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론

‘공정과 정의’를 외치면서도 ‘부정과 불의’를 실천하는 정치인들이나, ‘불법과 탈법’을 일삼으면서도 ‘나라를 위해서’라고 강변하는 경제인들을 볼 때 우리는 흔히 ‘지록위마(指鹿爲馬)’를 떠올린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우기는 말도 안 되는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이 말이 최근 우리 사회에서 자주 통용되며 비슷한 사례들이 목격되고 있다. 그 내막들을 들여다보면 실로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정의가 불의에 농락당하고 진실이 거짓에 유린되고 심지어 공정이 불공정에 희생되는 사례들이 빈번하다. ‘지록위마’가 횡행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런 ‘지록위마’의 유래는 중국 진시황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성어의 배경을 굳이 들춰보면 '진시황본기'에 기록돼 있는 일화에서 비롯된다. 진나라 환관 ‘조고’가 진시황의 아들 ‘화해’를 왕으로 즉위시킨 공로로 권력을 틀어쥔 뒤에 어린 황제인 ‘화해’가 있는 데서 다른 신하들 더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주장할 때 반대하는 신하들을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면서 후세에 전해지기 시작한 말이다. 이후 '지록위마'는 권력자가 진실을 왜곡하거나 사실을 호도할 때 사용되는 대표적인 사례로 여기는 성어가 됐다. 권력을 남용하고 진실을 왜곡하는 상황을 비판적으로 드러내는 말로 오랫동안 사용돼 왔다. 그렇다고 현대에 와서 이 말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디지털화된 첨단 시대에도 통용되고 있다.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고, 불의로 정의를 가릴 수 없는데...

전북의소리 자료사진
전북의소리 자료사진

사실을 왜곡하거나 거짓 정보를 퍼뜨리는 상황을 지칭하는 데 이만한 비유어도 없을 것이다. 특히 정치, 경제, 사회, 언론 등의 분야에서 진실을 호도하거나 거짓을 진실처럼 포장하는 행위를 비판할 때 '지록위마'는 그 빛을 발휘하게 된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이처럼 '지록위마'는 시대를 초월하여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교훈을 준다. 하늘 아래 거짓은 결코 진실을 이길 수 없고, 불의로 정의를 가릴 수 없기 때문이다.

진실을 왜곡하고 사실을 호도하는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이러한 행위가 결국은 개인이나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때문에 '지록위마'와 같은 고사성어는 단순히 역사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우리 삶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성어를 통해 우리는 진실을 왜곡하거나 거짓 정보를 퍼뜨리는 행위의 부정적인 결과를 인식하고, 진실을 바탕으로 한 소통과 이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최근 전북지역에서는 '지록위마'에 버금가는 위조와 위증이 최고 행정기관과 지방의회, 시시비비를 가리는 법정에서까지 자주 등장해 도민들을 불안하고 불편하게 하고 있다. 눈가림과 눈속임을 써서 속아 넘어가게 하는 수법이 유치하고 치졸해서 차마 입에 담기조차 민망할 정도다. 그런 위조와 위증의 사례들 앞에서 '지록위마'의 교훈을 되새기게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하니 답답할 따름이다.

가장 공정하고 투명하게 혈세를 집행하고 예하 단체들과 산하 기관들의 예산을 꼼꼼히 지도·감독해야 할 전북특별자치도가 최근들어 혈세를 지원하고도 집행하는 기관에서 위조 사실이 드러났지만 무덤덤하게 대응하고 있으니 빈축을 살 만하다.

