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광 기자, 온몸으로 묻는다] 박인환 안산 화정교회 목사

2024년 4월 16일 아침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침몰했다. 세월호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 떠나던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있었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걸 온 국민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참사 직후엔 대부분의 국민이 참사에 대해 아파하고 한국사회가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세월호 희생자를 조롱하거나 폄훼하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의 대형 교회 목사들의 막말은 사회의 지탄을 받아야 했다.

그런 와중에도 묵묵히 세월호의 진실을 알리려고 노력한 목사가 있다. 세월호 희생자인 유예은 양이 출석하던 안산 화정교회의 박인환 목사다. 박 목사는 세월호 10주기를 어떻게 맞이하는지 궁금해 지난 9일 서울 용산역에서 만났다. 다음은 박 목사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 10년 됐지만 제대로 바뀐 거 없이 계속 도돌이표...‘그만해라 지겹다’고 말하는 사람들 볼 때마다 마음 편치 않아”

박인환 안산 화정교회 목사
박인환 안산 화정교회 목사

- 오는 16일이면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이해요. 목사님은 시무하는 교회에 희생자인 유예은 양이 출석했어서 그런지 세월호 유가족을 위해 많은 일을 해오셨는데 10주기 소회가 어떠세요?

“10년이 제대로 바뀐 거 없이 계속 도돌이표 같아서 안타깝죠. 진상규명이나 책임자 처벌은 되지 않은 상태인데 ‘그만해라 지겹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니까 그걸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죠.”

- 진상규명이 안 됐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나 일각의 주장은 진상규명이 끝났는데 유가족이 그걸 못 받아들이는 거라던데.

“많이들 얘기하는데 저는 유가족이 아니지만 곁에서 보더라도 이건 상식적이지 않아요. 진상규명을 위해 만든 특조위에서 새누리당 추천위원들은 특조위 활동을 방해했고요. 박근혜 전 대통령은 특조위를 서둘러 해산했습니다. 시간 다 보내고 아무것도 못 한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들의 집요한 방해 같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냥 ’특조위 조사, 검찰 조사 등 할 만큼 했는데도 아무것도 나온 것이 없지 않느냐, 그러니 이제 그만해라‘라고 하죠. 그건 아주 무관심하고 유가족들에게 잔인한 얘기 하는 것입니다. 진상규명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여 확실히 하여야 합니다.”

- 목사님은 세월호 참사 후 독서대를 만드는 등의 일을 해오셨어요. 어떤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저는 10년 동안 여러 가지 일을 했어요. 유가족 있는 교회 목사이다 보니까 세월호 특조위 설치해달라는 서명도 많이 받으러 다녔고 또 배지를 제작해서 나누는 일도 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세월호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어요. 그래도 참사 이듬해인 2015년 1월 25일에 교회에서 쫓겨나고 교회 못 가는 유가족들 모아서 분향소와 기도실에서 예배를 시작했어요. 그게 아직 이어져서 분향소가 폐쇄된 다음에는 세월호 안전공원 부지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예배드려요. 10년째 이어지고 있다는 게 감사한 일입니다.

두 번째는 2015년 7월쯤 안홍택 목사와 제가 유가족들 모아서 목공소를 시작했어요. 그것이 지금까지 9년간 이어져서 지금은 ‘4·16희망목공협동조합’이 되어 있습니다, 아직 수익 구조가 월급 받아 갈 만하지 못하여 경제적으로는 열악하지만 지금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

- 그럼 지금 목공소에서 어떤 걸 만들어요?

“가구도 만들고 성구도 만들어요. 최근엔 친환경 목제 상패를 개발해서 만들고 있는데 반응이 좋습니다.”

- 가구 만드는 거는 전문적인 거 아닌가요?

“그렇죠. 4·16목공소 엄마·아빠들의 기술이 상당히 좋은데 제품을 만들어도 일반 대기업들하고 가격 경쟁이 안 돼요. 가격 경쟁이 안 되니까 목공소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아요.”

“세월호 진상규명 제대로 했다면 이태원 참사 일어나지 않았을 것...권력자들 대처하는 게 더 사악해지고 노련해져”

-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2018년에 목공소 엄마·아빠들과 함께 브루더브 공동체라는 데를 다녀왔습니다. 재세례파라는 기독교인들이 모여 사는 목공 공동체입니다. 거기서 유족들이 위로를 많이 받았습니다. 먼 나라에 사는 기독교인들이지만 ‘당신들의 아픈 얘를 기억한다’, ‘당신들도 아이들 얘기 좀 들어보자’며 환대해 주는 것을 보면서 유족들이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 민정이 아빠가‘목사님 여기가 천국이네요’라고 말하더군요. 한국에서는 세월호 지겹다며 유족들을 폄훼하고 짓밟는데, 이 사람들이 이렇게 환대해 주고 위로해 주는 것을 보고 아주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거기서 얻은 힘을 가지고 돌아와서 협동조합으로 시작을 한 거예요.”

