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길 위에서'

“이 집은 이 사람이 사는 이곳이다.
이곳은 바로 이 나라 이 고을 이 마을이고,
이 사람은 나이 젊고 식견이 높으며 옛글을 좋아하는 선비다.
만약 그를 찾으려거든 이 기문(記文)으로 들어오라!
그렇지 않으면 비록 쇠로 만든 신이 뚫어지라 대지를 두루 돌아다녀도 끝내 찾지 못할 것이다.“
조선 후기의 문장가인 이용휴의 <차거기(此居記)>에 나온 내용이다. 외면적인 것으로 사람을 보지 말고, 즉 이 사람 자체를 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외면으로만 보고자 한다면 쇠로 만든 신이 다 떨어지더라도 이 사람을 찾을 수가 없으리라는 말이다. 그러나 요즘 세상이 어디 그런가? 허우대 좋고, 잘 생기고, 말 잘하고 좋은 차를 타고 있으면 홀딱 넘어가고, 그런 사실을 나중에야 알고, 후회하는 반복 아니던가?

그새 오래 전 일이다. 내가 방송을 처음 시작할 무렵이니까 1990년대 초의 일이다. 매주 정기적으로 라디오 방송을 하게 되었다. 지금도 차가 없지만 그 때도 마찬가지, 차가 없어서 걸어서 갔다. 그런데 그 방송국을 들어갈 때 방송국 수위가 신분증을 보자고 하였다. 한 두 번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매주 보자는 것이었다. 신분증을 내는 사이 방송국을 출입하는 사람들을 보면 좋은 차를 가진 출연자들은 정지도 안 시키며 나처럼 차가 없는 허름한 사람들만 검사를 하는 것이었다.
완장, 그게 완장이라는 것을 그 때에야 알았다. 방송국 관계자에게 얘기해도 좋을 것이지만 한 번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고 1년여를 신분증을 내보이고 들락거렸으니, 그렇게 살다보니 나름대로 이골이 났다.

적당하게 살아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오기, 하여간 다른 사람들도 피차 마찬가지일 것이지만 나 같이 사는 것은 나 밖에 없을 것이다. 저마다에게 허용된 삶을 살다가 가는 인생, 나도 그래야겠다고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 안에 함부로 들어오지 마!”
그렇게 살았는데, 앞으로는 마음의 문을 예전보다 더 넓게 열고 살아야겠다는 생각, 지금의 내 마음이다.

/글·사진=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문화사학자·문화재청 문화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