 진행을 보증 하는 수단으로 작동되거나 동원(?)되기도 한다. 거듭되는 사건마다 짚어져야 할 것들을 짚지 않고 얼렁뚱땅 넘기는데 모두들 관여하고 일조한 탓일까?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깊은 뜻이 담긴 인내의 결과들일까? 대체 어떻게 해야 이 지독하고 모자란 일들의 악순환을 끊고 제대로 방향을 잡아갈 수 있을까를 매번 고민하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아직은 메아리도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 것 같다.​

얼마 전부터 고민을 집중해서 이와 관련한 생각을 진척시키는 중이다. 지금 진행 중인 BRT실시설계가 이런 일들의 반복이며 재생으로 보인다. 해서 시민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현재의 행정행위(실시설계)에 대해 법원으로 하여금 중지토록 하는 가처분 신청을 고려해 왔다. 만만치 않은 일인지라 '가처분을 해???? 말아???'라는 결심을 썼다 지웠다 반복하는 일만 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고민에서 가장 앞서는 것은 '계속 이렇게 하면 안된다'는 경고의 메세지는 한번 날려야 하지 않나 싶은 것이다. 점쟁이나 예언가는 아니지만 서둘러 이런 것들을 바로잡고 앞길로 나아갈 방향을 찾지 못하면 디트로이트의 운명이 전주에서 구현된다고 단언한다.

2035년 60만이라는 예상인구는 좀 더 가속화되어 55만, 아니 50만이 될 수도 있다. 언제 가속화될지 모르지만 가속도에 탄력을 붙이는 순간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여러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런 전주의 운명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 가처분을 하고 법원으로부터 우리들의 신청이 인용되어 바로잡히는 '준엄한 경고'를 떠올리는 한편 무엇을 어떻게 해야 이런 지경의 거버넌스를 바로 잡아 나갈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다른 한축에 자리하고 있다. ​난데없고 맥락없게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가진게 패기밖에 없던 젊은이들이 가졌던 심정으로 임했을 그들의 고민에 빙의해보며 그들이 했던 활동을 간략하게 소개하며 마무리 한다.

​협성회를 이끌었던 젊은 청년들의 열정에서 찾아보는 힌트

구한말에서 일제로 넘어가던 시점, 역사적 사실로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대한제국 말, 서구 열강의 조선으로의 진출이 한창이었다. 근대문명과 외세의 새로운 물결 앞에 조선은 그야말로 태풍 앞에 놓인 호롱불 신세였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모를 리 없던 조선의 여러 세력과 사람들은 대처하는데서 여러 입장이 형성된 것 같다. 이를테면 급진적 개화를 주장한 세력도 있었고 점차적인 개혁과 개방을 준비한 입장도 있었다. 외세의 힘을 빌리기도 하고 배척하는 형태도 나타났다. 아는 것 없고 힘없는 민중들도 동학혁명이라는 형태로 이 시기에 한몫 거들었다.

​당시 배재학당의 젊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문물의 현황을 눈뜨게 되었고 조선이 어떤 길로 가야 할지에 관해 마음 바쁘게 공부했고 토론했으며 나름대로의 길을 정리하였다. 놀랍게도 이들은 왕조였던 시절에 ‘의회주의’를 정립해 내고 스스로가 정립한 길을 대중들과 함께 공유하고 조선이 받아들여가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공부하고 토론한 내용을 대중들에게 알리기 위한 형태로 협성회신문을 만들며 이는 나중의 대한매일신문 등의 모태가 되었다고 한다. 이들이 정립한 이야기들은 꽤 빠르게 조선의 지식인 사회와 여러 흐름에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을사조약과 한일합병을 통해 식민지로 만든 일제 때문에 더는 진행할 수 없었지만 ‘이들에게 시간이 좀 더 허락했으면 어디까지 이어졌을까?’하는 상상 속 질문과 탄식이 나올 만큼 놀랍게 여겨졌다.

​이들이 가진 정보와 지식이 얼마나 대단했겠는가? 지금이야 이런 정보를 알려줄 도구나 사람들도 많지만 그 당시에 그런 걸 알려줄 사람들 자체가 없었을 터. 이들은 바람 앞에 놓인 불길과 같은 조선의 운명 앞에서 무슨 생각을 가지고 움직였을까? 짐작컨대 ‘열정’ 하나뿐이었을 것 같다. 무엇이 그 길에 유효할까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토론하고 정리하고 알리기 위해 분주했을 것이다. 세력을 얻고 자신들의 생각을 확산하고 적용하기기 위해 군대를 필요로 하거나 하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그저 스스로가 정립한 생각을 담담하게 내놓으며 말했지 않았을까?

​길을 몰라 두렵지만 끝내 조선(결국 자신들)의 앞길을 열고자 하는 열정을 모아 내는 게 유효했을 것이다. 그들처럼 해내면 전주의 앞날에 디트로이트가 보일지 포틀랜드가 보일지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지금이라도 그런 것들을 해야 하지 않나를 생각하는 중이다. 배재학당 젋은 청년들에게 누구도 힘과 권력을 보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지만 조선의 앞길을 밝혀줄 등불로 여겨지면서 사회적 영향력을 획득했을 것이다. 그걸 가능케한 '열정'만이 사회적 공감과 도시 혁신의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 전주에서의 '협성회'를 만지작 거린다.

/김길중(시민·자전거 전문가)

※위 글은 '외부 기고'이기 때문에 <전북의소리> 보도 내용 및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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