- 참사 후 한국 사회는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어요. 세월호 참사 후 3년 만에 대통령을 탄핵하기도 했죠. 10년이 지난 지금 한국사회는 달라졌을까요?

“하나도 안 달라졌어요. 정말 일어나서는 안 될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잖아요. 이태원 참사 생각하니까 하나 달라진 것은 있네요. 권력자들이 대처하는 게 더 사악해지고 노련해졌다는 거죠. 박근혜 정부는 분향소라도 차려줬는데 윤석열 정부는 그것도 못하게 하고 모이지 못하게 하고요. 세월호 진상규명을 하고 책임자 처벌을 제대로 했다면 이태원 참사 같은 건 일어날 일이 없는 거죠. 그런데 세월호를 대하는 정부나 또 일반 시민들의 태도가 10년 전하고 세월호 참사 때하고 똑같더라고요.”

- 어떤 면에서 똑같나요?

“예를 들면 ‘놀러 가다 죽은 애들’ 같은 프레임 만들어서 폄훼한다든지, 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호소하는 부모들을 이상한 집단인 양 프레임을 씌운다든지 그리고 또 그렇게 프레임 씌우고 가짜뉴스를 만드는 소위 수구 보수적인 언론들의 보도에 따라서 사람들은 또 그대로 폄훼한다든지 하는 거 보면 달라진 게 없어요.”

- 무엇 때문에 안 달라졌을까요?

“국민들의 마음을 ‘돈’이 채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너무 가난하게 살다가 급속하게 경제 발전이 되고 돈을 만지고 잘살게 돼서 그런지 모든 것이 돈으로 치환되는 사회가 된 것 같아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이렇게 돈으로 모든 것을 하려고 하는 데는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했는데 생명이나 안전에 대한 것보다는 이게 나한테 이익이 있느냐 없느냐라는 생각에 매몰되어 있으니 달라지겠습니까?”

- 우리나라만 그런 걸까요?

“다른 나라는 잘 모르는데 우리나라가 기복신앙이 특히 심한 것 같습니다. 지금 보다시피 기독교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소위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상한 당 만들어서 정치하고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 유족들 폄훼하고 돌 던지고 방해하잖아요. 그러니까 정말 교회 안에서 복음이 안 보이는 거죠.”

- 세월호 유가족은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죠. 그러나 2022년 10월 서울 한복판인 이태원에서 참사가 발생했잖아요. 한국은 안전한 사회일까요?

“제가 처음에 얘기한 것처럼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고 안전하지 않은 사회죠. 참사가 있으면 이게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이란 생각 할 줄 알아야 되고 저 이웃이 얼마나 아플지 어떻게 내가 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같은 생각들이 없어요.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인 사회가 안전하지 않죠. 서로 기쁨은 나누고 아프면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공감하고 그래야 정말 안전한 사회로 갈 수가 있는데 그런 게 없어요. 옛날에는 이웃이 아프면 이 마을 공동체가 있어서 마을에서 서로 버팀목이 돼주고 도와주고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제는 마을 공동체도 다 무너지고 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이웃해서 아파트에 살잖아요. 그것이 공감 능력 상실의 한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10년이 지났어도 어제 본 것처럼 다 기억 나...그러니까 더 마음 아파”

박인환 목사
박인환 목사

- 목사님 시무하시는 교회 단원고 희생자인 유예은 양이 출석 했잖아요. 요즘도 유예은 양이 생각 나시나요?

“그럼요. 교회 마당에서 뛰놀고 인사 잘하던 아이인데, 지금도 10년이 지났어도 어제 본 것처럼 다 기억이 나지요. 그러니까 더 마음이 아프죠.”

- 언제 가장 생각이 나요?

“예은이 생일날, 예은이가 물속에서 건져진 날 등 특별한 날이 되면 예은이 엄마가 많이 괴로워하죠. 그런 날에는 저와 아내 그리고 예은이 엄마가 예은이 안치된 곳에 가서 기도회를 하고 오죠. 그럴 때 엄마만큼은 아니겠지만 예은이 생각이 나고 괴롭죠.”