서예비엔날레 행사, 서울 언론에 집중 ‘광고’...도장 오려 붙여 서류 위조하다 ‘들통’

지난 5일 전북자도의회 제410회 정례회 2차 본회의 도정질문에서 제기된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조직위원회의 계약 서류 위조 사례.
지난 5일 전북자도의회 제410회 정례회 2차 본회의 도정질문에서 제기된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조직위원회의 계약 서류 위조 사례.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라는 명칭의 사단법인에 한해 20억여원의 예산을 지원하는 전북자치도가 300억원  이상을 들여 서예비엔날레관을 짓기로 했지만 관리·감독을 느슨하게 하는 사이에 온갖 편법을 동원한 계약이 남발하고 있음이 도의회에서 지난해 행정사무감사 이후 최근까지 잇따라 지적되고 있으나 유야무야 넘어가는 모양새다. 전북에서 2년마다 열리는 서예 관련 행사를 서울 언론사가 운영하는 전광판에 홍보하기 위해 도민 혈세를 집행하면서도 서류를 위조한 사실이 도의회에서 지적된 것은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유사한 사례가 더 있을 수 있음을 방증해 준 충분한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막상 들여다 보니 위조 수법이 치졸하기 짝이 없다. 최종 결재자의 도장이 없는 계약서와 보증금 지급각서에 따로 도장이 찍힌 종이를 오려 붙여 도의원에게 제출해 위조가 들통났다. 문제는 유치하고 졸렬한 위조 방법이 들통났는데도 이를 도의회 정례회 도정질문장에서 확인한 도지사는 별 표정 변화 없이 “정확한 사실 관계를 파악해서 적절한 법적 조치가 필요한지 확인해 보도록 하겠다”고만 답했을 뿐 즉각적인 조치나 후속 대응 노력이 보이질 않는다. 

여기에 더해 일부 언론사들은 광고를 계약하는 과정에서 수의계약도 모자라 구두계약을 요구한다고 할 정도라는 지적까지 나와 말문을 막히게 했다. 얼마나 행정이 우스웠으면 이러한 부탁까지 통용이 됐을까 하는 한심스러운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계약 서류들 중에는 서울의 내로라하는 언론사들이 운영하는 전광판 광고들이란 점에서 더욱 예사롭게 보아 넘길 사안은 아닐 대목이다. 

인구 대비 한 지역에 가장 많은 일간지가 분포해 있을 정도로 언론사들이 많은 전북지역에서 열리는 행사인데 굳이 지역언론들을 외면한 채 서울에 있는 언론사들에게 많은 도민 혈세로 광고를 해서 얻고자 하는 효과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매년 1만명 이상이 서울과 수도권 등으로 유출하는 전북 인구수를 감안한 것은 아닐 테고 직장을 구해 서울로 떠난 전북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광고는 더욱 아닐 텐데, 서울 중심가에 자리한 언론사 전광판에 전북에서 진행되는 서예 행사를 위해 많은 혈세를 들여가며 홍보하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알 수 없다. 그것도 서류를 위조해가면서까지 혈세를 펑펑 쓰고 있으니 말이다. 전북의 경제 성장률이나 자립도가 다른 곳에 비해 월등히 우세하다면 몰라도 전혀 그렇지 못하다. 가뜩이나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해마나 빼앗기는 역외 유출 인구 때문에 벼랑 끝에 내몰린 농촌지역은 붕괴 위기가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도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사업이 서울과 수도권 시민들을 대상으로 홍보돼야 할 이유는 별로 없어 보인다.

'선심성 도민 혈세 집행' 지적에 "고유 권한"...지방채 발행 ‘펑펑’, 새만금 관광개발 서류 위조 ‘망신’

박세리 씨 부친을 사문서 위조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박세리희망재단은 최근 홈페이지에 '박세리 감독은 국제골프스쿨, 박세리 국제학교(골프 아카데미 및 태안, 새만금 등 전국 모든 곳 포함) 유치 및 설립 계획·예정이 없다'는 안내문을 게시했다.(박세리희망재단 홈페이지 캡처)
박세리 씨 부친을 사문서 위조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박세리희망재단은 최근 홈페이지에 '박세리 감독은 국제골프스쿨, 박세리 국제학교(골프 아카데미 및 태안, 새만금 등 전국 모든 곳 포함) 유치 및 설립 계획·예정이 없다'는 안내문을 게시했다.(박세리희망재단 홈페이지 캡처)

