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론
1931년 미국의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Herbert William Heinrich)는 업무 성격상 수많은 사고 통계를 접했던 산업재해 사례 분석을 통해 하나의 통계적 법칙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어떤 중대한 산업재해가 1건 발생하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미한 산업재해가 29건, 그리고 산업재해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징후가 300건이나 발생한다는 사실이었다.
즉, 큰 재해와 작은 재해 그리고 사소한 사고의 발생 비율이 1:29:300이라는 사실을 발견해 낸 그는 중요한 것은 숫자 자체가 아닌 산업재해와 그 징후의 비율에 주목했다. 결국, 그가 분석해 낸 결론은 '대부분의 참사는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원인을 파악·수정하지 못했거나 무시했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하인리히의 법칙(Heinrich's law)' 또는 '1:29:300의 법칙’은 그가 펴낸 책 ‘산업재해 예방: 과학적 접근(Industrial Accident Prevention: A Scientific Approach)’에 의해 소개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어떤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같은 원인으로 수십 차례의 경미한 사고와 수백 번의 징후가 반드시 나타남'을 뜻하는 통계적 법칙이 되기도 했다. 그의 이런 주장 이후 유사한 법칙을 연구해 낸 많은 학자들이 있었지만 공통점은 ‘큰 사고는 우연히 또는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반드시 경미한 사고들이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발생한다’는 점이었다.
‘하인리히 법칙’ 상기키는 사례들, 전북지역 자주 발생

상대적으로 사소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살펴 그 원인을 파악하고 잘못된 점을 시정하면 대형 사고 또는 실패를 방지할 수 있지만 징후가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방치하면 돌이킬 수 없는 사고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 것이다. 사소한 일에도 경각심을 가지며 행동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인데 우리 속담 중 하나인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과도 엇비슷하다. 많은 소들 가운데 한두 마리 잃었을 때 외양간을 고치면 그나마 남은 소들이라도 지킬 수 있지만, 소들을 다 잃어버린 뒤에는 어떤 짓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과도 같은 뜻을 지닌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지역에서도 최근 자주 나타난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지만 최근 부안지역에서 발생한 4.8 규모의 지진은 가장 규모가 큰 지진이란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충격에 휩싸였지만 이미 전북지역도 지진으로부터 안전지대가 아니란 점은 그동안 많은 사례들이 경고해 주고 있다. 기상청 자료 등을 분석해 보면 2018년부터 지난해 연말까지 5년 동안 전북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지진은 200건이 넘는다. 지역별로는 군산 64건, 진안 48건, 장수 21건, 완주 20건, 부안 18건, 무주 17건, 고창 16건, 김제 10건, 익산 5건, 순창 4건, 남원 3건, 임실 3건, 전주 2건, 정읍 1건 등의 순이었다.
주로 바닷가와 인접한 군산지역이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지만 내륙 깊숙한 지역인 진안, 장수, 무주지역이 지진 발생 상위권에 위치해 있는 것은 예사롭지 않다. 게다가 지난 12일 오전 8시 26분 49초 부안군 남남서쪽 4km 지점에서 규모 4.8의 강진이 발생해 올해 한반도와 주변 해역에서 일어난 지진 가운데 가장 강한 규모로 기록됐을 정도다.
이번에 발생한 지진은 부안의 해안가가 아닌 내륙의 행안면 진동리의 지반이 약한 곳에서 발생했다. 인근 새만금 매립지에 들어서는 기존 공장과 시설물들은 물론 앞으로 들어설 많은 건축물과 기반시설 등에 경종을 울려준 지진이었다. 전문가들은 새만금 자체가 연약한 암반 위에 놓여 있는데 그 위에 또 매립을 한 상태이기 때문에 지진에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지적한다.
부안 4.8 지진, ‘새만금 매립지에 개발 서두르면 큰 재앙 부를 수 있음’ 경고

더 큰 문제는 새만금의 매립지대가 단단하게 눌려서 안정화될 때까지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급하게 개발을 서두르다가 지진 대비를 충분하게 하지 않을 경우 이번과 같은 규모의 큰 지진이 직접 닥쳤을 경우 재앙을 부를 수 있다는 지적과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오창환 전북대 지구환경과학과 명예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새만금 매립지역의 경우 깊은 데는 40m 들어가야 암반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암반까지 파일을 박아서 파일들이 서로 지탱해야만 지진에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공법을 도입하면 당장 공사비가 많이 들게 되고 땅값이 비싸지니까 이를 그냥 간과하기 일쑤라는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 외에도 새만금의 매립지 인근에서 발생한 이번 부안 지진이 주는 의미는 철저한 대비를 하지 않으면 지난해 참담한 실패를 안겨주었던 새만금 잼버리대회보다 더 큰 피해와 참담함을 경험하게 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그런데 지진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전북자치도는 이곳에서 대규모 국제요트대회를 강행하려다 강진 후 이어진 17회의 여진 등으로 인한 피해 신고가 이어지며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자 슬그머니 대회를 취소했지만 안전불감증이 만연해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 빈축을 샀다.
이 외에도 전북자치도에서 최근 드러나고 있는 간부들의 갑질 논란과 선심성 광고 집행, 계약서류 위조 등의 잇단 사례들은 앞서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가 주장한 '1:29:300의 법칙'을 떠오르게 하기에 충분할 만큼 심각성을 지니고 있다.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같은 원인으로 수십 차례의 경미한 사고와 수백 번의 징후가 반드시 나타나고 있음을 시민사회단체와 도의회에서 제기하고 있지만 정작 전북자치도는 눈과 귀를 막고 있는 듯하니 더욱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갑질 논란은 그동안 전북자치도 본청과 산하 기관들에서 수시로 발생해왔으나 올들어서는 유독 논란이 뜨겁다. 김관영 지사가 취임 후 공들여 추진하는 사업을 맡고 있는 기업유치지원실과 대변인실에서 도드라진 이유는 해당 부서 최고 책임자들이 갑질의 중심에 선 인물들인 데다 기업유치지원실장의 경우 갑질 논란을 일으키고 사직서를 제출했다가 1주일 만에 다시 철회서를 제출하면서 공직사회를 불안과 혼란, 분노에 휩싸이게 하고 있다.
지난해 7월 2급 간부직으로 외부 출신 인사를 임명할 때부터 도청 안팎에선 왜 그를 채용했는지 모르겠다는 의아한 반응들이 나왔다. 그러더니 결국 1년도 안 돼 불거져 나온 부하 직원들에게 갑질을 일으킨 내용은 차마 거론하기조차 민망할 정도다. 그를 임명한 도지사는 문제가 커지자 그제서야 심각한 상황임을 인지했던지 일단 감사위원회의 감사 결과에 맡기기로 했다고 하지만 공무원노조는 "도지사의 강력한 의지만이 갑질을 근절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공무원노조는 "갑질 당사자는 더 이상 분란을 일으키지 말고 깨끗이 물러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히고 나설 정도다.
갑질 이어 선심성 광고 집행 논란...시민사회단체 투명성 요구 불구 ‘마이통풍’

