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길 위에서'

'남원' 하면 떠오르는 것이 '춘향전'일 것이다. 춘향이 떠나간 이몽룡을 기다리다 변학도에게 모진 고난을 당하는 이야기다. 이렇듯 아름다운 절개가 백미인 '춘향전'은 잘 알면서도, 또 다른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남원 사람들도 잘 모른다. 남자가 여자를 기다리다 일생을 마친 '만복사저포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 이야기의 무대는 남원시 왕정동에 있는 만복사 터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만복사, 기린산 동쪽에 5층의 전당이 있고 서쪽에 2층의 전(殿)이 있는데, 그 안에 높이 53자의 동불(銅佛)이 있으니 이는 고려 문종 때 창건한 절이다”라고 실려 있고, 강희맹이 “소나무와 계수나무 그늘이 짙어 고을을 보호하였으니, 절에서 울려 퍼지는 종과 경쇠 소리가 달빛 속에 가득하도다. 으름과 칡넝쿨 덮인 오솔길은 인간에게 부귀를 묻지 않네”라고 노래한 만복사를 무대로 지은 글이 김시습의 '금오신화' 중에 나오는 '만복사저포기' 내용이다. 

머리만 땅 위로 솟아 있고 몸통은 땅속에 묻혀있던 것을 파내어 세워놓은 석인상이 인상적인 만복사지를 배경으로 지은 '만복사 저포기'에 담긴 내용 중 인상 깊은 대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남원 땅에 양생이라는 늙은 총각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양생은 만복사의 불전에 찾아가서 부처님께 저포놀이를 청하였다. 그가 지면 매일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고 부처님이 지면 아름다운 여인을 중매해달라는 것이었다. 부처님이 흔쾌히 승낙하자 양생이 먼저 저포를 두 번 던졌다. 결국 양생이 저포놀이에서 이겼다. 양생이 불상 뒤에 숨어서 그의 배필이 될 여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데 그때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서 부처님께 자신의 외로움을 하소연하며 좋은 짝을 만나게 해달라고 비는 게 아닌가. 그것을 지켜본 양생이 여인 앞으로 나가서 자신의 사연을 말하자 여인도 그의 말에 이끌려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런데 여인은 인간이 아니었다. 왜구가 쳐들어왔을 때 왜구의 손에 죽은 처녀의 혼령이었다. 다음 날 여인은 양생에게 자신이 사는 마을로 가기를 원했고, 그곳에 따라간 양생은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사흘이 지나 양생이 돌아가는 날 여인은 은주발 한 개를 선사하였다. 그 은주발은 사실 여인의 무덤에 함께 묻힌 매장품이었고, 그다음 날은 여인의 대상(大祥) 날이었다. 그들은 보련사에서 다시 만났고 제가 끝난 뒤 여인은 인연이 다해 저승으로 떠나야 하였다. 이윽고 영혼은 떠났다. 여인이 전송을 받을 때는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더니 문밖에 이르러서는 은은한 소리만 들려왔다.

“저승길이 촉박하여 애달프게 떠납니다. 비나이다, 임이시여. 저버리진 마옵소서. 슬프다, 우리 부모. 내 배필 못 지었네. 아득한 저승에서 원한만이 맺히리.”

남은 소리가 점점 사라지면서 목메어 우는 소리와 분별할 수가 없게 되었다. 여인의 부모는 그제야 모든 것이 사실임을 알고 다시는 의심하지 않았으며, 양생도 또한 여인이 귀신임을 알고는 더욱 슬픔이 복받쳐 여인의 부모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슬피 울었다. 여인의 부모가 양생에게 말하였다.

“은주발은 그대의 뜻에 맡기네. 그리고 내 딸에게는 토지 몇백 이랑과 노비 몇 명이 있으니 자네는 그것을 신표로 지니고 부디 내 딸을 잊지 말아주게.”

이튿날 양생은 고기와 술을 가지고 개령동을 찾아가니 과연 시체를 임시로 안치한 관이 있었다. 양생은 제물을 차려놓고 슬프게 울면서 그 앞에서 지전(紙錢, 정승에서 쓰인다는 종이로 만든 돈)을 불사른 뒤 정식으로 장례를 지냈다. 그리고 제문을 지어 장사를 지냈는데 제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오, 임이시여! 당신은 어릴 때 천품이 온순했고 커서는 얼굴이 깨끗했소. 모습은 서시(西施, 월나라의 미인으로 오나라 왕의 총희가 되었다)와 같았고 시부(詩賦)는 숙진(淑眞, 송나라 때의 여류 시인)을 능가하였소. 스스로 규문 밖에 나가지 않았고 언제나 가정의 교훈을 고이 받아왔었소. 난리를 당하고도 오히려 정조를 지켰으나 끝내 왜구의 손에 목숨을 잃었소. 황량한 다북쑥 속에 몸을 의지한 채 홀로 살면서 피는 꽃 밝은 달에 마음만 슬퍼했소. 봄날엔 애끓는 두견새의 울음을 슬퍼했고 서리 내리는 가을엔 비단 부채의 무용함을 탄식했었소.

지난 하룻밤 당신과 만나 정을 나누었더니 유명(幽明)은 비록 서로 달랐으나 물 만난 고기처럼 서로 즐겁지 않았소. 장차 백년을 해로하려 했는데 어찌 하룻저녁에 이별이 있을 줄 알았겠소. 임이시여, 당신은 응당 달나라에서 나는 새를 타는 선녀가 되고 무산에 비를 내리는 낭자가 되리니 땅은 어두침침해서 돌아볼 수가 없을 것이오. 하늘은 아득해서 바라보기가 어렵겠소.

나는 집에 들어가도 그저 멍멍히 지내고, 밖에 나가도 아득하여 갈데없는 몸이 되었소. 영혼을 모신 휘장을 대하면 얼굴을 가리어 울게 되고, 좋은 술을 따를 때엔 마음이 더욱 슬퍼지오. 요조한 그 모습은 눈에 삼삼하고 명랑한 그 음성이 들리는 듯하오. 아아! 슬프기 한이 없소. 총명한 당신의 슬픔, 정밀한 당신의 기상, 몸은 비록 흩어졌을지라도 영혼만은 남아 있을 것이니 응당 내려와서 뜰에 오르시고 어쩌면 나타나서 곁에 있겠는지요. 비록 저승과 이승은 다를지라도 당신은 이 글월에 느낌이 있을 것이외다.”

장례를 지낸 양생은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땅과 집을 다 팔아 절로 가서 사흘 저녁제를 올렸다. 그러자 여인이 나타나 양생을 부르며 말하였다.

“저는 낭군의 은덕에 힘입어 이미 다른 나라에서 남자의 몸으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비록 저승과 이승이 막혀 있지만 낭군의 은덕에 깊이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낭군께서도 이제 부디 착한 업을 닦으시어 저와 함께 속세의 우에서 벗어나도록 하십시오.”

양생은 그 뒤 다시는 장가를 가지 않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약초를 캐면서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어디에서 세상을 하직했는지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슬프고 슬픈 사랑 이야기가 서린 만복사지는 다시 발굴 중이고, 양생의 자취는 두리번 거리며 찾아도 그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으니 무상함만 가득 밀려온다.

/글·사진=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문화사학자·문화재청 문화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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