- 세월호 참사 직후 목사들의 막말로 한국교회가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는데 10년이 지난 후 한국 교회는 어떤가요?

“한국교회의 주류는 전혀 변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소수의 교회 목사와 성도들이 이 시대의 증언자 역할을 해오고 있죠. 세월호도 마찬가지고 소수의 교회 소수의 목회자 소수의 성도만이 어떻게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조금이라도 버팀목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해 온 것 같아요. 그래서 왜 교회가 이렇게 무덤덤하고 무감각하고 아파하지 않고 현장에 나오지 않을까 하는 것에 대해 저는 두 가지로 말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지난 30년 동안 한국교회가 성장 신학이라는 사이비 신학에 완전히 매몰돼서 교회는 양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교회의 목표인 양 존재해 왔다는 겁니다. 또 하나는 교회가 천민자본주의의 앞잡이가 된 것 같아요. 교회가 이 자본주의 논리에 경도 됐을 뿐 아니라 천민자본주의에 앞잡이 노릇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죠.”

- 그러나 성경에 보면 우는 자와 함께 울라고 했잖아요. 성경에 나왔는데 왜 지키지 않을까요?

“사람은 자기 듣기 좋은 소리만 듣게 돼 있어요. 복 받으라는 얘기를 굉장히 듣기 좋아하지만,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말씀이 성경에 있고 읽어서 알지만 그것을 자기에게 받아들이지 않는 거예요. 예수님이 소외된 자 가난서 병든 자 찾아가셨습니다. 그걸 알아요. 그러나 자기는 그렇게 하기 싫은 거예요, 관심이 딴 데 있어요. 몸은 교회 안에 있지만 관심은 예수의 삶에 있는 게 아니고 어떻게 하면 복 받을까 어떻게 하면 부자 될까 하는 것에 있다 보니까 아무리 성경에서 무슨 얘기를 해도 마음에 와닿지 않는 거죠. 그래서 내가 극단적인 말 하면 이 세월호가 우리에게 국민들에게 가르쳐준 것 중의 하나가 ‘교회는 예수 믿는 집단이 아니구나’라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수 믿는 집단이라면 이렇게 세월호에 대해서 냉담하고 폄훼하고 가짜 뉴스 퍼뜨릴 수는 없는 거죠.”

- 목사님에게 세월호는 어떤 의미일까요?

“정신을 화들짝 들게 하는 죽비 같아요. 저도 어떻게 하면 교회에 부응시킬까 하는 생각을 가진 평범한 목사였어요. 그런데, 세월호 참사를 대하면서 정신이 화들짝 들었습니다. 시골의 작은 교회 목사지만 내가 정신 차리고 그리스도인답게 이 세월호에 대해서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 했습니다.”

“기억하고 기억하면 사회가 달라져...기억해야 선한 역사 이루어갈 수 있어”

- 비판도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제가 4년 전에 기독교 대한 감리회 감독회장에 출마 했어요. 이 교회를 좀 건전하게 변화시켜야겠다는 충심으로 임했는데 프레임이 씌워지기 시작하더군요. 가장 큰 프레임이 뭐냐 하면 세월호 목사라는 프레임이에요. 나를 모르는 목사와 장로들은 ‘박인환 목사는 세월호 목사야’라는 말 한마디에 저를 무조건 안 찍었죠. 세월호 배지를 달고 다니다 보면 왜 목사가 이걸 달고 다니냐고 야단치는 장로들도 있어요. 그럼 나는 야단쳤어요. 한 번도 물러서지 않았어요.”

- 힘들지 않았나요?

“힘든 게 많이 있었죠. 그렇지만 선거는 현실이잖아요. 그것 때문에 어마어마한 표가 날아간 거죠. 그렇지만 제가 세월호 배지 떼고 선거운동 하지 않았고, 지금은 제가 감독 회장 되는 것 보다 끝까지 세월호 가족들 옆에서 같이 예배하고 옆에 서 있게 된 것이 더 크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 주세요.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기억해야 합니다. 기억을 해야 선한 역사를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잊어버리면 아무것도 못 하는 것이거든요. 사람들은 자기 아이가 당한 일 아니라고 쉽게 잊으려 한단 말이에요. 우리가 한 시대를 사는 동시대인들이고, 또 기독교적인 용어로 말하면 우리가 형제 자매들인데 형제의 아픔을 남의 것이라고 그 사람 것이라고 하지 말고 기억하고 기억하면 사회가 달라진다고 생각 합니다.” 

/이영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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