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의 역사칼럼

백승종 역사학자
백승종 역사학자

일제강점기의 항일 독립투사 중에 '백구파(白鷗波)'란 분이 있습니다. 호(號)는 구파요, 실제 이름은 정기(貞基)였습니다. 그분은 어려서는 거유(巨儒) 전우(田愚, 호는 艮齋) 문하에서 성리학을 연구하였으나 장성한 뒤에는 아나키스트가 되어, 항일무장투쟁의 선두에 나섰지요.

동지들과 함께 선생은 중국 상하이(上海)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활동하는 일본공사와 장성을 제거하려고 하였던 것인데 일이 잘못되어 감옥에 갇히셨지요. 그리고는 일본으로 이송되어 옥중에서 순국하셨으니, 1934년 6월 5일이요. 향년은 39세였습니다. 백구파 선생을 우리는 흔히 이봉창, 윤봉길 의사와 함께 '삼의사(三義士)'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백정기 선생이 자신의 호를 '구파'로 삼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 점이 궁금하여 문헌을 살피며 궁리할 때가 있었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도 그런 생각을 하실 분이 계실지 몰라서 설명을 붙여봅니다. 억단(臆斷)이라고 곁으로 밀어두지 마시고, 두어 줄밖에 안 되는 저의 설명을 끝까지 읽어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당나라 최고의 시인으로 두보(杜甫)라는 분이 있지요. 그의 시 가운데 <봉증위좌승장 이십이운(奉贈韋左丞丈二十二韻)>도 있습니다. 그중에서 당나라를 대표하는 두보는 아래와 같이 읊었습니다.

“백구가 드넓은 물결 위를 나누나. 만 리(를 거침없이 나는 이 새거늘) 뉘라서 길들이랴. (白鷗波浩蕩 萬里誰能馴)”

무슨 뜻이겠습니까. 어떠한 인연이든, 억압이든 조금도 구애됨이 없이 호연(浩然)하게, 자유롭게 자신의 길을 따라 떠난다는 뜻입니다. 그처럼 외로워도 자유로운 존재가 다름 아닌 <백구파>인 것입니다. 백정기 선생이 호를 “구파”라고 정한 데는 이처럼 깊은 뜻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백구파의 동지들은 대개가 유교적 교양이 높은 분들이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구파의 뜻을 금세 알아보았을 줄 압니다.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하거나 협박하는 제도와 '진정한 해방' 

끝으로, 두어 줄 덧붙입니다. 백구파 선생이 추구한 아나키즘이 과연 무엇인가를 되짚어보려는 것입니다. 선생은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제도와 관습에도 걸림이 없기를 바라고 있었다고 봅니다. 20세기 전반의 세상을 지배한 자본주의든 또는 공산주의든 그런 것은 모두가 제국주의적인 것이요,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하거나 협박하는 제도였습니다. 그러므로 선생은 진정한 해방을 원한 것입니다.

선생이 아나키스트가 된 것은 기존 질서로부터 해방된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은 구파가 이미 어린 시절에 읽은 책 <<예기(禮記)>>에도 나오는 '대동(大同)'의 이상(理想)과 상통하는 것이었습니다. 백구파는 사상적으로 볼 때 아나키스트였음이 분명하나 그것은 우리가 지레 짐작하는 것처럼 순전한 서구 사상이 아니요, 유교(儒敎) 고전 <<논어>>에도 명시된 '무위이화(無爲而化)'를 추구하신 것이 아닌가 짐작합니다.

억지로 다스리지 않아도 저절로 교화된 세상이 곧 무이위화요, 이는 유교적 이상이자 또한 도교의 이상이기도 하였습니다. 여기서 자세히 설명할 겨를은 없으나, 저는 백구파 선생과 그분의 동료들이 이루고자 한 아나키즘의 세상은 서구식 아나키즘이 아니라, '유교적 아나키즘'이라고 명명(命名)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제 추측이 과연 옳은지는 앞으로 좀 더 시간을 두고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백승종 객원논설위원(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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