그런데 또 다른 갑질 논란이 불거진 곳은 지난해 11월 김 지사가 언론인 출신을 발탁해 임명한 4급 대변인이 근무하는 부서에서 발생해 파장이 크다. 부하 직원에 대한 갑질 논란 외에 이 부서에선 특정 언론사와 특정 협회 소속 기자들에게만 광고비를 집행해 ‘선심성 광고’ 또는 ‘비판 언론 길들이기용 광고’란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이를 몇 차례 지적하며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와 해명 등을 요구했던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급기야 51개 노동·사회단체들로 뭉쳐 지난 13일 전북자치도의회 앞에서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한목소리를 내기까지 했다. 이날 시민단체 대표들은 "전북자치도청 대변인실 광고비 지급 논란과 관련 김관영 지사의 사과와 개선 의지를 밝힌 것"과 "전북기자협회와 전북도의회 출입기자단은 기자들의 부당한 광고 요구나 거래가 존재했는지 확인하고 진상을 조사 후 공개할 것" 등을 촉구했다.
그런데 김 지사는 물론 해당 협회·기자단 역시 묵묵부답이다. 시민단체들의 빗발치는 요구에 일체 대응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비쳐지기에 충분해 보인다. 시민단체들에 대한 ‘마이동풍’ 자세는 도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어서 지역 최고 행정기관과 언론의 불통·독선이 얼마나 심각한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다른 분야도 아니고 도민의 혈세를 선심 쓰듯 마음대로 집행하고 있는 데 대한 문제제기와 그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개선하라는 거센 시민들 요구를 외면한 것이어서 더욱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송하진 전 도지사가 퇴임 후 맡고 있는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가 혈세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특정 언론사에 광고를 집행한 후 서류를 위조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이 또한 어물쩍 넘어가려다 도의회 의원에게 지적을 받았다.
서예비엔날레, 새만금 관광개발사업 '서류 위조'...연거푸 '들통'
특정 언론사의 전광판 수의계약 건의 계약서와 계약보증금 지급 각서에 날인이 되지 않은 원본에 날인 한 부분만 오려서 붙인 것을 발견하고 도의원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도지사는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자체 조사를 벌인다고 슬그머니 넘어갔지만 명백히 자료를 위조한 ‘서류 조작’이란 지적에 대한 분명한 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가뜩이나 전관예우라는 지적과 특혜 의혹을 받는 서예비엔날레는 도의회의 잦은 문제 지적에도 불구하고 전북자치도의 관리 감독이 부재하다보니 온갖 비위와 일탈 행위들이 속속 도마에 오르고 있다. 방만한 수의계약 외에 보고도 없는 해외 출장, 증빙 없는 현금 지급 등의 지적이 속출하고 있다.
서류 조작은 새만금사업 계약 과정에서도 드러나 파장이 크다. 바다를 메워 축구장 200개를 합친 것보다 넓은 1.64km² 면적에 개발할 예정이었던 부안군 새만금 해양레저관광복합단지 개발사업은 2022년부터 착수해 2030년까지 완공할 예정으로 3,000억원 이상을 투자해 해양레저단지 조성 취지에 맞는 관광시설과 편의시설 등을 조성하게 된다며 그동안 많은 언론에 홍보를 해왔지만 허위서류 제출(문서 위조)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업이 전면 중단된 상태다.
그 내막은 더욱 어처구니 없다. 골프 선수 출신인 박세리 씨가 이사장으로 있는 '박세리희망재단'은 최근 새만금 골프관광 개발사업과 관련 그의 부친 박준철 씨를 사문서 위조 및 사문서 행사 혐의로 고소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더욱이 이는 전북자치도와 새만금개발청이 역점적으로 추진해 온 새만금 관광 명소화사업이란 점에서 그동안 많은 공을 들이고 홍보해 온 것과 달리 업체에 속은 것과 다름 없는 결과여서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위조가 드러나면서 해당 새만금 관광개발사업이 무산되는 상황 앞에 도민들 마음은 황당하고 착잡하기만 하다. 전북자치도의 이 같은 불안한 사례들을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가 바라본다면 어떻게 진단했을지 자못 궁금하다.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싶다.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수십 차례의 경미한 사고와 수백 번의 징후가 반드시 발생한다는 점을 깊이 주의하라.“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