게다가 최근 전북자치도 대변인실에서는 다른 기관인 도의회 출입 일부 기자들에게만 선심성 광고로 혈세를 집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대변인 권한’이라고 우기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발생했다. 도의 혈세 운영이 이런데 시·군들은 오죽할까. 안 봐도 뻔하다. 홍보 예산을 자치단체장 치적 알리는 데 주로 사용하거나 쌈짓돈처럼 불투명하게 집행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최근 전주시는 채무가 5,000억원이나 되고 세수입이 감소해서 허리띠를 졸라맨다고 하면서도 정작 세워놓은 예산도 제대로 쓰지 못해 지난해 4,500억원이나 남겼다고 한다. 전주시가 지난해 집행하지 못해 해를 넘긴 예산은 450여개 사업에 4,500억원으로 전체 예산의 14.2%를 차지할 정도다. 2020년 3,312억원이었던 이월 예산이 4년 사이에 35%가 늘었고 채무는 5,000억원으로 지난해만도 1,000억원 규모의 지방채를 발행했다. 그러고도 힘 있는 중앙 부처에 가서 시장이 예산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와 사진을 언론사들에 자주 배포하는 모습을 보면 씁쓸하기만 하다.

어디 그 뿐인가. 새만금에서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서류 위조 사례는 전국적인 망신과 조롱거리가 됐다. 전북자치도와 새만금개발청이 오랫동안 공들여 추진한다고 자부해 온 새만금 관광개발사업이 골프선수 출신 박세리 씨 부친의 서류 위조 사건으로 2년여 만에 백지화된 사례는 치명적인 행정의 무능과 안일한 대처를 보여줬다. 그럼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모습을 바라보는 도민들은 착잡함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며 호소할 정도다.

폭행 관련 ‘허위사실 공표 혐의’ 재판장 오가는 교육계 수장...‘거짓 증언, 위증교사·위증방조’까지 파생 

전주지방법원 전경(사진=전주지방법원 제공)
전주지방법원 전경(사진=전주지방법원 제공)

설상가상으로 전북의 백년대계를 책임지고 있는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은 최근 초등학교 학생들의 잇단 폭행·폭언 등으로 전국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다. 전주의 한 초등학교 학생이 교감을 때리는 영상은 지금도 유튜브 채널에서 조회수를 기하급수적으로 상회하며 조롱과 비난거리가 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북 교육계의 수장은 동료 교수 폭행과 관련해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선거 과정부터 진실 공방을 벌이더니 재판이 한창 진행되는 과정에서 거짓 증언에 이은 위증교사와 위증방조까지 불거져 다른 재판들이 연거푸 파생되고 있다.

‘폭행은 없었다고 법정에서 진술하라'고 위증을 교사한 혐의로 전북교육감 처남과 거짓 증언을 한 혐의로 구속된 전북대 교수 측근, 그리고 위증방조 혐의로 해당 교수 변호인이 기소돼 전북 교육계가 술렁이는 상황을 보며 많은 학부모와 도민들은 기가 막히고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반응들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진실 공방은 서거석 전북교육감이 전북대 총장 재직 시절에 후배이자 동료 교수였던 이귀재 교수를 ‘폭행했느냐’, ‘폭행하지 않았느냐’는 게 사건의 본질이다.

하지만 민망하고 낯부끄러운 이 사건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폭행과 거짓 증언, 위증교사, 위증방조 등을 놓고 치열한 법정 공방이 전북 교육계 수장의 임기 내내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과 우려가 높다. 그러고도 학생들에게는 ‘폭행 금지’를 강요하며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강조하면 잘 따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최고 행정기관과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잦은 위조와 선심성 혈세 집행,  교육계 어른들의 거짓말과 폭력을 둘러싼 오랜 진실 공방, 그 사이에 불거진 위증과 위증교사 등은 '지록위마’를 뺨칠 정도다. 참으로 낯부끄럽고 민망한, 개탄하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이 최근 전북지역에서 자주 발생하고 있다. 결코 가볍게 여기거나 예사로 보아 넘길 일들이 아니다.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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