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상의 전북 문화 이야기(43)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 나라와 역사를 생각하며 목숨바쳐 나라를 지킨 선열들께 감사하는 달이다. 첫날 6월 1일은 '의병의 날'이다. 임진왜란시 의병장 곽재우가 거병한 날을 국가기념일로 삼아 한국사의 빛나는 한 장면인 의병의 뜻을 기리는 날이다. 곽재우는 34세에 대과에 합격하고도 지지리도 옹졸한 선조가 감히 자신을 비판했다고 합격을 취소시킨 억울함을 당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국난을 당하자 먼저 일어섰다. 국난을 부른 임금과 무능한 기득권 고관들은 도망치기 바쁜데도, 무관의 선비와 핍박받던 민초들이 목숨바쳐 나라를 구한 '의병'의 역사는 세계사 어디에도 없는 한국사의 자랑스런 눈대목이다.

일광 정시해 의사
일광 정시해 의사

임진정유왜란, 병자호란, 구한말 등 국난을 당할 때마다 목숨 바치고 의를 취한 위인들은 늘 의병이었다. 지식인의 헌신, 가진 자의 책무를 실천한 한국사의 빛나는 한 장면이 바로 의병사인 것이다. 그러나 나라위해 모든 것을 다바친 의병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정당하지 못했고, 국가보훈은 정의롭지 못했다. 불의한 권력자가 자기 측근들은 공적도 없는 공신을 만들고, 목숨바쳐 싸운 의병들을 핍박하고 죄를 주었고, 김덕령의 경우처럼 심지어는 누명을 씌워 죽인 것이 임진왜란 이후 논공행상이었다.

광복이후에도 반민족행위자 친일부역세력이 독립운동 선열들을 죽이고 욕보인 슬픈 현대사의 반복은 부끄러운 장면이다. 불의한 것들에게 권력을 쥐어준 역사의 실패다. 의병사를 읽으면서 분노가 치미는 지점이다. 오늘의 대한민국 정치꾼은 국격을 한없이 추락시키면서도, 내로남불 타령 속에 정의를 분간하지도 못하고, 아예 부끄러움마저도 잃어 버렸다. 안타깝고 슬픈 현실속에 또 속절없이 호국의 달을 맞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의병사를 기억하고 크게 소리라도 외쳐야 한다.

나라 망했는데 어찌 백성이 미치지 않으랴?

임진왜란 때도 유독 전라도 의병의 활약상이 빛났다. 이순신의 '호남이 없었으면 나라가 없었다'는 평가도 그러하고, 임진왜란 3대첩의 주력군이 주로 호남의병이었다. '의불여 고창, 의향 고창'이란 높을 고창의 애칭에 명실상부하게도 임난 3대첩에서 맹활약한 이들이 또한 고창 의병이었다. 과연 의향 고창이다. 6월에는 을사늑약에 항거하여 일어난 병오창의, 호남의병 최초순국자 일광 정시해 의사와 임난 3대첩의 고창의병들을 특별히 기록해 두고 싶다.

6월 11일은 1906년 호남의병의 ‘병오창의’ 최익현 의진의 중군장 일광(一狂) 정시해(鄭時海, 1874~1906 ) 의사 순국일이다.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성현께 공부한대로 충효를 실천하며 살았던 아름다운 조선선비 일광 정시해는 33세로 순창객사 의진에서 순국하였다. 짧고 굵게 살았지만 역사 속에 길이 살아 남았고, 목숨을 버리고 의를 지키는 사생취의(捨生取義)의 거울이 된 참 지식인이다. 진주정씨 정시해의 자는 낙언(樂彦), 호는 일광(一狂)이다. 고창 성송(당시 무장현)출신으로 부친은 정종택(鄭鍾澤), 모친은 거창신씨(居昌愼氏)다. 송사 기우만과 면암 최익현의 학맥을 이었다. 정 의사는 양친 상에 6년을 시묘하며 효행을 실천하는 등 교과서적인 효행으로 귀감이 된다.

병오창의 준비시에 스승인 면암 최익현 의병대의 모집책인 소모장 겸 중군장(召募將兼中軍將)을 맡아 거사모의, 영남지역 지사들과의 연락책과 의병모집을 담당하여, 침식을 잃고 호영남지역을 미친듯이 누비고 다녀 행색이 미치광이라 할만했다. 태인 무성서원 출병이후 행군시에는 중군장을 맡아 일본군과 교전하다가 순창객사의 교전에서 적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호남의병 최초의 순국이었다. 유림들은 광복이후 정 의사의 행적을 ‘충효양전(忠孝兩全)’의 사표로 받들고자, 무장현 관내 객사 등에 충효비를 세우고 추모제를 모셔왔다. 특히 3천여 명이 동참하여 한국 최초의 순수 민간모금으로 일광기념관을 지은 일도 의향 고창 답다. 일광기념사업회는 항일의병사 연구와 역사탐방 등 다양한 선양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일광은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묘소는 고향 안산에 모셨다가, 대전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제307호 유택으로 옮겨 모셨다.

그대의 죽음이 우리들의 빛이되었다네...왜 하필 의사의 호가 일광, 미치광이인가?

정시해는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본에 국권을 침탈당하자 나라 잃은 미치광이 백성(실국광민 ; 失國狂民)이라 통탄하며 의병을 결심한다. 일광자호기(一狂自號記)라는 처절한 오언절구 한시를 짓고 스스로 미치광이 선비, 일광이라 호를 붙였다. 의향고창 선비의 호연지기가 넘치는 장엄한 기개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임금이 치욕을 당했으니 신하된 자 죽어 마땅하리니 이 내몸은 어찌 해야 하느뇨? 목 놓아 소리치고 통곡하나니 이 어찌 미치광이라 하지 않으랴?(主辱臣當死 從何輸此身 放歌歌又哭疑是一狂人)” 

총탄을 맞은 일광 의사가 임종시 면암에게 "시해는 왜놈 하나도 죽인 일이 없이 죽으니,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하겠습니다. 악귀가 되어서라도 선생을 도와 적을 죽이겠습니다" 하고 운명하였다. 면암은 일광의 명정을 "대한국 의사 정시해지구"라고 쓰게 했다. 정시해 의사의 기개와 의로운 충절에 대해 면암 최익현은 일광창의시를 지어 격려했고, 일본군에 끌려가서 단식항거하다 순국한 대마도 옥중에서도 일광의사를 기리는 추모시를 남겼다. 대마도 감옥에서 묵묵히 지은 5언절구 한시 14수 중에 제자인 일광을 애도하는 한시 '정시해에게 바치는 만사, (輓鄭時海)'에서 일광의 순국으로 병오창의가 체면치레를 했다고 심중을 밝혔다.

"해저문 순창객사 의진에서 죽기로 맹세한 이 겨우 27인 오직 그대 먼저 목숨을 바쳤으니 우리들의 떳떳한 빛이 되었구려(번역 유기상) -(落日淳昌館 誓死纔二七 惟君先致命 吾輩賴生色)

1910년 한일강제병합의 국치를 당하자 자결순국하여 나라에 의로운 선비가 살았음을 보여준 매천 황현은 만시를 지어 정시해를 기렸다. 정시해, 최익현, 황현처럼 대의를 위해 목숨을 풀잎처럼 던질줄 알던 아름다운 선비가 살던 우리나라였다.

인물은 나오나 집안은 망한다?

일광 집안의 당초 주거지는 삼태성 기운으로 고려시대 이래 삼정승이 났다는 곳, 옛 무송현의 현청이 있었다는 지명인 고현마을이었다. 비보숲인 왕버들 나무 숲이 아름다운 아랫마을 삼태의 새 터를 잡아준 지관이 이사할 때 정 의사 생가 터에 관한 예언을 했다고 한다.

"장차 큰 인물이 나오기는 하되 집안은 망한다."

이 말은 일광 후손들의 고난의 가족사, 아니 한국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부당한 처우를 예고한 말이 되고 말았다. 일광은 독립운동 의병사에 이름을 크게 날렸지만, 후손들은 고난을 떠안아야 했고, 일광의 생가도 사라지고 삼태마을 생가터 대부분은 이미 남의 땅이 되었다.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4권1책의 유고책인 <일광집>을 남겼으나, 군이나 나라에서 의사의 삶이 담긴 책 한권 번역작업도 아니하고 있다. 독립운동가 초상화를 많이 그린 석지 채용신 작품인 일광 초상화까지도 수난을 겪었으니, 일제가 없앴을 것으로 추정할 뿐 소재조차 묘연하다. 3천여 의인들이 나서서 기념사업을 했는데도 겨우 이 정도이니, 더 어려운 독립유공자들 형편이야 말할 수도 없으리라.

배운 자의 책무, 지도자의 본분을 다한 위인의 역사가 의병사다. 최근 보훈처를 보훈부로 격상했다고 생색낸다. 보훈을 잘못하는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 오늘날 대한민국 의병 후손들과 반민족행위자 후손들의 현재 삶을 보고, 누가 다시 국난을 당하여 의병에 나서겠는가? 국가보훈의 첫 걸음은 대한민국을 만든 뿌리인 의병사, 독립운동사를 제대로 쓰는 일이다. 식민사학의 그늘이 너무 짙어서 아직도 독립운동사 연구자들은 찬밥신세고 근현대사 연구마당에 발붙이기도 힘들다고 한다. 독립운동가 역사학자인 박은식은 “나라는 비록 망했지만 국혼이 소멸하지 않으면 부활이 가능하다. 국혼은 역사다.” “의병 정신은 반만년 역사에서 저절로 우러나온 민족정신이다.”고 갈파하였다.

의병정신의 복원과 역사광복이 여전히 시급한 민족사의 급한 불이다. 광복 80년이 되었건만 뿌리 깊은 식민사관을 청산하지 못하였고, 총독부가 만든 한국사의 줄거리는 오늘도 그대로다. 체계적 연구나 평가도 없는 의병사와 독립운동사를 제대로 살려내는 일이 급선무다. 해방직후 반민족행위자 정리가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었더라면, 역사전쟁 시비도 국론분열도 없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확고하게 굳혀졌으리라는 아쉬움이 크다. 의병은 고사하고 국민의 기본의무도 다하지 못한 염치없는 병역미필자들이 사욕을 위해 공직을 욕심내서야 되겠는가?

다시는 염치를 모르는 불의한 권력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시민들이 선거의병이 되어 눈을 부릅뜨고 말로만 애국자, 가짜 지도자를 가려내고 심판하는 의병이 되어야 국혼이 살아난다. 정의가 불의를 이기는 자랑스런 한국사를 다시 쓰는 역사광복 의병이 일어나야 한다. 한 줌의 역사의식도 없고, 최소한의 양심과 부끄러움도 팽개친 무도한 권력자의 불의를 꾸짖고, 자랑스런 의향 고창의 혼을 지키는 민주주의 수호의병이 되살아나야 의향 고창이다. 그 길만이 치욕의 역사 반복을 막아내고, 의를 버리고 사익을 취하는 불의한 것들에게 정의가 조롱당하지 않는 외길이다. 

/글·사진=유기상(문학박사·전 고창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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